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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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이 사람은 나와 대화를 하고 있는 걸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풀어내고 있는 걸까’ 물어본 적은 없지만 그럴 경우 대부분이 후자에 속한다. 대개의 경우 화자는 자신이 들려주고픈 이야기를 청자에게 전달한다. 청자는 화자가 선택한 이야기를 자신이라는 여과지를 통해 걸러듣는다. ‘거의’라고 해도 좋을 만큼 뉴스도 이런 방법을 거쳐 우리에게 전달된다.


이런 방식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리 없다. 어느 것이 중요한지 중요하지 않은지 우리는 알 수 없고, 생각 없이 읽은 책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하듯 생각 없이 읽은 기사도 어떤 감흥이나 전망도 제시해주지 않는다. 기사 읽기에만 주력하기에 우리 인생은 짧고 할 일도 많다. 예전에야 읽을거리가 얼마 없었다지만, 정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세상에 발맞추려면 속독법을 배운다 해도 허전한 것은 자명하다.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뉴스를 읽는다. 그렇다고 ‘새로운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라고 작가는 말한다. 새로움과 중요함은 ‘범주가 겹치지만 궁극적으로 서로 다른 것’이란다. ‘아마존이 2.3kg 이하의 물건을 미국 전역에 30분 이내에 드론으로 배달 준비를 한다’는 뉴스를 오늘 저녁에 봤다. ‘드론이 새에 부딪히거나 돌풍과 맞닥뜨렸을 때, 해커가 해킹하여 드론을 중간에 멈춰 폭탄을 장착하거나 목표 추적 폭탄이 붙을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했을까’ 뉴스를 대할 때 부정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주는 대로 받으면 문제가 생길수도 있다는 것이다.


뉴스를 제대로 섭취하기 위해 우리는 자신만의 척도가 필요하다. 혼자서 심사숙고할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보다 나은 생각을 위해 작가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식으로 뉴스를 분류할 것을 권한다. ‘맛집, 여행, 과학기술, 패션’에서 ‘유쾌함, 안정, 회복력, 합리성’으로. 항목이 이보다 많아도 좋고, 적어도 좋을 것이다. 다만 사회적 분류가 아니라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분류법으로 항목을 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위를 둘러싼, 딱히 달변은 아닌 종들이 내건 훨씬 낯설고 보다 경이로운 헤드라인에 주목하기 위해 가끔 뉴스를 포기하고 지내야 한다.(291쪽) 할당된 짧은 시간 속에서도 끝까지 지켜야 할 자신만의 목적이 있음을 자각하면서 말이다.(292쪽) 우리가 먼저 자신만의 생각을 잉태시킬 만한 인내심 많은 산파의 기술을 터득하지 못하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는 단단한 무엇을 하나도 갖지 못할 것이다.(289쪽) 불완전한 욕망보다 진정한 욕구에 중점을 둔다면, 우리는 소비재, 즉 제조하고 구매 비용을 지불하느라 우리 자신과 우리 행성을 소진시키는 상품들에 의해 만들어진 근원적인 열망을 올바르게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265쪽) 관용적인 태도의 성숙과 희망의 척도는 역설 적이게도 극도의 슬픔을 다룬 뉴스를 통해 만들어진다.(232쪽) 고대 그리스의 비극 작가들은 이 점을 절대 잊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가 얼마나 사악하고 어리석고 육욕에 불타고 화를 잘 내며 맹목적일 수 있는지 알려주기를 즐겼지만, 그러면서도 복잡한 연민을 가질 여지는 남겨놓았다.(225쪽)


*마지막 문단은 책에서 발췌했다. 보통의 글은 감칠맛이 있었다.
바니타스(Vanitas): 허무, 덧없음, 헛됨 등을 의미하는 라틴어 라고 책에서 밝히고 있다. 작가는 재난 뉴스를 대할 때 ‘바니타스’라는 제목을 붙여 기사를 싣는다면 우리가 훨씬 더 중요한 일을 하도록 독려할 것이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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