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화자가 남편으로 설정된 것의 효과는?
이 소설의 구조는 기본적으로는 남편의 1인칭 시점이며, 이탤릭체를 통해 영혜의 꿈을 나타내고 있다. 이탤릭체를 통해 남편 시점의 불완전한 모습을 균열내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서술자가 남편을 통해 표면적으로는 남편의 가부장제/정상성을 강요하는 억압과 폭력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이 시선은 이성과 합리성을 가장한 시선으로, 남편은 본인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믿고 있다. 남편은 소설 속에서 아내의 이름(영혜)을 부르지 않는다. 남편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에”(10쪽) 영혜와 결혼을 선택한다. 즉, 차이와 개별성을 불편해하는 남편은 무난한 성격의 영혜가 아내의 역할을 평균적으로 수행할 것이라고 판단해 결혼하였다. 영혜에게 한 가지 남다른 점이 있다면, “브래지어를 좋아하지 않는다”(11쪽)는 점이다. ‘브래지어’는 여성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가에 대한 억압과 규제를 의미하며, 남성중심의 사회와 시선이 규제화된 장치이다. 영혜가 브래지어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은 영혜가 채식을 하는 점에서 개연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남편은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자, “악몽 한 번꾸고는 식습관을 바꾸다니”(21쪽)라며 일반적, 보편적 이유가 아니라 꿈 때문에 채식을 시작한 아내의 모습을 납득하지 못한다. 남편은 의아해하고 당혹스러워하지만, 아내가 왜 이러한 선택을 하였는지를 알고 싶어하지 않으며, 아내를 자신이 편한 쪽으로 되돌리려고만 한다. 즉, 남편은 본인이 규범이며, 아내를 규범외의 존재로 보고 있었기에, 자신이 아내에게 맞추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남편의 이름은 나오지 않으며, 남편은 소설 속에서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편명사와도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남편의 구체적 나이/외양/이름(특유한 개인의 고유한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 즉, 소설 속 영혜는 고유한 개인으로 등장하지만, 남편의 개인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영혜의 꿈은 어떤 기능을 하는가?
가부장제와 이성, 합리성에 기반한 남편 화자는 영혜의 상태를 포착할 수 없다. 영혜는 비이성과 광기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남편의 시선으로는 영혜의 상태를 이해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영혜의 상태는 이탤릭체를 통해서 표현되는 것이다. 이 기울어진 글씨는 ‘퀴어의 상태’를 의미한다. ‘퀴어의 상태’는 언어를 발명해야지만 상태를 설명할 수 있으며, 기존의 언어로는 상태가 설명이 불가능한 상태를 뜻한다. 남편의 꿈의 경우에는 이탤릭체로 쓰이지 않았는데, 남편의 경우에는 무의식의 영역임에도 설명될 수 있음을 뜻한다.
이탤릭체로 영혜의 꿈이 표현되며, 이는 아내의 1인칭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내의 첫 번째 꿈에서는 “커다랗고 시뻘건 고깃덩어리들이 기다란 대막대들에 매달려 있는 걸”(18쪽) 본다. 살덩어리가 전시되어 있는 도살, 도축의 모습으로, 가공의 과정 없이 어떻게 식탁에 고기가 올라오게 되는지를 그로테스크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꿈을 꾸기 전 아내는 고기를 썰고 있었으며, 고기를 먹는 것이 살의와 살육과 연결되는 행동임을 직관적으로 자각하였으며, 이에 대한 공포가 꿈으로 현현하였다. 영혜는 시간이 지날수록 본인의 신체를 누군가를 억압하는 폭력의 신체로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