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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꾸로 된 나무입니다
배진시 지음 / 책과나무 / 2023년 8월
평점 :
호주에서 살 적에 초등학교 때 입양된 아이가 있었다. 이름도 똑똑히 기억 나지만 혹시나 인터넷의 너른 바다에서 그 친구가 나의 게시물을 발견할까 해서 생략. M이라는 친구는 부모님이 백인이었다. 어린 나는 솔직히 그 때 주변에 한국사람이 아닌 외국인이 잔뜩 있다는 점 때문에 백인 부모가 유색인 아이를 생물학적으로 낳기는 어렵다는 점은 생각도 못 했고 친구들이 쟤 입양아라고 이야기 해 줘서 알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되돌아보니, 입양아라며 차별하고 피부색 가지고 놀리는 일이 있었을 수도 있었는데 신기하게 아이들은 가르쳐 주지 않았는데 포용했다. 유일하게 그녀의 피부색을 언급했을 때는 그 친구가 선크림을 과도하게 짜서 팔에 바르는데 바디페인트 수준으로 허옇게 덕지덕지 발려서 "00이는 하얘졌네~ (is white~ = 백인이 됐네, 라는 중의적 의미)" 라고 본인 포함 다 같이 웃었을 때 뿐이었다. 인종차별이 없는 나라는 절대 아닌데, 입양으로 인한 그런 괴리에 대해서는 비교적 포용력을 보여줬던 것 같다.
초등학교를 지나 중학교에 들어가서 각자 다른 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을 적에 그 착하디 착한 친구는 괴롭힘을 당하다가 불량배들과 어울려 놀기 시작하고 임신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에 지금 '밈'이라고 부르는 유머와 비슷한 "너 입양됐어" 와 패드립 시리즈가 유행했던 시기인데 (우리나라만큼 "엄창" 수준의 패드립이 심각하지 않은 사회, 그냥 '개새끼야' 정도 욕으로 듣는 사회) 혹시 관련이 있을지, 무엇이 그렇게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을지 결국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 한 채로 난 한국에 와서 살게 되었다.
그 친구가 생각난다. 그 친구는 그 어린 나이에 입양아라는 것을 알고 무슨 생각을 했을지. 그렇게 사랑해 주는 새 부모와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주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혹여 진부모에 대해 원망의 생각을 가지지는 않았을지. 외부에서 보기엔 너네 부모님 성함은 000고 우리 엄마 성함은 로살리아다 정도의 차이밖에 느끼지 못 했지만 혹시 그 친구는 혼자 입양아라는 '다름'에 대해 자격지심을 느끼지 않았을 지.
많은 특수한 환경에 놓인 친구들의 기억 사이에 그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책에는 여러 입양아들이 등장한다. 맹하고 눈치 없는 극T의 얼굴을 하고 있을 것 같은 완전한 프랑스인이 다 된 뤽, 알콜중독자가 되어 한국에 와서도 망나니짓을 하는 바람에 슬며시 핏줄의 죄책감마저 없어지게 하는 매튜, 한국과 관련된 모든 것을 증오하는 양모에게서 독립하고 나니 폭력 남편을 만나 아이 둘을 데리고 이혼한 꺄린, 종교에 푹 빠져서 올가미에 걸리는 것도 모르고 아이를 버려버리고 버린게 아니라고 정신승리하는 친모를 둔 끌로에, 여유로운건지 세상 물정을 답답할 정도로 모르는 순백의 영혼인지 구분이 안 되는 마크, 그리고 마리옹, 오호흐, 미자까지.
이들의 이야기는 때론 화가 나고 때론 억울하고 때론 너무 슬퍼서 막힌 눈물샘에 심장에 압력이 커져가며 느끼는 통각을 버티지 못 해 사자후하듯 오열하고 싶게 만들었다. 뤽 이야기를 다 읽고 출판사에 책 값을 치루고 서평단 못 하겠다고 할까 고민했다. 이런 격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비단 한국에서 태어나서 낮선 외국으로 보내진 아이들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집단에서 소외됨을 느낀 모든 이들의 이야기고 어떠한 형태로든 차별을 겪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한국인이 외국에서 동양인이라고 차별을 많이 당한다고 하지만 그런 한굳인에게 가장 심한 차별을 보이는 것은 같은 한국인이다. 입양아와 교포와 순수 한국인과 기타 여러 특성에 따른 무리로 각자 나뉘어 서로를 배척하고 차별한다. 어린 시절 한국으로 역이민한 나는 왜 한국에서 차별 받는지, 왜 전 교포는 되려 혼혈이나 외국인보다 못한 취급을 당하고 현 교포들 사이에서도 끼지 못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억울함을 느끼는 것도 사치스러운 나날을 보내며 혼란스러웠다. 이 책을 통해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서야 그때의 의문이 조금이나마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다르게 느껴진 부분도 많았다. 한국어를 또래보다 많이 일찍 깨우치고 영어와 한국어 둘 다 완벽하게 구사하며 살아온 행운을 누린 나로써는 뤽이 겪는 한글에 대한 고충이 신기했다. 여자는 '예쁘다' 는 현재형을 쓰는 반면 남자는 '잘생겼다'는 과거형을 쓴다는 대목에서 '잘생겼다' 가 과거형으로 보일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에 신기했다.
불평등에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봐야 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