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듣기 - 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완성하는 사랑
유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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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듣기 #유지영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심장 듣기. 유지영 지음. 한겨레출판. 2026.
_귀 기울여 들음으로써 완성되는 사랑

나는, 듣는 인간일까 말하는 인간일까.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을 자꾸 가늠해보게 된다.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아는 귀를 갖고 있는지, 어느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는지 말이다. 물론, 듣는 것이 나의 일이 될 때가 있어, 잘해야하는 면이 있기는 하다. 물론 저자만큼은 아니지만. 그럴 때 생각한다. 나의 듣기 능력이 어느정도나 발휘될 수 있을지를.
듣는다는 것은 잘 참는다는 것과도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생각과 마음과 관점과 욕심으로 말하고 싶은 충동을 이기고 잘 참으며 들어줄 줄 아는 인내심이 가장 1순위 자질일 것이다. 이게 갖춰져 있어야 그 다음이 공감하는 능력이다. 공감은 하지만 자기 말을 먼저 하고 공감을 표시하느라 다른 사람의 말을 막는다면, 다 소용이 없어지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거라고. 내가 뭔가 듣기로 결정했다면 그건 내가 그걸 듣고, 느끼고, 변하겠다는 뜻이다.(...) 듣기는 그렇게 삶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7쪽)

그런데 단순히 참을성과 공감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듣기는, 나의 삶을 바꾸는 시작이 되고 또 다른 이의 생각을 수용하겠다는, 그래서 나의 생활을 기꺼이 변화시키겠다는 열린 마음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그저 듣고, 듣는 것으로만 끝나는 건 어쩌면, 겉으로만 듣는, 가짜 듣기일 수 있다. 귀만 열고 입만 닫고 있다고 다 듣기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테니, 진정한 듣기는 이 책의 제목처럼 '심장 듣기'여야 하는 것이다.

나에게 좋은 듣기란 들리는 것을 유심히 들은 끝에 내면이 흔들리고, 나와 다른 타자가 가진 고유의 역사성을 존중하는 일이다. 타인이 내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두고 나 또한 "그 사람 살갗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갈 여유를 마련하는 일.(...) 그러니까 기꺼이 변두리로 물러남으로써 타자를 중심에 세우는 일. 여기에는 내가 잘 비워져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내가 나로 가득 차 있으면 남의 말 같은 건 담을 수 없다.(114-115쪽)

여기서 또 하나의 자질 등장. 결국, 다른 사람의 생각을 내 안으로 들이기 위한 빈 자리를 항시 마련해 두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나로 가득 차 있을 때, 어느 것 하나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을 때, 사람은 아무런 변화도 만들 수 없다. 나의 것을 덜어내고 다른 이를 받아들일 수 있기 위한 자세가 되어 있을 때, 비로소 듣기가 가능한 것. 듣는다는 것이 결국은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로 인한 나의 삶과 생활의 변화를 만들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은 사랑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타인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충분히 줄 줄 알 때 비로소 진짜 듣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듣는 사람이 없이는 말하는 사람이 없고, 말하는 사람이 없이는 듣는 사람이 없다.(...) 듣는 사람의 곁에 말하는 사람이 있고, 말하는 사람의 곁에는 듣는 사람이 있다. 두 역할은 어느 한쪽으로 고착될 새도 없이 수시로 바뀐다.(198쪽)

너무 당연하다. 듣기 위해서 누군가는 말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당연하고 말하는 사람이 당연히 내가 되어야 한다. 듣기만 하는 것은 안 된다. 들는 사람이면서 말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일방적인 것은 있을 수 없다. 한쪽으로만 쏠리는 관계는 오래가지 못한다. 건장하지도 않고. 그러니, 진짜 잘 듣기 위해서는 듣기도 말하기도 하며 그 역할을 모두 다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니 또 생각하게 된다. 나는 잘 말할 줄 아는, 듣는 인간일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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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할인 특가! 곰을 싸게 팔아요 ㅣ 라임 그림 동화 49
조반나 조볼리 지음, 리사 안드레아 그림, 이현경 옮김 / 라임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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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할인특가곰을싸게팔아요 #조반나조볼리_글 #리사안드레아_그림 #라임 #그림책추천

라임 그림 동화 49
이번 주 할인 특가! 곰을 싸게 팔아요. 조반나 조볼리 글/리사 안드레아 그림/이현경 옮김. 라임. 2026.

조금 비싸더라도, 이런 곰이라면 나도 당장 사고 싶다. 당장 곰을 사서 바로 택배로 받아서 우리집에 곰을 들이고 싶다. 곰과 함께 여행도 가고 싶다. 털 알레르기 걱정 없이 곰을 끌어안고 편안한 잠도 자고 싶다. 곰 세탁도 시키고, 같이 밥도 먹고. 이런 곰과 함께 지내고 있는 저 생쥐들이, 너무 부럽다! 곰과 함께이기만 하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곰이라고? 곰을 싸게 판다고? 그래서 곰을 할인 특가로 뚝딱 사서 집에 데리고 있는다고? 그것도 생쥐들이? 의아할 수 있다. 나도 처음에는 그했다. 곰을 사고판다는 것도 그랬고, 그런 곰을 아무렇지 않게 대하는 것도 그랬다. 다 이상하고 생소하고, 한편으로는 어이없기도 했다. 재밌는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곰이 할인 특가로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그랬다. 다양하고 다채로운 집에 갖춰야할 물건들 사이에, 대충 훑어보면 이상하다고 생각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이질감 없이 곰을 광고하고 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상해도 엄청 이상하다. 왜 안 그럴까. 상식적인 수준에서만 생각해도, 곰이 생쥐를 잡아먹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스쳐 지나가니까.
하지만, 이 책을 보면 그런 생각은 아주 잠깐 사이에 스쳐 지나가고 만다. 그저, 곰을 사서 곰과 함께 지내는 저 생쥐들이 마냥 부럽기만 할 뿐이다. 나도 할인 특가로 나온 곰을 발견하게 된다면 당장에 사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저 무뚝뚝해보이고 세상만사 귀찮아보이는 표정의 저 곰이, 온 가족에게 행복을 주는 존재가 된다면 어느 누가 이 선택을 마다할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그러니, 당장에 사서 우리집 어느 곳에라도 자리잡아놓고, 어느 때라도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벌써부터 행복해지는 느낌이 드니까 말이다.

근데 더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기기에는 뭔가 심상치가 않다.
우선, 왜 곰을 싸게 팔까? 이미 곰을 사고 판다는 것만으로도 무시무시하다. 동물을, 생명을 쉽게 사고 팔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특히, 곰이다. 곰이 과연 현실적으로 지금의 이 시대와 환경에서 스스로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인가 생각해보면, 이미 많은 부분에서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생쥐들에게 유일하게 팔린 곰이 아니라 이미 기존에도 여러 곰이 팔려서 여러 집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째서, 곰은 사고 파는 물건 같은 존재가 됐을까 싶은 것이다. 그리고 싸게 팔아야할 정도로 그 가치도 떨어졌다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말이다.
그렇다면, 진짜 곰이 맞나? 곰이라고는 하지만 진짜 곰이 맞나 싶은 것이다. 혹여라도 곰의 형태를 하고 있는 다른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지. 아니면 비유적으로 곰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곰이 아닐 수도 있을까, 하는 의심도 하게 된다. 그렇다면 곰을 무엇에 비유하려고 했던 것일까. 분명 곰을 산 생쥐들과는 전혀 상반된 특징을 갖고 있는 존재이기는 하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서로 함께 한 공간에 존재하면 안 될 것 같은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고. 하지만 이들은 전혀 그런 관계를 보이고있지도 않다. 너무 아무렇지 않게 서로를 대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전혀 안 어울릴 수도 있는 이들 사이에서의 공존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책을 여러 번 읽었다. 처음 다 일고나서는 어, 이게 끝이야? 싶었다. 그래서 다시 읽었다. 여전히 알쏭달쏭해서 또 읽었다. 다음날 읽고 또 그 다음날 읽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이 책은 나의 생각을 완성해야하는 책이구나. 이 책을 통해 내가 곰을 무엇으로, 어떻게 대하고 해석하고 생각해야하는가를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구나, 싶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곰을 사랑해야겠다는 것이다. 곰을 싸게 파는 지경까지 안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그럼에도 곰과 함께할 수 있는 삶이 행복이라는 깨달음이었다. 그러니, 이런 곰을 안 사랑하고는 못 배기지 싶은 것이다. 아무래도 나도, 곰 한 마리와 살아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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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개념기반 탐구수업 - 다른 출발선, 같은 목표를 향한 보편적 학습 설계
양효선 외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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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위한개념기반탐구수업 #양효선_이윤아_이지선_최이순 #초록비책공방

모두를 위한 개념기반 탐구수업. 양효선 이윤아 이지선 최이순 지음. 초록비책공방. 2026.
_다른 출발선, 같은 목표를 향한 보편적 학습 설계
관점이 바뀌면 수업이 달라진다

개념기반 탐구수업. 여러 방면으로 책도 읽고 동료와 대화도 나누고, 다양하게 관심을 가지며 확인해왔던 내용이다. 하지만, 정작 수업에 적용하기에 시도하기도 쉽지 않고 또 열 이유들의 핑계도 많다. 이 모든 것이, 핑계인 것이 맞다. 실천해야하지만 핑계를 대로 실천하지 않고 있는 것이 지금 나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부채감. 나의 수업에도 적용시켜 좀 더 나은 수업을 만들어봐야한다는 마음의 숙제가 남아있는 것이다. 방법은, 마음의 불편함을 버리기 위한 실천을 해나가기로 마음먹는 것! 이 방법 외에 또 다른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이런 마음이어서 이 책이 궁금했다.
초등 교실에서의 수업에 대한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기는 하지만, 중등이라고 수업이 다를 이유가 없다. 또, 이 모든 이야기를 중등 교실에 적용하기에도 불편함이 없다. 결국, 수업이란 학생들의 성장을 위한 과정을 함께할 수 있도록 교사와 학생이 설계해 나가는 과정에서 배움이 일어나는 것일 테니까. 그 배움의 장은 학교급에 따라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오히려 이 책에서의 설계 예시와 내용이 오히려 내가 수업에서 적용하기에는 오히려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내용들이었다. 그래서 진입장벽을 조금 낮출 수 있었다고나 할까. 지금까지 핑계만 대고 있던 나에게,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는 느낌. 이러니, 이번 2학기에는 성공하든 실패하든 우선은 시도를 해볼 수밖에.

개념은 사실과 사례를 넘어 사고를 일반화하도록 돕는 도구이다. 그래서 개념 이해는 단원 안에서만 작동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도 남고 다른 맥락에서도 다시 떠올릴 수 있는 이해로 이어진다.(41쪽)

하던대로 하는 수업의 패턴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첫 번째 변화의 지점이 바로, '개념'에 대한 정립과 설정이지 않을까. 단순히 주제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주제와 내용의 주요 내용들을 서로 연결하여, 최종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개념'을 학생들의 머릿속에 남겨줄 수 있는 수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전이가 가능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삶과 실생활에서의 실제성에 따라 개념을 실제 적용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이해가 간다. 실천이 어려울 뿐, 설계가 고민스러울 뿐.

고민의 해결 지점은 다음에 대한 답을 찾는 것으로 일정부분은 해소해야할 듯하다.
1. 교육과정을 분석한다.
2. 개념을 설정한다.
3. 탐구 열기-조사하기-연결하기-전이하기(-성찰하기) 4단계로 수업을 설계한다.
4. 각 수업을 이끌어갈 시작점으로서의 탐구 질문을 만든다.
5. 보편적 학습설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고려한다.
6. 진단/형성평가, 총괄평가의 내용을 구성한다.
7. 실제 수업을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도록 구조도를 그린다.
8. 해본다.

이번 학기는 문학으로 시작한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될 때는 우선 해보는 것이 답이다. 해보는 것으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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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들판 - 침묵은 어떻게 역사를 드러내는가
마거릿 주혜 리 지음, 장상미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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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들판 #마거릿주혜리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비밀의 들판. 마거릿 주혜 리 지음/장상미 옮김. 한겨레출판. 2026.
_침묵은 어떻게 역사를 드러내는가

저자의 가족사는 곧 역사였고, 그 역사를 알아나가는 시간은 곧 자신을 찾는 과정이었다. 내가 누구인가 어디에서 어떻게 완성되어 지금까지 이어질 수 있었는지. 그 과거를 알기 위한 노력은 힘겹고 어렵울 수밖에 없었지만, 그만큼의 가치와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 의미는 고스란히 저자의 아이들과 가족 모두에게로 이어지게 될 것이고.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까지 가치있는 길을 함께 따라가보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너희가 정체성을 탐구해 나가는 과정은 나와 너희 아버지와는 다를 거야. 언젠가 배우자나 부모나 반려인이 되겠지. 나는 너희가 알았으면 해. 너희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 될지는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 연결고리는 너희 증조할아버지의 이상주의와 증조할머니의 투지와 생존 의미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과 애정에서, 어머니의 탐구와 아버지의 헌신에서 비롯했다는 것을.
너희에게 우리가 있다는 것을.(386-387쪽)

'나'라는 존재가 어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닌 이상, 우리에겐 우리가 온 분명한 지점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과연 우리 중 얼마나, 그 지점을 알고 찾고 확인하고 싶어할까. 어쩌면 일반적으로 우린, 우리의 뿌리와 그 과거가 낯설지 않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고, 그래서 더 알아야한다는 생각 없이 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미, 이민자로서 환경의 변화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정체성이 혼란을 일정부분은 경험했기 때문에 더욱, 궁금하고 알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갖게 된 것이 아닐지. 그러면서 자연스레, 이 모든 과정을 통해 그 다음 세대와 또 그 다음의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알아나가는가가 결국은 그 다음의 삶을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답이 된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지 않을까.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방법은 자기 자신의 지금이 어떤 과거와 역사에서 비롯되었는가를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참 굴곡 많은 시간과 사건의 연속이었다. 물론 이 굴곡진 역사는 현재에도 진행중이기는 하다. 그리고 이 역사를 감당하는 것은 오롯이 그 역사 속을 살아냈어야 했던 우리였고, 그런 우리의 과거를 외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남은 책임이지 않을까. 그 책임을 다하는 과정이 순탄할 수는 없다. 쉽지 않기도 하고. 그럼에도, 저자가 쫓으려했던 이야기는 그만큼의 이유가 있었고 찾아야만 했던 가치가 충분했다. 단순히 한 가족의 개인적인 과거의 기록으로 그치지 않고 더 커다란 감동을 우리에게 줄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의 과거는 비단 개인의 것으로만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이 책의 기록이 소중한 이유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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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니주의보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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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니주의보 #정지아 #창비 #가제본서평단 #서평

찌니주의보. 정지아 장편소설. 창비. 2026.

정지아가 정지아했다! 책을 읽으며 이 생각을 제일 많이 했다. 맛깔스런 문장과 표현, 살아있는 듯한 인물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의 의미와 주제, 우리가 어떤 삶의 공존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하지만 절대 심각하거나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았으며,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는 마음으로 아무렇지 않게 다루고 있다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특히, 대놓고 이야기하는 지점에서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레즈비언!
쑤언이 야물딱지게 큰소리로 외쳤다. 백주대낮에, 그것도 가을볕이 거침없이 쏟아져 눈이 부실 지경인 장씨댁 시멘트 마당에 레즈비언이라는 말이 동네 떠나가라 울려 퍼졌는데, 이상도 하지, 그 순간 레즈비언이라는 말에 내포된 은밀함, 비밀스러움 같은 것들이 햇빛 맑고 바람 좋은 오늘 같은 날 빨랫줄에 걸린 빨랫감처럼 순식간에 꼬들꼬들 말라 바삭바삭 부서지고 마는 것이었다. 레즈비언이라는 말이 이제는 촌구석 노파나 영감을 입에 다방 레지라는 말과 다른 바 없이 마구 오르내려도 괜찮을 것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96쪽)

이 소설은, '레즈비언!'이라고 외친 쑤언의 이 한 마디가 다했다는 느낌이다. 다른 게 뭐가 있을까. 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으면 되는 것 아닐까, 밥 먹으러 오라는 말처럼, 김장 김치 가져다주는 마음처럼, 그저 옆에 있는 그 누군가에게 툭 일상의 아무것도 아닌 말과 마음을 던질 수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잘 알지 못했던 것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 그 정도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기희의 삐순이 삐돌이도 그런 게 아닐까. 모든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와 기준이 있다. 그리고 그 관점으로 다른 이와 사물, 현상과 상황을 판단하고 움직인다. 하지만 그 기준이라는 것이 순전히 자신의 것이니, 모든 사람이 자신의 기준으로만 움직인다면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

느그가 난 년들이다, 난 년들이여. 한 년이 아프먼 딴 년이 밥이라도 채릴 것 아니냐.
한씨댁은 그새 식은 커피를 후루룩 들이켰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찌니들은 난감하기만 했다.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을 이해받은 것인가, 아닌가. 받았다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오묘한 말이었다.(...) 염치도 없이 이른 아침 남의 집에 쳐들어온 한씨댁은 후루룩, 요란한 소리를 내며 믹스 커피를 마시는 중이었다.(226-227쪽)

그 시작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참 잘 보여준다. 거침없고 솔직한 이 마을 사람들처럼만 하면 될 것 같은 것이다. 대놓고 하는, 자칫 무례해 보이는 말들에 알게모르게 관심도 호응도 인정도, 그리고 격려와 응원도 모두 내포되어 있다.

이 소설 각 부분의 소제목은 모두 '누구나'로 시작한다. '누구나 비밀은 있다, 누구나 조금씩은 나쁘다, 누구나 이상한 구석이 있다, 누구나 자기 기준으로 산다, 누구나 이유가 있다, 누구나 모르고 산다.' 그래서 이 모든 이야기의 대상은 '누구나'가 되는 것이다. 이 말이 괜히 위안이 된다. 꼭 누군가를 콕 집어 말하지 않아도 되는, 너도 나도 우리 모두도 또 그 외에 누구라도, 하는 식으로 아무나여도 된다는 말로 들리는 것이다.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허락의 말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게 생각보다 무척 안심이 되는 것이다. 다 괜찮아질 수 있게 만드는 마력과도 같은! 이 소설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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