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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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보다는 아니지만 괜찮았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가 외국나이로 25세 우리나라 나이로 27세에 쓰여진 책이고,

저자의 첫 책이라 하니 빼어나다는 생각을 해본다. 형만한 아우가 없구나.

신랄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자기의 욕망을 정확하게 파악할 줄 모르는 앨리스라는 여자와 

에릭이라는 나쁜놈의 연애이야기다. 

앨리스는 자기가 사랑에 있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게되고,  

에릭은 돈 좀 벌고, 얼굴은 좀 되지만 그냥 감정장애인이다. 

내가 생각할 땐, 앨리스는 에릭이라는 나쁜놈을 만나지않았다면 한단계 레벨업을 못했을 것이다. 

나쁜놈을 만나고 있을 때 이 책을 읽었으면 엄청나게 공감을 했겠지만, 지금 그런 시기는 아니니깐 뭐.

나쁜 남자가 나쁜 남자인 이유는 나쁜놈이기 때문이다. 

지금 만나는 남자가 나쁜놈인지 햇갈리는가? 

연애를 하고 있는데도 외로운가? 

이 책을 한번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역사'와 '약속'

  나는 최근에 나 혼자 어떤 용어를 정의했는데, 그게 역사약속이라는 개념이다. 

 역사는 너와 내가 함께 해온 사건들과 시간들을 말한다.  

띄엄띄엄 불연속성을 갖고 있고, 상대방에게 사랑의 맹세를 하지않는 시간들을 그냥 역사라고 부른다.  

가령 학창시절부터 호감을 갖고 좋은 친구로 연락하고 지낸 남녀가 있다면 그들은 그들의 역사가 있다. 

  약속은 너만을 사랑하고 함께 하기로 약속하고 일련의 시간과 감정을 공유해 나가는 것이다.  

위의 남녀들이 진지하게 교제하기 시작하면 그걸 약속이라고 부르는게 좋을것 같다.  

역사와 약속 사이에 무수한 남녀들이 그 경계를 가르고 맺어지고 어긋나겠지. 

 

감정적인 벌거벗음

  에릭은 자기 몸에 대단히 자신이 있었지만, 다른 형태로 벌거벗은 데는 심할 정도로 수줍음을 탔다 - 하지만 워낙 다른 영역이어서, 앨리스는 한참 뒤에야 무화과 잎을 찾는 태도와 그것을 연결 지을 수 있었다. 에릭은 강과 숲에서 벌거벗은 채  뛰노는 것을 좋아할지는 몰라도, 감정의 벌거숭이가 되는 상황에서는 매우 다급하게 상징적인 '가운'을 찾아 헤맸다....

  감정적인 벌거벗음은 남에게 자신의 약함과 모자란 부분을 드러내는 데서 시작된다. 거기에 의존하면, 우리는 존재라는 엄연한 사실 외의 다른 방법으로 어떤 인상을 심어줄 능력을 빼앗기게 된다. 더는 거짓말하거나 허세부리지 못하고, 뽐내거나 미사여구 뒤로 숨지 못한다 - 몽테뉴는 감정적으로 벌거벌게 되는, 죽음을 맞는 순간에는 단순한 프랑스어(자신의 모국어)로 말해야 한다고 했다.

  내 필요를 고백할 때는 감정적으로 벌거숭이가 된다 - 당신이 없으면 헤매게 될 거라고, 독립적인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썼지만 꼭 그렇지도 않으며, 인생의 방향이나 의미도 모르는 형편없이 유약한 인간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내가 울면서 이야기할 때, 남들이 그 사실을 알면 끝장이지만, 나는 당신이 비밀을 지켜줄거라고 믿는다. 파티에서 유혹적인 시선을 던지는 게임을 그만두고 내가 관심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나면, 나는 조심스레 빚어온, 단단한 허상을 벗어버린다. 나는 무방비 상태가 되어, 서커스 묘기에 나선 사람처럼 판에 묶인 채 상대방을 믿어비란다. 그는 내 피부를 스칠 듯 비수를 던진다. 내가 자의로 그에게 내준 비수를, 나는 당신 앞에서 초라하고 자신을 믿지 못하고 동요하며 자신감을 잃고 자신을 증오하는 모습을 보였으므로, (필요한 경우) 그 반대 모습이 되리란 걸 당신에게 설득할 수가 없다. 새벽 3시에 겁에 질린 얼굴을 당신에게 보일때면 난 약한 사람이 된다. 저녁식사를 하면서 뽐내던 허게도 낙관적인 철학도 없이 존재 앞에서 나는 불안하다. 나는 엄청난 모험을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평소 자신감 넘치는 미인이 아니더라도, 딩신이 내 두려움과 공포를 줄줄 꿰고 난 뒤에도, 당신은 날 사랑할 것인가.

  그러면 감정의 옷입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른 속, 상징적인 생식기의 약함, '당신이 필요하다'는 엄청난 비밀을 남에게 들키지 않ㄷ록 만든 옷장 전체로 이루어진다. 옷을 입는다는 것은, 내가 조종할 수 없는 사람, 곧 전화를 받지 않거나 다른 사람과 시시덕 거림으로써 우리를 미치게 하거나 상처 입힐 수 있는 사람의 손아귀에 잡히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에릭은 연애를 할 때마다 이중 안감을 넣은 양복으로 옷장을 채웠다. 사랑이 대들보가 아닌 삶, 행복의 토대를 자율이 아닌 다른 것에 양도할 필요가 없는 삶을 만드는게 목표였다. (p.134)

 내가 에릭한테 개자식이라고 했던 가장 큰 이유가 위의 내용이다.

 그러니까 앨리스는 에릭이라는 바구니에 자기의 달걀을 모두 부었지만,

에릭은 대화를 회피하고, 자기의 단점을 상대방에게 전가한다.

감정적 벌거벗음이 불가능하여 내가 감정장애라 이름붙였고,  

그는 앨리스에게 달걀을 다 주지않고, 여러군데 여자에게 분산한다.  

하나의 기둥이 무너져도 건물이 붕괴되지않도록 여러개의 기둥을 세워놓고 안심한다.

구구절절 책을 한번 읽어보면 그냥 나쁜남자다.

난 원칙적으로 상대방과 '역사'가 아니라 '약속'을 시작하면 모든 달걀을 붓는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역사에서 약속으로 전환할 때에 상황과 기다림과 타이밍과 적절한 조건들이 고려되겠지만)

모든걸 다 잃을것 같은 불안도 들겠지만, 생각보다 평안할 것이다.

연애는 거울과 같으니,  

상대방도 자신의 달걀을 모두 내 바구니에 넣는다면 서로 잃을 것이 없는 온전한 사랑인거다. 

한번 약속을 시작하면 그 약속이 설령 끝나더라도 거기에 충실하고 감정의 벌거벗음까지 가능해야

제대로 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감정적 벌거벗음이 안되는 상대방과 한 평생의 행복을 영위하는건 정말 불가능하다.

나의 허세, 나의 찌질함, 나의 쌩얼, 나의 질병, 온갖 단점들과 나의 그 초라한 것들을 알고서도  

그대 나를 사랑할 것인가. 

나는 그대를 사랑할 것인가. 

제대로 된 연애와 결혼은 그런거라고 생각한다. 

감정의 공유(연애)만이 아니라 수많은 과업을 함께 해나가야 하는 파트너(부부)라면 ,

이 정도의 마음가짐은 되어 있어야, 100세 시대를 함께 할 결혼생활이 끔찍하지 않으리. 

물론 쌩얼은...  

남편보다 일찍 일어나 화장을 하고 남편보다 늦게 잠들어 화장을 지우고 자는것이 진리라고 생각은 한다만. 

  

 

 사랑의 영속성 

   장피아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했다. 일정 연령 미만인 어린아이는 자기 시야 밖으로 벗어난 물체가 다른 곳에 계속 존재한다는 것을 모른다. 생후 8개월에서 10개월 사이인 아이 앞에서 곰 인형을 흔들다가 쿠션 밑에 감추면, 아기는 인형이 영원히 사라졌다고 생각하여 인형을 찾으려 들지 않는다. 아기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인형을 찾기보다는 곰의 상징적인 죽음을 슬퍼한다. 하지만 이 기간이 지나면 아이는 이른바 대상 영속성을 인지하고 곰을 찾아 나서며, 곰 인형이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고 쿠션 밑을 뒤진다고 피아제는 설명했다. 

  위니캇과 피아제의 이론을 앨리스와 에릭에게 적용하는 것은 지나친 일일지도 모르지만, 영속성이라는 문제는 공통된다. 여기서는 대상영속성이 아닌 사랑의 영속성 문제다.  이 사랑의 영속성이란 무엇인가? 상대가 당장 관심의 징표나 사랑이 지속되리라는 믿음, 상대가 밀라노나 빈에서 주말을 보내더라도 다른 정인情人과 카푸치노를 마시거나 초콜릿 케익을 먹지 않으리라는 믿음, 침묵은 단순한 침묵일 뿐 사랑의 종말을 암시하는게 아니라는 믿음.(p.159)

 

교복을 입은 시절의 첫사랑이나 20대 초반의 사랑을 생각해보면,

날 사랑하냐고 앵무새처럼 물어보며 그 사랑이 그 자리에 아직도 충만하게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한다.

피아제는 인지발달이론에서 출생에서 2세까지를 감각운동기라고 하는데,  대상영속성의 개념을 획득해가는 시기다.

사랑의 영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거듭거듭 확인하고 싶겠지.

근데 이게 저절로 이해되는게 아니라 경험해야 알 수 있는 부분인듯하다.

조바심내거나 초조해하지 않고 상대방을 향한 전적인 신뢰는 공짜로 생기지 않는다.

 

 

 

사랑의 권력

 사랑의 권력은 아무것도 주지 않을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상대가 당신과 같이 있으면 정말 편안하다고 말해도, 대꾸도 없이 TV 프로그램으로 화제를 바꿀수 있는 쪽에 힘이 있다. 다른 영역에서와는 달리, 사랑에서는 상대에게 아무 의도도 없고, 바라는 것도 구하는 것도 없는 사람이 강자다. 사랑의 목표는 소통과 이해이기 때문에, 화제를 바꿔서 대화를 막거나 두시간 후에나 전화를 걸어주는 사람이, 힘없고 더 의존적이고 바라는게 많은 사람에게 힘들이지 않고 권력을 행사한다.(P.172)

 

사랑에서는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약자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가? 그럴까? 글쎄. 

여하튼 사랑해요라고 말할 때, 대답을 안하고 007영화 어느채널이야? 라고 화제전환하는 남자는 정말 아니다.  

군림하는 권력자와 왜 사랑을 나눠야 하나. 안하고말지. 

법륜은 말하셨지.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을 때 결혼해야 결혼생활을 잘 할 수 있다고. 

외로운 사람은 결혼을 해도 외롭다. 사람은 원래 외롭다.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사람이 둘이 있는 시간도 잘보내는건 정말 맞는 말인것 같다.

나는 내 삶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일정하게 확보되지 않는다면 스트레스 지수가 올라갈 것이다. 

나는 내 파트너의 독립적인 공간과 시간확보를 당연히 인정할 것이며, 나 또한 당연히 그걸 누릴테다. 

 

 

읽기 힘든 책일수록 더 진리에 가깝다?

   읽기 힘든 책일 수록 더 진리에 가깝다. 인간관계에서도 이런 현상이 있다. 마음이 열려있고, 명쾌하고, 예측가능하고 시간을 잘 지키는 애안보다는 힘들게 하는 애인이 더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심성이 종교적인 - 낭만적인 사람에게, 이런 사람은 비난을 받거나 기피해야 할 대상이건만, 그들은 명석한 얄두 살짜리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훌륭한 문체를 비웃는 학자들처럼 행동한다.  

  마찬가지로 앨리스는 에릭의 침묵을 그 남자가 지루한 사람이라는 표시로 보지않고, 심오하고 흥미로운 존재라는 증거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헤겔을 천재라고 믿으며 평생을 바쳐 헤겔을 읽는 학자와 비슷했다 - 어느 매정한 비평가는 이 비중있는 독일 철학자가 결국은 극히 평범한 사상가이며, 두세 가지 발상은 그럴듯하지만 표현력이 지독하게 떨어지는 사람이라고 말했건만. (P.190)

 

 나쁜남자는 그냥 나쁜놈이다.

파워블로거에 맛집이라고 소개되고, 티비 맛집프로그램에 맛집이라고 소개되어도 나는 별로인데 남들이 좋다니깐 나도 좋다고 말하는 심리에 대해서도 이 책에서 지적하고 있다.

내가 맛있어야 그게 맛집인거지. 

많고 많은것들 중에서 좋은걸 찾아내는 심미안이 필요하다. 

나에게 가장 좋은것, 내가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것을 알아보는 안목 말이다.

 

 

 

 

책임 떠넘기기 놀이

  책임 떠넘기기라는 고전적인 실내놀이가 있다 - 사람 두명, 금기시되거나 위험한 일, 책임감을 느끼거나 비난받을 가능성이 있으면 되는 놀이다. 방법은 놀이에 참가한 한 사람이, 양쪽이 원해서 일어난 일에 대해 다른 한 사람에게 책임이 돌아가도록 미묘하게 상황을 조작하는 것이다.

  정해진 행위에 네 단계가 필요한데, 네 번째 조치가 나오기 전에는 그 행위가 명백해지지 않는다고 하자. 상대가 1단계부터 3단계까지 밟았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비난받게 될 사람)은 마지막 4단계를 밟는 사람이다. 능숙한 선수라면 첫 세 단계를 밟은 후 물러서서, 상대가 마지막 4단계를 취하기를 기다린다. 그러면 욕망을 해결하고도 책임을 피할 수 있다.

  앨리스는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그러나 필립과 키스하는 일은 에릭에 대한 죄책감을 짊어지운다고 상상해보자. 키스의 당사자가 되는 한편, 그 발단이 다른 사람에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핑계가 있을까? 결국 그녀의 입술이 문지방을 넘은게 아니지 않은가? 그녀는 그저 소파에 앉아서 피곤하다고 한숨을 짓기밖에 더 했던가?

 필립은 천성적으로 자기 탓이 아닌 일의 책임을 뒤집어 쓰기 싫어하는 성품이어서, 앨리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 제발, 결백한 척해서 망치지말아요. 우린 몇 주일 전부터 이렇게 되기를 바랐어요. 이게 큰 문제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우리 둘이서 벌인 일이라구요."(P.152)

 

정확하게 기억이 안나는데.

게슈탈트 철학이었나? 인간의 욕망은 수시로 변한다.

배가 고프다. 목이 마르다. 영화를 보고싶다. 내가 결혼하고 싶은 것은 A가 아니라 B이다 등등등.

수시로 변하는 자신의  욕망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내가 뭘 원하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그걸 충족할 수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다.

법륜스님의 <스님의 주례사>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경제적으로 부족한 남자를 사랑하는 여자가 결혼을 앞두고 부모와 갈등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법륜은 충고한다.  

그 남자를 사랑하면 부모에게 감사하지만 제 인생이니 제가 결정하겠습니다 하고 결혼하면 그만이라고. 

지금 당신이 갈등하는 이유는 마음속에 경제적 능력이 보다 우월한

부모가 소개한  남자와 살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부모탓하지 말고 니 욕망을 똑바로 쳐다보라는 뜻이다. 

자기가 몰랐던 자기의 욕망을 인정하기 까지 시간이 좀 걸리지만, 그게 옳은 해결방법인 것 같다. 

 

 

 

그대,  

에릭을 보며 감정의 벌거벗음을 거부하던 나쁜놈이 떠오르는가? 

감사하라, 그는 반면교사다. 

 

그대,

사랑의 영속성을 깨우쳐 준 사람이 떠오르는가?

그러면 더 감사하라.

당신은 이제 레벨업 하였으니,

더 좋은 사람을 만나고, 더 좋은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013.4.28 포스팅

http://blog.naver.com/sooday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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