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권 독서법 - 인생은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인나미 아쓰시,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서 초창기 시절, 독서법에 대한 책은 5권당 1권 정도의 비율로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에는 책이 잘 안 읽히기에 그런 책이 필요하기도 했고, 읽고 나면 나름 도움이 되기도 했습니다. 독서량이 쌓이고 읽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된 후부터는 거의 보지 않았는데, 이 책은 자극적인 제목 탓인지 한번 확인이나 해보자는 심정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사실 1만 권은커녕 1천 권, 아니 1백 권도 읽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이렇게 무모하게 책을 읽는 방법이 있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합니다만, 제목만 보고 폄하하기보다 한번 읽어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겠다는 생각에 책을 들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몇 가지 점들만 제외하면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우선 저자가 자신의 독서론이나 독서방법, 그리고 독서의 효용에 대해 상당히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무척 맘에 들었습니다. 책의 제목이 직접적이고 자극적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해명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이 있는데, 이걸 저자도 알았는지 초반부터 일찌감치 빨리 읽을 수 있는 책과 빨리 읽을 수 없는 책을 분류하고 있습니다. 마치 카드사가 이것저것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고 신나게 떠들고 난 뒤 말미에 작은 글씨로 통합한도 할인액을 보이지도 않게 명시하여 분노를 터뜨리게 만드는 것과는 달리, 시작부터 언급하여 애초에 독자의 반감을 살 여지를 차단하고 있다고 할까요. 뭐 이것도 짜증 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습니다. 솔직한 저자의 자세가 좋았습니다. 

살다 보면 교육에 의한 가르침이 아니어도, 부모 또는 선배의 덕담이 아니어도, 스스로 깨닫게 되는 삶의 진리나 노하우가 각자에게 존재합니다. 그래서 어렴풋이 자기 안에 형성되어 가고 있는 그 무언가, 그러나 확실하게 잡히지 않았던 어떤 생각이나 개념을 책에서 만날 때에는 아, 이 저자가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을 이야기하고 있구나 하면서 반가운 기분을 느끼게 되죠. 개인적으로는 새로운 지식과 깨달음이 아닌, 내 안의 있던 희미한 것을 책의 저자가 확인시켜주는 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편입니다. 이 책은 그런 것들이 많았던 경우에 속합니다. 

먼저 독서 타입에는 두 가지가 존재합니다. 바로 정독의 저주에 매여있는 사람과 정독의 저주에서 벗어난 사람. 이것은 사실 의견이 분분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아니, 정독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과연 독서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앞서 말했듯이 필자는 사전에 빨리 읽을 수 있는 책과 읽을 수 없는 책을 분류하고 있습니다. 빨리 읽을 수 없는 책은 스토리의 흐름과 플롯이 중요한 소설과 같은 책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런 책들은 정보를 얻기 위함이 아닌, 그저 즐겁기 위해 읽는 것이기 때문에 빨리 읽을 필요도 없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동의합니다만, 김이 좀 세기도 하더군요. 이미 많은 다독가들이 통감하고 있는 사실이니 말입니다. 이걸 처음부터 깔고 간다는 건 결국 이 책의 제목이 낚시였다는 걸 일찌감치 시인하는 것이기도 한 것입니다. 

빨리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문자를 접하는 현대의 환경이 달라졌음을 언급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상당한 양의 기사를 클릭하고 읽어내려갑니다. 모바일 환경이 우리를 이미지와 영상언어에 더욱 길들일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기사의 독해를 위해 문자를 읽는 것에 기여한 측면이 더 크다는 것이죠. 어쩌면 과거에 신문이 존재하던 시절보다 더욱 적극적으로 문자를 읽고 있으니,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루에 몇 개의 기사를 읽는지는 천차만별이겠지만, 누구나 한두 가지 기억에 남는 기사는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우리가 기억하기 위해 노력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죠. 그냥 기억이 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책 읽기도 이와 같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책도 기억하기 위해 읽을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책을 성의 없이 읽으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정말로 가치 있는 정보는 자연스레 기억에 남기 때문에 안심하고 읽으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저자는 플로우 리딩(flow reading)이라고 말합니다. 하루가 다르게 정보가 쏟아지고 사라지는 시대에 적합한 읽기 방식은 한 글자, 한 문장을 꾹꾹 읽어내려가는 정독이 아닌 플로우 리딩 이라는 것이죠. 분명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할 수 있다. 애초에 1만 권을 플로우리딩 할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알찬 내용의 책들을 선별하여 정독을 하면 되지 않는가? 어중이떠중이의 책들 1만 권을 플로우 리딩 하는 대신에 엄선된 책 1천 권을 정독하는 것과 어느 것이 더 경제적일까?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책들을 일일이 살펴보고 엄선하기란 탁월한 안목을 가진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힘든 일입니다. 게다가 그게 나에게 맞을지 안 맞을지는 순전히 자신이 판단할 문제이고요. 결국 일반 독자가 정보의 홍수의 시대에 스스로 대처하는 방법으로 플로우 리딩을 주장하는 저자의 말에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갔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결국 플로우 리딩을 하는 와중에 정독하는 책이 나타나면 주말이든 따로 시간을 내어 읽으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독서법은 우리가 융통성 있게 적용하면 되는 것이지, 무작정 모든 책을 이렇게 읽을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독서법을 이야기하는 많은 책들이 말미에 가면 필사 또는 서평 쓰기의 대해 언급합니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저자의 독창적인 예시가 그 의미를 새롭게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예시란 바로 우리의 인체가 작동하는 방식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숨을 쉬어야 살 수 있죠. 숨을 쉰다는 것은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뱉는 행위입니다. 어느 한쪽만 작동해서는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숨을 쉬듯 책을 읽고, 숨을 내뱉듯 읽은 책에 대해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되새김질하여 출력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서평 쓰기를 하지 않는 독서는 지속하기 어렵습니다. 다시 말해 책을 읽고 깨달은 것을 계속 쌓아만 둬서는 건강한 작동 방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이죠. 입력이 있으면 출력이 있듯이 읽고 느낀 것을 펜으로 쓰든 키보드를 사용하든 직접 작성하여 기록하는 것, 그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출력하지 않으면, 우리의 뇌는 과부하가 걸려서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기 힘들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어쩌면, 많은 이들에게 독서에 지치는 시점이란 건 사실 출력 없는 입력의 과부하로 인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깨달음이었습니다. 그래야 새로운 지식, 새로운 책을 지치지 않고 읽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말이 출력이지, 출력으로 생산된 글은 자신의 머릿속에 담지 않아도 언제고 꺼내보면 되살아나지 않습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의 기억에 의존하기 보다 손을 사용하여 서평을 써 내려가는 출력은 사실은 저장 방식과 공간을 늘리는 행위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미 독후감이나 서평 쓰기를 생활화한 이들에겐 사실 진부한 이야기이지만, 읽기만 하다가 슬럼프에 빠진 이들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되는 이야기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엔 저도 포함되는데, 지금 같은 글을 써 내려가는 이유에는 더 이상의 다독이 의미가 없는 것 같다고 느끼던 시점에 자연스럽게 쓰는 방향으로 행동이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그 즈음에 독서 페이스는 떨어졌지만 반대로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고, 그리고 다시 읽는 즐거움으로의 선순환이 작동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책은 어렴풋이 필자가 느낀 깨달음을 좀 더 명확한 언어로 설명해주고 있어서 공감했던 것입니다. 

이 외에 빨리 읽는 구체적인 노하우와 다독가를 위한 책 읽기 습관, 책을 관리하는 노하우 등의 내용은 대체로 평이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적당한 플로우 리딩의 필요성, 그리고 숨 쉬는 비유를 통한 입력과 출력, 곧 읽기와 함께 행해져야 할 글쓰기의 필요성. 위의 두 가지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한번 펼쳐볼 가치가 있는 책입니다. 별로 내용도 어렵지 않고, 길지도 않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책 또한 어떤 이에게는 빨리 읽어도 되는 책일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플로우 리딩으로 이 책을 읽어 하나라도 남는 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 아니겠습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