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구 창비청소년문학 145
김민서 지음 / 창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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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구 #김민서 #창비 #선생님북클럽 #서평

호구. 김민서 장편소설. 창비. 2026.

'호구'의 동음이의어는 6개나 된다. 또 여러 뜻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이 단어를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뜻이 있다.

호구4(虎口) <2> 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 단어는 "<1> 범의 아가리라는 뜻으로, 매우 위태로운 처지나 형편을 이르는 말. <3> [체육] 바둑에서, 바둑돌 석 점이 둘러싸고 한쪽만이 트인 그 속."의 다른 뜻도 갖고 있다. 결국 호랑이의 입 속에 들어가 있는 형세라는 거다. 어쩌지 못하고 힘에 눌려 당할 수밖에 없다는 뜻. 듣기만해도 호구가 되고 싶지 않다. 되고 싶은 사람이 있기는 할까.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보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이 책에서도 분명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를 지칭할 것 같았고, 그와 관련한 호구의 이야기가 담겨 있을 것이었고, 읽다보면 결국 힘의 논리에 당하게 되는 이의 모습을 지켜봐야하는데, 그런 과정이 썩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청소년이 그 대상이 된다면 더욱, 학교가 그런 공간이 된다면 더더욱 불편할 수밖에 없으니까.

"돈 달라 하면 돈도 줄걸? 호구 새끼."
호구. 그래, 그 말이 맞다. 나는 싫은 소리 한 번 못 하는 호구 새끼다.(14쪽)

맞닥뜨리고야 말았다. 호구. 주인공 윤수는 자기 스스로를 호구라고 지칭했다. 스스로 자신이 자신을 인정하는 순간, 끝났다는 생각을 했다. 아, 이제부터 이 윤수의 이야기는 내내 불편해지겠구나 싶었다.

"바둑판에는 더도 덜도 말고 따악 삼백예순하나의 자리가 있다. 근디 고 자리 하나 먹으려는 놈은 요래 많이."
할아버지 말소리가 나직하다.(...)
할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난다.일어나도 앉아도 작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든다. 언제나 그런 식으로 모든 것을 올려다본다. 할아버지는 항상 아래에 있으니까. 희끄무레한 할아버지는 짓눌리기만 한다. 짓눌려서 호구 속에 있다.(...)
"착하지 말어라, 윤수야."
나는 말을 잃는다.
"싹바가지 없게 살어라."(69쪽)

할아버지가 평생을 보아왔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할아버지가 올려다본 세상이 어쩌면 그대로 윤수를 내리누른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해주었던 말이지 않을까. 이 세상이 어떤지 잘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윤수가 더 이상 그 세상으로부터 눌리는 것을 바라지 않아서, 윤수를 지키기 위한 할아버지의 가장 나직하면서도 단단한 말이지 않았을까.
착하지 말라는, 싹바가지 없게 살라는 말이 내내 남는다. 나의 올해 목표가 착해지는 거였는데, 그럼 나도 착해지다보면 호구가 될 수 있다는 걸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 윤수처럼 나도 어딘가 찢어지고 뭉개져서 피를 철철 흘리고 돌아오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순간 멈칫하게 됐다.

"윤수야...... 무리하여 못되게 살지 않어도 된다. 일부러 착하게 살 필요도 읎다...... 행복한 놈이 되어라."(169쪽)

행복. 과연 뭘까. 무엇이 행복일까. 행복을 추구하는 건 어느 누구에게나 공통의 삶의 목표이지 않을까 싶은데, 사실 이 행복이란 것이 무척 추상적인 개념이다. 행복을 어느 것 하나로 딱 규정지어 말할 수도 없고 그림이나 형상으로 그려 나타낼 수도 없다. 그러니 각자가 갖고 있는 행복의 기준이 다르고 또 모양새도 다를 수밖에 없다. 지극히 주관적인 목표라는 거다. 그래서 아마 윤수가 생각하는 행복과 할아버지가 생각하는 행복, 엄마가 생각하는 행복이 다 다를 것이다.
각자가 자신이 얻고싶은 것을 얻으며, 이루어야겠다고 다짐한 지점까지 달려가며 어떤 모습의 삶이 행복이란 기준에 충족될 것인가를 끊임없이 가늠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지금 나는 이쯤에서 행복한가, 어디까지 가야 그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을까, 행복을 위해 지금 어디까지 얼마큼이나 살아내야 할 것인가 등등. 단순히 행복이란 단어 하나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너무도 많은 생각이 복잡하고도 어지럽게 주변을 맴돌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답을 찾아나가야 한다. 윤수처럼.

"행복하지 않은 삶에도 가치가 있어?"
그 말에 나는 얼마 전 져 버린 할아버지 인생을 떠올리고, 진즉에 져 버린 할머니 인생도 떠올리고, 당하기만 하는 우리 엄마 인생과 내 인생까지 떠올리곤 답한다.
"행복하지 않은 삶에도 가치가 있어."(207쪽)

그럼에도 윤수가, 온이가, 그리고 권이철과 권이수가 각자의 삶과 기준에서 행복한 지점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엄마가 옆집 아줌마도, 그리고 선생님도. 여전히 모두의 행복을 빌어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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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출근합니다 - 식물과 함께 쓰는 나무의사 다이어리
황금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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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출근합니다 #황금비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숲으로 출근합니다. 황금비. 한겨레출판. 2026.
_식물과 함께 쓰는 나무의사 다이어리

이미 제목부터가 관심이 안 갈 수가 없다. 숲으로 출근한다니. 그 자체로도 얼마나 부러운지. 매일을 숲에서, 식물과 함께, 나무 의사로 살아가는 삶은 얼마나 행복한 삶일까. 물론 뭐든 직업이 되는 순간 즐거울 수 없고 좋았던 것마저도 싫어진다고들 하지만, 안 가본 길이 아름답다고,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은, 그저 부럽고 또 부럽기만 할 뿐이다. 수목원에서 온갖 자연을 가까이 두고 사는 삶이 어떤 것일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매일 많은 사람을 가까이 두고 사는 삶을 살다보니 더더욱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암튼, 이 책은 읽기 전부터 무조건 호감이다.

늦가을 수목원을 산책할 때면 통통해지기 시작하는 목련 꽃눈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한다. 내년에 모든 꽃눈이 벌어져 화려한 꽃을 피우면 얼마나 아름다울지 기대감이 차곡차곡 쌓인다.(16쪽)

그 꽃눈이 가을을 시작으로 겨울을 지나 봄이 막 되려는 때에 슬며시 벌어질 때, 얼마나 아름다운지. 목련은 이제 막 벌어지기 시작할 때가 가장 아름답다.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나중에 정원을 꾸미고 살 수 있게 될 때 내 정원에 들여놓고 싶은 나무다. 꽃만이 먼저 커다랗게 달려있다 목련꽃이 다 진 후 커다란 잎을 매다는 것도 매력이다. 매번 목련은 볼 봄을 기다리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중국이 원산지인 배롱나무는 우리나라에서도 오랜 옛날부터 정원수로 심어 길렀다. 오래 피는 꽃은 왕을 향한 중심을, 매끈한 줄기는 청렴결백함을 상징한다고 해 오래된 서원이나 향교에서는 300~500년 된 배롱나무 고목을 찾아볼 수 있다. 강릉의 오죽헌, 안동의 병산서원, 서천의 문헌서원 등이 대표적이다.(128쪽)

안동의 병산서원 배롱나무를 직접 본 기억이 난다. 그저 오랜 시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한참을 넋 놓고 바라볼 수 있을 정도였다. 마치 병산서원과 한몸인 양 그 자체로도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배롱나무를 알게 된 건 예전 근무지에 심어져 있던 아주 작은 나무를 발견하고부터였다. 신기하게도 한번 꽃이 피더니 여름 내내 피어있다가 조금씩 더운 기운이 사라질 때쯤 꽃이 떨어졌다. 어쩜 이리도 오랫동안 꽃이 매달려 있을까 싶었는데, 그 나무가 배롱나무였다. 누군가가 나무 백일홍이라고 일러주기도 했었다. 그때부터 배롱나무도 나의 정원에 들일 나무 목록에 포함되었다.

동백나무는 한겨울에 꽃을 피운다. 그래도 괜찮다. 동백꽃은 대표적인 조매화이기 때문이다. 동박새, 직박구리 등 한겨울 먹이가 부족한 새들은 동백꽃은 꿀을 빨아 먹고 꽃가루를 옮긴다.(218쪽)

동백꽃은 두말이 필요 없다. 지금까지 본 빨간색 중 가장 예쁜 빨간색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고고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슬픈 역사를 품고 있는 꽃이란 생각에 경건해지기도 한다. 그런데 겨울 새들에게 먹이를 나눠준다니, 얼마나 고맙고도 아름다운지. 베풀고 나눌 줄 아는 마음과 진리는 역시 자연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또 한번 느낀다. 우리 사회를 다시금 지탱할 수 있도록 만드는 지혜는 자연에서 배워야 한다는 것을.

제주에서 후박나무 400그루의 껍질이 벗겨졌다는 뉴스를 보고, 그 조경업자가 실제로 후박나무를 제대로 알고 껍질을 벗긴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내 주변의 존재가 나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주변의 존재에게 마치 자신을 대하듯 다정하게 구는 사람이라면 나무 400그루의 껍질을 무자비하게 벗겨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64-66쪽)

충격적이면서도 끔찍하단 생각을 가장 먼저 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400그루의 껍질을 벗기면 단 한번도 껍질이 벗겨지는 나무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못했을까 싶었다. 만약 나무가 아니고 사람이었다면, 이 정도의 엽기적인 행위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자연이 인간과 다르다는 인식, 여전히 인간이 자연을 함부로 할 수 있다는 오만이 불러온 결과라는 생각을 했다.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인간의 잔인함이 무섭다.

천리포수목원으로 숲해설 들으러 가고 싶어졌다. 어느 계절이어도 다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사계절에 한 번씩을 다녀오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싶기도 했다. 역시, 나무의사의 삶이 부럽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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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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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나쁜무리 #예소연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소설집. 한겨레출판 2026.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이 있다. 예소연이란 소설가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야기 하나하나가 갖는 의미도 분명하고 각 작품들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맥락과 요소가 독자가 예상하지 못할 정도의 개성있는 전개가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어쩜 이런 이야기를 이런식으로 풀어낼 수 있을까, 어느 소설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드는 이야기들이었고, 그래서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들도록 만들어주었다. 흥미로우면서도 단단하게 만들어져가는 이야기를 보는 재미가 가득했다.

"네가 뭔가를 보고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정말 내가 그걸 볼 수 있어?"
"마임? 그럼 볼 수 있지."
"그게 보이지 않더라도?"
"응."
"실체가 있는 것처럼?"
"실체가 있는 것처럼."(33쪽_'추운 뺨에 더운 손' 중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 그래서 사실과 사실이 아닌 것. 과연 어느 쪽이 맞고 혹은 맞지 않을까의 구분이 과연 있기는 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보인다고 있는 것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다고 사실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결국 이 사이의 균형과 실체를 어느 정도에서 맞추고 또 찾을 것인가의 문제일 것이고, 이 문제는 각자의 삶에 대한 자세와 충실도에서 결정되지 않을까. 또한 믿음의 어느 한 지점을 향해, 그리고 그 향하고 있다는 마음이 지금의 나를 버틸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절연한 부모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이중일에게는 지금 유지하고 있는 이 이상한 평화를 깨트릴만한 용기가 없었다. 이토록 허무하게 살아내는 삶. 그게 이 중일이 정의 내린 이상한 평화였다.(45쪽_'작은 별' 중)

사람은 결국 자신의 행위와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진짜 아무 일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듯했다. 어쩌면 더 아무 일이라도 일어나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결국 체념과 포기가 어쩌면 또 다른 평화로운 순간을 맞이할 수 있게 해준 마음의 공허한 상태일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자신을 조금이나마 덜 힘들게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중 1이요?'(51쪽)의 이중일에게는 있어 2는 무엇이고 그 중 1은 무엇일까, 가만히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동이 트고 있었다. 어제부터 오늘이야말로 낮이 오는 줄 모르고 밤이 오는 줄 모르게 살았다. 정말 사는 것 같았다. 모아는 그렇게 살아 있음을 감각하며 속삭이는 일은 정말로 사람을 살리는 것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시내는 자신이 살기 위해 혹은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이 모임을 만들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178쪽_'소란한 속삭임' 중)

가장 인상적인 소설이었다. 결국 살아내기 위한 속삭임이 필요했던 사람들이 갖고 있는 그 내막들이 하나같이 치열하고도 진지한 그들의 삶에 대한 진심이 가득 담겨 있어 어느 것 하나 쉽게 넘길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럼에도 각자의 각각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모두와 함께 만들어지면서 비로소 아팠던 이야기들이 지나가고 또 살아갈 수 있는 이야기들로 바뀌게 되었다. 이들이 이 신기한 경험을 스스로 만들어낸다는 것이 놀라웠고, 그런 경험을 통해 다시 살아내고 위한 방법을 절실하게 찾아나갔던 것이란 생각에 짠했다.

이 소설집은 만난 것이 참 다행이었다. 이 소설집 속의 인물들을 만난 것이 참 좋았다. 그래서 이들이 앞으로의 자신의 삶을 어떤 식으로 이끌어 나갈 것인가를 다시 지켜보고 싶어졌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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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
고혜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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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없는세상의아들들 #고혜경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2기

아버지 없는 세상의 아들들. 고혜경 지음. 한겨레출판
_그리스 신화로 읽는 현대 남성 내면의 원형들

신화는 상징이라는 생각을 한다. 신화의 일정 부분은 인간의 삶을 형상화하여 담고자 하는 이야기를 각종 신의 영역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이다. 강력한 상징과 은유가 신화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은 신과의 조우와 조화를 꿈꾸게도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에 나오는 신들도 결국 인간의 내면과 속성을 확인하기 적절한 부분이 되는 것이다.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확연히 구분하지 않고, 일정 부분 그 양극을 넘나드는 요소가 바로 신화를 알아가는 묘미이지 않을까 싶다.
특히 남성성의 대표인 아버지라는 존재의 의미는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 속에 담긴 여섯 신들을 면모를 들여다보며, 지금까지도 우리 사회에 통용되고 반영되어 남아있는 남성성이 무엇일지도 주의깊게 살펴보게 됐다. 사실은 궁금했다. 어느 정도로 우리는 신화적 사유의 영향을 받고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인류의 원형적 아버지인 제우스를 돌아보며 '아버지'가 얼마나 절실하면서도 사무치는 단어, 느낌, 이미지인지 새삼 확인한다. 가부장제라는 체제하에서 누구에게나 아버지란 상처와 두려움의 대상이자 동시에 한없는 동경의 대상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일생 떠날 수 없는 존재가 아버지인가 보다.(67쪽)

사실 아들을 먹는 장면의 공포와 두려움이 있었다. 아무리 신화적 장치라고 해도 이 장면이 끔찍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이야기이지 않을까 싶었다. 아버지이기 이전에 자신의 권력과 생존과 세력을 유지하려는 아버지의 집념과 집착, 즉 아버지라는 무한 권력 앞에서 이미 다른 것은 무의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버지에 대한 갈망과 존재적 의미, 그 강력한 뿌리와 근간 속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알았다. 결국, 그들의 손바닥 안에서 우리 옴짝달싹 못하는 것이다.

헤파이스토스적 성향이 강한 사람들 눈에는 언제나 무언가 '찾는 중'이라는 초조가 읽힌다. 집이 있어도 집을 찾고 가족이 있더라도 마음 가족을 찾아 헤맨다. 따뜻하고 안전하며 자신의 결함이나 취약함조차도 받아들여지는 '홈'에 대한 허기를 지상 어디에서, 또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싶다.(91쪽)
평소에는 무엇과도 거리를 두는 아폴론이 살육과 무차별적 파괴가 자행되는 이런 '원시적 전투'에 참여하는 이유는, 아폴론이 싸우는 적들이 바로 그가 혐오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아폴론은 마우스를 싫어하고 무질서를 견디지 못한다. 동공 풀린 눈, 흐느적거리는 몸, 혀가 꼬일 정도의 만취 상태, 욕망으로 뒤엉켜 있는 자들의 끈적거림을 끔찍하게도 싫어한다.(128쪽)

'홈'에 대한 간절함, 집과 가족을 꿈꾸며 또한 정돈되고 질서정연한 사회에 대한 집착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추구해나가고자 하는 안정에 대한 갈망이지 않을까.

개인이든 집단이든 우리가 앓는 각종 병리적인 증상들은 억압된 심적 에너지를 의식화하라고 촉구하는 영혼의 호소일 터이다.(30쪽)
올림포스로의 귀환은 헤파이스토스에게 통과 의례다. 세상에서 자신의 바른 자리를 찾으며, 자신의 진정한 가치와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바로 통과 의례의 본래 뜻이다.(116쪽)
그리스는 자신의 세계다. 올림포스는 여섯 여신, 여섯 남신이 균형을 이루고 있고 아폴론은 이 열두 신 중 주요한 한 자리를 차지한다. 그런데 지난 3000여 년 동안 인류는 아폴론은 시대를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편향되게 발전해왔다. '몸 없는 머리' 이미지가 아폴론이 시대를 살아낸 우리의 현재라면, 다시 온전한 몸, 땅, 어두움, 그리고 모든 창조의 근원인 혼돈으로 의식의 눈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171쪽)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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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싫을 때 읽는 책 - 마감과 고갈 사이에서 건진 스물네 개의 문장들
금정연 지음 / 북트리거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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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싫을때읽는책 #금정연 #북트리거 #서평 #책추천

글쓰기 싫을 때 읽는 책. 금정연. 북트리거. 2026.
-마감과 고갈 사이에서 건진 스물네 개의 문장들

금정연이란 작가는 참 맛난 글을 잘 쓰는 작가다. 작가의 몇 권의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이고, 이 책이 그런 면에서 참 딱이다 싶을 정도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청소년들이 읽을 책, 그것도 <고교 독서평설>에 실릴 글이니 더더욱 갈고 다듬어 정선된 문장으로 글을 쓰고싶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이미도 긴 시간을 작가로 살면서 또 글쓰는 이로 살면서 글쓰기 싫을 때를 이야기하지만 역시나 작가는, 글을 쓰고싶어하는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그러니 이 책은, 글을 쓰고 싶은 사람으로서의 글과 나누는 밀당을, 마치 글과 연애하는 심정으로 써내려간 글들이지 않을까. 나의 이 책에 대한 한줄평은, '글과의 밀당을 맛있게 하는 책'이다.

야구에 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무서움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그건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무서움을 늘 거기에 있다. 하지만 무서움 뒤에는 다른 많은 것도 있다. 어쩌면 인생에 대해 알아야 할 건 그게 전부인지도 모른다.(27쪽)

'무서움'이란 단어가 확 와닿았다. 요즘 그런 무서움을 종종 느끼고 있는 중이긴 하다. 작가처럼 글에서도 그렇고 내가 하는 일에서도 그렇고, 내가 의도하지 않았으나 내가 하는 일과 말과 글과 그 모든 것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하나같이 나도 모르는 사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는 듯한 모습이 소름이 돋기도 한다. 과연 이 방향이 옳은 것일까, 맞는 방향을 향해 나는 나의 노력과 힘을 쓰고 있는 것이 맞을까, 안 갈 수 없어 가고 있기는 하나 문득문득 무서움이 순간 나를 멈추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아직 나쁜 소식을 말하지 않았네. 나쁜 소식은, 지난 한 달 동안 이것저것 비우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쓰느라 정작 밀린 일들은 거의 하지 못했다는 사실. 하지만 덕분에 이 글을 쓸 수 있었으니 그러면 된 거 아닌가? 이게 바로 내가 돈이 되는 글쓰기를 찾아 영화판과 드라마판을 기웃거리면서도, 여전히 에세이 쓰기를 놓지 못하는 이유다. 젠장, 나는 에세이가 너무 좋다.(206쪽)

작가는 글을 무척 사랑한다. 금방 딱 알 수 있다. 에세이가 너무 좋다는 사랑고백은 했지만 비단 에세이만이 아닌 것 같다. 이 책 안에 수록된 무수히 많은 책들을 보아도 이만큼이나 방대한 독서력을 지니고 있는 것은 단지 돈이 되는 글쓰기를 위해서만은 아닐 것이다. 돈이 안 되는 독서를 이미 꾸준히 그것도 무척 잘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에 수록된 그 많은 책 중 읽은 책보다 안 읽은 책이 훨씬 많고,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의 작가나 작품의 수준은 이미 벌써 훨씬 전에 넘어섰다. 글이 안 써져서 꺼내 본다는 책들과 그 책들을 곱씹고 있는 작가를 상상해보면, 이미 그 과정이 글을 쓰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한다. 무언가 멈추지 않고 계속 책으로 생각을 이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써야만 그 모든 것들이 마무리되고 정리되는 것은 있다. 이 책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책의 제목이다. 나도 그럴 때가 있어서. 많은 책을 읽고 싶어 이런저런 책을 본다. 그리고 읽은 책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그런데 때론 읽고만 싶어질 때가 있다. 글로 남기는 행위 자체가 너무 귀찮은 것이다. 비단 독서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다. 내가 하는 일에서 해내야하는 문서 작업들이 있고 그런 문서를 만들어내는 일들이 지루하고도 지난한 소모전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럴 때면 과연 이걸 계속 하고있어야하는 게 맞을까 싶다. 내가 뭐하는 거지 싶어지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 작가가 꺼내보는 책들은 내 옆에 없지만, 대신 금정연의 <글쓰기 싫을 때 읽는 책>이 있으니, 대신 읽으며 다시 글을 써 나가본다. 여기서 글은 꼭 글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언가 각자 해내야 할 일들을 하는 'ㅐ위'를 글로 대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옆에 두고 가끔 읽으며, 다시 글을 써 나가보려고 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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