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이면 - 1993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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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탐구는 기획물이다.

‘작가의 삶’과 ‘작품들’을 연관 지어 이야기한다.

이 기획물의 목적은 작품 뒤에 숨어있는 작가의 내면과 외면을 들여다보도록 하여 문학과 일상인의 거리를 좁히려는데 있다.

이번 작가탐구의 작가는 박부길이다.

화자인 ‘나’는 독자와 비슷할 정도로 자신이 쓰게 될 작가를 잘 알지 못하는 인물로 독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대상 작가의 작품을 읽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작가 박부길은 ‘15년 동안 열 권의 장편소설과 일곱권의 중‧단편집, 그리고 세 권의 에세이집을 냈다’(16쪽)고 밝히고 있다.

‘1년 평균 한 권 이상의 책을 냈으므로 아주 과작은 아닌 편’이라는 평도 덧붙였다.

그리고 ‘나’는 소설 속에서 책 속의 내용들을 인용하며 작가의 삶을 파헤쳐 나간다.

많은 사람들이 소설은 작가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라고 한다.

또는 자신 안의 괴물이나 천사가 와서 대신 써주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가설 중에 이승우 작가는 전자의 생각으로 이 소설을 집필하지 않았나 싶다.

실제로 이 소설은 박부길이라는 작가의 작품 내용보다 그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듯 박부길 작가의 작품은 그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성장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통해 작가가 소설을 쓰게 되었는지 이야기해준다.

그렇게 중간 중간 삽입되는 이야기는 장면이 생생히 그려지는 영화 같기도 하고, 회상 장면 같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서술 방식은 작품과 작가 사이의 연결성을 알린다는 차원에서 필요한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책의 인용부분은 대화체가 현재 시제를 사용했기 때문에 현장감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너무 둘 사이의 교집합에만 집중하느라 여집합에 소홀했다는 생각도 든다.

과연 모든 작품은 작가의 ‘경험’만으로 이루어지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 전세계를 집시처럼 떠돌며 여러 가지 경험에 목메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작가는 ‘상상력’이라는 재료를 이용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인 봉평은 그가 묘사한 것만큼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지닌 곳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상상속 이야기였다.

더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

남성작가들의 소설에서 그토록 비일비재하게 등장하는 ‘몸 파는 여성’의 생각이나 감정을 작가들이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남성작가들이 그녀들의 이야기를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그녀들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방법은 대화나 전문 등을 통해 ‘의사체험’하는 방법이다.

물론 이 예가 주인공인 박부길 씨의 예와 구별된다고 할 수도 있다.

어떻게 ‘주역과 조역의 역할이 어떻게 같을 수 있느냐!’하면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한다.

모노드라마가 아닌 이상 모든 이야기 속에는 주역과 조역이 존재한다.

하지만 작가의 경험만을 강조한다면 모노드라마만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예전에 내가 소설가가 되겠다는 생각 없이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면 ‘그래, 소설에는 역시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게 마련이지’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의 마지막 장까지 읽어 가면서 ‘작가의 내면과 외면’을 아는 것과 작가가 작품을 이해하는 것이 과연 얼만큼 의미 있는 일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소설에 있어서 경험보다 상상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로봇 산업을 이끈 것은 일본의 유명 만화 ‘아톰이나 마징가Z’ 등을 보고 자란 세대라고 한다.

그들은 그것을 보며 ‘앞으로 나도 저런 로봇을 만들어야지’라는 꿈을 키웠다고 한다.

그들을 작가의 상상력을 경험하며 자랐다.

작가의 작품 안에 들어 있는 화자를 살펴본다는 액자식 구성은 흥미롭고 신선한 접근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박부길이 자신의 경험에만 기초한 것이 아니라 상상을 통해 새롭게 창조한 세계도 있었음을 보여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도 지울 수 없었다.

'이렇게 그의 경험을 통해 나온 작품도 있지만 그의 새로운 사유는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감동을 주지 못한다.

장애인으로 태어나서 불평만 해대는 많은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희아, 닉 부이치치, 오토다케 히로타다 등’앞의 사람들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인생 자체가 다른 이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박부길은 슬픈 어린 시절을 겪었다.

그는 성격적 결함으로 연애에도 실패했다.

그렇게 끝없이 침잠하던 어둠 속에서 글을 쓰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리고 그 충동은 그를 ‘15년 동안 열 권의 장편소설과 일곱 권의 중‧단편집, 그리고 세 권의 에세이집을 낸’ 중견작가로 만들어 주었다.

이것이 실화였다면 어둠을 뚫고 작가로서 성공한 이야기만으로도 의미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소설이기에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다.

현실같은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는 이런 길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행복한 결말도 많지만 슬픈 결말도 많다.

책을 읽으며 결말을 바꾸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나는 앞에 경험과 상상력에 대해 주절거렸지만, 사실 이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경험이나 상상력에 관한 내용이 아니다.

단지 내가 행복한 결말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나는 이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크다면 큰 깨달음이었지만, 해결책이 쉽게 눈에 띄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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