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1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내가 굉장히 어렸을 때(초딩) 읽은지라  당시에는 아무 생각없이 내용 그대로만 받아들였다. 나쓰메소세키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이 책을 쓴 건 관심없었다. 내가 읽는 건 그저 고양이에 관한 책, 지나가는 고양이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라고 1차원적인 생각을 가지고 순수하게 책만 보았다. 후에 도련님작가와 같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최근 현암사 서포터즈로 발탁되어 20년만에 다시 읽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넋 놓고 읽을 책은 아니라고 본다.

 

 

 

 

>>>>>>대체로 내가 쓴 것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적당히 쓴 것이라 생각하는 독자도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결코 그렇게 경솔한 고양이가 아니다.

 한 글자 한 구절 안에 우주의 오묘한 이치를 담은 것은 물로이고,  그 한 글자 한 구절이 층층이 연속되면 수미가 상응하고 전후가 호응하여, 자질구레한 이야기라 여기며 무심코 읽었던 것이 홀연 표변하여 예사롭지 않은 변호가 되니....<<<<<<

 

사실 이 앞 구절을 읽을 때만해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넘어가고, 돈 이 떨어졌다는 부인의 걱정스런 말에 콧털뽑기나 하고 앉았으니 얼마나 한심스러운 인간인가 라고 비판을 할 수 있지만 쉽게 비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 이 선생기질이 나와는 조금 닮아서일 것이다. 

 

언뜻 보기에 이 책은  고양이가 자신의 주인 중학교 교사인 진노 구샤미와 그 친구들 (흔히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인)의 행동과 대화를 관찰하며 보고하는 글로 비아냥거리고 조소하는 풍자적인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 책 내용안에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 자신도 포함되어있다. 읽다보니 나쓰메 소세키는 자신은 고양이인걸까? 아니면  구샤미인걸까? 라고 생각하며 읽다 끝에 갈 무렵 둘다 나쓰메 소세키가 아닌듯 싶다. (저자가 나쓰메 소세키=고양이는 이 책을 이끌어가니~ 구샤미는 말할것도 없고.)

 

나쓰메 소세키뿐 아니라 이 책을 읽는 사람이면 이 책안에서 한번쯤 자신을 발견해볼 수 있을 것 이다.

 

 

>>>>>>대개 인간 연구는 자기를 연구하는 것이다. 천지든 산천이든 일월이든 성신이든 모두 자기의 다른 이름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를 제외한 다른 것에서 연구해야 할 사상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만약 이간이 자기 바깥으로 뛰쳐나갈 수 있다면 뛰쳐나가자마자 자기는 없어지고 만다. 게다가 자기 연구는 자기 말고는 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아무리 하고 싶어도 누가 해주었으면 싶어도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고금의 호걸은 다들 제힘으로 호걸이 되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한 눈 팔기>의 책을 읽어보면 "나는 결국 무엇을 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라는 구절이 나온다. 고양이부터 시작하여 나쓰메 소세키가 집필한 책에는 끊임없이 자기가 고뇌했던 내용을 소설로 풀어낸다. 나쓰메 소세키가 짧은 집필기간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민작가라고 불리우는 것은 지금 세대들이 느끼는 것을  또 당시 세대들이 고민했던 것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뭘 해야지?" 라는 자기 고민이 투영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젊은 청년들은 멘토들에게 너무 의지한다. 그 청년에 포함된 나는 저 구절을 읽고  잠시 뜨끔했다.

 

아프니깐 청춘이다 이후로 2030세대들의 엄살은 심해졌다. ~ 그런데 청춘은 누구나 힘들다. 솔직히 지금 이 시대 청춘들이 제일 편하고 먹기 좋고 살기 좋은데( 우리 엄마 청춘때는 너무 배가고팠고 우리 할머니 할부지 시대에는 6.25였고, 우리 증조 할머니 할부지때는 일본인들에게 지배를 받았지 라고 말하면 언변좋은 감수성자들은 또 이렇게 말했지 "누군가 백혈병이 걸렸어. 하지만 난 감기지. 고통은 비교하는게 아니야 백혈병이 물론 더 크게 아프지만 그렇다고 내 아픔이 안아픈게 아니잖아(실은 옛날 내 생각이다.)" 헐- 의지할 사람이 필요해 나에게 조언할 사람이 필요해, 엉엉 거리는 엄살 어린 청춘을 위해 언론에서는 힐링이다 뭐다 뿌려대고 청춘달래주기가 먹혀주는 걸 알고 각 미디어들은 이들의 돈을 뜯어 먹기 바쁘다. 버릇은 버릇대로 나빠지고 그 엄살은 당연히 백혈병보다 위암말기 환자보다 어마어마하게 커진다. 힐링 비만이다 이것아.(지안이가 지안이에게)-

 

고양이도 알고 있다. 자기 자신은 자신뿐이 나올 수 없다는 걸. 아무리 하고 싶어도 누가 해주었으면 싶어도 불가능한 것인걸.

 

나쓰메 소세키는 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10년의 짧은 집필기간에 국민작가로 발돋움하고 후에 1000엔 짜리 지폐에 얼굴이 새겨질 수 있었던 이유는 풍자하고 조롱하는 그 책들의 주인공들이 바로 우리들이기 때문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그 밖에 후벼파는 몇 구절이 있다면.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살벌한 기운이 사라지고 개인과 개인의 교제가 온화해진다고들 하는데 그건 아주 잘못된 거네. 자각심이 이렇게 강해졌는데 어떻게 온화해진단 말인가. 뭐 얼핏보면 아주 조용하고 아무일도 없는 것 같지만 서로는 굉장히 힘들거든. 스모 선수가 모래판 한가운데서 샅바를 붙잡고 버티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나 진배없겠지. 옆에서 보기에는 지극히 평온해 보이지만 당사들의 배는 불록거리지 않는가-<<<<<<

 

그 살벌함이 지금 묻지마 살인으로 이어진게 아닌가 싶다.

 

고양이의 죽음을 허무하다는 사람이 있다는 분이 많은데, 나는 오히려 그게 현실적이다라고 느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