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음 창비청소년문학 115
채기성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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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음>은 열여덟 살 제주가 합창부 활동과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을 겪으며 상처받고 위로받고 성장하는 이야기다.

제주는 합창부 단장 '재현'에게 합창부에 들어올 것을 제안받는다. 제주는 노래를 좋아하고 잘하지만 망설인다. 악보를 볼 줄 모르기 때문이다. 제주는 또래처럼 학교 활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 놓이지 못한 아이다. 제주의 아빠는 격투기에 빠져 딸을 방치하고 생계비를 주기는커녕 딸에게 돈을 빌려달라 요구하는 무책임한 사람이다. 제주는 돈을 벌기 위해 '찰스'를 찾아간다. 노래를 하며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찰스 역시 학생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철없는 어른일 뿐이다. 제주에게는 친구가 없다. 상처를 받으면 살기 위해서 곁에 있는 이에게 상처를 주곤 한다. 고등학생임에도 직접 알바를 하며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제주에게 의지할 대상은 존재하지 않았고 어른들에게 이용당하는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되어왔기 때문에 생긴 생존방식이다.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합창부를 찾아간 제주는 악보를 보지 못해 틀린 음을 내고 음악선생님은 폭언을 일삼는다.

"반음 차이의 두 음은 불협화음이니까. 그래서 반음을 사용하면 불편한 기분을 느끼게 돼. 어떻게 생각하니?"

합창부 선생님은 제주에게 네가 반음 같은 존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느냐 묻는다.

 

괴로워하던 제주에게 찰스는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해 보자며 제안한다. 제주는 참가비를 준다는 말에 승낙한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과 아이돌 산업의 폭력성과 부조리함을 파고드는 묘사는 현 사회를 들여다보게 한다. 대상을 향한 집요한 악성 댓글은 누군가를 가해자로 만들기도, 피해자를 만들기도 하며 진정한 가해자는 익명 뒤로 감춰지기를 반복한다.

 

제주와 아이들은 어른들의 무관심 혹은 과도한 관심과 통제 속에서 길을 헤매곤 한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고, 순응하지 않고 온음이든 반음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당차게 뻗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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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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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타일>은 여러 개의 타일들이 모여 하나의 문양을 만들어내는 단편소설집이다. 이어진 무늬처럼 느슨하게 연결된 인물들의 관계는 이 인물들이 어딘가에 정말로 존재할 것만 같은 느낌을 만들어낸다.



별개의 단편소설들인 줄 알고 읽다 한 단편의 주변 인물이 다른 단편에서는 화자가 되어 다른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것을 알곤 인물들에게 괜히 반가움을 느꼈다. 인물들이 이어져있는 하나의 세계를 보여준다는 점은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을 연상케했다. 수많은 인물들이 조금씩 맞닿아있고 그 중심에는 ‘맛집 알파고’ 현우가 있지만 정작 현우가 화자인 챕터는 없다는 점이 흥미롭다.



“영화가 빛의 예술이라는 건 반만 맞는 말이야. 이미지가 움직이려면 영화는 프레임당 두번 이상 빛을 차단하거든. 두시간짜리 영화라면 우린 영화관에서 사십분 정도는 어둠만 바라봐야 하는 거지. 어쩌면 막막하고 두려운 순간들이잖아? 학교 수업 때 그 말 듣고 영화관에 가까운 사람이랑 같이 가는 건 그 때문이구나 하고 나 혼자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가 더 좋아졌고." _ <데이, 이브닝, 나이트>

영화의 1/3은 어둠만 바라보게 된다는 것은 삶의 1/3이 잠으로 메워지는 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이런 방식으로도 삶을 모방하나 보다. 암흑 속에서 사라지는 시간이 막막하고 두렵지만 가까운 사람과 함께하다니 영화가 더욱 낭만적으로 다가온다.





순서에 상관없이 끌리는 단편 먼저 읽어도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연말은 인생의 짧은 기간만을 함께했지만 계절처럼 전체를 휩쓸며 오는 변화를 불어넣는 사람을 추억하기도 하고, 사랑하고 미워하던 사람을 만나 안부를 묻게 되기도 한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다정한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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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저녁 - 2023 대한민국 그림책상 수상작
권정민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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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저녁>은 주문한 음식 대신 산 채로 아파트 현관에 배달된 돼지 한 마리를 어떻게 처리할지 궁리하는 주민들의 블랙코미디 그림책이다.



어느 날 저녁, 돼지 한 마리가 산 채로 아파트 현관에 배달된다. 무엇이든 배달이면 되는 세상에서 식당은 배달하느라 요리할 시간이 없다며 살아있는 돼지를 보낸 것이다. 904호의 족발, 805호의 감자탕, 702호의 돈가스, 603호의 보쌈, 501호의 김치찌개까지 우리가 자주 먹는 배달음식에 고기가 빠지지 않는 사실이 새삼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이상한 소문이 날까 봐 두려워 돼지를 숨기기로 한 주민들은 먼발치에 서서 돼지와 씨름하고 있는 경비원들을 바라보고만 있다. 주민들은 돼지를 지하실에 옮기고, 돼지의 배설물을 치우고, 돼지를 잡는 데에 나서지 않고 직원과 전문가를 불러 남의 손을 빌린다. 고기를 잡고 굽는 도구들을 잔뜩 배달시켜 상자들이 한가득 쌓이는 한편 구매한 물품은 비건 인증을 받은 세제와 유기농 채소라는 점은 현대인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배달음식과 당일 배송이 익숙해진 현대인들의 위선과 본질을 꿰뚫지 못하는 모습은 우스우면서도 씁쓸함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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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은 사양할게요
김유담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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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은 사양할게요>는 무대처럼 반짝이는 인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평범한 사회초년생 연희는 드림출판사의 인턴을 거쳐 정규직이 되었다. 배정된 키즈콘텐츠1팀은 폭언을 일삼기로 유명한 천팀장과 일을 떠맡기며 알랑거리기 잘하는 성대리가 있는 곳이다. 이들과 일하게 된 연희는 매일 화장실에 숨어 훌쩍이곤 하지만 카드값, 월세, 공과금을 위해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연희는 대학시절의 전부를 연극동아리에 바칠 정도로 연극을 사랑하고 재능이 있었다. 그 꿈을 포기하고 취업의 길을 택했지만 여전히 꿈을 향해 나아가는 동기 장미에게 질투와 열등감을 느낀다. 일을 통해 만난 연인 포토그래퍼 권은 힘든 회사 생활 한탄을 들어주고 이해해주고 기댈 수 있는 존재이지만 뉴욕에 10년간 만난 또 다른 연인이 있다는 사실은 배신감을 준다. 그러나 장미와 권은 연희가 힘든 사회초년생 시절을 견디고 꿈을 간직할 수 있도록 상기시켜주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연희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현실적이다. 부당한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지고 눈치 보기에 급급한 사회생활은 낭만적인 청춘과는 거리가 있다. 배우를 꿈꾸는 장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생동감 있는 인물들은 이 시대 청년들의 삶을 보여준다. 한차례 막이 내렸지만 다시 새로운 막이 열릴 희연의 인생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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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값의 비밀 -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양정무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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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값의 비밀>은 최근 관심이 높아진 미술 경매, 투자처럼 그림을 돈과 연관 지어 바라보는 시선을 편안한 구어체로 설명한다.

그림값의 형성과 거래 과정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며 미켈란젤로, 고흐 등 유명 예술가와 돈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미술투자를 위한 Q&A까지 미술투자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들만 쏙쏙 정리되어 있다.

 

그림의 가격이 낙찰되면 작가와 딜러의 분배 비율이 반반이라는 사실은 놀랍다. 그만큼 아트 딜러의 역할이 중요하며 그림을 판매하는 어려움은 창작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원근법의 발명은 황금과 금은보화가 잔뜩 들어간 그림보다 얼마만큼 생생하게 구현하는가를 중요한 요소로 전환시켰다. 이는 그림이라는 매체를 모방에서 창작으로 지평을 넓혔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처럼 돈과 관련한 미술사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미술에 대해 비뚤어진 사랑을 보여줬던 갑부 사이토는 ‘고흐와 르누아르의 두 그림을 내가 죽거든 관에 넣어 함께 화장하고 싶다’는 발언으로 충격을 주었다. 미술품을 사는 것은 분명 법적으로 작품의 소유권을 갖는 것이지 작품을 파괴할 권리까지 가지는 것은 아니다. 이 일화를 보니 최근 프리다 칼로의 그림을 불태운 암호화폐 사업가가 떠올랐다. 동일 작품의 NFT를 팔기 위함이었다. 실제 작품이 사라지면 그 가치가 NFT로 옮겨갈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NFT가 원작의 아우라를 넘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둘 다 문화재 파괴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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