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의 궤적
리베카 로언호스 지음, 황소연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9월
평점 :
절판


레베카 로언호스의 <천둥의 궤적>은 장르 소설 독자라면 편하게 읽을 모험 소설입니다. 주인공 매기 호스키는 세계에 갑자기 나타난 괴물을 물리치는 괴물 사냥꾼으로, 믿음직한 동료와 함께 사건의 실마리를 좇습니다. 익숙한 이야기지만 새롭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가득한 이 세상에, 또 하나의 모험 이야기를 내놓기 위해 작가가 고심한 흔적이 보입니다.


배경. 작품의 배경은 미국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던 미국 대도시가 아니라, 서부극 이후 50년은 이야기가 끊겼던 드넓은 평원과 우거진 산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 속 장엄한 자연 광경을 상상하면 즐겁습니다. 저는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에서 보았던 드넓은 벌판과 게임 <파 크라이 5>의 숲, <파 크라이: 뉴던>의 하늘을 상상하며 읽었습니다.


장르. 마법이 도래한 포스트 아포칼립스물입니다. 어느 날 세상에 도래한 큰물은 문명을 통째로 엎어버렸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든 차를 몰고, 총을 쏘며, 커피를 구해서 마십니다. 땅의 주인이었던 운 좋은 몇 명에게는 신비한 능력이 생겨서 새로운 세상의 적수에 맞섭니다.


과학이 패배한 자리를 마법이 꿰찬 세상에서 초능력자 주인공이 활약하는 이야기는 많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초능력은 잘못 물린 거미나 정체 불명의 싱크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 원주민의 믿음에서 옵니다. 부계와 모계에서 내려오는 클랜 파워가 아이의 능력을 결정합니다. 가계를 알면 어떤 능력이 있을지도 추측할 수 있습니다. (‘클랜 파워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옮긴 점은 아쉽습니다. ‘부족의 힘정도로 옮겨도 되었을 텐데.)


주인공. 모험 소설에서 주인공은 동료를 만나고 문제를 해결하며 성장합니다. <천둥의 궤적>의 주인공, 매기 호스키는 첫 장부터 인간 만랩입니다. 부모로부터 받은 클랜 파워 덕분에 여성임에도 남자들보다 빠르고 강합니다. 인간이 아니라 괴물을 상대하는 터라 이야기의 긴장감은 쭉 유지되지만, 책을 읽으면서는 그가 더 이상 성장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웬걸. 매기는 영웅과는 멀었습니다. 독자가 답답할만큼 사람들을 대하기 어려워하고 마음을 잘 읽지 못합니다. ‘큰물이 오기 전까지 평범한 여자아이였던 매기가 어쩌다 산중에 박혀 살게 되었는지, 그랬던 매기가 어떻게 다시 마음을 열고 사람을 믿게 되는지는 이야기가 진행되며 알 수 있습니다.


동료. 매기는 동료 카이를 만납니다. 카이는 미국 틴에이지물에 나올 것 같은 캐릭터입니다. 카이는 잘 생겼고, 자신이 잘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이용하는 주제에, 인격적으로도 완성된 인간입니다. 두 사람은 ‘Badass와 성녀로맨스를 성별만 바꾼 채로 따라갈까요…?


데뷔작이라 거친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이야기의 전개 방식이 새롭고, 배경 설명이 끝난 후 호흡이 빨라져 후반으로 갈수록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고 싶을 때, 나와 다른 존재를 이해하고 싶을때, 무엇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읽고 싶다면 추천합니다.


괴물이 여기를 다녀갔다. 놈의 냄새가 난다.
이건 힘을 쓸 때 풍기는 매캐한 땀내, 씻지 않은 육식동물의 살 누린내, 뭐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매새가 조금씩 섞인 악취다. 놈의 냄새가 저녁 공기를 더럽힌다. 냄새의 차원을 넘어 더 깊고 더 근원적인 것으로 팽창한다. 나를 불안하게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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