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 따분하고, 지금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조금의 색다른 시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빠빠라기>는 우리가 어떠한 시각으로 현재를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해답을 제시하는 책이다.
남태평양 티아비아 섬의 투이아비 추장이 연설했던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 바로 <빠빠라기>이다. 책의 제목인 ‘빠빠라기’라는 단어부터 짚고 넘어가고 싶다. 빠빠라기란 추장이 문명 세계의 인간들을 부르는 이름으로, ‘하늘을 찢고 내려온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있다고 한다. 묘한 어감이 불러일으키는 느낌은 어쩐지 문명의 이기 속에서 타성에 젖어가는 문명인들과 잘 어울린다. ‘빠빠라기의 고깃덩어리 감추기, 허리 도롱이와 거적에 관해서’, ‘둥근 쇠붙이와 묵직한 종이에 대하여’, ‘돌궤짝, 돌 틈, 돌섬 그리고 돌 사이에 있는 것에 관하여’ 등 투이아비 추장의 연설에서는 끊임없이 낯선 표현들이 등장한다. 이는 문명인들의 의복 문화, 화폐문화, 주거문화 등을 일컫고 있는 것이다. 충격적이었다. 우리에게 이토록 익숙한 것들이 그들에게 이토록 희한한 것으로 인식된다는 사실이.
여자들이 몸을 그렇게 단단히 감추고 있기 때문에 남자들은 어떻게든 한번이라도 그것을 보고 싶어 안달이 난다. 사정이 그러하니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밤이든 낮이든 그 생각만 하고 여자의 몸매에 대해 많은 말을 나눈다. 그런데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그 논의가 큰 죄라도 되는 양 어두운 그늘 속에서 이루어진다. …
육체가 죄악이고 악령의 선물이라니! 그런 어리석은 말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 궤짝들을 오가며 빠빠라기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시간에 따라 이 궤짝에서 저 궤짝으로 옮겨 다닌다. 아이들도 그곳에서 자란다. 땅에서 그렇게 떨어져 있는데도 말이다. 심지어 어떤 때는 다 자란 야자수보다 더 높은 곳에서 돌 속에 파묻혀 지낸다. … 신의 손을 더 이상 잡지 못하는, 정신이 혼미하고 병든 자들만이 햇살과 바람이 없는 돌 틈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보다 부끄러운 일이 있을까. 그들은 우리의 문명을 부러워하고 신기하게 여기기는커녕, 비아냥대고 의문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비싼 옷을 입고, 높은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삶, 많은 돈을 벌고, 한 달에 한 두 번은 영화를 보여 문화생활을 즐기는 삶, 아침마다 신문에 코를 박고 세상의 온갖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들을 빠짐없이 읽어나가는 삶은 아무래도 그들에게 너무나도 괴기스럽고 가증스러운 것으로 느껴졌나 보다. 우리의 세상에서 철저히 바깥에 있는, 아니 우리가 그들의 바깥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에게 비춰지는 우리의 모습을 가감 없이 객관적으로 파악해볼 수 있다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빠빠라기들이 사는 세상에서는 한 인간의 가치가 ‘성품의 고상함, 용기, 넓은 마음으로’가 아니라 하루에 돈을 얼마나 많이 벌 수 있느냐에 따라 정해진다.
이전에 누군가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대충 요약하자면, 문명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가 점점 생존력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는 것이었다. 사실 아주 오랜 옛날의 우리는 화폐가 없고, 집이 없고, 옷이 없는 와중에서도 남자들은 사냥을 하고 여자들은 채집을 하며, 발가벗은 채로도 아무 문제없이 생존해나갔던 것이다. 그 누군가의 말처럼, 어느새 우리의 문명은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을 거듭했지만, 사실상 생존력은 상당 수준감퇴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