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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스페셜 에디션 한정판)
하야마 아마리 지음, 장은주 옮김 / 예담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오전에 조금 일찍 일어나 제빵제과 자격증을 딴다는 엄마의 시험접수를 대신 해주고, 청소기를 돌렸다.
티비에서는 새로운 그녀의 취임식이 한창이고, 나는 그 타이밍에 시원하게 모닝똥을 쌌다.
샤워를 하고나서 내 방 베란다 창 쪽에 앉아, 햇볕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비타민 D를 생성시킬 만큼은 아니었지만, 등이 따끈해지는 기분이 좋았다.
오늘은 책을 좀 볼까.
최근 동시에 두권의 책을 읽고 있는데, 한권은 거의 다 읽었고, 포스팅이 거창해져서 수습이 안되어 임시저장을 하고 있는 중.
다른 한권도 나답지 않게 나름 꼼꼼하게 읽어나가고 있다.
띵똥~ 누구지?
엊그제 반갑지 않은 교회일당이 다녀간 이후로 경계하게 된다.
포장만 봐도 누군지 알만한 반가운 선물이 도착했다.
나에게 힘을 주는 서혜교의 손글씨와 함께.
나는 읽고 있는 책을 밀어두고, 이 책에 두어시간 정도 푹 빠져서 읽었다.
아마리, 이 여자의 난폭한 자기개혁
주인공은 29세의 아마리(나머지,여분 이라는 뜻)라는 여자.
변변한 직장도 없고, 애인에게 버림받고, 못생긴데다 73키로그램이 넘는
만날이도 없이 초라한 자취방에서 혼자 자기 생일을 축하하던 그녀.
나 왜 이렇게 동질감 느껴지지?
학창시절에는 특별히 잘하는 것 없이 공부를 열심히 잘하는 편으로 살아왔고,
안정된 삶에 편승하고자 도쿄대에 다니는 남자친구와의 결혼을 꿈꾸고(버림받지만),
갑자기 아버지는 아프시고....
아마도 그녀의 삶은 "나한테 왜 이래"하면서 세상과 상황에 밀리다가 허겁지겁 그 좁고 초라한 자취방에 도착했을거다.
생일케익의 딸기가 바닥으로 떨어지자 그걸 재빨리 주워먹으려니 머리카락이 달라 붙는다.
그걸 떼려고 싱크대로 달려가 딸기를 씻어먹으려고 물을 트는데.... 자기자신이 너무 초라한거다.
최근 내가 쭉쭉 바닥으로 떨어지던 기분과 아주 유사해서 감정이입이 너무 잘된다.
망연자실해서 티비를 보던 그녀는 거기 나온 라스베가스에 가겠다고 결심하고
자신의 여생을 1년으로 정한 뒤 미친듯이 그 목표를 향해 살아간다.
뭐야 타락하는거야?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마리는 분명한 목표(라스베가스에서 짜릿하게 인생의 대승부로 잭팟을 한 다음, 죽겠다)가 있다.
낮엔 파견직원(3개월 열악한 계약직)으로 일하고, 밤엔 긴자의 호스티스로 일하고, 주말엔 누드모델로 일한다.
잠은 네시간 정도 자면서 시간을 틈틈이 쪼개어
라스베가스에 대한 책들을 섭렵하고, 영어회화 공부를 하고, 블랙잭에 대해 공부하고 연습한다.
1년 후 죽겠다는 그건 그녀에게 두려울것도 무서울 것도 없게 만든다.
라스베가스에 가려면 돈을 더 벌어야 해. 화류계라며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호스티스가 되겠다고 제 발로 찾아간다.
누드모델을 하며 사람들이 그린 자신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를 사랑하게 되고,
1년 뒤에 죽을거니까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겠지. 나가지 않던 동창회에도 나가 거기서 자신의 꿈을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친구를 만난다.
호스티스로 일하지만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제 양분으로 삼는다. 그 과정에서 친구들도 얻게 된다.
중요한 건 이 여자는 목표와 수단이 분명히 정돈되어 있다.
수단이 주는 안락함에 정체되지 않으며 점점 당당해진다는 것이다.
수단이 주는 안락함에 정체되었다면 아마리는 파견직원 일을 떼려치우고 호스티스로 전업했겠지.
라스베가스라는 자신만의 무대를 위해서 파견직원계의 김연아처럼 업무를 똑부러지게 마치고,
밤엔 호스티스로 일하고, 따로 공부도 하고, 힘들어서 살이 저절로 빠지고, 누드모델을 하다보니 거울을 자주 들여다봐서
결국엔 이뻐졌단 이야기도 듣는다.
마침내 라스베가스에 가서 자기가 상상해왔던 것들을 온전히 즐기고,
블랙잭으로 인생의 대승부를 건다.
대박이 터지거나 아니면 가진돈을 모두 잃는 것만이 카지노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아마리.
그녀가 카지노에 걸었던건 1만 달러였고, 그녀가 나중에 얻은 돈을 세어보니 1만 5달러!
5달러를 벌었다.
왜 5달러인가?
그녀는 죽지 않았고, 이 5달러가 새롭게 인생을 시작하기 충분한 기회라고 생각하여 그녀의 삶을 충실히 살아나간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그녀는 호스티스 일을 그만두고, 모델일도 정리한다.
파견직원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정직원으로 일할 생각 없냐는 제의까지 받지만(파워오브계약직을 보여주었으므로)
자신은 할 일 이 있다며 거절한다.
모든 수단과 작별한 그녀는 다시 벌거벗은 채 세상앞에 서지만, 길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안다.
그녀는 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서의 몇일을 소중하게 기억하며,
파이낸셜플래너 자격증을 취득해서 글로벌회사에서 정직원으로 일하게 된다.
책 마지막 장을 덮을 무렵 이 책을 아마리가 썼겠구나 생각하며 작가이력을 보니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책이다.
아무런 비전도 없이 노력도 않고 비관만하고 살았던 그녀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면서 부터 치열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성공한 어떤 이의 특강을 듣는 것 같은 기분이지만,
이 여자의 난폭한 자기개혁은 지금 나에게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고 느낀바가 있게 만든다.
< 인상깊었던 목차 >
기적을 바란다면 발가락부터 움직여보자.
가진게 없다고 할 수 있는것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지속적인 당당함은 자기무대에서 나온다.
변하고 싶다면 거울부터 봐라.
나를 망설이게 하는 것들 너머에 내가 찾는 것이 있다.
꿈을 가로막는 것은 시련이 아니라 안정이다.
극한까지 밀어붙인다.
주저할 때가 바로 승부를 걸어야 할때.
'끝이 있다'라는 것을 인식한 순간, 인생의 마법이 시작된다.
내가 갈구했던 그 모든 안정이 결국 나를 도태시킨것 같다.
나는 아직 스물일곱이니깐 좀 더 힘을 내도 되겠지?
어쩌면 지금이 내가 끝자락을 잡고 있는 이 안정(여러가지 의미로 해석)과 안녕해야 할 때인지도 모르겠다.
용기를 내어서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폴발레리).
아마리는 용기를 내서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살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녀는 파견직원생활을 전전하며 바닥에 떨어진 딸기나 주워먹으며 사는 채로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최근 느낀 바와 이 책을 읽으며 얻은 생각 하나.
방에 잊지 말고, 지금 밖으로 나가서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을 만나자.
사람을 만나면서 배우고 얻는 그 에너지는 실로 엄청난 가동력을 주니까.
서혜교 덕분에 나는 오늘 방에 앉아서 아마리를 만났다.
내가 이렇게 인복이 많다.
감사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