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리마스터판) 창비 리마스터 소설선
한강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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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가 및 『채식주의자』의 특징

『채식주의자』는 2007년도에 발표된 연작소설이다. 『채식주의자』에 수록된 연작소설 세 편의 시점이 모두 다른데, 「채식주의자」는 남편이 시점이며, 「몽고반점」의 초점화자는 형부이며, 「나무불꽃」의 초점화자는 언니이다. 단편 「채식주의자」는 90년대 중반에 발표된 「내 여자의 열매」의 연작 소설이다. 「내 여자의 열매」의 줄거리는 여자주인공이 식물으로 변하자, 남자가 이를 화분에 심는 내용이다. 여기서 주요한 지점은 왜 베란다나 아파트 밖이 아니라 화분에 여성(식물)을 심느냐이다. 「채식주의자」는 화분에 심겨서 사육되고 있는 여성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1997년 단편 「내 여자의 열매」로 ‘식물-되기’라는 새롭고 독특한 환상을 보여주었던 한강은 정확히 십 년만에 이 소설에 대한 변주로 볼 수 있는 연작소설 『채식주의자』를 들고 돌아왔다. 그러나 이 두소설은 같은 부모 아래 자랐지만 판이하게 다른 아이들과 같다. 십 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의 소설 속 변신 모티프는 어떻게 변화했는가. (중략)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소통 불가능성으로부터 기원한 절망이 ‘식물-되기’의 모티프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내 여자의 열매」와 「채식주의자」는 유사한 지점에 놓여 있다. 그러나 관계의 폭력성에 맞서 차라리 식물이 되고자 하는 한 여자의 불가능한 꿈(욕망)의 실현 여부에서 두 소설은 갈라져 다른 길을 간다. 「내 여자의 열매」에서 온몸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멍이 들었던 여자의 몸은 자연스럽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식물로 완벽하게 변신했지만, 「채식주의자」에서 여자의 몸은 나무가 되기 위해 음식을 거부하고 물구나무를 서는 등 능동적 행위를 수반하여 여전히 무언가를 소화하고 배설해야만 하는 동물의 육체로 남아 있다. 전작 「내 여자의 열매」의 여자가 제집 베란다에서 식물로 변한 후 남편에 의해 화분으로 옮겨지고 보살핌받으며 사적이고 은밀한 생을 기록해나갔다면, 근작 「채식주의자」의 여자는 정상과 비정상을 철저히 가르고 재단하는 사회의 시선 속에서 정신이상으로 분류되어 결국에는 공적인 공간인 정신병원에 놓이며, 의학 담론에 의해 함부로 취급당하는 것을 작가는 보여준다.

-강지희, 『파토스의 그림자』, 문학동네, 2022, 416쪽.

이 소설의 화자가 남편으로 설정된 것의 효과는?

이 소설의 구조는 기본적으로는 남편의 1인칭 시점이며, 이탤릭체를 통해 영혜의 꿈을 나타내고 있다. 이탤릭체를 통해 남편 시점의 불완전한 모습을 균열내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서술자가 남편을 통해 표면적으로는 남편의 가부장제/정상성을 강요하는 억압과 폭력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이 시선은 이성과 합리성을 가장한 시선으로, 남편은 본인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믿고 있다. 남편은 소설 속에서 아내의 이름(영혜)을 부르지 않는다. 남편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에”(10쪽) 영혜와 결혼을 선택한다. 즉, 차이와 개별성을 불편해하는 남편은 무난한 성격의 영혜가 아내의 역할을 평균적으로 수행할 것이라고 판단해 결혼하였다. 영혜에게 한 가지 남다른 점이 있다면, “브래지어를 좋아하지 않는다”(11쪽)는 점이다. ‘브래지어’는 여성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가에 대한 억압과 규제를 의미하며, 남성중심의 사회와 시선이 규제화된 장치이다. 영혜가 브래지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은 영혜가 채식을 하는 점에서 개연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남편은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자, “악몽 한 번꾸고는 식습관을 바꾸다니”(21쪽)라며 일반적, 보편적 이유가 아니라 꿈 때문에 채식을 시작한 아내의 모습을 납득하지 못한다. 남편은 의아해하고 당혹스러워하지만, 아내가 왜 이러한 선택을 하였는지를 알고 싶어하지 않으며, 아내를 자신이 편한 쪽으로 되돌리려고만 한다. 즉, 남편은 본인이 규범이며, 아내를 규범외의 존재로 보고 있었기에, 자신이 아내에게 맞추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남편의 이름은 나오지 않으며, 남편은 소설 속에서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편명사와도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남편의 구체적 나이/외양/이름(특유한 개인의 고유한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즉, 소설 속 영혜는 고유한 개인으로 등장하지만, 남편의 개인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영혜의 꿈은 어떤 기능을 하는가?

가부장제와 이성, 합리성에 기반한 남편 화자는 영혜의 상태를 포착할 수 없다. 영혜는 비이성과 광기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남편의 시선으로는 영혜의 상태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영혜의 상태는 이탤릭체를 통해서 표현되는 것이다. 이 기울어진 글씨는 ‘퀴어의 상태’를 의미한다. ‘퀴어의 상태’는 언어를 발명해야지만 상태를 설명할 수 있으며, 기존의 언어로는 상태가 설명이 불가능한 상태를 뜻한다. 남편의 꿈의 경우에는 이탤릭체로 쓰이지 않았는데, 남편의 경우에는 무의식의 영역임에도 설명될 수 있음을 뜻한다.

이탤릭체로 영혜의 꿈이 표현되며, 이는 아내의 1인칭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내의 첫 번째 꿈에서는 “커다랗고 시뻘건 고깃덩어리들이 기다란 대막대들에 매달려 있는 걸”(18쪽) 본다. 살덩어리가 전시되어 있는 도살, 도축의 모습으로, 가공의 과정 없이 어떻게 식탁에 고기가 올라오게 되는지를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꿈을 꾸기 전 아내는 고기를 썰고 있었으며, 고기를 먹는 것이 살의와 살육과 연결되는 행동임을 직관적으로 자각하였으며, 이에 대한 공포가 꿈으로 현현하였다. 영혜는 시간이 지날수록 본인의 신체를 누군가를 억압하는 폭력의 신체로 느낀다.

무엇보다 여성시는 여성의 형식을 발명한다. 면면히 내려오는 말하기 방법 말고 다른 말하기 방식 말이다. 무엇을 말하는가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말하는가가 여성주의적 발성의 창안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의 말하기 방식 바깥에는 면면히 이어져내려온, 자기를 강화하고 권력을 산포하는 시적 발명물들이 포진해 있다. 나는 이와는 다른 여성의 시적 발화를 ‘들림’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여성적 들림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거절, 버려짐, 죽음을 당해본 경험의 집적 속에서 터져나온 하나의 다른, 언어를 넘어선 목소리이기 때문이었다. 이 목소리의 형식은 무너짐, 부숨, 흘러내림 같은 ‘물의 움직임’을 닮은 투명하고 둥글며 물렁물렁한 구축이다. 들림의 고통만큼 큰 것은 없다. 우주와 같은 것이 들어와 신체화되는 고통은 사람이 짐승(몸)이 되는 고통만큼이나 힘들다. 이렇게 ‘여성적 들림’으로 여성은 다른 방식의 발화자가 된다.

-김혜순,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연인, 환자, 시인, 그리고 너』, 문학동네, 2022.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남편 중심의 합리적/이성적 언어, 즉 가부장제 사회에서 억압/소외/결여된 존재를 의미한다. 영혜가 어떻게 ‘다락방의 미친 여자’가 되어가는가가 이 소설의 중심 내용이다. 「채식주의자」는 백설기 19개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의 플롯을 따라가보면, 남편서술자와 영혜서술자가 고조되고 있으며, 영혜의 꿈이 소설의 리듬을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영혜의 꿈이 4-7-10-12-13-14-16-18-19에 걸쳐서 나타나고 있다.)

‘채식주의자’라는 제목이 함의하는 바는?

「채식주의자」는 육식의 역사와 가부장제의 역사를 겹쳐놓고 있다. 제목 ‘채식주의자’는 표면적으로는 2004년에는 비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으며, 육식을 거부하는 사람인 영혜를 나타낸다. 이면적으로는 사회의 정당성, 보편성을 벗어난 사람을 의미한다. 즉, 특이하고 유별난 존재를 가르키는 맥락에서 표현된 단어이다.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나는 아내의 움켜쥔 오른손을 펼쳤다. 아내의 손아귀에 목이 눌려 있던 새 한 마리가 벤치로 떨어졌다. 깃털이 군데군데 떨어져나간 작은 동박새였다. 포식자에게 뜯긴 듯한 거친 이빨자국 아래로, 붉은 혈흔이 선명하게 번져 있었다. (65쪽)

소설은 자해에서 살해로 고조되었으며, 영혜가 완전히 비이성과 광기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이 지점은 자해, 살해/이성, 비이성/피해, 가해의 영역이 완전히 분리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러한 비이성과 광기의 영역은 남편화자의 시선으로는 볼 수가 없기에, 직접적 화자의 언어가 이탤릭체로 들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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