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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사피엔스 - 또 하나의 현실, 두 개의 삶, 디지털 대항해시대의 인류
김대식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1월
평점 :
일시품절
작년에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하는 과학 저술가 수업을 들었습니다. 출판업계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서 재미있는 한탄을 들었습니다. '전공자들은 제 전공만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리학 교수님은 물리 이야기만 쓰고, 생물학 작가는 생물학 이야기만 쓰니 다른 분야의 독자를 끌어오지 못하고, 독자들도 작가에게 예상한 지식만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과학 전공자는 논문 한 편에 얼마나 많은 참고 문헌이 들어가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조심스럽다못해 양심에 어긋납니다. '2008년에 이루어진 연구'를 '21세기 이루어진 연구'라고 뭉뚱그릴지언정, 다채로운 글을 읽고 싶은 독자 입장에서는 아쉬운 일입니다.
카이스트 전기전자공학부의 김대식 교수는 당신의 전공 분야를 넘어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용기있는(?) 분입니다. 뇌과학자라고 하더라도 '메타버스'를 논하기는 어려우니까요. <메타버스 사피엔스>는 이런 저자가 메타버스 시대를 가능하게 하는 사람 뇌의 원리와 기계의 계산 방식을 쉽게 풀어쓴 책입니다.
문제는 메타버스가 무엇인지는 세상도 제대로 정의하지 못하는 점에 있습니다. 현재 VR 기술로는 완벽한 가상 현실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저자도 말하지만, 지금 '메타버스'라고 나온 다양한 플랫폼은 미래의 가상 현실 세계나 과거 MMORPG 게임의 열화판입니다. 그러다보니 책에서도 메타버스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대신, 메타버스와 관련한 재미있는 토막 지식을 내놓는 정도입니다. 자체로도 재미는 있었지만 변죽만 울리는 느낌이 가시지는 않았습니다.
Z세대에게는 메타버스가 현실이라고 했지만, 책에는 Z세대의 목소리가 하나도 나오지 않은 점도 아쉬웠습니다. 현상을 밖에서 팔짱끼고 평하는 듯 했습니다. 전에 읽었던 경향신문의 제페토 취재 기사가 떠올랐습니다. (자주 들어본) 마인크래프트도 아닌 것이 세상을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 신기했습니다. 메타버스가 궁금해서 책을 든 기존 세대 입장에서는 현대의 메타버스에 대한 묘사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메타버스의 가장 큰 목적은 현실의 도피처이며 대안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현실이든 가상 현실이든 사람입니다. 비대면 환경에서 비언어적 소통이 되지 않아 생기는 문제는 미래에 기술적으로 해결 가능하겠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예의와 태도의 문제는 사람이 바뀌지 않는 이상 영원히 남을 겁니다. 사람을 전부 인공지능으로 바꾼다면 모르겠지만, 그런 가짜 메타버스에 접속하느니 1인칭 콘솔 게임을 하고 말지요. 게다가 훌륭한 1인칭 콘솔 게임에는 메타버스에는 없는, 작가가 직접 만든 서사가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