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와이스
미치 앨봄 지음, 유혜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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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이스 #미치앨봄 #인플루엔셜 #티저북 #서평

트와이스. 미치 앨봄 장편소설. 인플루엔셜. 2026.

트와이스, 두 번. 왜 제목이 <트와이스>인지 한번에 확인했다. 두 번의 기회, 두 번의 삶. 하지만 딱 거기까지! 무한 반복되는 루프의 단계가 아닌 딱 한 번 더의 기회인 것이다.

내 인생의 한 시점을 선택해 딱 한 번 바꿀 기회가 있을 뿐이지. 일단 저질렀으면 좋으나 싫은 새로운 삶에 맞춰 살아가야 해.(36쪽)

어쩌면 두 번이라는 설명보다 한 번 더의 선택이라고 하는게 더 정확한 표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선택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다른 결과를 얻기 위한 선택. 선택을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도 잘 모른다. 그저, 지금의 상황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위한 선택일 뿐.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될는지 확신할 수도 없으니 말이다.
어쩌면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그 다음의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그래서 이 소설은 삶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삶은 어떤 선택과 기회 앞에서도 모두에게 동일하게, 원하는대로의 미래를 보장해주지도 않고 또, 예기치못한 상황이 또 다른 어떤 다른 결과로 우리를 데려갈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그래서 삶은, 누구에게나 정직한 것이 아닐까. 그때 그때의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과정을 충실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교훈. 물론 충실히 한다고해서 모든 결과가 좋은 것도 아니겠지만.
소설의 주인공 알피는 사랑이야기라고 했다. 그 말도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그 사랑하는 사람과의 모든 순간과 관계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으니까. 한 번 더의 선택을 하는 이유는 모두, 누군가를 향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의 이익이나 개인적인 욕망을 위해서도 물론 선택하겠지만, 결국 그 모든 것에는 사랑의 마음이, 사랑을 위해, 그 사랑의 대상을 향한 간절함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어느 것 하나 쉬울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할 수밖에 없었던 선택은, 그 사랑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참 슬픈 이야기였다. 알피의 삶이 알피가 갖고 있는 능력으로 인해 편안하고 행복했으며,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던 삶이었을까, 하고 생각하면 답을 바로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알피의 능력이 부럽나? 나도 그런 능력을 갖고 싶은가? 물론 때로는 이불킥하게 만드는 상황을 지나왔을 때 그 순간을 되돌려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로 돌아가고 싶기도 하다. 또, 소소하게 누군가의 마음이 너무 궁금한데 그 궁금함을 해소하기 위해 살짝 사용해보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여전히 남는 두려움이 있다는 게 문제다. 그렇게 다시 되돌린다고 결과가 진짜 바뀔 것인가에 대한 확신을 할 수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확실하지도 않은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똑같은 상황을 한 번 더 사는 것이 과연 좋을까.

돌이켜보면 우울증이었던 것 같아. 어머니를 잃고 또 웨슬리를 잃었잖아. 둘 다 젊은 나이에 너무 일찍 떠나야 했어. 목숨을 건 내 장난은 두 사람이 있는 곳에 닿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거였을까. 모르겠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늘 이치에 맞지는 않으니까. 고통이 고통을 부르기도 하더라고.(92쪽)

시간을 거슬러 사느라고 너무 많은 시간을 살아버린 알피에게, 그 많은 시간을 거치면서 깨닫게 된, 삶이란 무엇인지를 물어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우리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지 궁금했다. 물론 알피의 대답 대신 우리가 직접 답을 찾아야할 질문들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티저북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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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산책 - 국경을 넘은 강아지와의 삶, 그리고 인연들
최수향 지음 / 흐름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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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먼산책 #최수향 #흐름출판 #서평단 #책추천

아주 먼 산책. 최수향 지음. 흐름출판. 2026.
_국경을 넘은 강아지와의 삶, 그리고 인연들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의 무게가 무엇일지 짐작할 수 있다. 나에게 있어 동물은 어린시절 친구에게서 분양받았던 강아지가 처음이었다. 아주 작은, 이제 막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가냘프고도 여린 강아지였다. 그때는 동물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기에 당연히 밥만 주면 잘 크고 자랄 거라고 믿고 있었다. 너무 어리석었다. 데려온지 얼마 되지 않던 날, 밤새 낑낑거리며 울던 강아지는 내가 학교를 다녀오고 나니, 사라져 있었다. 그 뒤로 생명을 데려오는 것에 겁을 먹기 시작했던 것 같다. 나로 인해 한 생명이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 무서웠던 것 같다. 그 이후 나는 동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됐다. 강아지를 데려다 키우려했던, 며칠 키우기까지 했던 내가, 아주 작은 강아지가 옆에 지나가려고만 해도 겁을 먹고 멀찍이 떨어져 빠르게 그곳을 벗어나려고만 한다. 강아지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을 경계하는 사람, 겁이 나 먼저 길을 돌아 도망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떤 심리가 작용한 것인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감이 없다. 동물을 사랑한다는 것, 동물을 가까이 두고 함께 살아간다는 것, 그 한 생명을 책임지고 서로의 돌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어떤 것들을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사랑을 영원히 떠나보낸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감정으로 남은 생을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도, 전혀 짐작도 못한다. 경험이 없어도 너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감정에 여전히 아직도 무뎌지지 않는 얇은 심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주위에서 묻는다. 디디를 보내고 어떻게 지내느냐고. 잘 지낸다고 답한다.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95% 잘 지낸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나머지 5%를 궁금해한다. 나는 그 몫을 사랑하는 강아지를 잃은 슬픔을 모셔 두는 곳으로 남겨 두었다.(10-11쪽)

사람들은 이별 후 아픔을 견뎌야 한다고 말한다. 잊고 새출발하라고 한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 것이라며, 새로운 인연이 만들어지기를, 그래서 그 이전의 슬픈 기억을 잊도록 무척 부추긴다. 하지만, 이전의 감정을 칼로 무 자르듯 한번에 잘라 없앨 수 없기 때문에 감정이 내내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하루빨리, 100% 잘 지내기를 바라며 묻는다, 걱정한다. 하지만 이 말이 딱 맞다. 95%는 어떻게 해서든 잘 살아진다. 남은 5% 를 어떻게 감당하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나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소리는 그들만의 세상에 가두어 두기로 했다. 내 세상은 비디오 나의 시간으로 채우면 그만이었다.(...) 평생 나를 기다려 온 녀셕을 위해 용기를 냈다. 그리고 의식을 치르듯 디디와의 산책을 매일, 묵묵히, 정성스레 이어 나갔다. 디디와의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 그렇게 하는 행위. 그것이 나에게는 종교였다.(213쪽)

모든 사람의 생각이 나와 같을 수는 없다. 같지 않다고 신경쓸 것도 없다. 그저 자신이 원하는 삶을 향해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이 최선일 뿐이다. 그런 선택과 후회 없는 시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일 줄 안다는 것에 마음이 간다. 마치 종교처럼 자신이 가야할 길을 묵묵히 가는 모습이 경건해보이기도 한다. 어쩌면 이것이 생명을 향하는 당연한 마음이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이런 삶을 살 수 있었던 저자가 오히려 행운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이런 행운같은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에 부러움이 생기기까지 한다.

아주 먼 산책을 끝내고 처음의 자리로 돌아간 디디였다. 사랑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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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언론 자랑 - ‘소멸’이 아니라 ‘삶’을 담는 지역 언론 이야기
윤유경 지음 / 사계절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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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자랑 #윤유경 #사계절출판사 #사뿐사뿐 #서평

전국 언론 자랑. 윤유경 지음. 사계절출판사. 2025.
_'소멸'이 아니라 '삶'을 담는 지역 언론 이야기

<경남도민일보> 김주완 기자가 김장하 선생님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어른 김장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사실, 이 다큐멘터리를 처음 봤을 때는 그저, 지방의 어느 신문사 기자가 취재한 내용이구나, 정도만 기억하고 있었다. 어느 신문사인지 어느 지역인지 등은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주인공의 삶이 감동스러웠고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을 뿐이다. 사실, 어느 신문사의 어느 기자였는지는 지금 이 책을 읽고나서 다시 찾아보고 안 사실이다. 이 책의 역할이 그런 것 같다. 다시 찾아보기, 확인하기, 그리고 관심갖기, 기존과는 다른 마음으로 지역의 신문과 '삶'을 바라보기. 저자의 의도가 일정부분 여기에 있었던 것이 맞다면, 내가 책을 아주 잘못 읽은 것은 아닐 것 같다.

양쪽을 똑같이 보도하는 것은 '언론의 공정성'이 아니다. 남성이 주류인 사회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좀 더 적극적으로 싣는 것, 기성세대의 목소리가 넘치는 사회에서 어린이, 청소년, 청년의 목소리를 더 많이 듣고 전하는 것처럼 때로는 주류 담론과 다른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공정성일 수 있다. 나의 경우에 대입한다면 서울의 소식만 중요하게 다루는 한국 사회에서 지역의 이야기에 좀 더 귀를 기울이는 것, 지역 중에서도 광역 단위의 비교적 큰 규모의 지역 인간이 보도에만 주목하는 환경에서 풀뿌리 지역 언론의 이야기를 살피고 찾아나서는 것이 '공정성'의 실천일 것이다.(47쪽)
지역 신문 기자들은 '지역의 문제가 곧 전국의 문제'라고 말한다. 농업, 저출생, 고령화, 기후 위기...... 지역을 위협하는 문제 가운데 우리 사회 전반과 얽혀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가 서울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시야를 넓혀야 하는 이유다.(244쪽)

우리 지역의 대표적인 신문이 하나 있다. 걸어서도 갈 수 있고, 이 동네의 버스 정류장 이름으로도 쓰이며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신문, 바로 <경기일보>이다. 하지만 가까이 있고 늘 보고 지나다니고 또, 과거에는 직장에서도 신문을 매일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관심을 두지도, 신문의 기사를 찾아 보지도 않고 있다. 분명 우리 지역의 대표적인 신문인 것만은 사실이지만, 이미 우리 지역에서도 너무 당연하게 존재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신경쓰지 않는 정도의 수준이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뉴스를 접하고 있는 요즘, 어쩌다가 검색되는 기사 중 하나일 때도 있지만, 구독하거나 직접 검색해서 찾아보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굵직한 언론사의 기사는 구독도 하고 찾아서 챙겨보기도 한다. 역시, 알게모르게 서울중심주의, 주류를 따르려는 심리가 작동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대부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서울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특징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와 같은 대세를 따라야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이제는, 그런 대세에서 좀 더 확장된 시야를 가지고 주변을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있는 지역이 있음에도 여태 관심두지 않고 있었던 그 수많은 이야기들이 대해서 말이다. 우선 지방이라는 단어를 의식 없이 사용하고 있는 것부터 고쳐보고 말이다.

다른 지역의 언론과 기사의 내용도 흥미롭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더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 지역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솔직히, 이 책을 읽기 전 목차에서 우리 지역에 대한 내용은 없는지 먼저 훑어보고 찾아 읽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연상되는 것이, 지금 학교마다 특색있는 교육과정으로서 과목을 만들고 있는데, 실제로 과목의 내용에 우리 지역과 연계된 내용을 포함시켰다.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 지역에 관심을 갖고,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의 생활과 생태적 특징과 또,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이루어져나가고 있는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지역을 들여다보다보면, 우리가 미처 해결하지 못하고 있던 문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도 지역이 보여주는 이야기를 통해 찾을 수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각 지역이 모여 전국이 된다는 것을 잊지 팔아야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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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의 천국 ㅣ 웅진 당신의 그림책 10
에밀 졸라 지음, 티모테 르 베엘 그림, 윤진 옮김 / 웅진주니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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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들의천국 #에밀졸라 #티모테르베엘 #웅진주니어 #그림책추천

고양이들의 천국. 글 에밀 졸라/그림 티모테 르 베엘/옮김 윤진. 웅진주니어. 2026.

자유란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떠오르는 단어 하나는 단연, 자유다. 자유를 무엇이라고 말하면 좋을까. 어떤 것이길래 이토록 갈망하는 것일까. 그리고 떠오른 또 다른 의문은, 그래서 <고양이들의 천국>은 아니라는 것일까. 고양이들의 천국은, 집 안에 있을까 집 밖에 있을까.

"조용히 해, 멍청한 고양이 같으니......
난 그런 푹신한 온기 속에서 지내다간 죽고 말 거야.
그런 풍요로운 삶은 잡종 고양이들한테나 맞지.
나처럼 자유로운 고양이들은 고기나 깃털 쿠션을 얻기 위해
자유를 포기하는 짓은 절대 안 해...... 잘 가."

보장된 풍요를 버리고 위태로운 자유를 선택하기가 쉬울까. 누구나 편안하기를 추구한다. 더 많은 것을 얻기를 바란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주어지는 것의 달콤함을 한번 맛보고 나면, 다시 힘들여 구하거나 얻으려 노력하려는 마음이 사라진다. 가만히 있어도 얻어지는 것에서 안락함을 느끼고, 계속 그 안락함에 안주하게 된다. 애써 지금의 안락함을 포기할 마음을 갖지 않게 된다. 더더군다나, 한번 경험해본 후라면, 힘들고 지치고 배고픈 경험을 해본 후라면 다시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누릴 수 있는 것이 최선을 다하며, 자유 따위에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쪽이 천국같은 삶이라고 굳게 믿게 된다.

"그렇잖아요. 집 밖에 마음대로 나가지도 못하고
줄창 욕을 먹더라도, 따뜻한 방에서 고기를 먹으며 사는 거.
그게 진정한 행복이고 낙원이죠."

진정한 행복과 낙원을 집 안에서 찾은 고양이. 자유는 없어도, 욕은 먹어도, 따뜻한 방과 고기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하는 고양이다. 과연 그럴까, 따뜻하게 고기만 먹을 수 있으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괜찮은 걸까. 그런 삶이 과연 진정한, 진짜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천국이 맞을까.

수고가 나에게 앙골라고양이 한 마리를 남겨 주었다.
그 고양이는 내가 아는 가장 어리석은 짐승이다.

답은 이미 책 속에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어리석은 짐승, 앙골라고양이.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속에 자유에 대한 갈망이 있다는 것만은 어쩔 수 없다는 것도 확인이 된다. 그렇다는 얘기는, 안락함이 다시금 지루해지거나 무료해지면, 집 밖의 세상에 대한 갈망을 다시 품을 수도 있다는 뜻. 우선은,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지 않을까. 자유, 쉽게 포기하거나 버려도 되는 가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가치. 그 자유를 향해 때론 목숨을 바치기도 하니까. 이 책에서도 늙은 고양이는 그런 생명의 위협을 모두 감당하면서 자유를 포기하지 않으니까.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유가 맞다.

그러니 고양이들의 천국이 진짜 어느 곳인지, 곰곰이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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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없는 낙관주의 - 무너진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토미 비링하 지음, 유동익 옮김 / 어크로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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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없는낙관주의 #토미비링하 #어크로스 #서평 #책추천

희망 없는 낙관주의. 토미 비링하/류동익 옮김. 어크로스. 2026.
_무너진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제목부터가 이미 역설적이다. 희망없는 낙관주의라니. 희망이 없는데 어떻게 낙관주의일 수가 있을까. 낙관주의란, 앞으로의 일 따위가 잘되어 갈 것으로 여기는 생각이나 태도라는 뜻이다. 철학에서는, 인생이나 사물을 밝고 희망적인 것으로 보는 생각이나 태도라는 뜻으로 쓴다. 이미, 단어 뜻 안에 '희망'이란 뜻이 포함되어 있다. '잘 되어 갈 것으로 여'긴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떻게 낙관주의가 희망이 없을 수가 있을까. 아니, 희망이 없는데 어떻게 낙관주의라고 할 수 있을까. 여기부터가 질문 폭발이었다. 또 하나, 부제에 '무너진 세계'라는 단어가 보였다. 아, 이 세상을 이미 무너졌다고 생각하고 들어가고 있으니 더더욱, 낙관주의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너진 세계에 희망이 없는 게 맞지 싶었다. 그러니 더 호기심이 생겼다. 희망 없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굳이 밝히고 있는 낙관주의가 무엇인지 꼭 알고 싶어졌다.

그러나 나를 벙어리로 만드는 그 두려움은 내가 이미 오래전에 죽어 묻힌 뒤에도 내 딸들이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야 할 미래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물려줄, 살 수 없는 땅에 대한 두려움이다.(18쪽)

아! 처음 부분을 읽기 시작하면서 눈이 번쩍 뜨였다. 세계가 무너졌다고 하는 것이 바로, 지금의 우리의 기후 위기 생태계 변화 지구의 위태로움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인정! 나도 이미 두 딸이 있고, 지금의 아이들 세대에게 곧잘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있으니, 저자가 말하고 있는 저 두려움을 익히 나도 확인했고 또 인식하고 있기도 했다. 손 쓸 방도를 미처 찾기도 전에 무자비한 속도로 무너졌다고 있는 지금의 지구, 우리의 세계가 안타까우면서도 무서운 것이 사실이니까. 그리고, 이 모든 자연의 변화는 곧 우리가 아닌 우리 다음 세대의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영향을 미치게 될 게 뻔하니까.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른들이 미안하다고. 아이들은 너희들의 잘못 없이도, 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서, 이런 지구를 물려주게 돼서 미안하다고.
예전 환경 관련한 독서 토론 모임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적도 있다. 지금의 이런 세계에서는 자식을 낳을 수 없다고. 그래서 딩크족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 불확실한 미래와 점점 무너져가는 세상에 무책임하게 살아남으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놀랍기도 했고 그렇게까지 연결짓는 것이 맞나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이내 이유를 들으며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사과하는 마음과 비슷하지 싶기도 했던 것이다.

경제 생산성의 최적 기온은 평균 섭씨 13도다. 그해 여름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온도는 섭씨 48보였다. 가까운 미래에 섭씨 50도 이상도 올라갈 것으로 예측된다.
캠핑객, 기후 난민.
북쪽으로의 대이주가 시작되었다. 크롭스볼데에는 점점 더 몸집이 작아진 이탈리아인들이 텐트를 치게 될 것이다.(63-64쪽)

올 여름 무척 더웠다. 아니, 덥다. 아직도 여름, 현재 진행형이니까. 내년 여름은 더 더울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아마, 그 다음 해, 또 그 다음 해는 더 더 더, 덥겠지. 앞으로 기온이 떨어질 가능성은 없다고 한다. 지금 최대한의 노력을 하면 그저 현장유지 정도, 더 이상 심해지지만 않을 뿐이라고. 지구의 온도가 낮아지는 것은 이제 불가능이라고 하셨던 좋아하는 교수님 말씀이 생각난다. 이제 이런 지경에 온 것이다. 그러니, 기후 난민, 텐트를 점점 더 북쪽으로 쳐나갈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희망은 더 이상 쓰레기와의 모험을 이끄는 동력이 아니다. 그것은 지향점 없는 낙관주의의 근본 태도다. 세상을 최선으로 보는 철학적 낙관이 아니라 보고도 눈감는 낙관이다. 그래야 행동할 수 있다. 더 나아지거나 더 나빠질 거라는 어떤 기대로 없이. 강력하다.(...) 환경과 기후 위기 속에서 희망이 지속적 행동 원리를 제공하지 못할 때 희망 없는 낙관주의가 지속적 추진력을 가진다. 즉각적 보상 없이도 올바른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한다.(131-132쪽)

왜 희망 없는 낙관주의가 필요한지 명확히 알게 됐다. 그냥, 희망은 없지만 하라는 것이다. 항상 환경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한숨으로 끝나게 된다. 우리의 이런 개별적인 행동이 얼마나 지구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좋아질 가능성이 없는데도 계속 했다가는 데에서 지친다는 말을 하게 된다. 그때, 이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좋아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렇다고 나빠진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그저 계속하면 된다는 것. 철학에서 말하는 희망적인 태도 없이, 즉각적으로 보상이 주어지지 않아도, 계속 쭉 해나가자는 말.

어디에서도 응원받지 못하는 고독한 싸움이라 생각했는데, 다시 행동할 수 있는 동력을 얻은 듯한 느낌이다. 외롭고 지난한 싸움이 될지라도, 그저 묵묵히 '행동하기'! 그럴 수 있기 위한 힘을 낼 수 있게 도와주는 든든한 책을 만났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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