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큐리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나에게는 작가에 대한 편견이 있다.

편견은 좋지 못한 것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머릿속에 각인되고 마는 것도 있게 마련이다.

내게 그런 작가 중 한 명이 바로 ‘아멜리 노통브’이다.

내 머릿속에는 ‘노통브=천재’라는 말이 마치 공식처럼 존재한다.

언어의 연금술사, 타고난 이야기꾼, 창의적인 소재, 실랄한 비평가.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내게 주는 의미는 매우 생소했다.

노통브의 소설은 대개가 대화로 진행된다.

4개 국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한 언어유희들은 작가의 박식함을 읽는 것만으로도 독자의 지적 만족을 채워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재미있다는 게 강점이다.

어떤 책에서든 통통 주고받는 탁구게임 같은 대화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탁구는 복식조도 있지만, 노통브식 대화는 대개 개인전이다.

『적의 화장법』에서도 분열된 자아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지만, 자아가 분열되어 있기에 두 사람과 다름없다.

‘이 책’ 역시 푸랑스아즈와 하젤이라는 두 주인공의 대화가 주를 이룬다.

더불어 특이하게도 ‘롱쿠르 선장’이라는 제 3의 인물도 대화에 참여한다.

이 인물은 사실 제 3의 인물이라고 말하기 미안할 정도로 ‘푸랑스아즈’와 대립을 이루며, 마지막에는 ‘하젤’과 3자 대화까지 성사시킴(!)으로써 배경이 아닌 주인공으로 격상되기에 이른다.

그러나 그 때문에 노통브식 대화가 갖는 장점은 그만 사라지고 만다.

탁구를 셋이 치는 경우는 드물다.

한쪽이 둘을 모두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세다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푸랑스아즈는 둘 모두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온실을 사랑하는 화초인 하젤에게는 아무리 노력해도 넘을 수 없는 허약의 산이 가로막혀 있다.

롱쿠르 선장이 둘을 다 받아쳤다면 좀 나았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는 작가가 설정한 ‘죽음의 경계’ 즉, ‘모르트프롱티에르’에 모두 갇히는 꼴이 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책의 종반부에 삼자대화가 진행된다는 사실이다.(사실 결말이 황당하고 재미가 없다)

그 전까지는 재미있었으니까 말이다.

이 책은 내가 여태까지 읽었던 노통브의 책(몇 권 없어 감히 다작가인 그녀 책들의 평균치를 내지는 못하겠다)과 다르게 결말이 두 개다.

작가는 스스로 쓰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며 새로 결말이 시작되는 부분을 이야기해 주고, 이어 쓰는 기법으로 두 개의 결말을 보여준다.

그러나 솔직히 둘 다 실망스러웠다.

첫 번째 결말은 아주, 완전한 해피앤딩이다.

상대를 가두던 사랑만 하던 롱쿠르 선장이 자신에 대한 하젤의 사랑을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놓아준다.

롱쿠르의 유산을 받아 하젤은 엄청난 돈을 가진 거부가 되어 프랑수아즈와 뉴욕에서 즐겁게 산다.

오, 제발! 노통브가 이런 시시한 결말을 쓰리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소공녀도 아니고……)

두 번째 결말이라고 딱히 감동적이지는 않다.

하젤이 자신을 속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확신한 롱쿠르 선장이 그 자리에서 자살하는 것이다.

그 집요의 화신(책을 읽어보면 알게 된다) 롱쿠르 선장이 말이다!

본인에게 사실 확인도 제대로 해보지 않고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책에서 그가 보여준 성격에 의하면 나로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그나마 좀 의외성 있었던 것은 프랑수아즈의 취향(?)정도랄까.

한 작가에게 가졌던 기분 좋은 편견이 물론 이 책 한 권으로 깨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동안 노통브의 책이 읽고 싶어질 것 같지는 않다.

이것이 내게는 매우 생소하고,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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