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 년째 열다섯 1 - 구슬 전쟁 텍스트T 1
김혜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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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 년째 열다섯. 김혜정 장편소설. 위즈덤하우스. 2022

가을이, 아니 서희가 야호족이 된 것은 서희가 처음부터 이미 갖고 있던 그 마음을 령님이 제대로 알아봤기 때문일 것 같다. 결국, 서희에 의해 모든 것이 제대로 움직이고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처음부터 있었기 때문에 서희의 몫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서희 스스로는 원하던 바는 아니었겠지만, 무언가의 역할은 그 역할을 다 해낼 수 있는 사람의 몫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몫을 다할 수 있는 이가 바로 서희였고, 그런 서희였기에 야호족과 호랑족, 그리고 인간 모두가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훗날 가을은 괜한 오지랖을 피웠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령은 가을네 세 모녀를 살려 주었다. 야호는 한 번 입은 은혜는 절대 잊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다. 령은 죽어가는 세 모녀를 살리기 위해 그들을 종야호로 만들었다. 령에게도 세 모녀에게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건 령을 살렸던 가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살릴까 말까가 아니라 살리는 것뿐이었다. 어쩌면 인생은 선택이 아닌 그냥 흘러가는 것인지도 모른다.(22쪽)

살리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은 없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살리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을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이들이라면, 이런 마음이 서로를 살리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이끌리는대로 서로에게 다가갔고, 그렇게 서로에게 어느 정도의 마음과 역할, 혹은 짐을 나누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꺼이 나누어받은 그 마음에 최선을 다해 답했던 것이다.

령은 가을네 세 모녀를 살렸고 엄마는 영빈을 자식으로 받아들였다. 매번 다짐하는데 왜 그게 안 될까.
마음이 흔들려서 마음이 움직여서 마음이 있어서, 가을은 울었다.(104-5쪽)

이 마음의 시작이 바로 서희가 령을 살리려던 그 마음이지 않았을까. 다른 이를 살리려는 마음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조절하거나 빼앗고 혹은 망가뜨릴 수 없다.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자라나 그 힘을 키워나가는 것이므로 쉽게 다른 유혹이나 힘에 의해 좌우될 수 없다. 한결같은 마음을 지닐 수 있어야, 그리고 그 마음을 굳게 지킬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가 바로 가을, 서희였던 것이다.

야호들은 그제야 왜 령이 최초 구슬을 가을에게도 주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었다.(212쪽)

그러니, 가을이도 모르는 사이 최초의 구슬을 갖게 되었던 그 모든 것이 사실은 다 운명이었던 것이다. 엄마의 사랑과 호랑족과의 관계, 그리고 종야호가 되고 또 령의 구슬을 지니게 된 그 모든 것이, 그리고 그 사실을 모른 채 오백 년을 지낼 수 있었던 것조차도 모두 가을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운명을 가을은 스스로 또 훌륭하게 감당해낸 것이다.

MISSION. 영원히 산다는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축복이다. 영원히 살아야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한테나 이런 축복을 내리는 것도 아니다. 축복을 받을 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축복을 받는 것이다. 물론, 영원히 사는 삶이 쉽지만은 않다. 당연히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이 또한 모두 해낼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꼭 해내야만 하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 저주라고 생각할 수 없다.
가을이가 보여준 모습이 딱, 축복의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오백 년을 살았어도 열다섯의 열다섯이다. 두렵고 무서워 뒤로 물러서고 남들이 해주는대로 따르기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을이는 당당하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선택했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행동하고 움직일 줄 아는 모습을 보였다. 이보다 더 분명한 이유가 또 어디 있을까.

이 이야기에 흠뻑 빠져 소설을 읽었다. 이제야 이 소설을 만난 게 아쉬울 정도. 이후 이야기들도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다. 가을이에게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 지. 하지만 걱정은 없다. 앞으로도 내내 쭉, 가을이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단단하게 만들어나갈 게 분명하니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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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려는 말은 독고독락
낸시 풀다 지음, 백초윤 그림, 정소연 옮김 / 사계절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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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려는 말은. 낸시 풀다 글/장소연 옮김/백초윤 그림. 사계절출판사. 2025.

이 책에는 두 편의 단편, <움직임>과 <다시, 기억>이 실려 있다. 두 편의 주인공은 '한나'와 '엘리엇'은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다. 두 인물이 갖고 있는 모습을 우리가 갖고 있지 않다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두 편의 주인공인 '한나'와 '엘리엇'은 우리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정말 다른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이 맞을까. 우리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다시 되묻게 된다. 이 소설들이 갖고 있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과연, 진짜 그들은 우리와 다른가?

내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는 '시간적 자폐'다. 나는 이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단어니까. 그리고 자폐인들과 나 사이의 공통점은 드문 발화뿐이니까.(16-17쪽_'움직임' 중)
너는 수년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가족 중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다. 알츠하이머병이란 그런 의미다. 아니 그런 의미였다.(56쪽_'다시, 기억' 중)

단어를 좋아하지 않고, 알아보지 못한다면, 다른 것일까. 그리고 다르기 때문에 다르지 않기 위해 '나'가 아닌 다른 사람과 같은 모습의 '나'를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혹은 '나'가 아닌 것처럼 꾸며야 하고 바꿔야만 하는 것일까. 아마 이 모든 질문의 답은 '아니다'일 것이다. 누구나 각기 자신만의 삶의 속도가 있고 또 자신의 모습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모두 고정된 모습으로 한평생을 살아가지 않는다. 바뀌고 변화되어가면서 그 또한 자신의 모습으로 만들어나가는 '나'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한나'와 '엘리엇'도 그런 삶의 과정에 있을 뿐이다. 삶의 과정은 누구나 정해져 있는 길에 딱 맞춰 주어지는 법이 없다. 어떤 삶의 길에 놓일 지 아무도 알 수 없고 또 어떤 길을 갈 것인가조차, '나'의 결정에 따라 오늘과 내일이 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나'가 다시 어제의 '나'가 되어야할 이유는 없고, 다른 사람과 다른 내일의 '나'가 될 것이라고 해서 '나'를 어제와 같은 '나'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일은, 그리고 그 다음의 내일은 그 때의 '나'로 인정하고 그에 맞는 대화를 이어나가면 되는 것이다. 굳이, 다른 사람에 의해 이렇고 저렇게 모습을 바꿀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는 미미하게 살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들처럼 되고 싶지 않다. 거대한 시간의 흐름을 알지 못한 채, 정신없이 내달리는 문장들에 갇히고 싶지 않다. 나는 다른 것을 원한다. 무언가, 적절한 단어를 찾아낼 수 없는 무언가를.(42쪽)
이 새롭고, 이상하고, 망가진 삶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단 하나만은 확실하다. 너는 가짜가 되고 싶지 않다. 가까이에서 보면 들통나 버리는 홀로그램처럼 살고 싶지 않다.(75-76쪽)

'다른 사람들처럼 되고 싶지 않다.', '너는 가짜가 되고 싶지 않다.'의 두 문장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이 문장들만으로도 '한나'와 '엘리엇'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시선이 어땠을지가 눈에 선하다. 그러니,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들이 간직하고 있는 깊숙한 마음의 소리를 우리는 지금껏 무시하거나 혹은 인정하지 않고, 우리가 보고싶은 대로만 보려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된다. 반성이 된다면,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이들을 대할 줄 알아야 하는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있으며, 다양한 아이들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마음에 품고 지내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은 곰곰이 나의 생각을 만들어나가도록 해주는 소설이었다. 과연 내가 가졌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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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의견일 뿐이다 - 불확실한 지식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진짜를 판별하는 과학의 여정
옌스 포엘 지음, 이덕임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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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의견일 뿐이다. 옌스 포엘 지음/이덕임 옮김. 흐름출판. 2025.
_불확실한 지식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진짜를 판별하는 과학의 여정

사실을 쓰는 것과 의견을 쓰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 당연히 사실은 사실이고 의견은 의견이었다. 의견보다는 사실에 더 신뢰가 가고 믿을만한 정보라고 생각했다. 사실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해보질 않았다. 그렇게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과학에 있어서는 더더욱, 사실이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과학만큼은 수많은 관찰과 실험을 통해 얻어진, 사실에 입각한 결과를 우리에게 알려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과학자 혹은 의학자가 나와 이야기를 한다면, 그 말은 대부분 믿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맞는 말만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들의 의견이 아니라 그들의 사실이라고 굳게 믿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이 책에서 하는 말 또한 너무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들도, 사실이지만 의견이겠구나, 싶었다.

학술지와 연구자들이 아예 정치적 영역에서 벗어나 순수한 사실만을 제시해야할까?
나는 이 질문에 '아니요'라고 대답하겠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사실은 어쩔 수 없이 정치화될 수밖에 없다. 연구 분야에 따라 특정 행동 방침을 제시하거나 지지하는 연구 결과를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과학은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이 사람들에게 정치적 요소들을 완전히 배제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어리석거나 심지어 부도덕할 수도 있다.
사실이 의견의 근거가 되는 것이 옳지만, 때로 의견이 사실을 다루는 방법을 결정하기도 한다.(21쪽)

편향된 정치적 의도에 따라 과학의 결과가 다른 쪽의 해석을 내놓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바꾸어 거짓으로 꾸며 제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의도된 방향으로의 사실을 활용하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때 사실이 의견이 되는 것이다. 의견이라고 무조건 생각만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고, 그 나름의 이유와 근거를 갖고 접근하는 것이므로, 어떤 사실을 근거로 이유를 뒷받침할 것인가는 순전히 연구자의 몫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연구자의 의도가 곧, 사실이 되어 우리에게 전달될 것이다. 그런 의견을 우린 의심없이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고 말이다.

물론 사실은 존재한다. 어떤 사실은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고, 어떤 것은 사실을 밝혀야만 한다. 그것이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든, 과학은 가능한 명확한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즉 사실을 밝혀낼 때까지 탐색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탐색을 하는 데 명확한 방법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124쪽)

그렇다고 모든 과학 혹은 연구 결과를 의견이므로 믿을 수 없다고 할 것은 아니다. 분명한 사실이 존재하고, 그 사실을 통해 우리가 알고 또한 확인해야 하는 지점은 분명히 있다. 절대 변하지 않을 진리로 존재한다. 다만, 기존에 갖고 있던 편견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지금까지는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컸다면, 이제는 어느 정도의 여지를 염두에 두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두 귀를 갖고 열심히 듣더라도, 듣는 귀를 제대로 갖추고 잘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이 손에 들고 있는 이 책의 경우, 최선을 다해 모든 진술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음을 저자인 내가 보장한다. 그런데 이 책의 첫 페이지에서부터 내가 한 가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눈치채셨는지?(...) 여러분이 책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것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241쪽)

어느 때라도, 쉽게 믿고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스스로 경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관찰도, 가설을 세우고 실험하고나 연구하는 모든 것도, 측정하고 통계를 내는 것도, 의도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는 역사가가 선택한 것이 역사가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과거의 수많은 일들 중 우리가 역사라고 기억하는 것은 모두, 역사가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선택된 것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는 과학적 결과도 역시나 과학자에 의해 선택되고 의도된 결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같은 맥락으로 해설해도 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제목이 다 한 느낌이다. 정말, 이 책을 한 마디로 정리해서 말한다면 딱, '사실은 의견일 뿐이다'가 될 것 같다. 제목 참 잘 지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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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너무도 사나운 날에는 - 위기의 지구를 위한 특별한 과학 수업
가치를꿈꾸는과학교사모임 지음 / 우리학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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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나너무도사나운날에는 #가치를꿈꾸는과학교사모임 #우리학교 #서평단 #서평 #책추천
#위기의지구를위한특별한과학수업

지구가 너무도 사나운 날에는. 가치를꿈꾸는과학교사모임 지음. 우리학교. 2020.
_위기의 지구를 위한 특별한 과학 수업

우리의 지구를 이야기할 때, 과학이 꼭 필요한 것이 맞다. 과학이 제일 전면에 나서야 하고 또, 과학으로 접근해야하는 것이 모두 맞다. 물론 거기에 법이 함께 한다면 더 좋기는 하겠지만. 과학으로 접근했을 때 답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과학이 우리 삶에 매우 밀접한 것을 잘 안다. 다만, 그런 과학을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일 뿐. 누가 조목조목 이야기해준다면 충분히 '위기의 지구'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을 것이다. 꼭 방법이 아니어도 최소한의 자각이라도 할 줄 알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의미가 있다. 지금의 지구는 위기야, 문제가 심각해, 그러니 해결해야해, 라는 인식을 누구나 갖고 있다. 다만 정말 어느 지점에서 어떤 문제가 나타나는지, 그래서 그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무엇을 알고 생각해야하는지, 일반적으로 쉽게 알고 있기는 어렵다. 이때, 이 책을 후루룩 읽으면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다. 감히 과학을 모두 다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결국 이런 과학적 원리와 관계를 속에서 인간이 이제 지구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 정도는 감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이런 얘기를 이렇게 쉽게 해주지 않는다. 다양한 주제로 하나씩 차근히 설명해주는 건, 역사 교사분들이어서 가능한 일. 어떻게 풀어 설명해주면 이해가 더 잘 될 수 있는지를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의 내용을 가만히 따라가기만해도 자연스레 지금의 지구에 대해 최소한 알아야 하는 것들을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새벽 또는 초저녁 금성의 반짝임은 오랫동안 인류에게 보내온, 되먹임과 급변점과 기후 변화에 대한 경고였던 것이다.(30쪽)

인간들은, 바로 인류는 이 경고를 내내 무시하고 있는 중인 것이다.

바이러스가 특별히 인간을 표적으로 삼은 것도 아니고, 특별히 인간을 좋아해서도 아니다. 지구에 인간이 너무 많이 존재하고, 그 인간들이 이미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54쪽)

결국, 인간들 탓이란 뜻이다. 인간이 많은 수로 이 지구를 형편없이 망가뜨리고 있는 중인 것이다.

바꿔 말하면 가장 저렴하게 고기를 많이 먹기 위해서다. 대량 소비를 위한 대량 생산이다. 이렇게 고기를 생산하는 것이 바로 공장식 축산이다.(71쪽)

고기 안 먹고 못 사나. 고기를 먹겠다고 그 많은 동물들을 키워내고 또 죽이는 것이 맞는지. 결국 인간의 욕심으로 인간 본인들을 괴롭히는 중인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몸속에 우주를 품고 지구라는 행성에서 가장 위대한 방식으로 진화해 마침내 우주로 나가는 길 위에 서 있다 할지라도, 우주 속에서 인류는 먼지보다 작은 행성에 사는 지극히 작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177쪽)

이렇게 하찮은 존재들이 더 거대하고 광활한 지구, 우주를 뒤흔들며 망가뜨리고 있는 이 상황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어쩌자고 인간은 이 모든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며, 스스로 무엇이 잘못인 줄도 모르는 어리석음을 갖고 있는지, 그저 한탄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한탄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다. 뭐라도 해야하는 것이다. 이 책을 함께 읽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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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전 대 호랑전 - 명절맞이 부침개 대결
정현진 지음 / 창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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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전 대 호랑전. 정현진 그림책. 창비. 2025.

이제 곧 추석이다. 한가위.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는 말이 있듯이, 1년 중 가장 풍성하고 넉넉한 시기가 추석이다. 가을이란 무릇, 곡식도 과일도 고루 추수하여 모두와 함께 나눌 수 있는 때이니 말이다. 그래서 다른 명절보다도 더 행복하고 기분 좋아지는 명절이 추석이지 않을까. 그런 추석, 그것도 긴 연휴가 금방 온다. 그래서 기대가 크다.
그런 연휴에 꼭 알맞은 <토끼전 대 호랑전>이다. 우리가 '~전'이라고 제목이 붙을 때는 '이야기, 전기, 전승된 이야기' 등을 뜻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제목도 토끼의 이야기, 호랑이의 이야기라고 읽을 수 있겠지만, 반전이다! 이때의 '~전'은 '생선이나 고기, 채소 따위를 얇게 썰거나 다져 양념을 한 뒤, 밀가루를 묻혀 기름에 지진 음식을 통틀어 이르는 말'의 바로 그 '전'이다! 표지 그림에서와 같이 토끼와 호랑이가 각각 뒤집개를 손에 쥐고 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서로를 보고 있고 이 둘 뒤로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보니, 이들이 서로를 라이벌이라 여기고 대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이 책 제목 위에는 '명절맞이' '부침개 대결'이란 말이 보인다. 아하! 그리고 책 아랫쪽으로 버젓이 다양한 종류의 전이 한가득 먹음직스럽게 담겨 있다. 이쯤이면 눈치만으로도 이야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을 내내, 전 대감 댁 업둥이가 토끼전과 호랑전 중 어느 쪽을 승자로 결정할 지에 대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따라가며 읽었다. 둘의 실력도 맛도 비슷할 것 같고, 토끼와 호랑이 중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에 따라 그 뒷이야기도 예사롭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누구를 승자로 해도 이상할 것 없지만, 승자가 되지 않은 쪽을 또 어떻게 이해시키고 달래줄 것인가가 고민이 되는 것이다. 책을 읽어나가며 혼자 어떡해 해야하지, 만약 내가 업둥이었다면 난 어떤 결정을 내려야하는 걸까, 고민에 고민을 하며 책을 따라 읽어나갔다. 한편으로는 나에게 판결을 내리라고 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육감 중에 빠진 하나는 화합!
명절 음식의 미덕은 함께 만들고 나누는 것이지."

그러니까 말이다. 나도 토끼, 호랑이와 함께 넙죽 절을 할 뻔했다. 반성의 의미로 말이다. 그저 승자를 가려야한다는 생각만을 갖고 이 이야기를 읽어나갔으니, 진짜 명절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보지 못하고 그저 둘 중 하나의 결과만을 궁금해 한 짧은 생각을 반성했다. 그리고나서 생각해보니, 진짜 그랬다. 시합, 경기, 대결 등 누군가와 중 누가 더 우위를 차지할 것인가를 다툴 때 왜 다투어야 하는지, 승패를 분명히 나누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만약 업둥이가 이 대결의 승자를 결정했다면 그 결정은 업둥이 개인의 생각일 수도 있는데 그 한 사람의 결정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데에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금껏 아무렇지 않게 갖고 있던 생각의 흐름을 한순간 뚝! 잘라내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허를 찔렸다고나 할까.

이런 게 우리 옛 이야기의 묘미이지 않나 생각했다. 분명 이 그림책은 판소리의 느낌을 듬뿍 살린 이야기였다. 판소리가 갖고 있는 가장 큰 특징은 풍자와 해학. 특히 이 이야기에는 동물을 통한 우화의 기법도 가미되어 있으니, 인간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쓴소리가 제대로 들어가 있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인간들, 서로 물고 뜯고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나 있는 모습 반성하고, 서로 사이좋게 함께, 나누며 넉넉해지는 마음을 가지며 살라고, 교훈을 주는 이야기인 것이다.

앞으로 명절 때마다 전을 부칠 때면 토선생과 호선생, 그리고 업둥이, 아니 찬슬이가 생각날 것 같다. 그들이 마당 가득 펼쳐놓고 부치는 부침개, 전을 맛보러 찾아가, 나도 실력발휘 제대로 해가며 함께 어우러져 실컷 전을 부치고 와도 좋을 것 같다. 그런 마음의 추석이 오고 있다. 이번 추석, 집에 기름 냄새 한번 풍겨봐야겠다. 역시, 명절은 전이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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