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질 소행성 - 제12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 사계절 1318 문고 153
오영민 외 지음 / 사계절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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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질소행성 #사계절 #사뿐사뿐 #제12회한낙원과학소설상작품집 #서평

사라질 소행성. 오영민 조은오 남지민 노고유. 사계절출판사. 2026.
_제12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

언제부턴가 SF소설을 읽으면서 달라진 생각이, 이제 이런 세상이 곧 우리의 진짜 삶이 되겠구나 하는 거에, 조만간 기계가 기계이기만 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지금 현재에도 이미 많은 부분이 현실화 되어있기도 한데다가, 이런 소설이 그냥 소설이란 생각만 들지는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나 가끔 우리 지구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하게 될 때면 주로 이런 결론을 맺게 되기도 한다. 지금의 문제는 어른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다. 이제 곧 사회에 나가야 하는 청소년, 어린 아이들에게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을 늘 염두에 두고 신경써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잘 생각해봐야 하는 대상이 누군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 이야기를 아직 자신의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지만, 이런 이야기가 썩 유쾌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아이들도 느낌으로는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이런 소설을 읽으면 아이들은 더욱 느끼는 바가 커질 거라는 생각도 들고.

지구는 우주보다 더 쓰레기가 쌓이고 있는 듯하다. 이 먼 거리까지 생활 폐기물들을 보내고 있으니 말이다.(...)
"지미에게 얘기해 볼까? 생활 폐기물은 분리하기 힘들다고. 이렇게 똑같은 걸 수없이 찍어 내고, 다 버리면서 왜 또 만드는 거야?"(15쪽)
"인간만 살자고 만들어 놓은 게, 다른 생물들한테는 더 나쁜 환경을 수도 있는 거지."(73쪽)

미래가 현실과 연결되지 않을 수는 없다. 미래의 모습은 결국 지금의 현실이 만들어 낸 결과일 테니까. 그리고 그런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할 이는 누구일지. 잘못은 다른 사람이 책임은 또 엉뚱한 누군가가 져야하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지구와 그 지구를 망치는 인간들은 별반 달라지지 않는구나. 더 심해지기만 할뿐 별반 반성하거나 개선되지 않는 미래일 뿐이구나 싶다. 그러면서 해결할 수 없는 지점을 외부로 돌리고, 파괴하거나 혹은 책임을 전가하는 식으로 대처하려고만 하는 것이구나 싶기도 했다. 썩 마땅치 않다.

우주에서 누구도 가 보지 못한 길로 떠난다. 이 기분은...... 뭐랄까......? 최고다!(41쪽)
그날부터 연구소에는 비는 부품이 자주 생겼다. 그때마다 라이카의 손이 손가락 한 마디 만큼씩 더 기계가 되었고, 어느덧 손 전부가 기계로 바뀌었으나 라이카의 손을 잡는 사람은 그곳에 없었기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이듬해에는 팔 한쪽이, 그다음 해에는 양발이 단단해졌다. 북극까지 걸어갈 수 있을 만큼.(181쪽)

그럼에도 나아가려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그 누군가를 향하는 인간적인 마음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 이 모든 이야기에서 썩 마음이 드는 부분이다. 가만히 있기만 할 수는 없고, 또한 그럴 수조차 없도록 세상은 계속 달음질을 치고 있으니, 단단히 마음을 붙들고 나아갈 방향을 향해 최선을 다하는 선택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할 수밖에. 그러기 위해서 결코 잃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고민 끝에 선택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저기, 잠깐만."(146쪽)
인간에 가까운 기계가 자아를 가진 현상을 치명적 오류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기계에 가까운 인간에게 생긴 자아도 같은 이름을 붙일 수 있지 않을까.(182쪽)

지금 우린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또한 그 선택이 과연 최선이 맞는지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누구를 위한 선택인지, 혹여라도 나 하나만을 위한 이기적인, 근시안적인 착각은 아닌지도 점검해야 한다. 우린 종종 꽤 많이 착각 속에 빠져있기도 하다. 정신차려야한다. 더 심각한 착각에서 헤어나오지도 못할 정도가 되면 진짜 답이 없어지니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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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온 소년
개럿 카 지음, 이은선 옮김 / 북파머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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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온소년 #개럿카 #북파머스 #서평단 #서평

바다에서 온 소년. 개럿카 카 소설/이은선 옮김. 북파머스. 2026.

뭔가 마음 한구석이 차갑고도 짠 듯한 기분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이 소설은 단순히 한 아이가 가족이 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특히 타인이라는 거대한 존재를 마주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세계 안에 그 타인을 넣어 넗혀나가려고 하는가에 대한 삶의 기록인 것 같다. 이 소설은 '새로운 가족의 등장과 더불어 겪게 되는 마음을 담고 있는 것 같다. 분명, 가족이지만 가족이라 하기에 뭔가 뒤끝이 씁쓸한 느낌. 그런 느낌이 바로 이 소설에 대한 기본적인 감정인 것이다.

흔히 가족은 선택할 수도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는 존재적 의미를 지닌다. 바다에서 온 브렌던은 보너 가족에게 불쑥 찾아온 존재이며, 그런 존재가 품고 있던 감정들이 이웃들의 서술자를 통해 드러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분명, 이들 가족에게 펼쳐져쌓아올렸을 공통적인 명확한 근거를 바탕에 둔 채, 이들 가족의 살은 다양한 질문들을 만들어내고 있기도 하다. 특히 가족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통해 이들 가족이 살아온 삶을 조망해보게 하기도 한다.
특히 브렌던과 데클란, 두 형제의 관계는 이 소설의 가장 아픈 지점이기도 하다. 데클란에게 브렌던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침입자인 동시에, 자신이 결코 가질 수 없는 바다의 고요함을 품은 동경의 대상인 것이다. 두 소년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은 우리가 형제라는 관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겪는 인정 욕구와 상실감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그 날 선 감정들이 깎여나가고, 긴 시간 끝에는 그저 오랜 시간 갖고 있던 각자의 존재에 대해 갖고 있던 진실을 인정하게 되는 과정이 자연스레 나타날 수 있었다.

진정한 가족의 의미는, 혈연이란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걸까, 오랜 시간의 두터운 두께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보너 부부가 브렌던을 품기로 한 순간, 그 부부와 가족의 의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가족은 매일 아침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기꺼이 내 자리를 내어주는 시간들을 통해 비롯되는 것이며, 이들 가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브렌던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분명 존재하고 있었으며, 일정 부분 이 마을도 브렌던의 신비로움이 마을에 퍼질 때, 온전히 브렌던의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었다.
데클란이 브렌던을 향해 느꼈던 그 복잡미묘한 질투와 애정은, 결국 우리 모두가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 감수해야했던, 그리고 겪어냈어야만 그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는 과정이었지 않을까. 그러면서 자연스레 가족을 단순히 같이 태어난 존재들만의 관게로만 한정하지 않고 그 이상의 의미를 함께 전달하고 있는 듯해, 우리의 가족에 대한 인식도 새롭게 생각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린 과연 이와 같이, 낯선 존재의 등장과 유입이 있을 경우, 어떤 마음의 자세로 그를 받아들이고 풀어낼 수 있을까. 낯선 존재를 낯설게만 바라보고 거리를 두려는 마음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게 해주는 이 소설이 참 의미있는 생각을 형성해주는 듯해 기분이 좋았다. 브렌던과 데클란이 공유했던 그 모든 세월은 지금 우리 주변의 가족의 얼굴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다. 서로에게 가족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소설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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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 육아 번역기
임현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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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영육아번역기 #임현주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한영 육아 번역기. 임현주 지음. 한겨레출판. 2026.
_두 세계 사이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솔직히, 제목보다 부제가 더 마음에 와 닿았다. 나도 육아를 해봤지만, 육아란 실제 두세계 그 이상의 다채로운 세계가 만나 이루어지는 전인류 문화적 집합체이지 않을까, 혼자 감히 생각해본다. 단순히 엄마 아빠를 넘어서 그 부모와 주변 친인척, 그리고 지인과 친구와 그 친구의 친구까지. 육아의 손길은 끝도없이 이어지는 연결고리 안에서 얼마나 그 균형점을 잘 잡고 하루하루를 버티느냐에 있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새로운 세상과 만나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육아이고,그런 시간이 쌓이며 서로 다르고 불분명하다고 생각됐던 흐름이 비로소 조금씩 자리를 잡아나가게 되는 것이다. 일종에, 타협 내지는 적응. 그러면서 누그러지고 깨닫고 또 고민하고 한발 물러서는, 이 세상의 이치를 부모는 아이 덕분에 제대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고. 하지만 이 과정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오히려 흥미롭기도 하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신기한 부분이다.
물론, 같은 환경과 유사한 사회 문화적 배경 속에서 살았던 사람들끼리의 만남은 그 간극이 상대적으로 작을 수 있다. 우리가 보통 한 사람의 삶의 여정을 하나의 세계라고 지칭한다고 생각했을 때, 누구나 서로 다른 삶을 최소 20년 이상 살아낸 후의 만남은 당연히 세계와 세계가 만나는 수준의 낯설고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함께 살아낸 가족도 그 속내를 다 알 수 없는 법인데, 전혀 함께하지 않았던 이외의 만남은 오죽할까. 하지만 이 책의 가정은 진짜 말 그대로 세계와 세계가 만난 것이다. 한국과 영국. 정말 세계와 세계의 만남이고 두 세계 사이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다. 그러니 이 두 세계가 맞아떨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듯.

"이게 영국이지." 한겨울에 한여름 옷을 입은 그에게 자유로운 멋이 느껴졌다. 아마 누구도 그에게 이상하다는 눈빛을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평가하지 않는 말.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배려일 테다.(27쪽)
다니엘다운 말이었다. 불안의 고리 앞에서 이 때의 다짐을 다시 떠올렬본다. 원한다면 도전할 기회를 마련해주고,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속도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켜봐주기. 게 우리의 역할을 테다.(81쪽)

이 책을 천천히 읽다보면 느낌이 온다. 이들의 두 세계가 사실은 어느 순간 하나의 세계로 맥이 닿아 있다는 것을. 이들이 보이는 가장 중요한 장점이 바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었다. 다르지만 서로의 생각을 하나씩 맞춰나가는 것, 다른 부분을 오히려 존중하고 서로의 다른 점을 오히려 흥미롭게 생각한다는 것, 그래서 다른 두 세계가 전혀 불편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의 육아가 분명 쉽지 않을 것이고 매 순간순간 문득문득, 육아의 고달픔과 힘듦에 지칠 수밖에 없을텐데도, 이들 부분에 대한 느낌은, 선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들이 서로에게 쉽게 화낼 줄 모를 것이고, 그러면서 서로의 세계를 존중하고 따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 다른 국적의 사람과 결혼한다는 건 내가 속한 세계가 하나 더 생기는 일이었다.(136쪽)

나의 세계에 다른 세계 하나를 더 보태는 일. 생각처럼 쉽지 않을 것이다. 나의 세계 하나 감당하기도 벅찰 때가 많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다른 세계가 생겼다는 것에 이들은 무척 긍정적이다. 내가 짊어져야 할 무게가 아니라, 나를 품어줄 수 있는 세계를 만난 것에 대한 기쁨. 그 기쁨을 고스란히 이들은 서로에게 서로의 가족에게 그리고 아이들에게 쏟고 있는 중인 것이다.

육아가 분명 매운 맛일텐데, 이토록 순한 맛으로 그려낼 수 있다니, 놀라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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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 - 국립국어원 상담실 연구원의 365일 노동기
이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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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맞춤법때문에전화했습니다 #이현영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여보세요, 맞춤법 때문에 전화했습니다. 이현영 지음. 한겨레출판. 2026.
_국립국어원 상담실 연구원의 365일 노동기

20년 쯤 전에 국립국어원에서 진행하는 연수를 들은 기억이 있다. 한창 관련해서 궁금한 것도 많고 배우고 싶은 마음도 커서 매번 서울로 찾아가 연수를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이후로도 자주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을 사용하고 활용한다. 나의 사랑, 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사전이다. 핸드폰 바탕화면에 바로가기까지 만들어 놨다. 온라인 가나다 검색도 종종하고 예전에는 전화를 걸어 질문한 적도 있다.

한 중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우리말365 이용해보기' 체험을 수업 내용으로 다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으로 여러 생각이 교차하는 현실이었다.(181쪽)

사람이 직접 소통하는 창구라는 걸 안다면, 그러지 말자. 이 책을 읽으며 나도 카톡에 우리말 365를 추가했다. 하지만 질문은 하지 않기로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챗봇이 답해주는 거겠지. 실제로 사람과 대화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조심하게 된다. 나의 섣부른 질문이 누군가를 수고롭게 한다면 최대한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최대한 온라인 가나다의 답변을 검색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답변에서 내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있다. 누적 데이터가 이래서 중요하다. 답변에 대한 추가 및 수정을 하신다니 더 신뢰가 간다.

하루 평균 70~80건의 질문에 답하고 다른 사람의 답변까지 검토하는 일을 반복하며 자연스레 사전을 가까이하는 습관이 생겼다. 모든 규정을 머릿속에 다 외워 두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국어사전의 양은 방대하고, 새로 생기는 단어가 늘어나는 만큼 사전의 세계는 계속 움직이기 때문이다.(12-13쪽)

자주 맞춤법을 물어온다. 전공자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대학에서 몇 년 공부하고 직장에서 활용한다고 해서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조금 더 알 수는 있다. 하지만 정확하진 않다. 그럴 때를 위해, 그리고 나도 궁금해서 못 견딜 때를 위해 사전을 찾는다. 나의 지론, 사전에는 웬만한 정보는 모두 담겨 있다! 사전만 잘 찾아도 궁금한 부분이 해소된다고 늘 강조하는 입장이므로 사전 먼저 확인. 그리고 대부분 해결이 되기도 한다.

사람의 직관이라는 게 딱히 근거가 없는 듯해 보여도 어떤 표현을 이상하고 어색하게 느낄 때는 그렇게 생각하게 된 분명한 근거가 있다는 걸 나중에라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이러한 언어 직관이 신비롭다.(45쪽)

동감이다. 말을 쓰고 내내 이상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뭔가 이상한데, 잘못된 것 같은데, 어색하고 글자를 써봐도 보기에 불편한데, 싶을 때 사전을 찾으면 어김없이 잘못 쓴 경우다. 직관이라는 신비함, 완전 인정이다.

그러나 국어원이 반드시 지켜야 하는 원칙이 있다. 시험 문제의 정답은 말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교육의 현장은 교실이고, 정답을 판단할 권한은 출제자인 선생님에게 있다. 그래서 우리는 최대한 정중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안내한다. "(...) 만약 학교 시험 문제에 해당한다면 교과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에 대해서는 선생님께 직접 문의해 보시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57-58쪽)

나도 지금까지 국립국어원의 모든 답을 확실히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립국어원이니까. 우리나라의 언어를 관장하는 최고의 기관이니까, 우리가 갖고 있는 언어에 대한 의문은 모두 해소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구나 싶다. 해소될 수 없는 지점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내부적으로는 끊임없이 논의하고 어느 쪽으로 결론을 내리고 답을 줄 것인가를 고민하고, 한번 정해진 것에 대해 다시 논의하며 판단의 변화가 필요하면 숙고의 과정을 충분히 거쳐 변화의 답을 내놓는다는 것도 잘 알게 됐다. 왜 이랬다 저랬다 하나,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언어가 자주 바뀌어 잘 신경쓰지 않는다면 잘못된 말을 계속 사용하게 될 때도 있으니 말이다.

'너무 맛있다'라고만 표현하기엔 부족했다. '개맛있다'고 표현해야 그 잡채덮밥이 얼마나 나를 화나게 할 만큼 맛있는지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아 "잡채덮밥이 개맛있네요"라고 했다. 다소 격정적인 표현에 다른 음식을 먹던 동료들도 호기심을 보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접두사 '개-'와 같은 표현은 규범의 잣대로는 오답일지 모르나, 사람들의 언어 속에서는 그 어떤 수식어보다 강렬한 생동감을 발휘한다. 규범의 울타리를 지키는 연구원들에게도 때로는 이런 투박한 수식어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140-141쪽)

직업병이 확실하다. 이 부분이 불편한 걸 보면. 이유는, 대부분은 이런 경우에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라는 접두사는 난발하고 또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한 용도로, 자신의 과시나 언어로 과격함을 보이려고 할 때도 곧잘 사용한다. 실제가 그렇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의 귀에는 늘 '개-'가 무척 거슬린다. 쓰지 못하도록 하고 적절한 사용이 아님을 종종 이야기해준다. 특히 상대를 지목하여 사용하게 될 경우, 감정이 상하거나 싸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너 나 안 본 지 두 달 다 돼 감"(113쪽)

이건 꼭 써먹어봐야지 했다. 우리의 띄어쓰기가 이 정도라는 걸 확인시켜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말, 참 대단하다 감탄도 하게 됐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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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 창비청소년문학 145
김민서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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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 #김민서 #창비 #선생님북클럽 #서평

호구. 김민서 장편소설. 창비. 2026.

'호구'의 동음이의어는 6개나 된다. 또 여러 뜻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이 단어를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뜻이 있다.

호구4(虎口) <2>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 단어는 "<1> 범의 아가리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처지나 형편을 이르는 말. <3> [체육] 바둑에서, 바둑돌 석 점이 둘러싸고 한쪽만이 트인 그 속."의 다른 뜻도 갖고 있다. 결국 호랑이의 입 속에 들어가 있는 형세라는 거다. 어쩌지 못하고 힘에 눌려 당할 수밖에 없다는 뜻. 듣기만해도 호구가 되고 싶지 않다. 되고 싶은 사람이 있기는 할까.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이 책에서도 분명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를 지칭할 것 같았고, 그와 관련한 호구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었고, 읽다보면 결국 힘의 논리에 당하게 되는 이의 모습을 지켜봐야하는데, 그런 과정이 썩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청소년이 그 대상이 된다면 더욱, 학교가 그런 공간이 된다면 더더욱 불편할 수밖에 없으니까.

"돈 달라 하면 돈도 줄걸? 호구 새끼."
호구. 그래, 그 말이 맞다. 나는 싫은 소리 한 번 못 하는 호구 새끼다.(14쪽)

맞닥뜨리고야 말았다. 호구. 주인공 윤수는 자기 스스로를 호구라고 지칭했다. 스스로 자신이 자신을 인정하는 순간, 끝났다는 생각을 했다. 아, 이제부터 이 윤수의 이야기는 내내 불편해지겠구나 싶었다.

"바둑판에는 더도 덜도 말고 따악 삼백예순하나의 자리가 있다. 근디 고 자리 하나 먹으려는 놈은 요래 많이."
할아버지 말소리가 나직하다.(...)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난다.일어나도 앉아도 작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든다. 언제나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을 올려다본다. 할아버지는 항상 아래에 있으니까. 희끄무레한 할아버지는 짓눌리기만 한다. 짓눌려서 호구 속에 있다.(...)
"착하지 말어라, 윤수야."
나는 말을 잃는다.
"싹바가지 없게 살어라."(69쪽)

할아버지가 평생을 보아왔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할아버지가 올려다본 세상이 어쩌면 그대로 윤수를 내리누른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해주었던 말이지 않을까. 이 세상이 어떤지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윤수가 더 이상 그 세상으로부터 눌리는 것을 바라지 않아서, 윤수를 지키기 위한 할아버지의 가장 나직하면서도 단단한 말이지 않았을까.
착하지 말라는, 싹바가지 없게 살라는 말이 내내 남는다. 나의 올해 목표가 착해지는 거였는데, 그럼 나도 착해지다보면 호구가 될 수 있다는 걸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윤수처럼 나도 어딘가 찢어지고 뭉개져서 피를 철철 흘리고 돌아오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순간 멈칫하게 됐다.

"윤수야...... 무리하여 못되게 살지 않어도 된다. 일부러 착하게 살 필요도 읎다...... 행복한 놈이 되어라."(169쪽)

행복. 과연 뭘까. 무엇이 행복일까. 행복을 추구하는 건 어느 누구에게나 공통의 삶의 목표이지 않을까 싶은데, 사실 이 행복이란 것이 무척 추상적인 개념이다. 행복을 어느 것 하나로 딱 규정지어 말할 수도 없고 그림이나 형상으로 그려 나타낼 수도 없다. 그러니 각자가 갖고 있는 행복의 기준이 다르고 또 모양새도 다를 수밖에 없다. 지극히 주관적인 목표라는 거다. 그래서 아마 윤수가 생각하는 행복과 할아버지가 생각하는 행복, 엄마가 생각하는 행복이 다 다를 것이다.
각자가 자신이 얻고싶은 것을 얻으며, 이루어야겠다고 다짐한 지점까지 달려가며 어떤 모습의 삶이 행복이란 기준에 충족될 것인가를 끊임없이 가늠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지금 나는 이쯤에서 행복한가, 어디까지 가야 그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을까, 행복을 위해 지금 어디까지 얼마큼이나 살아내야 할 것인가 등등. 단순히 행복이란 단어 하나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너무도 많은 생각이 복잡하고도 어지럽게 주변을 맴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답을 찾아나가야 한다. 윤수처럼.

"행복하지 않은 삶에도 가치가 있어?"
그 말에 나는 얼마 전 져 버린 할아버지 인생을 떠올리고, 진즉에 져 버린 할머니 인생도 떠올리고, 당하기만 하는 우리 엄마 인생과 내 인생까지 떠올리곤 답한다.
"행복하지 않은 삶에도 가치가 있어."(207쪽)

그럼에도 윤수가, 온이가, 그리고 권이철과 권이수가 각자의 삶과 기준에서 행복한 지점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엄마가 옆집 아줌마도, 그리고 선생님도. 여전히 모두의 행복을 빌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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