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를 멈추지 않을 거야 - 고전 속 퀴어 로맨스
숀 휴잇 지음, 루크 에드워드 홀 그림, 김하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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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로맨스를 고전에서 접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퀴어라는 인식은 최근에 나타난 것이라는 근거없는 생각을 어렴풋이 갖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혹은 고전 속 이야기는 일정 부분 고전이라는 명성에 기대어 오늘날 퀴어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으로부터 보호받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치 고전 속의 이야기는 신적이고 영웅적인 면이 더 부각되며 오히려 퀴어의 인식보다는 다른 면을 더 강조해 의미를 부여하도록, 우리의 생각을 한정하고 제단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은 물론 모두,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만큼 지금까지 고전과 퀴어의 연관성을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에 대한, 그래서 이 책이 무척 충격적이면서도 새로운 생각으로 확장해 나아가도록 만들어 준, 고마운 책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며 이 이야기들을 진짜 순수하게 '로맨스'로만 볼 수 있는 것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간혹 작품 속 로맨스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감정상의 사랑의 로맨스만을 말하지 않는 경우도 있으니까 말이다. 특히 고전이라고 하니 우리나라 고전 작품에서도 '임'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 종종 있고, 그럴 때는 주로 '임'이 임금을 뜻하게 되며 이때의 사랑은 곧 '충'을 의미하게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겉으로 볼 때는 사랑이지만 그 사랑 안에 담겨 있는 또 다른 의미가 작품 안팎에 깔려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만 바라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였고, 이 책 속 고전 작품들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작품이나 혹은 특정 인물에 대한 이야기들은, 있는 그대로 감정상의 사랑으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오히려 오늘의 퀴어 사랑보다 더 인정받고 있는 그대로 사랑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럴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해졌다. 솔직히, 현재 '퀴어'를 말하려고 하면 많은 사회적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쉽게 공론화하기 어렵고 또한 그렇게 하기 위해 감수해야 하고 거쳐야 할 난관이 참 많은 것이 사실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는 퀴어에 대한 낙인, 차별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 책 속 이야기를 그저 고전 속 이야기로만 보고 넘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고전에서도 아무렇지않게 다루어지고 있다면,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지 못할 것이 무엇이 있을까 싶은 마음이라고나 할까.

이 책을 관통해서 자주 나오는 단어, 그래서 신경쓰이는 단어가 있다. 바로 '소년'이라는 단어다. 제우스를 비롯해 우리에게 꽤 익숙한 인물들 사이에서도 이 '소년'에 대한 관심과 애정, 사랑은 지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해보아야할까 싶긴 했다. 만약 이 이야기가 오늘날의 이야기였다면, 이분들을 우리는 뉴스나 신문 기사에서 만나보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면, 신화의 성격이 분명한 작품 속 이야기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단순히 어린 소년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폭넓게 접근해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접근의 가장 근간에는 결국, 이런 류의 사랑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감정인가에 더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신도 인간도, 사랑의 감정은 그 대상을 누구로 두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감정이어야 하느냐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형태의 고전을 읽으면서 여러분은 현재의 언어와 지식을 과거에 적용하려고 애쓸지도 모른다. 우리가 자기 정체성을 표현하는 용어들을 과거에 대입하기란 쉽지 않은데, 각 용어에 고유한 역사적 맥락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대인에게 오늘날과 같은 겸(게이, 바이셀슈얼, 퀴어, 트랜스)이 없었을지는 몰라도, 인간성의 본질로 말미암아 우리는 연관성을 찾게 되고, 당연히 신중하게 연결고리를 이을 수 있다.(14쪽)

왜 저자가 이렇게 이야기했는지, 이 책을 다 읽고 알았다. 결국, 오늘날의 용어로 과거를 제단해 잘라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용어만으로 모두 규정할 수 없는 맥락이 존재하며, 그 맥락 안에 분명 이어져오는 이들의 사랑이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 사랑은 어느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지극히 자연스럽고도 아름다운 감정이었다는 것. 다른 시선이 끼어들지 않아도 되는, 각 부분에 충분히 내재되어 있던 감각이었다. 그걸 알아챌 수 있기만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가 고전에서 답을 찾으려는 이유를 이 책을 읽으며 한번 더 알았다. 고전을 통해 지금의 우리를 다시 엿볼 수 있다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이래서 고전이구나 싶기도. 그리고 이렇게 '퀴어 로맨스'라는 이름으로 고전을 만날 수 있게 된 것도 큰 행운이었다. 나의 생각이 한뼘 더 자랐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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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나를 위해 - 철학에게 일상을 묻다
에두아르도 인판테 지음, 유아가다 옮김 / 다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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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일상을 철학에게 물으면,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나의 내공은 아직 부족한 듯하다. 이 책을 다 읽었고, 각 일상에서 마추지는 가치와 문제 상황에 대한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과연 이런 문제가 내 앞에 떡하니 놓이기 된다면 나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다시 이 책을 들여다보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당당히 나의 생각을 조리있게 말하고 그 판단의 근거를 찾아 어느 누구와의 논쟁에서도 내 생각을 분명히 말할, 나만의 관점이 바로 서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책 한 권으로 이 모든 철학 사상과 논리를 다 알았다고 말하는 것 또한 무리이고 지나친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책에 담긴 18가지의 주제는 모두 우리가 가볍게 말하고 지나칠 수 있는 문제들이 아니다. 평생에 걸쳐 나만의 생각과 판단을 정립해 나가야하는 중요한 주제들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주제를 이 정도로 모두 알 수 있었다고 말해도 되느냐는 것이다. 사상가들은 평생을 두고, 심지어는 목숨을 걸고 이야기한 것들임을 안다면, 더욱 신중히 각 주제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확립해나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책 한 권 혼자 다 읽은 것으로는 한참 부족한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은, 이런 부족함을 알기를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각기 다른 사상을 펼쳐 나갔던 여러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한 꼭지에 담아주고 있다. 하나에 대해 바라보는 시각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사상가들은 입장에서도 서로를 비판하며 자신만의 철학을 세워 나갔음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묻는다. 과연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는 이 중 어떤 사상가의 이야기에 동의하는지,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그리고 이런 질문에 우리는 고민하게 된다. 그렇다면 나는, 이와 같은 상황에서 어느 쪽의 생각을 따를 것인가에 대해 말이다. 그리고 이런 고민이 곧, 이 책에서 우리에게 해보라고 하는 철학이지 않을까.
이 책은 철학책이다. 철학적 사상가들은 생각을 교실 안에서 학문으로만 다루고자 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일상적 대화 혹은 삶의 상황 안에서 마주하게 되는 아주 흔한 상황에서 과연 우린 어떤 생각을 해야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이것이 철학책이 아니면 무엇이 철학책일까. 철학이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흔히 인식, 존재, 가치의 세 기준에 따라 하위 분야를 나눌 수 있다."라고 정의되어 있다. 결국 철학은,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서의 우리의 삶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끊임없이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우린 이 책에 담긴 18가지의 주제에 대한 질문에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는 과정의 철학을 해야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철학을 할 때,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철학 사상가들의 이야기는 분명 도움이 되는 것이다.

왕따는 우리가 만든 기형적인 교육 시스템의 결과라고 볼 수 있어요. 학교 교육의 실패는 학생의 잘못이 아니라 교육 모델의 실패입니다. 서로 경쟁하고 상대방을 경쟁자로 보게 만드는 교육 시스템 아래에서 왕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놀랍지 않습니다. 루소는 왕따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 미친 사람들로 가득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교육을 개혁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52쪽)

사회는 아직도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고, 그 문제들은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고 세상을 만들어 나가면서 비롯된 것들이므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 또한 인간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중 교육도 마찬가지. 과거에서부터 여전히 현재까지도 사라지지 않고 있는 문제는 존재하며, 그 문제에 대한 해결을 철학에서 찾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이 책을 통해 하게 된다.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문명의 질이 향상되었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는 인간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 중이니까. 인간의 삶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깊이 있게 연구한 논제는 바로 어떻게 하면 행복에 도달할 수 있을까였습니다. 그는 인간은 자기 삶을 충만하게 발전시키기 위해서 다른 사람과 공존할 필요성이 있다고 확신했어요. 인간은 본성이 사회적인 동물입니다. 소로처럼 홀로 야생의 환경에서 살기로 한다면, 훌륭한 동물적 존재라는 살 수 있겠지만 인간적이지는 않을 거예요.(170쪽)

소로의 삶을 동경하고 그런 삶이 자유롭게 행복을 추구하는 삶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우정이 어쩌면 인간의 삶에서 더 큰 행복을 만들어낼 수 있는 필수 요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어느 쪽이 맞고 틀리는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니, 우린 이런 생각들 속에서 나의 생각을 찾으면 되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하나는 분명해졌다. 다른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생각을 확실히 만들어 나갈 줄 아는 태도와 관점. 이걸 위해 필요한 것이 철학이라는 것. 그래서 이 책이 필요하구나 싶다. 그리고 이 책의 각 주제별 질문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던져봐야겠다. 그리고 각자 자신만의 철학을 세워보라고 해야겠다. 세상을 보고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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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조각난 세계를 삽니다 - 돌봄부터 자립까지, 정신질환자와 그 가족이 함께 사는 법
윤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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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여전히 선을 긋는 사회구나 하는 씁쓸함이 밀려왔다.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 안에 사람을 구분하고, 그 경계의 선을 넘지 못하도록 가두는 사회. 그런 사회가 내가 살고 있는 사회라는 현실이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현실에서 늘 힘이 빠지는 건, 그런 사회를 바꾸고 변화시키기에 개인은 무척 약하다는 것이다. 소수, 개인, 그리고 당사자는 힘을 잃고 사회의 거대한 구조 안에 끼워진 채 살 수밖에 없다는 자조적인 기분까지 들었다. 우린 어떤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를 바라고 있는가, 우리가 원하는 사회의 모습을 구성원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까.

물리적으로 환자를 돌볼 사람이 가족밖에 없다면, 가족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사적 구조에만 기대는 돌봄의 지속 가능하지 않다. 마을이, 사회가 조현병 환자의 돌봄을 나누지 않는다면 뉴스에서 접할 수 있는 심각한 사건이 만연해지는 현실이 될 것이다. 가족이 환자를 '독박 돌봄'하라는 요구는 버티다가 쓰러지라는 말과 다름없다.(76쪽)

'독박 돌봄'이란 말이 눈이 확 들어왔다. 아. 우리 사회는 이렇게 돌봄을 개인의 책임으로 오롯이 돌리는 사회였다. 어떤 돌봄이어도 마찬가지였다. '돌봄'이란 이름이 붙은 모든 것이 모두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까지만 가능한 것이다. 나무 씨의 가족이 여러 번 이사를 다니고 병원을 옳기고 또 주변 사람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고 따돌림을 당했던 그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함께 돌보았던 지점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 제도고 어떤 체계도 이들의 삶이 깊이 관여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특히 저자가 내내 떨치지 못했던 자책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사회에서 특히 어린 자녀에 대한 모든 책임은 부모에게 있다고, 사회는 몰아붙이니까.

조현병 당사자에게 일상을 유지하는 것은 약물치료 다음으로 중요하다.(...) '괜찮은 하루였다. 오늘도 나는 괜찮았다'라는 스스로의 평가가 당사자의 자존감을 유지하게 한다.(170쪽)

그런데 이것이 과연 당사자에게만 중요한 걸까. 병의 유무와 상관없이 누구나 자신의 자리에서 자존감을 유지하고 '괜찮았다'고 스스로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매우 필요한 마음이지 않을까. 나를 저 문장에 대입시켜 생각해본다. 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우리가 병의 이름만을 보고 그 이름 안에 존재하는 진짜 사람은 잊고 있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봐야 한다. 병과 상관없이, 일상적인 삶을 유지하고 살아내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삶의 숙제이니까. 나도 여전히 나의 하루가 무사히 잘 유지되고 괜찮았다고 말하는 일상을 살아내고 싶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 스스로 안정감을 얻고 싶다. 그러니 꼭 나무 씨만의 이야기는 아닐 듯, 조현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 현혹될 이유가 없다. 이건, 그저, 삶일 뿐이니까.
결국, 다른 시선으로 다른 삶이라고 미리 제단하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쉽게 선을 긋고 구분하려는 못된 습관을 버려야 한다. 각자는 각자만의 다른 특성과 성격을 가지고 살아간다. 조현병도 그런 특성 중에 하나라는 인식이 중요할 것 같다. 태화샘솟는집에서 하듯, 다른 사람이 갖고 있지 않은 특성 한 가지를 더 가지고 있다는 태도는, 다름을 인식하고 인정하는 그 시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무의 치료에 있어서 어쩌면 '자존감'이 가장 효과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사람들의 존중과 지지를 수용하는 감각이 증상을 완홯는 데 가장 중요한 치료제가 아니었을까.(65쪽)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지지하기. 누구와도 비교할 필요 없는, 온전한 한 사람으로 늘 응원해주기. 친구가 되어주고 또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함께 갖기. 이 책을 통해 많은 걸 배우게 된다.

나무 씨가 '일하고 사랑하는 것'을 잃지 않고 잘 살아내기를 마음으로 응원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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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슈타인 백작 동화는 내 친구 58
필립 풀먼 지음, 황부용 그림, 이지원 옮김 / 논장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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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이 이야기가 어떤 결말을 맞게 될 지 조마조마하고 떨렸다. 그런데, 와! 한 마디로, 카를슈타인 백작 만세다! 무섭고 섬뜩하며 소름돋는 장면들과 이야기가 전개되기도 했다. 이럴 수가 있나 싶고 또 이래서는 안 되는데 싶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막스 카를슈타인 백작, 만세다! 다행이고 또 통쾌하다. 그만큼, 요 근래 읽은 이야기 중 긴장감이 최고였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유쾌했으며 따뜻했다. 다른 것보다도 제일 이 이야기에서 마음에 드는 것은, 어떤 위험도 감수하고 무릅쓸 정도로 용감했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의 힐디 말이다. 힐디의 용감함이 루시와 샬럿을 살리고 또 막스 카를슈타인 백작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이다. 그러니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이처럼 이 이야기는 이런 모든 다양한 감정을 다 느낄 수 있도록 해주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는 언제나, 산의 왕이며 사냥꾼의 악령, 자미엘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자미엘 이야기에는 반드시 거래와 쫓고 쫓김, 피에 물든 복수, 그리고 자미엘의 사냥감이 되어 눈 속에서 도망치는 공포에 질린 희생자가 나옵니다. 눈을 번뜩이고 침을 흘리며 희생자를 쫓는 사냥개들, 기괴한 웃음을 띤 해골들이 타고 가는 검은 말들, 그 맨 앞에서 이들을 이끄는, 칠흑 같은 어둠에 싸인 이글이글 타는 눈의 악령.(12쪽)

이렇게만 읽었을 때는 <카를슈타인 백작>이 진짜 자미엘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 읽고 난 지금은 이 이야기가 자미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자미엘은 사람들의 진짜 모습과 속내를 드러낼 수 있도록 해주는 계기가 되었을 뿐, 오히려 자미엘 덕분에 무엇이 진실이고 어떤 속임수와 거짓과 악한 마음이 숨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가 얼마나 마음을 다해 돕고 사랑하는지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나서 보니, 제목이 '자미엘'이 아니라 '카를슈타인 백작'이다. 아! 결국, 카를슈타인 백작과 막스 카를슈타인 백작을 중심으로 샤롯과 루시, 힐디 등 모든 이들의 이야기가 종합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이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카를슈타인 백작'이 있었다.

"그러니까 말이지, 이번 일에는 단 한 가지 답밖엔 없어, 스니블부르스트. 바로 내 조카들이 제물이 되면 되는 거지."(36쪽)

음흉하고 무서운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해치려는 마음을 쉽게 먹을 줄 아는 카를슈타인 백작. 자신의 아이와 명성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다른 이들을 희생시키는 것에 주저함이 없는 끔찍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아주 작고 여리고 어린 아이들이 힘겨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를 동조하는 또 다른 어른들까지. 이들에게 인과응보는 당연해 보인다.

"카를슈타인 백작님이라니...... 잠깐만요, 만약 내가 카를슈타인 백작이라면, 저 아가씨들이 그러니까 내 친척이라는 말입니까?"(...)
"그렇다면 간단하네요. 둘은 고아원에 갈 필요가 없어요. 저랑 같이 살면 되니까요!"(268쪽)

상대적으로 나쁜 마음을 먹을 줄 모르고 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조금은 서툴고 부족함이 있어도 기꺼이 온 힘을 다할 줄 아는 카를슈타인 백작. 이제야 마음이 놓이고 제대로 큰 소리로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역시, 어떤 마음을 먹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보다 더 완벽한 이야기가 또 있을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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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뿐인 인생그림책 40
나현정 지음 / 길벗어린이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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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외면할 때가 있다. 스스로 인정하지 않으려 의연한 척할 때가 있다. 아무렇지 않고 또 누구도 필요 없이, 혼자로도 충분하다고 거듭 스스로에게 다짐하게 될 때가 있다.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니고 또 누군가로부터 그래야한다고 강요받는 것도 아니다. 그저, 주변으로부터 혹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혹 존재감이 없거나. 아마 고치가 그럴 것 같다.
그렇다고 괜찮은 것은 아니다. 괜찮아서, 외롭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혼자 중얼거리는 고치는, 자신의 마음을 끊임없이 부정해야만 그나마 살 수 있기 때문에, 애쓰는 것이다. 바로, 고치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의 상황을 부정하려 노력해야만 하루를 보내고 또 잠을 잘 수 있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자신을 자신이 속이는 것이다.

'난 혼자가 좋아. 전혀... 외롭지 않아.'
이 말을 한 번, 두 번, 세 번... 백번 중얼거린 다음에야
잠이 오곤 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더더욱, 혼자 떨어지려하고 또 숨으려고 한다.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도록 자신을 꽁꽁 감추어 고치 안에 자신을 말아 밀어넣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보호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까. 자신을 감싸줄 수 있는 유일한 통로가 될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은 가짜다. 거짓이고 또 전혀 따뜻하지 않다. 몸 따뜻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차가운 기운이 가시질 않는다. 그렇다고 따스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따스함을 간절히 원하고 또 위로받고 사랑받고 싶다.

하지만, 사랑받는 것이 어떤 것인지조차 모른다. 당연히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받아보지도 사랑해보지도 못했으니, 너무나 당연하다. 그래서 허둥대고 또 방황한다. 고민하고 또 답을 찾지 못한다. 이리저리 허둥대다 정작 사랑해야 할 시간, 사랑받을 시간을 놓쳐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사랑일까. 사랑은 어때야 하는 걸까.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그저 내 곁에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또 간절히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릴 때, 곁에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또 '오직 하나뿐인' 이름을 불러주면 되는 것이다. 수많은 존재 중에서도 나에게만 특별한, 소중한 '오직 하나뿐인' 존재가 있는 법이다. 그런 이의 존재를 알아채주는 것부터, 그런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부터 하면 된다.

'모든 별들이 다르게 빛난다고 했지. 이제 알겠어.
너는 오직 하나뿐인 내 별이야!'

너무 늦지 않으면 좋겠다. 나에게 '오직 하나뿐인' 별인 것을 알아채는 그 순간이. 그래서 그에게로 향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말해줄 수 있는 그 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랑, 내 사랑!'

'내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누군가에게 달려가게 되는 간절한 순간이 곧, 비로소 사랑을 알게 된 그 순간일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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