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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 ㅣ 창비청소년문학 145
김민서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평점 :
#호구 #김민서 #창비 #선생님북클럽 #서평
호구. 김민서 장편소설. 창비. 2026.
'호구'의 동음이의어는 6개나 된다. 또 여러 뜻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이 단어를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뜻이 있다.
호구4(虎口) <2>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 단어는 "<1> 범의 아가리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처지나 형편을 이르는 말. <3> [체육] 바둑에서, 바둑돌 석 점이 둘러싸고 한쪽만이 트인 그 속."의 다른 뜻도 갖고 있다. 결국 호랑이의 입 속에 들어가 있는 형세라는 거다. 어쩌지 못하고 힘에 눌려 당할 수밖에 없다는 뜻. 듣기만해도 호구가 되고 싶지 않다. 되고 싶은 사람이 있기는 할까.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이 책에서도 분명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를 지칭할 것 같았고, 그와 관련한 호구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었고, 읽다보면 결국 힘의 논리에 당하게 되는 이의 모습을 지켜봐야하는데, 그런 과정이 썩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청소년이 그 대상이 된다면 더욱, 학교가 그런 공간이 된다면 더더욱 불편할 수밖에 없으니까.
"돈 달라 하면 돈도 줄걸? 호구 새끼."
호구. 그래, 그 말이 맞다. 나는 싫은 소리 한 번 못 하는 호구 새끼다.(14쪽)
맞닥뜨리고야 말았다. 호구. 주인공 윤수는 자기 스스로를 호구라고 지칭했다. 스스로 자신이 자신을 인정하는 순간, 끝났다는 생각을 했다. 아, 이제부터 이 윤수의 이야기는 내내 불편해지겠구나 싶었다.
"바둑판에는 더도 덜도 말고 따악 삼백예순하나의 자리가 있다. 근디 고 자리 하나 먹으려는 놈은 요래 많이."
할아버지 말소리가 나직하다.(...)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난다.일어나도 앉아도 작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든다. 언제나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을 올려다본다. 할아버지는 항상 아래에 있으니까. 희끄무레한 할아버지는 짓눌리기만 한다. 짓눌려서 호구 속에 있다.(...)
"착하지 말어라, 윤수야."
나는 말을 잃는다.
"싹바가지 없게 살어라."(69쪽)
할아버지가 평생을 보아왔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할아버지가 올려다본 세상이 어쩌면 그대로 윤수를 내리누른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해주었던 말이지 않을까. 이 세상이 어떤지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윤수가 더 이상 그 세상으로부터 눌리는 것을 바라지 않아서, 윤수를 지키기 위한 할아버지의 가장 나직하면서도 단단한 말이지 않았을까.
착하지 말라는, 싹바가지 없게 살라는 말이 내내 남는다. 나의 올해 목표가 착해지는 거였는데, 그럼 나도 착해지다보면 호구가 될 수 있다는 걸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윤수처럼 나도 어딘가 찢어지고 뭉개져서 피를 철철 흘리고 돌아오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순간 멈칫하게 됐다.
"윤수야...... 무리하여 못되게 살지 않어도 된다. 일부러 착하게 살 필요도 읎다...... 행복한 놈이 되어라."(169쪽)
행복. 과연 뭘까. 무엇이 행복일까. 행복을 추구하는 건 어느 누구에게나 공통의 삶의 목표이지 않을까 싶은데, 사실 이 행복이란 것이 무척 추상적인 개념이다. 행복을 어느 것 하나로 딱 규정지어 말할 수도 없고 그림이나 형상으로 그려 나타낼 수도 없다. 그러니 각자가 갖고 있는 행복의 기준이 다르고 또 모양새도 다를 수밖에 없다. 지극히 주관적인 목표라는 거다. 그래서 아마 윤수가 생각하는 행복과 할아버지가 생각하는 행복, 엄마가 생각하는 행복이 다 다를 것이다.
각자가 자신이 얻고싶은 것을 얻으며, 이루어야겠다고 다짐한 지점까지 달려가며 어떤 모습의 삶이 행복이란 기준에 충족될 것인가를 끊임없이 가늠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지금 나는 이쯤에서 행복한가, 어디까지 가야 그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을까, 행복을 위해 지금 어디까지 얼마큼이나 살아내야 할 것인가 등등. 단순히 행복이란 단어 하나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너무도 많은 생각이 복잡하고도 어지럽게 주변을 맴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답을 찾아나가야 한다. 윤수처럼.
"행복하지 않은 삶에도 가치가 있어?"
그 말에 나는 얼마 전 져 버린 할아버지 인생을 떠올리고, 진즉에 져 버린 할머니 인생도 떠올리고, 당하기만 하는 우리 엄마 인생과 내 인생까지 떠올리곤 답한다.
"행복하지 않은 삶에도 가치가 있어."(207쪽)
그럼에도 윤수가, 온이가, 그리고 권이철과 권이수가 각자의 삶과 기준에서 행복한 지점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엄마가 옆집 아줌마도, 그리고 선생님도. 여전히 모두의 행복을 빌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