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잠에서 깨다 - 일제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발굴이 새긴 기억의 공공인류학
정병호 지음 / 푸른숲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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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잠에서깨다 #정병호 #푸른숲 #서평 #책추천

긴 잠에서 깨다. 정병호 글 구술. 푸른숲. 2025.
_일제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발굴이 새긴 기억의 공공인류학

우선,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의도하지 않은 우연한 계기에서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다고는 서술하고 있으나, 저자의 삶의 과정을 살펴보면 이건 분명, 저자의 생각과 판단, 그리고 신념이 있었고 또 그 과정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일이 아니고 또 자신에게 꼭 필요한 일이 아니라면 누구든 시간과 힘을 들여 일부러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 일을 했고 힘을 다해 해내기 위해 노력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과정을 함께 했고, 그러면서 다양한 긍정적 영향과 파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영향이 앞으로도 내내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여전히 일본을 향한 강한 역사의식을 이유로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역사적 인식이 쉽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과거를 청산, 이란 말을 쓴다고 한다면 난 반대다. 과거는 청산이 되지 않는다, 절대. 청산의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그저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렇다고 앞으로도 내내 불편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 대화와 소통이 필요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다. 사람 간의 관계든 국가 간의 관계든, 관계를 회복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모두 같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당연하고 필요한 일이 실제로는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되기 어려운 것이다.

오늘날 일본 사회가 여전히 누리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인식은 '연루implication' 개념과 연결된다. 일본의 젊은 세대는 과거사에 대해 자신들의 책임은 없다고 주장하지만, 과거에 일어난 범죄 행위의 결과물을 당연하게 받아들여 삶의 기반으로 삼아 누리고 있다. (...) 나는 이런 개념을 바탕으로 젊은 세대가 과거사 문제에 참여하도록 언어화하고 이해시키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57쪽)

과거의 세대가 지나고 그 다음의 젊은 세대의 시대가 왔다고 해서, 과거의 세대가 한 잘못에 대해 아무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맞다. 문화라는 것은 과거의 경험이 그대로 축적되어 현재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과거와 현재를 나누어 구분해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과거가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그래서 '연루'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에 동의한다.

유골발굴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이들은 서로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으로 인터넷을 통해 일상적으로 교류하게 됐다. 또한 조금씩 자신의 인생 진로를 바꾸기 시작했다. 강제노동 희생자 유골발굴 작업은 새로운 세대 간의 진정한 만남과 서로의 문화 이해를 위한 하나의 문화인류학적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90-91쪽)

그래서 어쩌면 더욱, 계속 다시 젊은 세대에게 끊임없이 이런 협력과 교류의 자리를 마련하고 대화, 소통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의미있게 다가왔던 이유 중 하나는 단순히 유골발굴과 관련한 이야기만을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런 과정을 거쳐서 우리나라에 다시 유골이 돌아올 수 있었다는 감상만을 전달하고 있지 않고, 이 과정을 통해 앞으로 어떤 미래를 설계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지향점을 함께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과거와 역사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이지 않을까 싶었다. 역사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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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끝줄 관객 - 분더비니 뮤지컬 에세이
분더비니 지음 / 문학수첩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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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끝줄관객 #분더비니 #문학수첩 #서평 #책추천

맨 끝줄 관객. 분더비니. 문학수첩. 2025.
_분더비니 뮤지컬 에세이

뮤지컬, 연극 등 공연에 진심인 사람의 에세이였다. 글을 읽으며 또 한번 느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마음껏 좋아하는 감정을 표현하고, 그 좋아하는 것을 향해 거침없이 행동하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하고.

좋은 것을 봤을 때 몸으로 감정으로 반응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반응을 부끄러워하고 또 다른 이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속으로 숨기기도 한다.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눈치를 보기도 한다. 흔히 덕후, 덕질이란 단어에 대해 사회적으로 썩 좋게 평가하지 않을 때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회적 편견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을 살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굳이 누구의 눈치를 보느라 마음껏 표현할 수 없다면, 좀 억울할 것 같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아하는 것에 진심을 다해 온힘을 쓸 줄 아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만큰 자신의 진심에 솔직한 것이니 더 좋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분더비니는 참 멋진 사람이구나 싶었다. 한편으로 부럽기도 했고.

가끔 연극이나 영화를 혼자 보러 가곤 한다. 누군가와 함께 가는 것이 불편해서라기보단 혼자 내 취향과 느낌에 맞춰 가볍게 다녀오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누구에게 제안하거나 약속하지 않고 혼자 공연을 보고 온다. 다행히도 집 주변으로 그런 문화적 공간이 잘 배치되어 있다. 걸어서도 충분히 다녀올 수 있을 정도, 혹은 잠시 차를 이용하면 금방 닿을 수 있는 곳에 공연장이 있다. 대공연장의 공연도 좋지만 소극장의 공연이 갖는 거리감이 마음에 들 때가 있다. 누구 눈치보지 않고 오롯이 내 감정으로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이런 방식의 공연 관람을 선호한다. 그래서 저자의 공연 관람에 대한 자세에 공감이 많이 갔다. 혼자일 때 가질 수 있는 그 조용한 여운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굳이 사람을 마다하는 건 아니다. 그저, 그 순간 공연에 대해 마음이 움직였을 때 그 마음이 사라지기 전 행동하려는 것일 뿐. 누군가와 시간을 맞추고 공연을 정하고 약속을 잡고 또 무언가를 결정해야하고. 이런 수고 없이도 충분히 공연이 나에게 다가올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으니까.

제목이 왜 <맨 끝줄 관객>일까를 생각해봤다. 맨 끝줄. 보통 영화를 볼 때는 맨 끝줄 자리를 예매한다. 연극이나 공연을 볼 때는 최대한 무대 가까운 자리, 앞줄을 예매한다. 물론 이게 쉽지 않은 경우가 많긴 하지만. 하지만 제목이 그런 자리에 대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 고민해봤다. 그리고 내린 결론. 아마도, 저자의 책 속 이야기에서도 엿볼 수 있듯, 어느 자리든 마다하지 않고 볼 수만 있다면, 관람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맨 끝줄이어도 좋다는 뜻이지 않을까. 그 공연장 전체를 감싸고 있는 공기와 흐름,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향하고 있는 비슷한 마음과 간절한 열정, 그리고 공연 무대가 뿜어내는 그 감동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건 어느 자리에서든 가능하니까 말이다. 공연장 안으로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그 공연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기쁨의 감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니까.

공연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안다. 어떤 공연도 나쁜 공연은 없다는 것을. 괜히 이 책을 읽고 오랜만에 공연 예매 사이트를 들어가보고 싶어졌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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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들 Entanglement 얽힘 4
예소연.전지영.한정현 지음 / 다람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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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이에금지된말들 #예소연 #전지영 #한정현 #얽힘

우리 사이에 금지된 말들. 예소연 전지영 한정현. 다람. 2025.

정주못. 이곳을 중심으로 한 여자들의 이야기 세 편이란 생각이 들었다. 분명, 여자들의 이야기였다. 아빠가 등장하고 또 남자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여자들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여자들이 무엇을 지키고 또 무엇을 붙잡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다. 같은 여자로서, 나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이 이야기들을 보며, 뭔가를 더 단단하게 다짐하고 싶어지는 느낌이었다. 무엇을 다짐해야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아도 막연하게나마, 괜히 몸을 바로 세우고 힘을 주어 그 다음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는 듯한 느낌.
각 소설들이 갖고 있는 지향점이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때론 자신의 상황과 상태에 좌절하고 힘드기는 하지만,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원인이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은 아닌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자책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는 듯 툭, 그동안 자신을 잡아 끌어내리려는 무언의 힘을 끊어내고, 다시 제 힘으로 서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쉽게 호락호락 넘어갈 수 없다는 다부진 마음도 함께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각 소설의 주인공들의 삶이 쉽지만은 않을텐데도 미소가 지어졌다. 나도 덩달아 이들에게 기운을 다시 불어넣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향한다는 목적이 없어도, 그저 이렇게 서로에게 기대다보면 언젠가는 그 모든 것의 이유도 의미도 알게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러니, 목적이 찾아지지 않는다고 힘겨워할 것 없이, 이 시간과 기간을 꿋꿋하게 잘 지내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전지영 <나쁜 가슴>
그러고보니, 나도 나쁜 가슴이었다. 죄책감도 가졌고 또 뭐든 문제의 원인을 우선은 나 자신에게서 찾으려 애썼던 것 같다. 이 생각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하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내내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그 첫번째 이유는 늘 엄마였으니까. 엄마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압박과 억압이 엄마라는 단어가 가져야하는 사랑과 희생에 묻혀 늘 강제되어왔었다. 이해되지 않는 지점은 늘 엄마의 몫이었고, 엄마가 감당할 수 있어야만 엄마라고 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었다. 늘 여러 몸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하는 짐은 엄마에게 있었으니까. 혹은, 여자에게 있었으니까.
그래서 김유진 씨가 지유에게 스스로를 보호하도록 하는 훈련이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다. 누군가로부터 지켜야하는 몸은 왜 늘 여자의 몸이어야할까, 여자의 신체가 왜 언제나 공격의 대상이어야 하고, 그 공격자에게는 어느 누구도 눈을 흘기지 않는데 왜 피해보는 여자들만 늘 다양한 시선 속에 놓여야만 할까, 싶어서.

한정현 <가짜 여자친구>
가짜 여자친구의 행동이 마음에 확 와 닿는다.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마음과 단호함이 고모의 행동에서 여실히 느껴졌다. 누군가의 눈에는 과하거나 혹은 나대는 모습으로도 비춰진다. 그런 이야기를 곧잘 들어왔던 것이, 행동하는 여자들이었으니까.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이제는 사회적 폭력이 되었고, 이건 모든 경우에 적용되어야 한다. 생각했으면 행동하고 움직여야 한다. 어떤 것에도 굴하지 말아야 하며, 무엇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폭력인지, 제대로 사회에 한방 먹여줄 필요가 있다. 행동하면 바뀐다는 것도 다음 세대 아이들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 무엇을 향해 자신이 나아가야 하는 지를 명확히 알 필요가 있다.
디카 안에 얼마나 다양한 모습이 담겨 있을지가 새삼 더 궁금해진다. 그 사진 속 이야기들이 사회에 공개되었을 때 파장이 생각보다 크겠지. 그 파장이 일으키는 영향력을 확인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예소연 <나의 체험학습>
우리가 갖고 있는 불안이 불행한 현실이 되어 나에게 닥쳐올 거라는 믿음은, 우리 모두에게 조금씩은 있기 마련일 것 같다. 괜한 나의 마음 하나가 그 다음 사건의 원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그로 인해 나에게까지 무서운 일이 닥치게 될 것이라는 생각 말이다. 그리고 우린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도, 그런 마음을 갖게 만드는 사회적 시선과 부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런 부담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지 못하고 전전긍긍 모두 자신의 일인 것처럼 받아들여 끌어안고 고민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겪게 되는 불안한 예감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미 이모가 참 멋지다. 자신의 소중함을 끝까지 지킬 줄 안다는 것이 대단하다. 그런 멋짐을 본받고 싶기도 하다. 수이가 갖고 있는 마력이 어쩌면 미미 이모 덕분에 조금씩 줄어들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기도 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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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후쿠
김숨 지음 / 민음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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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후쿠 #김숨 #민음사 #서평 #책추천

간단후쿠. 김숨 장편소설. 민음사. 2025.

책을 다 읽고도 한참 마음을 고르느라 시간이 필요했다. 아직도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를 이야기하고 설명할 수 있을지 어렵기만 하다. '간단후쿠'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지점부터 너무나 많은 각오를 해야했다. 그 무거움과 슬픔을 감당하기 위한 단단한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간단후쿠를 입고, 나는 간단후쿠가 된다.(7쪽)

이 소설의 첫 문장이다. 이 문장으로 이미 이야기는 시작되고 또 이야기가 끝이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긴 설명도 구구절절한 이야기도 모두 이 한 문장으로 정리가 된다. 간단후쿠(일본군 위안소에서 '위안부'들이 주로 입은 간단한 원피스식의 옷).

밤이 되면 간단후쿠는 군인들을 데리고 잔다.(9쪽)

이 아이들에게 간단후쿠를 입히고, 간단후쿠가 밤마다 군인들을 데리고 자도록 만든 것은 누구인가. 무엇이 이 소녀들에게 이런 가혹하고도 슬픈 시간을 만들어준 것일까. 왜 이런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고, 이제는 어떻게 이 시간을 보낸 소녀들을 만나고 안아줘야할 것인가. 알고 있지만 알지 못하는 그 시간을, 알고 싶지 않지만 알아야 하는 시간을, 김숨의 소설을 통해 하나씩 천천히 느끼게 된다.

나는 고향 집 주소를 말하지 못한다. 나는 집 주소를 모른다.(149쪽)

가장 마음아픈 지점이었다. 집 주소를 모른다. 글을 쓸 줄 몰라서가 아니라 집 주소를 몰라서 집에 돌아갈 수가 없다. 아니, 글을 알아도 주소를 알아도, 집에 가고 싶지 않다의 마음이 집에 가고 싶다의 마음과 오락하는 그 마음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간단후쿠를 입고, 군인들을 데리고 자고, 군인들의 아이를 갖고, 그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요코는, 그럼에도 집에 가고 싶은 것이다. 지금 이곳은 집이 아이니까. 전쟁이 끝나고 집에 갈 수 있기를 바라며, 군표를 모으고 또 숫자를 세며, 집에 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주소를 몰라도, 집에 가고 싶은 것이다. 이 생각을 하면 할수록 감정이 북받쳐 올라와 슬픔과 너무 커진다. 마음이 너무 아프게 저려온다.

이 소녀들은 강으로 가서 간단후쿠를 빨고 삿쿠를 빤다. 조센삐가 되고 아랫도리를 내놓아도 신경쓰지 않으면서도, 강으로 간다. 그러다 강에 간단후쿠를 떠내려보내고, 아기도 떠내려보낸다. 강은 흐르고, 연결되어 있고, 어느 사이엔가 강에 떠내려보낸 것들이 다시 고향에 닿을 거라는 마음으로. 그러기를 바라면서. 정작 소녀들은 그렇게 떠나지 못하지만, 강에서는 떠날 수 있으니까. 그 강에서 소리도 지르고, 울부짖고, 넋을 놓으면서, 강으로 간다. 전쟁이 끝나면 소녀들도 떠날 수 있을 거라 믿으며.

김숨 작가의 소설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거나 때론 숨을 참으며 읽게 된다. 한 순간도 쉽게 이야기를 읽어나갈 수 없는 무게감을 지니고 있는 문장들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간단후쿠>는 더 그랬다. 짧은 이야기들이 연달아 나오며 이야기가 빠르게 진행되어 나갔지만, 각 이야기가 소설의 이야기라기보단, 박소란 시인의 '추천의 글'에서와 같이 시였기 때문이다. 한 문장 한 문장을 꾹꾹 눌러 묵직하게 전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쉽게 넘길 문장이 하나도 없었다. 그 문장들이 나오기까지의 시간과 고민과,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소녀들의 삶이 있었기에 더욱, 그 문장들을 가벼이 읽어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은 그 날은 하루종일 마음이 흐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이 소설의 끝이 마음에 들었다. 마음으로 요코가 개나리로 다시 돌아와 아기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간단후쿠>의 표지 그림이 개나리다. 봄이 오고, 날이 따뜻해지고, 모든 것이 다시 새롭게 시작되고, 그런 시작을 알리는 꽃이 개나리. 그런 개나리처럼 개나리도 모든 아픔을 잊고 새롭게 따뜻한 봄날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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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레벨에 잠이 오니?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94
이지은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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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벨에잠이오니 #이지은 #미래인 #청소년소설 #서평

그 레벨에 잠이 오니?. 이지은 장편소설. 미래인. 2025.

게임에 빠져 살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 밤새 게임에 빠져 살다보니 낮을 밤처럼 지내는 아이들도 참 많다. 굳이 대화를 나눠보고 대답을 듣지 않아도, 그 모습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아이들은 늘 잠과의 전쟁 중이니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학교에 등교한다. 아무리 깨워도 눈을 뜨지 못한다. 그냥 잠시 졸음에 빠진 수준이 아니라 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백프로 밤에 잠을 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 잠을 자지 않는 이유의 큰 부분이 게임이다. 도대체 게임은 어떤 매력이 있길래 아이들을 이렇게 쉽게 사로잡는 것일까.
이 소설을 읽고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중독이다. 어떤 이유로 중독이 되었는지, 가까운 가족의 중독을 바라보는 시선과 마음은 어떤지, 그리고 그런 중독을 이용하려드는 부류의 의도는 무엇인지까지. 그저 단순히 중독을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결론이었다. 아이들의 약한 의지력이 이렇게 중독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라고, 어른들이나 잘 모르는 사람들은 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는다면 그런 생각이 쏙 들어가게 될 것이다. 중독은, 개인의 문제나 의미만을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사람들을 중독시키려는 것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런 중독을 이용한 기업의 마케팅도 종종 확인할 수 있기도 하니까 말이다.
요즘 아이들에게 게임을 이야기하다보면 미리 방어를 하느냐고 이렇게 대꾸하는 아이들이 있다. '게임은 질병이 아니에요.' 지금껏 게임이 질병이고 치료가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기준으로 아이들을 해석하려들기 때문에 비롯된 반응이 아닐까 생각해보고 된다. 물론, 질병이나 아니다라는 것을 가지고 따지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 다만 그 게임의 주체가 '나'인지, 혹은 '나'의 주체가 게임인지를 분명히 하고난 다음 이야기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지금 게임, 게임 중독과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게임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주체성에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에 휘둘리고 있는 중인지 혹은 그 게임을 쥐락펴락하고 있는지, 누가 주도권을 갖고 있는지를 확실히 해야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 만약 너무 많이 게임 속에 빠져있다면 그렇게 빠진 이유가 자기 자신에게 있는지 아니면 그 외부적 요인에 있는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막연하게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으로만 치부해버린다면, 오히려 근본적인 문제나 원인을 찾지 못한 채 해결도 쉽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설에서 엄크가 했던 생각과 행동이 참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의심하고 예의 주시하고, 문제의 원인을 확인하고 진실을 찾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들이, 결국은 우리가 주체적으로 어떻게 세상을 해석하고 판단할 것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형에서부터 비롯된 기업과 세상에 대한 문제 인식을 바탕으로, 스스로 해결해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믿고 따르기만 하면 이젠 그런 세상에 당하기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호의적으로만 받아들이지 말아야한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분명 숨겨놓은 의도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것이든 무엇을 하든 어느 자리에서든, 자신의 의지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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