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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인저의 살인 ㅣ 시인장의 살인
이마무라 마사히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23년 10월
평점 :
읽은 후 할 말이 별로 없는 책 보다 할 말이 많은 책이 더 리뷰 쓰기가 까다롭다. 이 책이 왜 좋은지 (드물게 왜 나쁜지) 에 대해서 가슴 속에 차오르는 느낌이 많아서 그것들을 정리하는데 노력이 평소보다 더 필요하다.
[흉인저의 살인]은 좋아서 할 말이 많은 책이다. 나의 표현력과 어휘력이 부족해서 이 느낌을 예전에 수도 없이 많이 썼던 단어들로밖에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 너무 아쉽다. 시작부터 나의 잠을 확 깨우고 시선을 사로잡는 전개를 보여줬고, 실제로 이 책을 읽는 동안 본업이 너무 바빠 하루에 20분 남짓 가량밖에 책을 읽을 수가 없었는데 잠을 참고 싶어질 만큼 조금만 더 읽고 싶게 만든 소설이었다.
생각해보면 식상할 수 있는 패턴이다. 어떤 특별하고 조금은 외진 장소에 한 그룹의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가게 되고, 그 안에서 사건이 새로, 혹은 추가로 일어나고, 결국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가 되는 패턴이다. 제목조차 "{장소} + 의 살인" 이 흔해서 원조 추리 매니아이신 우리 어머니도 당신이 읽으신 책과 아직 안 읽으신 책을 헷갈려 하시더라. 그런데 확실히 '특별한 장소의 살인사건' 패턴은 우후죽순 무지성으로 유행따라 생겨난 탕후루 매장과는 달리 음악에서의 코드 진행과 같은 클래식한 패턴인 것 같다. 혹은 이런 패턴의 미스터리를 전개하는 작가들이 미스터리의 고장 일본 사람들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섬네일 사진에서도 적었지만 이 책의 줄거리가 레지던트 이블 2 (한국에는 <바이오하자드> 라는 제목으로 출시된 게임) 과 굉장히 느낌이 비슷하다고 느꼈다. 레지던트 이블 2에서는 대저택 안에서 네메시스라 부르는 살육 거인을 피해 일련의 행동을 하는 내용이 나왔고 흉인저의 살인에서는 인체향상실험의 부작용으로 신체 능력이 극에 달하고 사람의 머리를 잘라 죽이는 것에 집착하는 거인, 그리고 그런 거인을 감금해둔 미로같은 대저택이 등장한다. 코나미 게임개발사는 [흉인저의 살인]을 가지고 반응 좋은 호러 게임을 만드는 데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은 이야기다.
이미 그 대저택에 사람들이 자신들을 죽이려 드는 괴물과 갇혀있고 탈출 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줄거리 자체가 스릴 넘치고 완벽한데 거기다 미로같은 대저택의 구조, 드러나는 몇 개의 숨겨진 구획, 대저택이 사람 많은 놀이공원 한복판이라는 특성, 그리고 생존자들이 사실상 무단침입해 들어가 있다는 상황 때문에 무작정 벽을 부수고 도망갈 수도 없는 입장까지 얽히고, 설상가상으로 그 생존자 중에 동료를 죽이는 정체불명의 살인자가 N명 있다는 사실까지 밝혀진다. 누구인지는 물론, 살인자가 몇 명인지 조차도 파악이 되지 않은 채 서로를 의심하고, 서로의 행적을 추론해야 한다.
막연히 의심이 되던 인물이 하나 있었고 결국 그 인물이 마스터마인드로 드러났지만 그의 살인 행각에 대한 '왜'와 '어떻게' 부분이 기괴하면서 상상 외의 트릭을 이용한 것이었다. 눈 앞에 몇 번이고 사용할 수 있는 트릭을 갖다 댔는데도 독자인 난 흉인저에 갇힌 모든 사람들과 함께 거인의 압도적 위협에 정신이 팔려 트릭을 생각하지도 못 했다. 거기다가 범인의 비밀에 대해 마지막에 설명충 스타일로 덧붙이는 대신 소설 중간에 흉인저의 상황과 번갈아가며 범인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삽입한 구조도 좋았다.
나는 내가 즐길 것이라고 최소한 90%의 확신이 드는 책이 아니면 서평단 모집에 신청서를 내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기대가 이미 높은 상태에서 서평단 도서를 읽게 되고, 자비구매한 책 보다 다소 박한 평가를 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은 백 번이고 "추천책" 태그를 줄 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