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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물
안녕달 지음 / 창비 / 2022년 6월
평점 : 
지키는 사랑은 왜 언제나 그렇게 어려운 걸까? 모든 것을 망치기만 하는 세계에서 무언가를 지키려 안간힘을 썼던 사람들과 이 책을 읽고 싶다. 어떤 통증은 무뎌진 상태의 우리를 깨우기 위해 필요하다. 쪽마다 아픈 이 책을 당신에게 안기고 싶은 것은 그래서이다.
- 소설가 정세랑의 <눈, 물> 추천사
안녕달의 어른을 위한 그림책 <눈, 물>은 아프다. 제목부터 아프고, 눈 속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표지 속 여자의 표정도 아프고, 그림책의 첫 구절도 아프다.
"겨울밤, 여자는 어쩌다
눈아이를 낳았다.
여자는 품에서 녹아내리는 아이를
차가운 바닥에 내려놓아야 했다."
엄마의 온기가 그리워 손을 내민 아이는, 엄마의 온기에 닿자 손가락이 녹아 버린다. 엄마는 눈을 가져와 녹아 버린 아이의 손가락과 발가락을 만들어 준다.
"여자는 자신의 온기가 무서워
눈으로 담을 쌓았다."
담을 쌓고 세상에 등을 돌린 채 누워 자장가를 불러주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그리고 초록이 몰려와 녹아가는 눈아이가 우는 소리인 "으아아아"를 세상에 들리지 않는 소리라고 표현한 부분을 보며,
떠올린 웹툰이 있다. - 열무와 알타리
어쩌면 이 웹툰이 아니었다면, 나에게도 전해지지 않을 목소리. 하지만 알고 난 이후에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절절하게 공감이 되는 이야기다.
열무와 알타리의 이야기처럼 세상에 전해지지 못한 목소리와 이야기는 얼마나 많을까.
눈아이의 엄마는 '언제나 겨울'을 선착순으로 무료 체험할 수 있다는 전단지를 보고, 문으로 밀려드는 온기를 막은 채 세상으로 달렸다.
단조로운 색상의 집과는 달리
세상은 알록달록한 색감의 낙원이다.
세상은 말한다.
더 빨리 달리라고, 모든 것을 소유하고 가지라고.
그리고 그 소유의 시대 속에서 여자는 '언제나 겨울'의 무료 체험이 끝나 절망하고, 여자보다 늦게 도착한 사람은 가게에 들어가 '언제나 겨울'을 구입하고 나온다.
누군가에게는 절박하지 않지만 쉽게 소유할 수 있는 그것이, 어떤 이에게는 절실하다.
여자는 절실한 그것을 위해 또 달리고 달린다. 세상의 유혹을 뿌리치고.
청소를 하고, 우유 카트를 끌고 끝없는 계단을 오른다.
그녀의 지키기 위한 투쟁은 계속될 것만 같다.
그녀의 투쟁과 눈아이의 이야기가 눈이 시리도록 아프다.
그리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한 시인이 떠올랐다.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모든 것들은 죽어가는 존재이다.
윤동주는 모든 존재들을 사랑하고 노래하는 마음으로 평생을 살았다.
안녕달의 <눈, 물>이 서글프도록 아픈 건 내게도 사랑하는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전해지지 못한 목소리와 이야기들을.
하지만 이 이야기를 굳이 서글프게만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우리의 노력들은 각자가 원하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밑거름이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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