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
토스카 리 지음, 조영학 옮김 / 허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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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 비트윈: 경계 위에 선 자>는 사이비 종교와 전염병 사태를 소재로 쓴 이야기입니다. '사이비 종교'는 다큐멘터리나 르포로도 흥미로운 주제이고, '뇌에 미치는 전염병'이라는 소재는 이제는 좀비물이라는 새로운 장르로 정착했지요. 가장 자극적인 소재 두 가지가 한 이야기에 엮인 셈입니다.


소재가 좋은들 아무렇게나 섞을 수는 없습니다. 두 가지 소재에는 공통 요소가 하나 있습니다. 목적론적 세계관입니다. 우리는 세상이 작동하는 이유가 인간 스스로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잘못해서 망가진 세상은 나와 무관하게 돌아가는 현실보다 받아들이기 차라리 낫습니다.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자연재해든, 3년 째 끝나지 않는 팬데믹 사태든 매일 재앙이 일어납니다. 재앙의 정체가 타락한 인류에게 가하는 신의 철퇴라고 믿는 편이 우연을 받아들이는 것보다 한결 편합니다.


작가는 사이비 종교가 어떻게 목적론적 세계관을 주입하는지 주인공 윈터를 통해 보여줍니다. 윈터는 열 살도 되기 전에 사이비 공동체에 들어옵니다. 공동체에 들어온 이후로도 바깥 세상을 완전히 잊지 못하지만, 단체 예배와 참회를 반복하며 사이비 논리에 세뇌됩니다. 그 결과 진실하게 속죄하면 어머니의 병을 치유할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이런 사고관에서는 어머니가 살아난다면 참회가 통한 것이요, 어머니가 죽는다면 마음속 깊숙이 자리잡은 죄책감을 차마 꺼내지 못한 까닭입니다. 의심은 감히 할 수 없는 일이 되고요. 윈터의 어머니가 어떻게 되었는지, 사건이 윈터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는 책에서 직접 알아보세요.


우여곡절 끝에 믿음을 잃은 윈터는 진짜 세상과 마주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교주가 말하던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연재해는 물론이요, 이유 모를 전염병으로 사람들이 하나 둘 미쳐가고 있습니다. 정말로 신의 철퇴가 아닐까요? 근 10년을 폐쇄 공동체에서 살아온 윈터는 ‘교주는 사기꾼이고, 세상의 비극은 과거의 믿음과 무관하다.’는 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미생물의 유전자 조절 기전을 밝힌 과학자 자크 모노는 <우연과 필연>이란 책을 썼습니다. “인간은 마침내 광대한 우주 속에서 홀로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운명이나 의무는 아무데도 씌어져 있지 않다.” 믿음이 사라진 세상에서 윈터가 찾은 의무는 사람입니다. 윈터는 하나뿐인 조카를 구하기 위해 전염병을 뚫고 자신을 추방한 종교 공동체로 돌아갑니다.



작가는 사이비종교 내부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사람들의 직책이나 시설은 물론 공동체를 대하는 교도들의 마음까지. 종교 관련 소설을 많이 쓴 걸로 보아 작가가 주제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많은 부분을 조사하고 썼을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전염병 사태에 대한 묘사가 거칩니다. 작가의 역량이 부족해서라기보다, 현실 속 사람들과 시스템이 상상보다 견고한 덕분입니다. 불행히도 작품에 나오는 전염병보다 현실의 코로나19가 더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작중에서는 만 명 남짓 감염되었을 때 무정부 사태가 일어나지만, 22년 1월 기준 87만 명이 죽었음에도 미국은 건재합니다. 비록 바다 너머로만 소식을 듣고있지만, 방송이 마비됐다거나 소요 사태가 일어났다는 뉴스를 듣지는 못했습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지만 헷갈리지 않고 순식간에 읽히는 책입니다. 재난물을 좋아하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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