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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블로그를 하지 않는 기간은
정신없이 너무 바쁘거나, 혹은 몸의 컨디션 악화로 인하여.
그게 아니면 보통 '리비도가 입에 붙어버려서'
식욕으로 인한 우울감이 일상으로 전이되어 버릴 때 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적 발달단계론으로 보면
리비도 (Libido)는 단순한 성욕이 아니라 '생의 에너지' 정도로 이해하는게 좋을 것 같다.
이 리비도는 사람이 발달단계 혹은 연령이 증가하면서 신체의 다른 부분으로 이동한다.
[구강기 - 항문기 - 남근기 - 잠복기 - 생식기]
구강기는 리비도가 입에 머무는 0~2세 경 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아기들이 손가락 쪽쪽 빨고, 손에 잡히는거 다 입에 가져가고 하는 그런 시기 말이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나는 이미 벌써 성인의 단계지만,
치료때문에 음식을 가려야 하니 가끔 이렇게 힘들다.
먹고 싶은게 있는데, 먹을 수 없는 그 좌절감은 가끔 감당하기 힘들다.
어차피 먹어봤자 내가 아는 바로 그 맛이라는 사고방식도 한계가 있다.
뭘 그런걸 가지고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ㅋㅋㅋ
365일 다이어터에, 스님보다 더 다양성이 없는 식단을 유지하고 있다.
'기약없는 식단조절'은
한두달에 한번씩 모든 생의 에너지가 사그라들게 만든다.
그래서 그 우울한 주기를 나는 스스로
'리비도가 입에 붙어버린 기간' 이라고 명명하게 되었다.
이러다가 생불生佛 이 될까봐 겁난다 ㅋㅋㅋ
최근에는 심한 무기력감을 겪었다.
읽다가 던져버린 책이 몇 권이나 되고,
그림 제작 일정에 변동이 생기지는 않았지만 붓을 들기 힘든 시간.
(억지로 붓을 드는건 안그리니만 못하다는걸 잘 알고 있음)
허한 기분을 채워보려 쇼핑을 해도 감흥이 없는 시간.
책이며 영화리뷰며 풀어낼 이야기들이 많은데 미루기만 했던 시간.
바로 '리비도가 내 입에 붙어버린 기간'이다.
그런 나를 구해준 책.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생일축하한다고, 국어샘이 선물로 사준 책이다.
서점에 들어가서 '모리와 함께한 일주일'주세요 할 뻔 했다고 해서 웃었다.
학창시절부터 권장도서로 들어왔는데도 나는 읽지 않았다.
뭐랄까. 너무 많이 들어서 읽지 않았는데도 읽은 기분이 드는 그런 책이었다고 할까?
이제서야 보는데, 정말 좋은 책이었다.
지난 토요일 이동시간을 이용해서 읽었는데,
시외버스 창가에 앉아 책을 읽다가 이따금 바깥 풍경도 보고, 음악도 들으면서.
위로는 오후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아래로는 시퍼런 겨울바다가 출렁이며 파도에 햇볕이 부서지고 있었다.
안그래도 따뜻한데 유니클로 후리스는 너무나 후끈거려서
모리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 책이 끝장을 향해 갈 수록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지난 8월의 내가 쓴 Well-dying이라는 글을 떠올렸다.
지금은 서로이웃공개로 돌려버렸지만,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답이 나온다는 걸 이미 나도 경험했다.
다만, 절실함이 옅어지자 일상의 매너리즘에 빠져
리비도가 입에 붙었니 어쨋니 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굶어봐라, 개밥도 맛있게 먹겠다.
내가 잊었던 그 절실함이 떠오르면서
다시금 반성하고, 정신차리고 똑바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바라보고,
삶에 대한 애정이 가득한 모리의 시선이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언젠가 또 '리비도가 입에 붙는 기간'이 나를 찾아오겠지만,
이 책을 읽었으니 좀 더 빠르게 극복할 수 있을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의 bgm은
<바닐라스카이>에서 탐크루즈가 재수술 받으러 수술실로 갈 때 고래고래 부르는 노래.
Joan Osborne의 <One of us>
왜냐하면, 이 책의 주인공 모리가
저 노래 가사에 나오는 우리들 중에 있는 신god처럼 느껴져서.
종이 귀퉁이를 접어놓은 곳의 글귀들을 기록해 본다.
의미 없는 생활을 하느라 바삐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자기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느라 분주할 때 조차도 그 절반은 자고있는 것과 같지. 엉뚱한 것을 좇고 있기 때문이야. 인생을 의미 있게 보내려면 자신을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야 하네. 자기가 공동체에 봉사하고 자신에게 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 것에 헌신해야 하네. (p.80~81) 미치, 어떻게 죽어야 할지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배울 수 있어.
다시 말하면, 일단 죽는 법을 배우게 되면 사는 법도 배우게 된다네. (p.129) 우리 모두는 얼마나 외로운가. 어떤 때는 눈물이 날 정도로 쓸쓸하지만 울어선 안 된다는 생각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또 어떤 이에게 사랑하는 감정이 솟아나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입밖으로 꺼내면 관계가 틀어질까 봐 두려워서 입을 꼭 다물어 버린다. 모리 교수님의 접근법은 이와 완전히 반대였다.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감정으로 세수를 한다. 그렇게 하면 오히려 큰 도움이 되고 마음이 상하지 않는다. 두려움이 안으로 들어오게 내버려 두고 그것을 늘 입는 셔츠처럼 입어 버리면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좋아, 이건 그냥 두려움일 뿐이야. 요놈이 나를 좌우하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보자고." ...... " 좋아, 그건 내가 쓸쓸함을 느끼는 한 순간일 뿐이야. 난 쓸쓸함을 느끼는게 두렵지 않아. 하지만 지금은 이 감정을 옆으로 밀어놓고 이 세상에 있는 또 다른 감정을 맛봐야겠어. 다른 것들도 경험해 보자고." (p.156~157) 나는 평온하게 죽고 싶네. 아주 평화롭게 말이야. 방금 전처럼 그렇게는 아니야. 벗어나기가 힘을 발휘하는 때는 바로 이 때야. 만약 방금처럼 기침을 해 대다가 죽어야 한다면 난 그 두려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어. 그럴 때 ' 지금 이 순간 나는 이 두려움에서 벗어나야 한다.'라고 말해야겠지. .... 공포 속에서 세상을 떠나고 싶진 않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받아들이고, 평화로운 곳에 이르고, 자유롭게 놓여나고 싶네. 이해가 되나? (p.158~159) "교수님은 늙어 가는 것이 두렵지 않으셨어요?" "미치, 난 나이 든다는 사실을 껴안는다네." "껴안아요?" "아주 간단해. 사람은 성장하면서 점점 많은 것을 배우지. 스물두 살에 머물러 있다면 언제나 스물두 살만큼만 알게 될 거야. 나이 드는 것은 단순한 쇠락이 아니라 성장이야. 그것은 곧 죽게 되리라는 부정적인 사실, 그 이상이지. 그것은 죽게 될 거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 덕분에 더욱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긍정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네." "하지만 나이 먹는게 그렇게 귀중한 일이라면 왜 모두들 '아, 다시 젊은 시절로 되돌아 갔으면...'하고 말하는 걸까요? 누구도 '빨리 예순다섯이 되면 좋겠다.'라고는 말하지 않잖아요." "그게 뭘 반영하는 것인지 아나? 인생이 불만족스럽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야. 성취감 없는 인생, 의미를 찾지 못한 인생 말일세. 삶에서 의미를 찾았다면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아.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고 싶어하지.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 하게 돼. 아마 예순다섯 살이 되고싶어 견딜 수 없을껄" (p.174) "내 말은 스스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뜻이네. 물론 사회의 규칙을 모두 무시하라는 건 아니야. 예를 들면, 나는 벌거벗은 채 돌아다니지도 않고 신호등이 빨간 불일 때는 반드시 멈춘다네. 작은 것들에는 순종할 수 있지. 하지만 어떻게 생각할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길지 등과 같이 커다란 줄기에 관한 것들에 대해서는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네. 다른 사람이나 사회가 우리 대신 그런 사항을 결정하게 내버려 두면 안돼." (p.217~218) 인터뷰가 끝나 가자 카메라는 모리 교수님을 클로즈업했고, 코펠은 화면에 잡히지 않은 채 목소리만 들렸다. 코펠은 모리 교수님에게 수백만 시청자를 향해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물론 코펠이 그런 의미로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 나는 왠지 유언을 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연민을 가지세요. 그리고 서로에게 책임감을 느끼세요.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이 세상은 훨씬 좋은 곳이 될 겁니다." 교수님은 숨을 들이쉬고 평소에 좋아하는 구절을 덧붙여 말했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하리." (p. 226~227) |
Joan Osborne의 <One of us>의 가사내용은 대충
만약 우리들 중에 누군가가 사람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신이라면?
신도 인간과 다를것 이 없는 그런 존재라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타는 그 어떤 이가 신이라면?
뭐 그런내용.
<바닐라 스카이>를 보면 "신을 믿어?" 하는 대사가 나온다.
탐 크루즈한테 저 노래를 부르게 한 감독의 의도도 거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종교라는 건 모두 일맥상통하는게 아닐까.
부처는 내 안에, 당신 안에 있다. 이런거.
뉴스를 보면 세상이 하도 흉흉하고,
역사의 흐름을 봐도 갈 之자로 요동치며 흐르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갈 길을 잃은 자본주의 열차가 폭주하는
제일 극악한 시대인가 싶기도 하다.
신을 믿어?
그대 안에 있는 신은?
난 특별히 신을 믿지는 않는데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세상이 이렇게 유지되고 돌아가는 건,
나쁜 사람이 49%이고, 좋은 사람이 51%이기 때문일거라고.
아니면 벌써 인류는 멸망했을거라며.
1% 때문에 이렇게 형질을 유지하며 돌아가는 것이며,
그 1%는 누구라도 될 수 있는거라고.
가끔은 나도 그런 1%일 때가 있어야 한다며.
삶의 연장으로서의 죽음을 덤덤하고 고귀하게 그려나간 책.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그대, 연말에 조용히 한 해를 정리하는 시간에
모리 교수님을 만나보기를 추천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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