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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세우스 패러독스 안전가옥 오리지널 46
이경희 지음 / 안전가옥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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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가옥 서평단 활동으로 쓴 소개글입니다. 스포일러 최대한 없이 썼습니다!


<테세우스 패러독스>테세우스의 배라는 철학적 난제를 주제로 쓴 SF 소설이다. 아테네 사람들은 테세우스가 탄 배의 부품이 하나씩 낡을 때마다 다른 부품으로 교체해서 보존했다. 어느순간 배에 본래 배의 부품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면, 그 배를 테세우스의 배라고 부를 수 있는가? 혹은 버려진 부품을 하나하나 모아 새로운 배를 만들었다면, 어느 것을 진짜 테세우스의 배라고 할 수 있을까? 소설은 두 질문을 다 던지고, 심지어 아테네 사람들은 생각지도 못한 경우의 배까지 만들고서 무엇이 진짜 테세우스의 배인지 독자에게 묻는다.


등장인물은 모두 동기와 욕망이 뚜렷하다. 고민은 잠깐이고 몸부터 나간다. 아니, 쉴새없이 터지는 사건이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배경은 규제가 하나도 없는 평택특별자치시, 소위 샌드박스이다. 작가는 이 작품 외에도 샌드박스를 배경으로 한 다른 소설을 여러 편 썼다고 한다. <테세우스 패러독스> 속 샌드박스는 분명 하드한 사이버펑크인데도 사람이 못 살 동네는 아니라는 느낌이다. 아마도 이 이야기가 재벌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듯하다.


테세우스의 배 같은 사고 실험을 좋아한다면 좋아할 주제이다. 수면내시경을 받고 깨어난 내가 과거의 나인지 (내시경도 아니고, 혈액 검사를 위해 피를 빼다가 실신해서 침대에서 깨어난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사람 세포도 끊임없이 교체된다는데 내가 100% 교체되는 순간은 언제일지 (신경세포는 교체되지 않으므로 테세우스의 배와는 다르다) 등등. 설령 이런 주제에 관심없더라도, 활자만으로 시간이 뚝딱 지나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면 <테세우스 패러독스>는 첫장부터 쾌감을 가득 채울 것이다.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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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제국 쇠망사 - 우리는 왜 멸종할 수밖에 없는가
헨리 지 지음, 조은영 옮김 / 까치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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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제국 쇠망사>는 인류의 발흥과 쇠락을 다룬 책이다. 인류의 처음과 끝만 썼기 때문에 거대한 내용을 다룬 책 치고는 분량이 얇다. 고생물학자의 시간 개념이 재미있다. 시간의 단위가 종의 흥망이다. 저자는 이대로 있다가는 인류 종이 멸종하리라 경고하는데, 예상 시한이 만 년이다. 2050년 후 인류가 멸망할 것이라는 책들에 비해 위기감 없이 멸종을 즐길 수 있다. 이외에도 책 곳곳에 세상을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고생물학자만의 관점이 있다.


1<부상>은 고생물학의 최신 발견을 모아 인류의 발흥을 그렸다. 방대한 지식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우리의 유전체에 네안데르탈인 유전자가 들어있다는데 어째서 네안데르탈인은 우리의 조상이 아닌지 헷갈린다면 이 부분의 지식이 도움이 될 것이다. 다양한 영장류가 아프리카에서 지구 곳곳으로 뻗어나가지만 호모 사피엔스만 살아남았다. 수많은 종이 융성했다가 사라지는 동안 지구도 가만히 있지 않고 빙하기와 간빙기를 오간다.


2부부터 본격적으로 저자의 문제의식이 드러난다. 이제 사람들은 좀처럼 아이를 낳지 않는다. 최근에는 이유 없이 정자의 수가 감소하며 아이를 낳고 싶은 사람도 낳지 못한다. 지구 전체의 인구가 감소 추세다. 어느정도 규모를 잃어버린 집단은 질병이나 외부 환경에 급격히 취약해진다. 저자에 따르면 현생 인류는 아프리카 내 침팬지 무리보다도 종 내 유전적 다양성이 부족하다. 게다가 현대의 인류는 한 두 종류의 작물만을 먹으며 생활 환경조차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언제 다시 코로나19같은 질병이 휩쓸지 모른다.


3부에서 저자는 이러한 문제에 할리우드식 해법을 제안한다. 우주로 나가자는 것이다. SF를 좋아한다면 환장할 하드한 테라포밍 이야기가 나온다. 저자가 말하는 테라포밍은 지구를 먼저 바꾸고, 그 기술로 우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바꿀 천재는 집단의 규모가 충분히 클 때 나온다.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 인류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한두 세기 안에 전 인류를 먹여살릴 생산력과 우주로 나갈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인류는 지구에 갇혀 멸종할 것이다. 물론, 앞으로 만 년에 걸쳐 일어날 이야기이다.


저자의 문제의식에는 설득이 되었지만(앞으로 만 년동안 일어날 일에 대해 나보다는 고생물학자의 시각이 맞을 것이다), 우주 진출을 최종 해답으로 보는 관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인류를 종으로 보는 관점은 인간 사회와 개인을 보는 관점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시야가 짧은 나 같은 사람이 생각하기는 앞으로의 한 두 세대만이라도 조용하게 행복한 편이 좋다. 인류가 멸종한다면 어차피 태어나지도 않았을 사람을 우주 개발로 희생시키면서까지 인류를 존속시킬 필요가 있을까.


당장의 인구 감소가 문제라면, 과학은 다른 방식으로도 진보할 수 있다. 예컨대, 정자 수 감소에 대응하면서도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보장하는 기술로 인공 자궁이 있다. 100% 안전을 보장하는 열달짜리 인큐베이터가 세상에 뿅! 하고 나오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인공 자궁은 현실에서 개발 중인 기술이다. 조산아의 생존 가능 시점이 점점 일러지는 식으로 발전하고 있다. 언젠가 수정란 인큐베이터에 착상하는 날이 온다면, 인류는 전체의 절반인 여성을 100% 활용하면서 인구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인류의 모든 문제를 기술 발전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현대에 사람이 굶주리는 이유는 식물의 광합성 효율이 낮기 때문이 아니라 불평등한 분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가 제시한 해법을 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었다. 만 년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시간관, 우리를 종으로 보는 관점 모두 새로웠다.



* 출판사에 도서를 제공받아 쓴 서평입니다.

아이 하나를 기르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다윈이나 파스퇴르, 게이츠나 잡스, 베이조스나 머스크,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을 낳으려면 10억 인구의 문명이 필요하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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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이란 이름의 기억 테익스칼란 제국 1
아케이디 마틴 지음, 김지원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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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디 마틴의 <제국이란 이름의 기억>은 우주의 중심인 테익스칼란 제국에서 변방 출신 외교관 마히트 디즈마르가 겪는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마히트는 '르셀 스테이션'이라 불리는 소규모 우주 정거장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제국을 동경하며 자랐습니다. 어느 날 테익스칼란 제국에서 신임 외교관이 필요하다는 요청이 옵니다. 제국의 문화와 언어에 능숙한 마히트는 르셀의 새 외교관으로 뽑혀 제국을 방문합니다. 


작가는 제국 수도를 ‘에큐메노폴리스’라 지칭합니다 (수도는 이름이 없습니다. 세상 하나뿐인 수도는 고유 명사가 필요없으니까요). 에큐멘은 어슐러 르귄의 연작 소설 헤인 사이클에서 범 우주 인류 연합체를 의미하니, 고전에 대한 존경과 계보를 잇겠다는 야심이 동시에 보이는 명칭입니다. 특히나 책은 헤인 사이클 중에서 최초로 '에큐멘' 개념이 등장한 <어둠의 왼손>과 비슷합니다. 세계 밖에서 온 외교관 주인공이 군주정 세계에 방문하고, 세계를 다스리는 군주 대신 현지의 수행원이라고 할 법한 인물이 세계를 대표하여 주인공을 안내합니다. 주인공은 현지인과 여러가지 갈등을 겪지만, 나중에는 문화 차이를 뛰어넘어 서로를 의지할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집니다. 여기에 덧붙여 <제국이란 이름의 기억>은 자체로 명문인 <어둠의 왼손>의 서문에 아주 잘 어울립니다. 


“SF는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묘사한다. … 모든 소설은 은유이다. SF는 은유이다. SF가 기존 소설과 다른 것은, 우리 동시대 삶에서 커다란 지배력을 가진 것들, 즉 과학, 모든 과학과 기술과 상대주의적이고 역사적 견해들로부터 가져온 새로운 은유를 사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 소설에서 미래란 은유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은유하는 것인가?” 


테익스칼란 제국 시리즈 역시 인류의 미래를 예언하지 않습니다. 거대한 제국도 지금의 인간 사회의 어떤 요소를 보여주기 위해 만든 무대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을 말하기 위해 이런 세계를 만들었을까요? 친절한 작가는 책의 맨 앞에 답을 적어두었습니다. "자신의 문화를 집어삼킨 문화를 사랑해 본 적 있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요. 헤인 사이클이 인류를 대표하는 '에큐멘'의 눈으로 변방의 문화를 관찰하는 이야기였다면, '에큐메노폴리스'를 지닌 테익스칼란 제국은 변방의 문화권에서 세계의 중심을 경험하는 이야기입니다. (테익스칼란 제국은 중남미 아즈텍 문명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던데, 현대에 흔적만 남기고 사라진 문화를 우주의 중심으로 설정한 점도 재미있습니다.)


'체험할 수 있을 뿐 체화할 수 없는' 타국 문화의 은유는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는 소설의 주인공 마히트가 겪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소설을 읽는 독자의 경험입니다. 마히트의 수난사는 스포일러이니 후자만 쓰겠습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독자가 테익스칼란에 익숙해지기 못하게끔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서평단에 선정된 저는 책을 읽으며 틈틈이 이웃 서평단의 트윗을 구경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책 옆에 종이를 두고 메모를 하며 읽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렇게까지 성실한 독서가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앞 페이지로 여러 번 돌아가 사건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사건이 많고 복잡하기도 했지만 테익스칼란의 독특한 이름도 한 몫을 했습니다.


테익스칼란 제국인의 이름은 숫자와 보통명사의 조합으로 이루어집니다. 제국 황제의 이름은 '여섯 방향', 마히트의 수행원의 이름은 '세 가닥 해초'인 식으로요. 반면 테익스칼란 외 사람들은 마히트, 데카켈, 골라에트처럼 발음은 이상해도 평범(?)합니다. '숫자+보통명사' 조합은 작가가 만든 우주의 법칙이 아니라 테익스칼란 제국만의 문화인 셈입니다.  


그런데 이 이름들이 이야기를 더 어렵게 만듭니다. 황제의 최측근은 누구였고 과학부 장관은 누구였는지 헷갈립니다. 러시아 소설을 읽을 때처럼 한참을 헤매고 나서야 인물이 그려집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따지고보면 '숫자+보통명사'는 러시아 사람 이름보다 훨씬 간단합니다. 독자는 테익스칼란 세계를 따라가며 '아는 단어로만 이루어져있는데 외우지 못하는'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르셀 스테이션의 인물인 '마히트'나 '데카켈'을 기억하는 것과는 다른 경험입니다. 이외에도 테익스칼란 제국을 낯설게 만드는 요소는 많습니다. 아즈텍 문자를 닮았을 그들의 상형문자도, 그 문자로 이루어졌을 시도 독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재미있게도 주인공 마히트가 테익스칼란에서 겪는 일이 독자의 고생과 다르지 않습니다. 마히트는 고향을 대표하는 외교관으로 뽑힐만큼 테익스칼란에 빠삭했지만, 막상 테익스칼란에 가서는 테익스칼란 어린이만도 못합니다. 마히트는 항상 정보에 굶주려 있으면서도, 새롭게 알게 된 정보를 믿지 못합니다. 테익스칼란의 문화양식은 르셀에서 배웠던 것과 다르지 않지만, 외국어로 배운 지식만으로는 테익스칼란인 사이에 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마히트는 나아갑니다. 왜냐하면 그는 고향인 르셀 스테이션의 운명을 짊어진 사절이며, 동시에 타향인 테익스칼란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산전수전을 겪은 마히트가 테익스칼란을 상대할 수 있게 될 즈음이면 독자도 테익스칼란에 익숙해집니다. 새로운 인물이 나와도 관계도 사이에 채워넣을 수 있고, 전에 나온 고유명사가 다시 나와도 앞 페이지를 뒤적이지 않아도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게 됩니다. 지도 없이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던 여행지도 하루이틀 지나 앞마당처럼 누비게 되는 것처럼요. 슬슬 세계에 익숙해졌나 싶은 그 때, 테익스칼란은 마히트와 독자를 배신합니다. 남의 문화는 결코 내것이 될 수 없다는 작가의 메시지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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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들의 추한 역사 - 욕망이 소비주의를 만날 때
케이티 켈러허 지음, 이채현 옮김 / 청미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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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들의 추한 역사>는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저자가 보석이나 조개껍질, 화장 같이 자체로 아름답거나, 사람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들을 조사해서 엮은 책입니다. 원서에도 번역서에도역사가 들어갔지만 시대가 나누어지는 역사책은 아닙니다. 저자의 경험과 취향 속 아름다움이 언제 시작되어 퍼졌는지를 자유롭게 쓴 책입니다. 여타 역사책에 비해 주관적이고,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책을 읽다 보면 아름다움에 대한 책을 주관 없이 쓰기는 불가능하다, 자신의 이야기도 훌륭한 논픽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저자의 애정이 담긴 묘사가 뛰어나지만 아쉽게도 책에 시각 자료는 없습니다. 책과 인터넷은 보통은 서로의 시간을 빼앗는 경쟁 관계지만, 이 책만큼은 인터넷을 활용하며 읽어도 아쉽지 않습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보석, , 도자기 등을 인터넷에서 확인하고 읽으면 재밌습니다. 특히 바다 실크(sea silk)는 꼭 검색해보세요. 조개의 부착면에 달린 족사로 만든 비단인데,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아손의 황금 양털이 이것이었다고 추정될 만큼 아름답습니다


아름다움이 추해지는 이유는 필수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기분 좋은것을 얻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할 때, 아름다움은 추해집니다. 피 묻은 다이아몬드, 비단을 짜기 위해 끓는 물에 손을 넣어야 하는 아이들 이야기는 더럽습니다. 향수에 쓰이는 원재료가 동물의 창자에서 나온 찌꺼기라는 사실보다, 그것을 얻기 위해 일어나는 동물 학대가 훨씬 추합니다.


이 책이 다른 책과 다른 점은 곳곳에 저자의 자기고백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아름다움 이면의 추함에 대해 다 알게 된 후에도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피부가 나빠질 걸 감안하며 화장을 하고, 옷에 들어가는 저가 노동을 알면서도 이베이에 뜬 저렴한 드레스를 보며 밤새 고민합니다. 일차적으로는 저자가 아름다움에 대한 책을 쓸 만큼 탐미적이기 때문이겠지만, 근본적으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국민에게 가하는 소비주의 압력이 너무 강합니다


'결혼 반지는 다이아로 해야 한다', '영원히 시들지 않는 장미'처럼 책에 나오는 것들은 모두 본래의 아름다움에 덧붙여 자본주의 마케팅으로 부풀려졌습니다. 저자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전세계를 홀린 마케팅은 모두가 숨쉬듯 인정하는 문화가 된 지 오래입니다. 저자는 무의미함과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아름다움의 유혹에 매번 굴복합니다. , 자신의 어린 딸이 반짝이는 것에 손을 뻗을 때만 퍼뜩 정신을 차리고 아름다움에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합니다. 저자의 노력이 언제까지 성공할지는 모르겠지만, 소비가 사람을 이만큼이나 옭아매는 곳에서는 어른도 어린이도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만 듭니다.


저자에 비하면 저는 아름다움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화장을 하지도 않고, 선물받은 것 외에 다른 장신구는 없으며, 옷은 눈에 띄는 곳에 구멍이 날 때까지 버티며 입습니다. 서포터즈 활동으로 이 책을 읽으며 전혀 관심없던 아름다움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아름다움을추한 역사로서 알게 되었기에, 인터넷으로 찾아본 사진이 얼마나 반짝이든 말든 구매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저처럼 아름다움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재미있게 읽을 글입니다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이 책이 새로운 자극이 될 것 같고, 그러면 좋겠습니다.


출판사 서포터즈 활동으로 책을 제공받아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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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벽 - 상 민들레 왕조 연대기
켄 리우 지음, 황성연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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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왕조 연대기 2<폭풍의 벽>은 갓 만들어진 신생 민들레 왕조의 운명을 그린 책입니다. 1<제왕의 위엄>이 초한지를 따라갔다면, 이번 작품은 사기 고조 본기 후반과 여태후 본기를 모티브로 쓴 것 같습니다. 전작에서 주인공 쿠니 가루는 혼란스럽던 자나 제국을 허물어뜨리고 민들레 왕조를 세웠습니다. 황제가 된 쿠니 가루는 자신이 죽은 후 민들레 왕조가 자나 제국처럼 무너질까 걱정합니다.


켄 리우의 민들레 왕조 연대기는 이상합니다. 고유명사만 바꾸었지 중국 한나라의 역사를 빼다 박았습니다. 특히 1<제왕의 위엄>의 원전은 영원한 베스트셀러 초한지입니다. <종이 호랑이> 같은 작품을 보아도 알 수 있듯, 켄 리우는 맨바닥에서 서사를 만들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왜 있는 역사를 토대로 평행한 이야기를 써내려갈까요?


중국인으로서 중국 역사를 세상에 알리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민들레 왕조는 사마천의 <사기>에서 주로 다루는 진나라 말에서 한나라 초기 시대를 본땄습니다. 사기는 2천년을 내려온 중국 최고의 역사서입니다. 기원전 100, 한반도에 삼국이 생기기도 전에 쓰인 책이 지금까지 내려오니 대단하지요. 그럼에도 사기는 고고학적 증거로 정확성을 인정받았고, 지금 읽어도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민들레 왕조 연대기는 영어로 쓰인 책입니다. 작가는 아시아인보다는 서양 독자를 염두하고 썼을 것 같습니다. 고대의 역사는 로마밖에 모를 서양인이라면 이 이야기를 처음 접하고 부러울만큼 재미있게 읽겠지요.


그러나 실제 역사만으로는 책을 다 설명할 수 없습니다. 중국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도 민들레 왕조에 나오는 수많은 고유명사에 아찔해집니다. 여기에 켄 리우 스스로 명령한 실크펑크배경이 덧입혀져 다라 제도는 한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 됩니다. 면류관을 쓴 황제 위로 비행선이 오가는 곳입니다.


이런 장치는 중국 역사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역사를 낯설게 보게 합니다. 보통의 한국인은 유방을 사람 운이 좋아 황제가 된 한량이라 생각합니다. 초한지를 다시 읽는다고 달라지지 않을 인상이 다라 제국의 쿠니 가루를 보고서는 바뀔 수 있습니다. 쿠니 가루는 유방이 아니지만 (민들레 왕조는 역사를 그대로 쓰지 않았습니다) 쿠니 가루가 처한 위기와 그의 선택은 유방의 처지와 비슷하니까요.


낯설게 보기 효과는 2<폭풍의 벽>에 와서 극대화합니다. 작가는 유가나 도가, 법가 같은 제자백가의 학풍을 도덕주의나 유형주의처럼 바꾸어 소개합니다. 주인공 조미는 제자백가(의 탈을 쓴 소피스트같긴 합니다)의 토론을 듣고 스스로 판단합니다. 동양 사상에 익숙한 독자는 조미의 사고를 따라가다가 한참 지나고서야 스스로 알던 역사적 상식에 비추어 이야기를 지켜보게 됩니다.


<폭풍의 벽><제왕의 위엄>에 비해 결과를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제왕의 위엄의 주인공은 쿠니 가루와 마타진두, 우리가 모두 아는 유방과 항우였지만, <폭풍의 벽>은 저자가 창작한 인물 조미 키도수가 이야기의 중심에 있습니다. 역사에 없던 인물을 주연으로 가져오며 마침내 민들레 왕조가 한의 역사에서 벗어날지, 조미 또한 거대한 흐름의 일부로 남을지 궁금해집니다. 하권을 아직 읽지 않은 상황에서 후자의 결말을 예상합니다. 여후는 중국 역사에서 악녀의 대명사로 유방을 도와 한을 세운 공신들을 대거 숙청했습니다. 조미의 눈을 통해 한이 맺힌 채 죽는 영웅과 수천 년을 살아남을 민들레 왕조의 역사를 계속 지켜보고 싶습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고 쓴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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