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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감각 - 근엄한 윤리의 액자에서 빼내어 실존과 생존의 감각으로
윤채근 지음 / 다반 / 2020년 7월
평점 :
“이 책의 제목이 《논어감각》인 것은 공자가 남긴 불후의 지적 유산을 과거의 무게로부터 해방시켜 오늘 이 시대의 현실 감각 속에 되살리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5페이지)
원래 2008년에 출간되었던 책이다. 하지만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듯 그간의 작가님의 세상변화에 따른 인식변화가 반영된 좀더 시대 감각에 맞는 버전으로 다시 출간 되었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 누구를 믿을 수 있는가?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제대로 된 길이 틀림없는가? 이 모든 질문에 누군가의 도움 없이 홀로 대답해야 하는 우리의 운명은 고달프고 쓸쓸하며 위태롭다... 《논어》에 담긴 지혜는 언뜻 진부하고 고지식하며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삶의 다양한 고민들에 해답을 줄 수 있는 통찰들이 가득하다.”(4-5페이지)
사람과 살아가는 이야기다. 나의 마음, 타인의 마음, 관계, 타인의 시선.
어렸을 때 동화책을 읽고 학교에서는 도덕을 배우지만, 실제 사회에서는 배움과 달리 우리는 매순간 좌절한다.
힐링서적이 유행이고 잠깐의 안도감을 얻지만 우리는 결국 자기생활로 돌아가 불편함들을 겪어내야한다.
《논어감각》은 이상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을 예리하게 간파하고 우리가 인생의 주인으로서 가져야 할 태도와 마음가짐을 말한다.
각 소주제별로 2-3장 정도로 구성되어 긴 흐름을 신경쓰지 않고 짧게 생각해보기 좋은 구성이다.
《논어》라는 단어자체에 부담감을 가지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매일 살아가는 사람간 관계현장의 고민들이 생생히 나타나기에 정말 어떤 의미로는 친숙하다
“사람에게도 텃세권이 있다. 낯선 사람이 너무 가까이 접근하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자기 공간을 지키려는 자세를 취한다. (13페이지)”
본문 시작부터 띵 하다. "텃세"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만 떠올렸는데 알고보니 이는 누구나 가질 수 밖에 없는 보편적인 것이라 한다.
“어떤 사람이 물었다. "은덕으로써 원한을 갚는다면 어떻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은덕은 무엇으로 갚겠는가? 곧음으로써 원한을 갚고 은덕으로써 은덕을 갚아라." 《논어 》'헌문'편
'은덕으로써 원한을 갚는다.'는 표현은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이다...이 말에 대해 공자는 서슴지 않고 반대했다...설사 은덕으로 원한을 갚아서 상대와 화해했다 해도, 진짜 은덕을 갚아야 할 사람에게는 무엇으로 갚아 주려느냐? 원한마저 은덕으로 갚는 너희들이 베푸는 은덕을 진정 은덕으로 받아들일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35-36페이지)
당장 내 마음 편하려고 원한도 은덕으로 갚으려하며 살아왔었는데, 사실 그렇게 해도 늘 마음이 편해지진 않았다. "다른 사람의 은덕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위해서라도, 내 마음의 은덕을 아무데나 낭비하지말고. 원한은 "자신의 의견을 곧게 세우고 무슨 일이 있어도 관철시키는 것"으로 갚아야한다는 공자의 가르침을 항상 기억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자신에게서 책임을 구하고 소인들은 남에게서 책임을 구한다." 《논어》'위영공'편
훌륭한 리더는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않기에 스스로를 기꺼이 들여다볼 줄 알고, 그래서 책임의 원인을 자신에게 물을 수 있는 존재다. 그렇게 스스로를 탓하지만, 그것 때문에 자신을 미위하지 않을 수 있는 리더야말로 남에게 진정한 관심을 쏟을 수 있다...군자는 자기의 결함을 인정하고 용서했기에 남들의 결함과도 화해한다. 리더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이처럼 세상에 가득 찬 결함들과 화해해 간다는 뜻이다.“ (87페이지)
워낙 널리 알려진 공자의 명언이라. 이 책을 만나기 전에는, 군자와 소인을 이분법적으로 생각해 소인의 특성을 나쁘게만 평가해왔었다. 하지만 《논어감각》을 읽으며, 결국 진정한 리더란 자신의 결함을 용서함으로써 남들의 결함도 인정하고 화해해간다는 속뜻을 알게되니, 내가 얼마나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 깨닫게 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으로써 정치를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저 북극성이 본디 자리에 멈춰 있으면 다른 많은 별들이 그 주위에서 그를 향해 있는 것과 같다."
《논어》 '위정'편
고요한 침묵 속에 간결한 태도로 자신을 드러내되 자신을 비하시키지는 않는 것, 제가 할 일과 부하에게 시켜야 할 일을 정확히 분간하는 것, 바라보고 있되 감시하지는 않는 너그러움을 보이는 것, 함부로 좋고 싫음을 드러내서 부하들에게 간파당하지 않는 것, 이 모든 것들은 불굴의 인내로 자기 자리를 지키는 리더만이 획득할 수 있는 자질들이다.“(112-114페이지)
꼭 관리자라는 타이틀을 달지 않더라도, 소모임에서든 가족 관계 내에서든 예기치않게 리더역할을 하게되는 경우가 있다. 리더들은 보통 구성원들이 자기 뜻을 잘 따라주지 않는다 한탄들을 많이 한다.
《논어》에는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는 법, 아랫사람을 통솔 하는 법, 리더의 자질 등 관리자가 참고할 만한 내용들이 많고,
《논어감각》에서 쉽게 해설해준다. 비록 시대가 변하면서 요구되는 리더의 자질에도 변화가 많겠지만, 위의 공자가 언급한 자질은 불변의 요구사항이 아닐까 싶다.
“군자는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은 이루어지도록 도와주며, 다른 사람의 좋지 않은 점은 이루어지지 않도록 해준다. 소인들은 이와 반대니라. 《논어》'안연'편” (122페이지)
"모든 사람이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자세히 살피고, 모든 사람이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자세히 살피어라!
《논어》'위영공'편
미움이든 사랑이든 자신의 본질을 반성하지 않은 마음이란 모두 허망하고 또 허망한 것이다...실제 살펴야 할 대상은 미움이나 사랑을 받고 있는 대상이 아니라 자기 자신임을 명심하자.“ (151-152페이지)
대상에 대한 좋고 싫음의 감정은 결국 자신의 열등감이나 대리만족이 반영된다는 데에 동의한다. 어떤 감정이 일어날 때에 본인의 상태부터 면밀히 돌아봐야한다는 건 심리학이나 힐링서적에서도 자주 보게되는데 공자의 통찰력은 2020년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요구에도 뒤처지지 않는다.
“공자는 '학이'편에서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말고 (내가) 다른 사람을 알아보지 못함을 근심하라.'고도 했다...욕망이 강할수록 위만 보이는 법이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 상태로 누군가의 인정을 기다리고 있는 저 재능 있는 젊은이들을 보라! 공자는 그런 젊은이들과 함께함으로써 동시대 그 누구도 줄 수 없었을 불후의 지위와 명예를 얻었다.” (170페이지)
이어서 작가님은 잘 풀리지 않은 인생을 탓하지만 말고, 바로 옆 자녀들의 눈망울, 배우자의 잔주름, 늙은 부모님의 미소를 제대로 마주하라 전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내가 무엇을 잊고 살아왔는지 눈시울이 젖었고, 《논어》에서 공자가 너무 미화된 게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로 그의 완전함에 감탄했다.
“공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그저 《논어》에 남아 있는 제자들의 단편적인 기억 속에서 흐릿한 자취로 어른 거릴 뿐이다. 그러니 그건 각자가 《논어》를 읽으며 자기 마음껏 창조해 볼 일이다. 다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하다. 소인들은 《논어》속에서 성마르고 금욕적이며 권위만을 내세우는 초인을 볼 것이고, 군자라면 고독한 시인이며 인자한 교사였던 한 인간의 얼굴을 보리라.“(205페이지)
“용맹하기를 좋아하면서 초라한 것을 미워하면 어지러운 것이 되며, 사람이고도 어질지 못한 것을 너무 지나치게 미워하면 어지러운 것이 된다.
《논어》'태백'편
공자는 도덕적 폭력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어질지 못한 것은 당연히 미워해야 하지만, 도가 지나친 도덕적 분노에는 무언가 무의식적인 다른 의도가 개입되어 있다!”(172-173페이지)
앞서 나스스로 군자와 소인의 이분법적 오류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고백했다. 공자는 무엇이 옳고 나쁜건지 판단기준을 제시하지만, 역시 인간으로서 지닐 수 밖에 없는 한계를 인정하고 사람을 포용하는 마음을 어느 순간에도 잃지 않았던 것 같다.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조절할 수 있는 자만이 남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스스로 선택한 확고한 중심과 그 중심을 잡는 절묘한 균형 감각을 통해 한 사람은 자신의 힘을 아주 잘 쓸 줄 알게 된다... 그들은 내적으로 풍요롭기에 타인에 대한 우월감 없이 상대를 끌어안고 용서한다.” (274페이지)
용서가 너무 가벼워도 안되고 용서에 너무 인색해도 안되지만, 내 마음의 균형을 유지하고 완벽하게 조절하는 게 가장 어렵다.
“자아의 면적이 큰 사람들은 남을 위해 무언가 넘겨주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것들로 꽉 차 있다. 타인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늘 부족하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를 근엄하게 가꾸고 자신의 취향을 고집하며 체면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용기와 겸양을 지닌 사람들은 자아가 작다. 그들의 자아는 이렇게 작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밀도는 매우 높다. 단단하게 결집된 자아가 타자들과 공유하는 넓은 우주 속을 자유롭게 옮겨 다니고 있다.“ (287-288페이지)
자아의 크기에 대한 (적어도 나에게는) 새로운 해석.
이 책은 공자의 말씀 못지않게 작가님의 인생에 대한 따뜻한 통찰이 마음을 울린다.
성인이 된 후부터 줄곧 드는 생각이 중간이 어렵다는 것이다.
공자는 자신에 대한 이해와 엄격함, 타인에 대한 포용과 단호함을 모두 제시하지만
이 네가지 차원을 각 상황에 절묘하게 응용하려면 나는 아직 더 내공과 연륜이 필요할 듯하다.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되 내 인생의 주체로 살며 스스로 만족할 때까지는 이 책을 계속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