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정 산문집 - 산으로 간 문장들
권수정 지음 / 심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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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암의서가] [#하루한권]
3137. 권수정 『권수정 산문집』 : 심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산문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소설을 쓰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허구를 가공한 소설과는 다르게 산문이란 실재 인물의 실제 사건을 기반한다. 개인적인 견해이긴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문이 평범한 몇 줄의 일기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작가적 세계관의 투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인생의 의의나 가치에 관한 통일적인 견해를 비추며 제 나름의 필치로 실제 사건을 끌어가야 한다.

나는 산문의 재미를 실제와 실재에서 찾는다. 허구와 진실은 감동의 깊이에서 결코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물론 진실이 더 큰 감동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대체로 진실은 허구보다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문제는 사건이 지닌 서스펜스다.
어떠한 경우 실제의 사건이 허구의 사건보다 강력한 서스펜스를 지니기도 하지만, 대부분 실제의 사건은 평범하고 밋밋하기 마련이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다행히도 평범하고 행복한 이십 대 후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희한한 것은 저자의 평범함이 내게 전한 눈물이다. 단언컨대 수십 년 독서를 취미로 하며 단 한 번도 읽기를 통해 눈물을 흘려본 적이 없다. 『권수정 산문집』이 내가 읽은 수많은 책들 보다 예외적일 만큼 슬픈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산문집의 가장 마지막 장에 나온 ‘**산업’에서 기어코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조금 그럴싸한 표현으로 눈물이지 새벽 한 시, 불혹의 사내가 꺽꺽 소리를 내며 운다는 것은 꽤나 창피하고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첫 경험이라면 더욱이 얼굴을 붉힐 일이다.

저자가 18년 12월부터 19년 6월까지 퍼킨스 프로젝트를 통해 독자에게 매주 한 편씩 발송했던 일상 수기는 모음집의 형태가 되어 산문집으로 출간되었다. 저자는 『권수정 산문집』을 통해 시대에서 세대를, 세대에서 개인을 관통하는 ‘결핍’에 대해 이야기한다. 학창시절의 이야기로부터 공무원이 되어 사회를 경험하는 사건들 속에는 권수정이 저자로 거듭남에 필연적으로 겪어야 했던 읽기와 쓰기에 대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나의 읽기(1)》에는 “책을 읽는 것은 영화 한 편을 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저자는 활자를 읽는 일이 영상 매체를 보는 일보다 편하다고 하는 점에서 읽기에 대한 공감이 시작되었다. 또한 저자는 읽기를 통해 위로받는다고 하는데, 이와 반대로 나는 읽기에서 위로를 찾지는 않는다. 어쩌면 저자 역시 읽기보다 쓰기를 통해 위로를 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은 꾸준히 읽기도 하지만 보다 더 꾸준히 쓰는 저자를 보며 느낀 것이다.

독서라는 취미는 꽤나 위험한 취미일 수 있다. 읽기는 내적으로 쌓이기만 하는 행위다 보니 계속해서 읽고 받아들이기만 반복하면 어느 한구석엔가 반드시 곪게 마련이다. 그러니 독서를 오랜 시간 지속해온 사람이라면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외적으로 배출하는 쓰기를 통해 쌓인 양식들을 배설할 필요가 있다.
싸이월드 시절부터 인스타그램의 ‘수정 서재’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읽는 행위로부터 쌓인 양식들을 쓰기로 배설한다. 이 과정의 반복이 독자를 위로해줌은 물론, 저자 자신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으리라. 오랜 시간 쌓아온 과정에 대한 부연 설명은 필요 없을 것이다.
간혹 지적 허영에 몸부림치는 젊은 작가들의 문장은 오직 분식(粉飾)을 위해 존재하는 듯, 내용은 없고 겉만 꾸며놓은 모양새를 하고 있는데 그에 비해 저자의 문장은 단순하며 담백하다. 삶의 소소한 풍경들을 단출하게 써 내려간 저자의 문장은 그 자체로 울림이 있다. 어쩌면 분식되지 않은 담백한 문장에 눈물이 서렸는지도 모른다.

회사를 마친 저자가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카페로 향한다. 보통은 뜨끈 쌉싸름한 아메리카노 한 잔, 스트레스 받은 날에는 달콤한 라떼 종류를 시켜놓고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으면 되게 작가 포스가 나는 것 같다고 혼자 생각한다. 저자가 다녀간 공간의 온기와 미소를 머금은 평온한 삶을 떠올리며, 그의 삶에 작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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