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지는 기쁨 기쁨 시리즈 3
사니 지음 / 달로와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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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는기쁨 #기쁨시리즈 #전비기 #달로와 #서평단 #서평 #책추천

<넘어지는 기쁨>이란 제목은 역설이다. 넘어지는 게 기쁨일 수가 없다. 넘어지면, 아프고 상처나고 속상하고, 창피하다. 넘어졌다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고 자책이 심해진다. 넘어지 않는 사람과 비교하게 되고 나 자신이 넘어지는 사람이라는 것에 한없이 자신을 닦아세운다. 넘어진 것이 마치 모든 것에서 무너지는 경험이라도 되는 듯 좌절한다. 그래서 그 다음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어진다. 넘어진 행위 하나가 생각까지 마비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망치려 허둥대게 된다. 그래서 또 다시 넘어지기도.
그런데 그렇게 넘어지는 것이 기쁨이라니. 그런 넘어지는 기쁨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이 책을 유심히 봐야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구든 넘어져서 기쁜 사람은 없다. 당연히 넘어지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저자는 넘어지는 것에서의 기쁨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가만히 읽어나가며, 과연 저자가 말하는 넘어지는 기쁨이 무엇일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리고 내린 결론. 저자는 앞으로 다시 나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구나.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기운을 갖고 있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넘어짐을 다시 자신의 인생을 넘어갈 또 하나의 단계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구나. 그러니 넘어짐을 기쁨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구나.

저자의 이야기는 모두 넘어지는 이야기였다. 때론 삐끗, 혹은 꽈당, 내지는 미끌 넘어지는 이야기. 처음부터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있을 수 없겠지만, 또한 자신의 넘어진 이야기를 이토록 콕콕 꼬집어 말할 줄 아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만큼 자신의 과거와 상처와 아픔과 슬픔을 모두 있는 그대로 들여다볼 줄 안다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매 순간의 삶이 다양한 측면으로의 넘어짐을 연속이었던 것이다. 물론, 넘어질 때는 모른다. 지나고 나면 아, 나 그때 넘어졌었구나, 하고 알아채게 되는 것. 그런데 그럴 때마다 저자는, 자신을 다시 일으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나고 난 후 자신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 자신의 어린시절, 할머니와의 추억, 엄마 아빠에 대한 그리움, 이모와 친구와의 이별 등 많은 사람들과의 이야기들이 쌓여 가능했다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자기고백일 수도 있다. 나는 그랬어요, 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마치 일기 한 토막씩을 소개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이런 느낌이 든다는 것은 그만큼 진솔하다는 뜻. 애써 포장하거나 꾸미려고 애쓰는 기미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날것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있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그만큼 자신이 지금껏 살아온 삶도 날것 그대로 보여도 좋다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저자의 이야기가 마치 할머니의 콩물처럼 풋내가 가득 나는 느낌이기도 했다. 이런 면이 저자의 틈을 보게 되는 면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선 뒤로 숨기고 있던 내 흠을 꺼내. 마구 긁어대면서 대체 언제 사라지는 거냐고 떼를 쓰고 상처를 내. 앞에 놓인 사람의 마음을 그럴싸하게 털어주는 동안, 나는 곪아가는 거야. 그런데 그렇게 숨기고 기어코 찾아내는 사람들이 있긴 해.(...)
이젠 대놓고 넘어지는 연습을 해보려 한다. 땅바닥 대신, 누군가 건넨 손을 믿어보라고.(226-227쪽)

집으로 돌아와 혼자 자신의 흠을 꺼내 마구 할퀴는 마음을, 이제는 사람들에게 모두 보이고 대놓고 떼를 쓰는 모습. 오히려 지금까지처럼 말고 더 잘 넘어지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모습. 이게 저자의 넘어지는 기쁨이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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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우의 동시로 첫 읽기 세트 - 전3권 박성우의 동시로 첫 읽기
박성우 지음, 최미란 그림 / 창비교육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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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침없는동동시 #박성우 #최미란 #창비교육 #서평단 #서평 #책추천

박성우의 동시로 첫 읽기1
받침 없는 동동시. 박성우 동시/최미란 그림. 창비교육. 2025.

책을 몇 장 넘기면서 생각했다. 아, 이거 아이들한테 시켜봐야지. 받침 없는 동시를 써보라고 활동을 시켜야겠다, 하는 마음이 단박에 들었다. 그리고 어떤 기발하고 재채있는 아이디어들이 속속 나올까, 기대도 되고 생각만으로도 벌써 재밌어졌다. 이런 책을 접하면 자꾸 이와 관련한 활동을 하고싶어진다. 나만 재밌으면 곤란하지만, 생각보다 아이들은 이런 발상의 전환을 즐긴다. 그렇게 즐기면서 동시에, 시에 관심을 갖게 되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내가 꼭 바라는 일이다.

<다리미>

다가오지 마
다가서지 마
나, 다리미야!

얼마나 간단명료하면서도 재밌는 발상인지. 이건 생활 경고까지 함께 겸하고 있으니 일상생활에서도 써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혼자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도 이런 시를 지으면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어떤 말장난이 가능할까, 어떤 언어유희를 써주면 좋을까, 궁리하게 됐다. 특히 받침이 없는 글자들로만 구성해서 시를 지어야한다고 하니, 자꾸만 더 받침 있는 글자들만 떠오른다. 정신 바짝 차리고 잘 생각해봐야 한다.

근데, 동시로 아니고 '동동시'는 또 뭘까? 찾아보니,

'동동시'는 어린이다운 언어 감각과 상상력, 놀이가 만나는 유년 동시를 말합니다. 아이들의 눈과 입으로 동동 들어와 동동 놀고 싶게 하는 재미난 동시입니다.

라고 설명이 달려 있다. 아, 그런 거구나. 그렇다. '동동'이라고 하면 뭔가 더 톡톡 튀고 귀엽고 사랑그런 느낌이 더 강하다. 뭔가 동동 튕겨지기도 할 것 같고, 동동 구를 것 같기도 하다. 동동 달려나갈 것 같기도 하고 동동 동그렇게 둥글둥글 어우러질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느낌을 담은 거구나, 참 잘 어울린다, 싶다. 동동시. 동시의 더 귀여운 버전이 동동시 같다.
그런 동동시의 첫 번째 시리즈가 <받침 없는 동동시>인 것은 찰떡인 것 같다. 아직 받침에 대한 감각이 쉽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받침 없이도 얼마든지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렇게 시가 쓰여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계기가 것이니까. 그래서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자꾸 눈에 더 띈다.

<개미>

개미야,

오니까

허리
펴고
쉬어!

그리고 어쩜, 잃게 사랑스러울 수가 있을까. 그냥 단순히 받침 없는 시만이 아니라, 이 시 안에 따뜻함과 포근함을 모두 갖고 있는 느낌이다. 비가 오니까 개미 잠시 허리 펴고 쉬라니, 이런 마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었을까. 시인의 능력에 놀라고, 이런 시를 읽게 될 아이들의 해맑음이 사랑스럽다.

난 아이도 아닌데 이런 시들에 자꾸 감동을 받는다. 물론, 꼭 아이만 감동하란 시는 아니니까. 어른인 나도 이런 시들을 보며 마음이 움직이는 걸 느낀다. 잘 모르는 사이 가슴이 간질간질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런 느낌 때문에 동시를, 동동시를 읽는 것이겠지. 이 동동시의 다음 시리즈도 궁금해진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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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침 없는 동동시 박성우의 동시로 첫 읽기 1
박성우 지음, 최미란 그림 / 창비교육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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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침없는동동시 #박성우 #최미란 #창비교육 #서평단 #서평 #책추천

책을 몇 장 넘기면서 생각했다. 아, 이거 아이들한테 시켜봐야지. 받침 없는 동시를 써보라고 활동을 시켜야겠다, 하는 마음이 단박에 들었다. 그리고 어떤 기발하고 재채있는 아이디어들이 속속 나올까, 기대도 되고 생각만으로도 벌써 재밌어졌다. 이런 책을 접하면 자꾸 이와 관련한 활동을 하고싶어진다. 나만 재밌으면 곤란하지만, 생각보다 아이들은 이런 발상의 전환을 즐긴다. 그렇게 즐기면서 동시에, 시에 관심을 갖게 되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내가 꼭 바라는 일이다.

<다리미>

다가오지 마
다가서지 마
나, 다리미야!

얼마나 간단명료하면서도 재밌는 발상인지. 이건 생활 경고까지 함께 겸하고 있으니 일상생활에서도 써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혼자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도 이런 시를 지으면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어떤 말장난이 가능할까, 어떤 언어유희를 써주면 좋을까, 궁리하게 됐다. 특히 받침이 없는 글자들로만 구성해서 시를 지어야한다고 하니, 자꾸만 더 받침 있는 글자들만 떠오른다. 정신 바짝 차리고 잘 생각해봐야 한다.

근데, 동시로 아니고 '동동시'는 또 뭘까? 찾아보니,

'동동시'는 어린이다운 언어 감각과 상상력, 놀이가 만나는 유년 동시를 말합니다. 아이들의 눈과 입으로 동동 들어와 동동 놀고 싶게 하는 재미난 동시입니다.

라고 설명이 달려 있다. 아, 그런 거구나. 그렇다. '동동'이라고 하면 뭔가 더 톡톡 튀고 귀엽고 사랑그런 느낌이 더 강하다. 뭔가 동동 튕겨지기도 할 것 같고, 동동 구를 것 같기도 하다. 동동 달려나갈 것 같기도 하고 동동 동그렇게 둥글둥글 어우러질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느낌을 담은 거구나, 참 잘 어울린다, 싶다. 동동시. 동시의 더 귀여운 버전이 동동시 같다.
그런 동동시의 첫 번째 시리즈가 <받침 없는 동동시>인 것은 찰떡인 것 같다. 아직 받침에 대한 감각이 쉽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받침 없이도 얼마든지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렇게 시가 쓰여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계기가 것이니까. 그래서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자꾸 눈에 더 띈다.

<개미>

개미야,

오니까

허리
펴고
쉬어!

그리고 어쩜, 잃게 사랑스러울 수가 있을까. 그냥 단순히 받침 없는 시만이 아니라, 이 시 안에 따뜻함과 포근함을 모두 갖고 있는 느낌이다. 비가 오니까 개미 잠시 허리 펴고 쉬라니, 이런 마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었을까. 시인의 능력에 놀라고, 이런 시를 읽게 될 아이들의 해맑음이 사랑스럽다.

난 아이도 아닌데 이런 시들에 자꾸 감동을 받는다. 물론, 꼭 아이만 감동하란 시는 아니니까. 어른인 나도 이런 시들을 보며 마음이 움직이는 걸 느낀다. 잘 모르는 사이 가슴이 간질간질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런 느낌 때문에 동시를, 동동시를 읽는 것이겠지. 이 동동시의 다음 시리즈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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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창비교육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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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이름들의낙원 #허주은 #유혜인 #창비교육 #가제본서평단 #서평 #책추천

아무래도 소설을 읽으며 옛날 드라마 <다모>가 생각 안 날 수가 없다. 어쩌면 이 드라마가 없었다면 '다모'에 대해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이 드라마에서의 다모도 무척 다부지고 당돌하며, 어떤 일에도 주저함이 없는 단단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마치 이 소설 속 다모 설이처럼.
왜 이렇게 겁이 없을까. 만약 비슷한 상황이라면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고 입을 열 수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설이는 왜 이렇게 무서운 것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드는 것일까. 오빠의 무덤을 찾기 위해서라는 것만으로는, 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만으로는 이유가 되지 않는, 설이만의 저돌적인 면이 분명 있어 보인다. 그리고 그런 저돌적인 면이 사건을 하나씩 파헤쳐나가면서 진가를 발휘하는 듯하다. 물론, 설이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사건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고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서히 설이가 한 발짝씩 깊이 개입하면서 분명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비밀이 조금씩 드러난다는 것은, 이전의 이야기와는 다른 양상의 전개가 기다리고 있다는 뜻. 그렇다면 과연, 이 이후의 이야기는 또 어떤 양상으로 펼쳐지게 될 것인지.
온전하게 이야기를 몽땅 다 읽지 못하고 절반 쯤 읽다 만 상황이라, 마음이 더 급하다. 설이가 뒤쫓는 상황에서 설이에게 또 어떤 위험 상황에 노출되게 될 것인지. 어쩌면 사건의 진짜를 발견하고 실망하게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자신의 신념이 맞아들어갈 수도 있다.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설이는 쉽게 흔들리지 않고 진실의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그럴 줄 아는 인물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 설이의 모습은 누가 시켜서 억지로의 느낌이 전혀 없다. 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자신이 결정한 것에 대해 혹은 믿음에 대해 흔들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때론 그런 노력이 자신을 상처내고 다치게 하지만, 그런 것쯤은 감수할 수 있다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어떤 것에도 제 소신을 굽히지 않게 위해 최선을 다한다. 꼭 무얼 바라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의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일 뿐. 이것이 설이가 자꾸만 더 깊이 사건 안으로 들어가는 이유일 것이다.
이 시대는 조선시대이다. 그리고 여성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현재도 그렇지만, 과거는 더욱 남녀의 구분이 뚜렷했다. 그런 시대에 남자보다 더 활을 잘 쏘고, 통찰력이 있으며 겁도 없이 나선다.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위해서는 잔꾀도 쓰고 위험도 무릅쓴다. 궁금하고 호기심이 생기면 무작정 달려들기도 한다. 이런 주인공의 모습은 여성의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는 면이기도 하다.
그런데, 제목이 <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절반을 읽었어도 이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짐작이 잘 안 간다. 천주교 박해에 따른 희생된 이들의 이름을 말하는 것일지, 그렇다면 그런 이름들의 낙원이란 것은 또 무엇일까. 어떤 모습을 낙원이란 말하려는 것일까 싶다. 소설의 후반부를 모르고 이 사건의 전말과 또 진실이 무엇인지 결말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단정지을 수 없는 궁금증만 점점 더 커질 뿐이다. 어떻게든지 후반부의 이야기를 잃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아, 궁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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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뵈르 박사의 상담 일지 - 햄스터와 저주 인형 반올림 63
마리 오드 뮈라이유 지음, 윤예니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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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뵈르박사의상담일지 #마리오드뮈라이유 #바람의아이들 #교사사서서평단 #서평 #책추천

처음, 부제가 '햄스터와 저주 인형'이어서 혹시 공포물인가, 싶은 생각도 했다. '저주'라는 단어가 만들어내는 인상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다보니 그쪽과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부제보다는 제목에 더 집중하는 편이 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소뵈르Sauveur는 주인공 이름이면서 '구원자'라는 보통명사이기도 하다. 이를 이용한 오해나 말장난이 자주 등장한다.(7쪽)

박사 이름의 뜻이 제일 첫 페이지에 설명되어 있다. 구원자. 상담이 누군가에게는 그 인생을 구원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진짜 구원이 가능하기는 할까. 하지만 구원까지는 아니어도, 사람들이 끊임없이 소뵈르 박사를 찾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SFR 통신사가 서비스를 재개하는 순간, 문자 메시지가 끊임없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난 여기서 뭐 하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놀랍게도 소뵈르의 눈앞에 펼쳐졌다.(312-313쪽)

그리고 마지막까지도 소뵈르 박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사람들의 연락이 끊이지 않는 데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에 소뵈르 박사는 이곳에 다시 돌아와야 했을 것이고 그것을 제대로 알아챈 것이다. 어쩌면 다른 이의 마음을 구원한다고는 하지만 소뵈르 박자 자신도 많은 상처와 아픔, 쓰린 과거를 안고 있다. 그리고 그런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또 다른 사건으로 나타나며 본인 스스로도 무척 힘든 시간을 견뎌야하는 상황이 됐다. 마치 소뵈르 박사를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의 상황.
그리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를 찾기 위해, 자신의 처음 시작점으로 간 것이다. 어찌 보면 모든 문제는 다 처음의 시작점에 그 해결의 실마리가 있을 수 있다. 무언가가 발생했다면 분명 그 발생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를 쫓다보면 결국 그 시작의 중요한 지점에서, 그 동안 놓치고 있던 것을 발견하게 되곤 한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마음들에는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자해, 인종차별, 성정체성, 우울 등 우리가 쉽게 지나치면 안 되는 문제들이 넓게 나타나고 있다. 이 문제들의 해결을 소뵈르 박사가 모두 해줄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의 문제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가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시작을 찾아주기 위한,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해내기 위해 소뵈르 박사가 매일 정신없이 바쁘다. 조금씩이나마 소뵈르 박사가 좀 덜 바빠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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