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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 ㅣ 앤드 앤솔러지
전건우 외 지음 / &(앤드) / 2023년 7월
평점 :
앤솔러지는 참 매력적인 형식이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 여러 작가들이 어떻게 다른 생각을 하는지 보는 것도 흥미롭고 책 한 권에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단편을 어렵지 않은 짧은 호흡으로 만나볼 수 있다. [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 에서는 Jaeng쟁한 4J 작가들 - 전건우, 정명섭, 정보라, 정해연 - 이 가장 안전해야 하지만 안전하지 않기에 그만큼 더 무서운 '집' 이라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 누군가 살았던 집 - 전건우 △
내가 읽은 전건우의 부동산 스릴러만 이번이 세 번째다. 이전에 중개업을 했나 싶을 정도로 집단 주택의 주인이 바뀌어가는 생태계를 잘 묘사한다. 그리고 그는 클리셰의 제왕이다. 전건우의 소설을 읽고 있자면 힘이 잔뜩 들어간 괴담에 대한 집착이 느껴진다. 분명 유치하기는 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5천원짜리 괴담 책을 사서 30페이지.가량 넘겨보다가 진지하게 재활용 지류로 내놔야 하나 고민하면서 깨달았다. 대리석으로 조각한 티라노사우르스 상은 되지 못 해도 레고 수백 블럭으로 만든 입체 Yoshi는 그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어서 자꾸 보고 싶어진다는 것을.
이 단편에서 주식에 손 잘못 댔다가 사기 당한 주인공은 여자친구와 함께 야반도주한 끝에 이상하릴만치 저렴한 오피스텔을 임차하게 되고 거기서부터 이상한 일을 겪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화장실 바닥과 하수구멍 포비아가 심해서 읽기 아주 힘들었던 단편.
🏚 죽은 집 - 정명섭 ✓
특이하게 정명섭 작가와 전건우 작가는 세트처럼 거의 항상 앤솔로지에 같이 수록된다. 개인적으로 정명섭 작가의 <기억 서점>을 그리 좋게 읽은 편이 아니라 아직도 선입견이 조금 있었다. 죽은 집 이란 특수청소부 주인공들이 고독사 현장을 부르는 말이다. 클린어벤져스나 클린쿵푸등의 유튜브 채널도 보고 <흔적을 지워드립니다: 데드모닝> 이나 <죽은 자의 집 청소>등의 소설을 읽을 정도로 특수청소에 비위는 약해 하면서도 흥미를 느끼는지라 이런 주제를 "집"이라는 큰 주제의 하위 주제로 택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특수청소와 고독사 현장, 그리고 빌라왕과 전세 사기라는 너무 많은 주제 중 한 가지만 고르지 못 하고 전부 다 사용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겠지만 장편이었다면 그 나름대로 괜찮았을 것 같다. 무엇보다, 그냥 재미 있었다. <기억 서점>이나 <육식주의자 클럽>을 읽었을 때 내내 느끼던 것이었는데 정명섭 작가의 소설은 허술한데 재미는 있다. 그래서 계속 읽고 또 읽게 되나보다.
🏚 반송 이유 - 정보라 △
피사체가 뭔지 모르겠는데 각종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그림들이 있다. 살바도르 달리가 그러하고, 제이슨 폴락이 그러하다. 정보라 역시 <저주 토끼>에서 독자의 감정을 마음껏 가지고 노는 역량을 보여준 작가인데, 실제로 오디오북을 들으며 익숙한 우리 동네를 저녁에 걷고 있는데 온 몸이 뒤틀릴 정도로 두렵고 불편해져서 귀가 걸음을 재촉했던 기억이 있다.
<반송 이유>는 이메일 형식으로 되어 있고, 교수 임명을 앞둔 남자와 부인이 취업길을 열으려 외딴 지역의 더욱 외진 집으로 이사를 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부인의 정신이 풀려가는지, 그걸 보고 왜 남자는 별 반응이 없는지,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결말도 없고 전개는 독자 상상에 맡기고 있는데 정말 으스스하고 무서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딱 깔끔하게 떨어지는 전통 추미스를 좋아해서 여기에 결론이나 설명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 그렇게 살아간다 - 정해연 ✓✓
정해연 작가의 <홍학의 자리>를 읽고 홍학의 상징성을 알게 되었을 때 가슴 속 태풍이 불고 폭우가 내리는 것을 느끼며 이 작가는 먹먹하고 애달픈 감정을 지휘하는 마술사라는 생각이 들어 첫 책에 홀딱 반했다. 스릴러 장르에서도 이 스타일은 어김없이 빛을 발휘하는데, 식도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이 된 아버지의 임종과 그를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가족 구성원의 삶에서 무언가 이상하고 소름끼치는 정황을 발굴해 내는 식이다. 솔직히 개인적인 욕심으로 꼭 이 단편이 장편화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