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추얼의 종말 - 삶의 정처 없음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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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추얼의 종말>은 철학가 한병철이 우리가 모두 겪어 나가고 있는 '현재'라는 문제에 집중해서 적은 책이다. 철학서이다 보니 겉으로 드러나는 문제들 (주거, 경제, 범죄... ) 보다 더 깊숙하게 안 쪽의 이야기를 한다. 그 모든 겉 문제들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그 근원이 바로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리추얼의 종말' 이다. 참고로 독일에서 (이 책의 원문은 독일어이고, 저자는 재독 철학가이다.) '리추얼' '의례, 예식, 잔치' 의 의미로 사용된다고 한다. 나는 읽으면서 문장에 맞춰 여러 의미로 리추얼을 받아들였는데, 그 중에서도 '형식' '축제'의 의미를 가장 많이 떠올린 것 같다.

[리추얼은 세계관련을 매개한다. 반면에 진정성 강제는 모든 것을 주관적으로 만든다. 그럼으로써 진정성 강제는 나르시시즘을 심화한다. 오늘날 나르시시즘적 장애들이 증가하는 것은 우리가 자아의 경계 바깥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위한 감각을 점점 더 잃어가기 때문이다.] -35

저자는 현대의 우리는 '공동체 없는 소통'을 한다고 말한다. 이전의 우리는 조금 더 '소통 없는 공동체'에 가까웠다고도. 말의 앞뒤 순서만 바뀌었는데 의미가 많이 달라지는 이 개념은 현대 사회에 대한 좋은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소통은 점점 더 그 한계를 잃어가는데, 이상하게 우리는 점점 더 혼자가 된다. 세상은 한 시도 쉬지 않고 시끌벅적한데 이상하게 우리는 점점 더 외로워진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진정성 강제 사회가 우리를 계속해서 분자화하는 것이 원인이다. 언제 어디에 쓰여도 긍정적인 의미로 생각되는 '진정성'이란 단어 뒤에 '강제'가 따라오니 신선한 느낌이 드는 것이, 지금껏 한 번도 진정성이라는 걸 의심해 본 적이 없구나 싶었다. 이 시대에서는 나의 감정, 나의 느낌 - 진정성이라 불리는 것들- 만이 중요해지고 형식, 그러니까 리추얼은 딱딱하거나 외면적인 것들로 생각된다. 이런 사회 속에서 나는 걷잡을 수 없이 ''가 된다.

[삶이 외적인 목적에 종속되지 않고 삶 자신과 관련 맺을 때, 삶은 놀이의 성격을 되찾는다. 되찾아야 할 것은 관조적 휴식이다. 삶이 관저족 요소를 완전히 빼앗기면, 사람은 행위에 빠져 질식한다. …(중략) 자본주의는 고요를 사랑하지 않는다. 자본주의에게 고요란 생산이 0인 지점, 탈산업적 시대에는, 소통이 0인 지점일 터이다.] -63

우리 시대가 잃어가는, 혹은 이미 잃어버린 단어 중 하나가 '관조' 아닐까 싶다. 저자의 말처럼 자본주의 시대에 관조란 참으로 무용하다. 아무것도 생산해내지 않으니까 말이다. 이 문장에서 '행위에 빠져 질식한다' 는 부분이 유난히 굵게 느껴졌다.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불멍'(캠핑을 가서 화로에 불을 키고 멍을 때리는 것), '바다멍'(바다를 보면서 멍 때리는 것)이 유행처럼 일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며 어쩌면 우리는 점점 잃어가는 '행위멈춤' 의 시간을 무의식적으로 그리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의미도 행위도 생산해내지 않는 시간. 생산성을 절대법처럼 귀하게 여기는 이 사회에서 우리가 행위에 빠져 질식하지 않도록 겨우 찾아낸 시간이 바로 불멍, 바다멍 아닐까. 하지만 그마저도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갖지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저자는 서두에서부터 <리추얼의 종말>이란 책이 과거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책이 쓰인 뒤 진행한 인터뷰에서는 '나의 주장은 우리가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우리가 공동의 행위와 놀이의 새로운 형태들을 발명해야 한다는 것을 옹호합니다.' 라고 쐐기를 박았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건데?'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역자가 말했듯 이 책은 진단서와 가깝다. 현대 사회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들에 대한 진단을 저자가 스스로 내린 결과가 바로 이 책, <리추얼의 종말>인 것이다.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는 책이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아주 만족했다. 공감이 되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고, 의아한 부분이나 뼛속까지 깊게 이해되는 부분도 모두 있었다. 하지만 이게 철학의 묘미 아닐까.. 저자가 책에서도 이야기했듯 철학도 하나의 고전적인 '놀이'이다. 또 역자의 말처럼 철학가 한병철은 '시적인 철학가'. 시를 보듯, 놀이를 하듯, 그렇게 읽어보면 좋을 듯 싶다.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건데?' 보다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해보며 말이다.

<리추얼의 종말>은 제목부터 고전 철학서처럼 어딘가 모르게 웅장한 느낌을 준다. 덕분에 읽기 전에도 요즘 많이 나오는 철학 입문서라든지, 인문철학서처럼 일반 대중도 쉽게 읽을 수 있게 철학을 이야기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이러한 내 예상처럼 앞쪽 20페이지 정도 읽었을 때는 아! 쉽지 않다, 고 생각했다. 읽는 데에 시간 좀 걸리겠구나~ 하는 예상도 들었다. 하지만 요 예상은 빗나갔다. 나는 이 책을 3일도 안 돼서 완독했다. 심지어 중-후반부는 책장을 어렵지 않게 넘겼다. 그렇다고 난이도가 갈수록 쉬워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앞 부분에서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말하려고 하는 큰 주제를 이해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읽는 것이 좀 수월해진다. 결론은 (나처럼) 겁 먹지 말고 차근차근 읽어보셨으면 좋겠다는 말. 또 서두와 부록으로 있는 인터뷰, 역자의 말까지 전부 읽어야 이 책을 다 읽었다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 대해 기발하고 조금은 파격적인 주장을 살펴보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책은 김영사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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