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
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 돌베개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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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 손 안에 들어오는 가격 착한 책이 대세인가 보다.

그런데 이 책은 착하게만 있지 말고 분노하라고 말한다.

억울한 일이 있으면, 화가 나고 속상하니 저항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아마 오늘날의 분노는 MBC파업 사태나 대기업 담합 사태, 비정규직 철폐 등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분노는 전쟁과 같이 전 국민이 겪는 아픔이 아니라, 한정된 집단에게만 영향력을 미치는 것 같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뉴스 진행자가 파업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그 이유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나는 심지어 YTN파업 사태 당시 도서관에서 국민의 볼 권리를 침해 한다는 이유로 파업하는 사람들을 욕하는 말도 들었다.

과연 우리는 무엇에 분노해야 할까?

지금 2-30대 무직 또는 비정규직의 분노는 이것이 아닐까?

부모님이 여태껏 키워놨는데 밥벌레 노릇이나 하고 있으니 속상해 하시는 부모님께 면목이 없다.

그렇다고 이윤 추구가 목적인 기업에다,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사원을 안 뽑았다고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요즘은 내는 것도 같다.)

학교 폭력에 시달리는 중고등학생은 어떤가? 어느 누구 하나 편들어 주지 않고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문제는 사회 문제라고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아직 개인의 문제다.

그러니 가장 크게 남는 분노는 자신과 사회 전체에 대한 반감뿐이다. 이것은 때로는 ‘악플’로 때로는 ‘묻지마 범죄’라는 슬픈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더 나은 것도 아니다.

밤늦도록 야근에 휴일 출근도 비일비재 하다.

저자인 스테판 에셀은 말한다.

“비폭력이란 손 놓고 팔짱 끼고, 속수무책으로 따귀 때리는 자에게 뺨이나 내밀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비폭력이란 우선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 일, 그다음에 타인들의 폭력성향을 정복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나는 당최 그 방법을 모르겠다. 앉아서 면벽수도 하면 비폭력적 분노인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억압에 시달려도, 끈기 있게 비폭력으로.

우리는 다시 간디의 시대로 돌아간다.

그런데 의문이다. 과연 그게 현대사회에 얼마나 통용될까?

무시당하기도 했지만, 부모님 밑에서 실컷 누리고 온 세대다.

이 말에 얼마나 동의할 수 있을까?

비폭력을 위해 얼마나 뭉칠 수 있을까?

나는 현재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그럴 수 있을까?

글쎄……. 나는 자꾸 자신이 없어진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가진 자들이 못 가진 자들을 포기시키는 방식일 것이다.

금전적 압박으로 위협하는 일.

동전이 떨어지면 한쪽 면으로 떨어지기가 쉽지, 세워지긴 어렵다.

아예 저항을 포기하던지, 불을 품고 거리로 나서던지 하지 않을까?

저항을 포기하면 옛날에 정체성을 빼앗긴 식민지 국가의 국민이 되는 것이고, 불을 뿜는 사람은 알카에다의 성향으로 옮아갈 성향이 높다고 본다.

나처럼 뒷방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일까?

그러나 가진 자들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희망이 없으면, 분노도 없다.

3무세대, 3포세대가 정말 세대명답게 자손을 남기지 않고 죽으면 어떻게 될까?

그 때는 재벌들이 공장에서 자동차를 만드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로봇을 움직이더라도 작동은 직접 해야 하니까.

뭐 운동이라며 즐기시면 다행이겠다.

사람은 누구나 존중받고 싶어 한다.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 과연 잘 굴러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긍지와 투지가 엿보이는 얼굴이라고 할 게 분명한 노학자의 얼굴.

이 사진이 왜 내게는 해골 장난감 같이 무시무시한 얼굴로만 보이는 걸까?

그런데 이 무시무시한 아저씨가 말하는 이야기와 내가 이번에 편집자로 참여한 첫 책의 저자와 생각이 같아, 앞에 투덜댔을지언정 읽으면서 참 반갑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남아있다.

‘폭력은 효과적인 수단이 아니고, 폭력적인 희망은 없다.’

“현실에 대한 냉소, 무관심, 거리두기만으로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우리의 정당한 분노와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여 세상 바꾸기에 나서자.”

결국 실천 방법은 스스로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다.

어제 프랑스에서 총기 난사를 일으킨 사람은 왜 그랬을까?

알카에다가 나쁘다고 욕하기 전에, 유럽에서 받았을 이슬람인의 차별을 먼저 보도해 주었으면 어땠을까?

그들이 받은 차별과 울분이 알카에다에 가입하고 싶은 마음을 낳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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