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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의 집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민현주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7월
평점 :
[가시의 집]을 전통적인 추리소설을 생각하고 읽으면 거의 <익명작가> 급으로 천천히 타들어가는 촛불이다. 총 5개의 챕터 중 2챕터의 마지막 대여섯 장에 이르러서 본격적인 미스터리가 시작된다. <익명작가>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가시의 집]의 서두는 실제로 재미가 있었다는 것. 앞부분은 사회적 소설에 뒷 부분은 추리소설인데 그 전환이 눈치채지 못 할 정도로 매끄럽게 이루어졌다.
주인공들은 일본의 평범한 4인 가족. 아빠 호카리, 엄마 사토미, 중학교 2학년 오빠 슌, 초등학교 6학년 막내딸 유키. 소설은 그 역시 교사인 호카리가 학교폭력에 대한 학생 상담을 하며 사건을 무마하는 쪽으로 이끌어가는 장면으로 시작되어 그의 딸 유키가 집단 따돌림으로 인한 자살 시도를 하는 것으로 이어간다.
아이를 키워 본 적도, 학교폭력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적도 없지만 '유키의 유서가 없는 상황에서 집단 따돌림과 그녀의 자살 시도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할 수 없다'는 대목에서 울컥했다. 실제로 이런 B급 수사물에서도 등장하지 않을 억지가 충분히 일어나고 있을 법 하기에 더욱 화가 치밀었다.
이윽고 학교가 감싸던 가해자 학생이 공원에서 시체로 발견되자 유키네 가족이 용의선상에 오르고 이웃, 언론, 학교, 그리고 가해자 학생의 가족에게서 집중사격을 받는다. 학생이 살해된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지 밝혀 내는 과정이 본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가해자 아이를 죽인 사람이 유키네 가족 중 한 명인지 아닌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편견으로 인해 유키의 가족이 두 번 죽임을 당한 것이 감정 포인트. 유키가 자살 시도를 했을 때도 프라이버시고 인권이고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언론과 인터넷의 도마 위에서 회자되던 유키는 그 상처가 가시기도 전에 살인자 가족이라는 낙인이 찍혀 더욱 괴로웠을 것이다.
이처럼 사건이 일어난 후에도 소설은 초점이 "누가 왜 어떻게 죽였을까"가 아닌 유키네 가족의 분위기 변화, 특히 호카리를 거의 1인칭으로 따라다니며 그가 가족을 의심하는 과정과 그의 감정 흐름에 대해 서술한다. 살인사건 보다는 이 살인사건이 연관되어 있는 학교폭력이라는 큰 주제 하에 사건이 어떻게 주변 인물들에게 영향을 끼치는가를 더 자세히 보여주었다. 그래서인지 의심하지 못 했던 인물이 진범이었는데도 충격이 크진 않았다.
그렇지만 이 소설을 단순 추리소설로 보는 것은 편협한 시각이고, 추리소설이라는 틀 아래 제 때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은 학교 내 문제가 어떻게 눈덩이처럼 불어나 주위를 바꾸는지를 보는 것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 거울상을 제공하듯 한 조치가 있다. 호카리는 자신이 학교 교사이고 유키의 아빠임에도 불구하고 유키의 문제를 유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이르를 때 까지 눈치채지 못 했다는 점을 부각시키며 죄책감의 주요 포인트로 잡는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느냐에 대한 설명으로, 유키네 학교의 상황은 미지로 유지한 채 호카리가 근무하는 학교에 비슷한 학교폭력 사건을 두고 어른들의 이그러진 목적으로 사건을 덮어버리는 관습에 찌든 호카리가 학폭 피해자와 피해자를 돕는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결국 그들의 신뢰를 잃어버리는 변화의 과정을 보여준다. 학교폭력이라는 주제가 공감이 많이 되는 주제는 아님에도 가슴이 먹먹했다.
마지막으로 역자 민현주의 번역도 훌륭했다. "반나절"이라는 단어 처럼 현지화가 잘 된 표현이나 학교 내부를 묘사할 때 현대적인 단어를 잘 사용한 점, 그리고 일본어 직역투가 적은 점 덕분에 막힘 없이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