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를 알면 여행이 보인다 - 청소년을 위한 세계 여행 가이드 창비청소년문고 44
최재희 지음 / 창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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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를알면여행이보인다 #최재희 #창비 #서평단 #서평 #책추천

지리를 알면 여행이 보인다. 최재희 지음. 창비. 2025.
_청소년을 위한 세계 여행 가이드

부제가 딱 맞는 책인 것 같다. 이 책 한 권을 읽으니 마치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 이렇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또, 이런 곳을 여행하고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여행을 즐기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또, 특히 해외여행에 대해서는 조금은 아주 살짝, 거부감이 있기도 하다. 그래서 늘 적극적으로 다른 나라로의 여행을 염두에 두는 적이 극히 드물다. 또 개인적으로 심각한 길치에 방향치여서 새로운 공간에 놓이면 동서남북, 방향을 잃고 당황하기 쉽다. 그래서 더욱, 알고 있는 곳을 다시 가거나 혹은 누군가가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곳만 가려고 하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 더욱, 지리에 관심이 적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려워한다. 지리, 말만 들어도 어질어질할 정도로.
하지만 이렇게 책으로 가는 여행은 대환영이다. 직접 비행기를 타고 그 곳을 밟고 다니는 맛도 분명 있겠지만, 이렇게 책 한 권으로 곳곳에 대한 이야기를 한방에 확인할 수 있는 것 또한 재미가 있다. 특히, 지리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다 알고 있는 사람의 설명으로 고개 끄덕이며 따라가는 맛이 있다. 특히 우리가 꼭 알아야하는 그 공간만의 이야기를 알기 쉽게 안내해주는 느낌이어서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최근 다크 투어리즘이라고도 불리는 역사 교훈 여행이 꽤 알려졌습니다. 역사적으로 잔혹한 일이 일어난 곳, 감당하기 힘든 재난이나 재앙을 맞은 공간을 둘러보면서 그 교훈을 생각해 보는 여행을 뜻해요. 쉽게 잊힐 수 있는 역사 유적을 보존하고, 무엇보다 다시는 과거의 실수와 아픔을 반복하지 말자는 결연한 의지를 다질 수 있겠지요.(216쪽)

나부터도 아픈 역사의 장소를 가보거나 혹은 관련 영상을 보는 것조차 두려워 겁을 내게 되는 적이 많다. 두렵다고 피하기만 할 것이 아닌데, 그걸 잘 알고 있음에도 맞닥뜨리게 되면 우선은 한발 물러서려고만 한다.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을 다잡아보게 된다. 그동안 아프다고 슬프다고, 두렵다고 고통스럽다고 눈 감으려고 했던 곳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봐야겠다. 그리고 국내에서부터 다녀와야할 곳의 목록을 정하고 차근히 실천해봐야겠다.

여행을 단순한 관광의 차원으로 생각하지 않고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나라와 지역의 문화, 사상, 철학, 그리고 사회와 정치, 역사 등 사람이 살아가면서 쌓아올려진 많은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를 하나씩 알아나가는 과정 또한 여행의 중요한 목적이 될 테니까 말이다. 아, 아름답다, 멋지다, 재밌다에서 더 나아가 아, 이런 의미가 있었구나, 이런 역사가, 그리고 이런 아픔이 있었구나를 함께 생각해보는 과정이 꼭 필요할 것 같다.

다른 나라의 유물이 많다는 건 둘 중 하나입니다. 훔쳐 왔거나 사들인 거죠. 루브르 박물관은 이 두 가지를 모두 병행하면서 인류사적 유물을 대량으로 수집했습니다.(39-40쪽)
지역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칼디스 커피보다는 작은 골목 사이의 노점에서 분나 마프라트를 즐겨 보기를 권합니다. 큰 자본으로 운영하는 커피점보다는 골목의 커피상을 찾아가 눈인사를 하며 번역기를 활용해 대화를 나눠 보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 될 거예요.(195-196쪽)

환경도 생각 안 할 수가 없다. 인간은 분명 자연에게 무한한 도움을 받고 있지만, 왜 인간은 그런 자연을 훼손하기만 하고 있는지. 그런 면에서 다시 생각해볼 만한 지점들이 있었다. 인간과 자연이 함께 공존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 무엇일지에 대해서도 잘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센트럴파크는 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찬 맨해튼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센트럴파크의 설계자인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곳을 공원으로 만들지 않으면, 100년 후에는 이 공원과 같은 크기의 정신 병원이 필요할 것이다."(19쪽)
오전인데도 광장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이 상상을 초월하는 물싸움을 펼치고 있습니다. 물총으로 성이 차지 않는 사람은 아예 양동이로 건물 2, 3층에서 시원한 물 폭탄을 내리붓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현지인과 여행자는 서로 뒤섞여 너 나 할 것 없이 세계 최대의 물 축제를 즐기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108쪽)
뉴질랜드의 인구는 약 500만 명으로 우리나라 인구의 약 십분의 일 수준입니다. 하지만 가축의 수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뉴질랜드의 가축 수는 2023년 기준 약 3천만 말로 인구의 약 6배입니다. 그야말로 축산과 낙농의 나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154-155쪽)

축제의 즐거움을 위해 얼마나 많은 물을 낭비하고 있는지, 저 많은 가축은 누굴 위한 것인지, 그 이면도 함께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 단순히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기에는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인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건 지오투어리즘geotourism으로서의 리우데자네이루입니다. 지오투어리즘은 독특한 지형 경관이 여행의 핵심이라는 관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그 지역의 역사, 문화, 생태 유산에 관해서도 관심을 두는 여행의 모습을 뜻해요.(129쪽)

어떤 여행을 원하는지, 여행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먼저 내려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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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 버튼 Entanglement 얽힘 3
서장원.이선진.함윤이 지음 / 다람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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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힘시리즈 #재생버튼 #서장원 #이선진 #함윤이 #다람출판사 #얽힘3기서포터즈 #서평 #책추천

재생 버튼. 서장원 이선진 함윤이. 다람출판사. 2025.

재생 버튼. 제목을 보는 순간 라디오가 떠오른다. 더 정확히는 라디오 카세트테이프 플레이어. 노래가 녹음된 카세트테이프를 넣고 재생버튼을 툭, 누르면 테이프 돌아가는 모습이 보이며 노래가 재생된다. 재생 버튼. 무언가를 기록해놓았던 것을 다시 꺼내볼 때 쓸 수 있는 버튼인 것이다. 이건, 지금 현재형의 상황이 아닌 분명, 과거의 어느 순간이 다시 '재생'되는 것이다. 다시 재생된다는 것, 재생시키기 위해 간직해놓았다는 것, 그만큼 다음에도 다시 꺼내보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는 것. 나쁜 것이었다면 다시 재생하고 싶지도 않을 테니까. 그렇다면, 이 재생 버튼을 통해 다가오는 시간, 순간, 혹은 장면들은 모두, 좋았던 것일까.

#초능력연습
'12/27' 이 날짜가 다가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두고두고 이 날짜를 거듭 반복해 상기시키면서 잊지 않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혹시, 이 날을 기다렸던 것은 아닐까.

바다가 보일 즈음, 파묻은 기억 하나가 기어이 솟아올랐다.(...) 그건 초희가 직접 묻은 기억이었다. 재림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싸운 오후의 기억이기도 했다. 그날 초희는 외쳤다. 넌 가짜, 거짓말쟁이, 사기꾼이야. 그는 바닷바람을 맞은 양 짠 내로 축축한 얼굴을 비비며 말했다.
네가 진짜라면 제발 증명해. 난 널 믿었잖아. 거기 보답하란 말이야.(59-60쪽)

초희가 이 날까지 벗어나지 못했던 삶의 굴레를 비로소 벗어버릴 수 있게 해주는 날이, 12월 27일이지 않을까. 내내 이 날짜를 손꼽으며 초희는 살아냈을 것이고, 이 날을 마주하면서 비로소 그 다음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행히 초희 옆에는 아람이 있었고 말이다.

이것이 그날 두 사람이 본 바다다.
두 사람은 몸을 옹송그린 채 수평선을 보았다.(...) 지나간 것, 다가올 것, 당장 마주한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 자정을 넘긴 후에도 한참을 더 서 있었다.(60쪽)

12월 27일은 초희가 죽는다고 예견한 날이면서 동시에 다시 초희로 살아갈 수 있게 된 새로운 날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기 위해 반드시 이 날을 지나왔어야만 했다.

#포춘가든
포춘가든을 다시 찾는다는 것은 이미 마음 속 간절히 바라는 바가 있다는 뜻일 것이다. 누군가로부터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란 희망의 말을 듣기 위해 굳이 그곳을 찾아 나서게 되는 것이다. 어떤 과정을 거쳐 답을 내놓는지는 몰라도, 그렇게 내놓은 답은 한결같이 듣기 좋은 말이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말이 맞고 틀리고가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다. 그저, 정해놓은 답을 범위 안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니 그냥." 나는 그렇게 말하고 문득 생각난 것처럼 물었다. "그럼 언니는 이제 다시 유부녀인가?"(91쪽)

어느 순간 삶이 멈춘 듯 생각되었다가, 다시 그 삶을 다시 이어나가기 위한 마음을 먹게 되는 순간이 있는 것 같다.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해 포춘쿠키를 절반 뚝, 쪼개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시 재생시켜보는 것이다.

#60초후의세계
첫 문장을 여러번 읽었다.

눈은 내리는 게 아니라 재생되는 것 같아.(95쪽)

마치 같은 동작을 일정 부분 녹화해두었다가 다시 재생하듯이. 그리고 그 재생을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눈앞에서 그 장면을 내내 반복해본다면, 그런 생각이 자연스레 들게 되어있는 것이다. 낸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어어도 진짜인지 감이 오지 않을 정도로. 그래서 마치 기계적으로 새로운 무언가가 다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같은 장면이 되풀이되기만 하는 것 같은, 마치 무한 루프가 내내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 말이다.
이미 먼 과거의 일이라고 흘려 보낼 수도 있겠지만, 비선에게 있어서는 이미 먼 과거의 일 벌어진 일이 내내 현재까지도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는, 즉 무한 재생되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그 루프에서 빠져나오게 되는 순간이 오게 되고, 이때 마디는 다시 비선과 말을 주고받으며 다시 현실에서의 삶을 키워나가는 것이다.

어느새 도착한 견인차가 도랑에 빠진 버스를 빼내기가 무섭게 마디는 머리에 쌓인 눈을 훌훌 털어내고 버스에 올라탔다. 창가 자리에 앉은 마디가 프로그램의 마지막 회차를 재생하려 했고 그 옆에 앉은 비선이 그만, 했다. 아직 끝을 위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135쪽)

재생은 언제까지고 계속되기만 하지는 않는다. 언젠가 끝이 온다. 그 끝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끝이 있어야만 다시 그 다음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니까.

#재생버튼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시간의 굴레에서 이제 벗어나 '다시' 삶을 살아낼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는 본인들의 결정에 따라 다른 법. 다만, 자신의 지금까지의 위치를 잘 판단해보고, 그 위치에서 어떻게 살아낼 수 있을 것인가를, 내내 생각해보게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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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는 뇌 -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단 하나, 상상에 관한 안내서
애덤 지먼 지음, 이은경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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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하는뇌 #애덤지먼 #흐름출판 #서평단 #서평 #책추천

상상하는 뇌. 애덤 지먼 지음/이은경 옮김. 흐름출판. 2025.

처음 책을 읽으면서는 상상에 대한 이야기만 하는 줄 알았다. 조금 더 읽다보니 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더 나아가다보니 단순히 뇌와 상상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와 사용하는 언어,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의 능력과 감정, 상처와 치유 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다 다시 뇌가 어떤 상상을 하는 인간을 만드는 것인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내가 제대로 읽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우리의 뇌에 대한 광범위하고도 자세한 설명이 담겨 있었다. 어느 부분에서는 읽는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다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간 부분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의 뇌란, 이토록 다양한 측면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상'의 영역 하나만 가지고도 이토록 다양하게 파헤쳐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저 코끼리를 그리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가 제대로 뇌과학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뇌를 예측하는 기관으로 보는 관점이 타당하다면 상상은 지각의 이웃사촌이다. 일단 뇌 속에 세상의 모델을 구축하고 나면 그 모델을 지각과 상상에 똑같이 활용할 수 있다.(...) 한때 노예 같은 컴퓨터에 비유되던 뇌는 이제 쉴 새 없이 역동적인 생성 시스템, 가설과 예측을 끊임없이 생성하는 원천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44쪽)
상상이란 직접 경험을 마음속으로 시뮬레이션해 감각을 현실에서 실행하는 행위라는 가설은 이 책의 지침이 되는 세 번째 통찰과 연결된다. 만약 이 이론이 맞는다면 심상은 정말로 일종의 약한 지각인 셈이다.(107쪽)

상상이라고 하면 단순히 잘 알지 못는 것을 떠올린다는 느낌이 강했다. 상상이니까 진지할 필요도 없고 또 맞아떨어져야 한다거나 사실이어야할 필요도 없다. 그저 상상의 세계에서는 뭐든 가능하고 그 가능성을 통해 창의적인 발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단순히 그저 머릿속으로 그려내는 상상의 심상으로만 받아들일 문제가 아니구나 싶었다. 뇌가 하나의 상상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단순하지 않았고, 체계적이고 필연적이기까지 했다.
그래서, '상상'의 정의가 궁금해졌다. 사전에는 두 가지 뜻이 담겨 있었다. '<1>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마음속으로 그려 봄. <2> [심리] 외부 자극에 의하지 않고 기억된 생각이나 새로운 심상을 떠올리는 일. 재생적 상상과 창조적 상상이 있다.' 우선, '경험하지 않은'이란 말이 걸렸다. 어쩌면 심리에서 사용하는 '기억된 생각이나 새로운 심성을 떠올리는 일'이 더 가까운 설명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속으로 그려볼 때 과연, 우리의 경험이 사용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몸속에 태초부터의 기억과 경험과 유전자를 모두 갖고 있는데 말이다.

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환각과 환청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동안 상상이란 단어를 아름답게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픔이나 고통, 상처나 병에 따른 증상 역시도 상상의 이야기라는 것을 이제야 알아챘다. 그리고 이 책이 뇌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결국, 우리의 뇌가 하는 일들이 것을. 우리가 하는 모든 생각, 사고, 각성, 그리고 느낌, 마음, 감정, 정서 등이 사실은 뇌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는 걸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이 '상상'의 영역 안에 들어와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뇌가 하는 일들이 치유도 가능하다는 것이 더 신기했다. 의학적인 시술이나 물리적인 힘에 의하지 않더라도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테트리스라니.

상상은 인류가 진화 과정에서 얻은 가장 강력한 도구이지만, 그 힘이 때로는 현실 감각을 위협할 수도 있다. 우리의 뇌는 늘 현실과 상상이라는 두 세계 사이를 오가며,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법을 배워야 한다.(309쪽)

공감 능력, 의사소통 능력, 사회화 능력, 그리고 유전적인 특징과 뇌 조직의 긴밀함까지, 결국 상상하지 않을 수 없도록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것이 인간_이 정도면 인간 우월주의라고 오해받을 수도 있겠다_이다. 하지만, 그런 모든 능력과 조건으로인해 겪게 되는 부산물 역시도 잘 감수해야 한다는 것. 그렇다고 인간이 상상을 포기한다거나 버릴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문화'의 개념을 함께 생각해보게 됐다. 문화를 '경험의 축적'이라고 한다면, 그런 축적의 산물이 또한 인간의 '상상'이지 않을까. 결국 인간이란 이런 사회를 살아가도록 되어 있는 존재인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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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 년째 열다섯 텍스트T 1
김혜정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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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년째열다섯 #김혜정 #위즈덤하우스 #야호단 #호랑단 #서평단 #서평 #책추천

오백 년째 열다섯. 김혜정 장편소설. 위즈덤하우스. 2022

가을이, 아니 서희가 야호족이 된 것은 서희가 처음부터 이미 갖고 있던 그 마음을 령님이 제대로 알아봤기 때문일 것 같다. 결국, 서희에 의해 모든 것이 제대로 움직이고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처음부터 있었기 때문에 서희의 몫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서희 스스로는 원하던 바는 아니었겠지만, 무언가의 역할은 그 역할을 다 해낼 수 있는 사람의 몫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몫을 다할 수 있는 이가 바로 서희였고, 그런 서희였기에 야호족과 호랑족, 그리고 인간 모두가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훗날 가을은 괜한 오지랖을 피웠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령은 가을네 세 모녀를 살려 주었다. 야호는 한 번 입은 은혜는 절대 잊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다. 령은 죽어가는 세 모녀를 살리기 위해 그들을 종야호로 만들었다. 령에게도 세 모녀에게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건 령을 살렸던 가을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살릴까 말까가 아니라 살리는 것뿐이었다. 어쩌면 인생은 선택이 아닌 그냥 흘러가는 것인지도 모른다.(22쪽)

살리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은 없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살리는 것 말고 다른 선택을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이들이라면, 이런 마음이 서로를 살리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이끌리는대로 서로에게 다가갔고, 그렇게 서로에게 어느 정도의 마음과 역할, 혹은 짐을 나누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꺼이 나누어받은 그 마음에 최선을 다해 답했던 것이다.

령은 가을네 세 모녀를 살렸고 엄마는 영빈을 자식으로 받아들였다. 매번 다짐하는데 왜 그게 안 될까.
마음이 흔들려서 마음이 움직여서 마음이 있어서, 가을은 울었다.(104-5쪽)

이 마음의 시작이 바로 서희가 령을 살리려던 그 마음이지 않았을까. 다른 이를 살리려는 마음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조절하거나 빼앗고 혹은 망가뜨릴 수 없다.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자라나 그 힘을 키워나가는 것이므로 쉽게 다른 유혹이나 힘에 의해 좌우될 수 없다. 한결같은 마음을 지닐 수 있어야, 그리고 그 마음을 굳게 지킬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가능했던 이가 바로 가을, 서희였던 것이다.

야호들은 그제야 왜 령이 최초 구슬을 가을에게도 주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었다.(212쪽)

그러니, 가을이도 모르는 사이 최초의 구슬을 갖게 되었던 그 모든 것이 사실은 다 운명이었던 것이다. 엄마의 사랑과 호랑족과의 관계, 그리고 종야호가 되고 또 령의 구슬을 지니게 된 그 모든 것이, 그리고 그 사실을 모른 채 오백 년을 지낼 수 있었던 것조차도 모두 가을의 운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운명을 가을은 스스로 또 훌륭하게 감당해낸 것이다.

MISSION. 영원히 산다는 건 축복일까, 저주일까?
축복이다. 영원히 살아야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한테나 이런 축복을 내리는 것도 아니다. 축복을 받을 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축복을 받는 것이다. 물론, 영원히 사는 삶이 쉽지만은 않다. 당연히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이 또한 모두 해낼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꼭 해내야만 하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순간, 저주라고 생각할 수 없다.
가을이가 보여준 모습이 딱, 축복의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오백 년을 살았어도 열다섯의 열다섯이다. 두렵고 무서워 뒤로 물러서고 남들이 해주는대로 따르기만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을이는 당당하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선택했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행동하고 움직일 줄 아는 모습을 보였다. 이보다 더 분명한 이유가 또 어디 있을까.

이 이야기에 흠뻑 빠져 소설을 읽었다. 이제야 이 소설을 만난 게 아쉬울 정도. 이후 이야기들도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다. 가을이에게 또 어떤 일들이 펼쳐질 지. 하지만 걱정은 없다. 앞으로도 내내 쭉, 가을이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단단하게 만들어나갈 게 분명하니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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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려는 말은 독고독락
낸시 풀다 지음, 백초윤 그림, 정소연 옮김 / 사계절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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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하려는말은 #낸시풀다 #독고독락 #사계절출판사 #교사서평단 #서평 #책추천

내가 하려는 말은. 낸시 풀다 글/장소연 옮김/백초윤 그림. 사계절출판사. 2025.

이 책에는 두 편의 단편, <움직임>과 <다시, 기억>이 실려 있다. 두 편의 주인공은 '한나'와 '엘리엇'은 각기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다. 두 인물이 갖고 있는 모습을 우리가 갖고 있지 않다면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두 편의 주인공인 '한나'와 '엘리엇'은 우리와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말이다. 하지만 정말 다른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이 맞을까. 우리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다시 되묻게 된다. 이 소설들이 갖고 있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과연, 진짜 그들은 우리와 다른가?

내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단어는 '시간적 자폐'다. 나는 이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단어니까. 그리고 자폐인들과 나 사이의 공통점은 드문 발화뿐이니까.(16-17쪽_'움직임' 중)
너는 수년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가족 중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다. 알츠하이머병이란 그런 의미다. 아니 그런 의미였다.(56쪽_'다시, 기억' 중)

단어를 좋아하지 않고, 알아보지 못한다면, 다른 것일까. 그리고 다르기 때문에 다르지 않기 위해 '나'가 아닌 다른 사람과 같은 모습의 '나'를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 혹은 '나'가 아닌 것처럼 꾸며야 하고 바꿔야만 하는 것일까. 아마 이 모든 질문의 답은 '아니다'일 것이다. 누구나 각기 자신만의 삶의 속도가 있고 또 자신의 모습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모두 고정된 모습으로 한평생을 살아가지 않는다. 바뀌고 변화되어가면서 그 또한 자신의 모습으로 만들어나가는 '나'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한나'와 '엘리엇'도 그런 삶의 과정에 있을 뿐이다. 삶의 과정은 누구나 정해져 있는 길에 딱 맞춰 주어지는 법이 없다. 어떤 삶의 길에 놓일 지 아무도 알 수 없고 또 어떤 길을 갈 것인가조차, '나'의 결정에 따라 오늘과 내일이 달라지게 된다. 그렇다면, 어제와 다른 오늘의 '나'가 다시 어제의 '나'가 되어야할 이유는 없고, 다른 사람과 다른 내일의 '나'가 될 것이라고 해서 '나'를 어제와 같은 '나'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일은, 그리고 그 다음의 내일은 그 때의 '나'로 인정하고 그에 맞는 대화를 이어나가면 되는 것이다. 굳이, 다른 사람에 의해 이렇고 저렇게 모습을 바꿀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는 미미하게 살고 싶지 않다. 다른 사람들처럼 되고 싶지 않다. 거대한 시간의 흐름을 알지 못한 채, 정신없이 내달리는 문장들에 갇히고 싶지 않다. 나는 다른 것을 원한다. 무언가, 적절한 단어를 찾아낼 수 없는 무언가를.(42쪽)
이 새롭고, 이상하고, 망가진 삶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단 하나만은 확실하다. 너는 가짜가 되고 싶지 않다. 가까이에서 보면 들통나 버리는 홀로그램처럼 살고 싶지 않다.(75-76쪽)

'다른 사람들처럼 되고 싶지 않다.', '너는 가짜가 되고 싶지 않다.'의 두 문장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이 문장들만으로도 '한나'와 '엘리엇'이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 특히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시선이 어땠을지가 눈에 선하다. 그러니, 이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들이 간직하고 있는 깊숙한 마음의 소리를 우리는 지금껏 무시하거나 혹은 인정하지 않고, 우리가 보고싶은 대로만 보려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된다. 반성이 된다면,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이들을 대할 줄 알아야 하는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있으며, 다양한 아이들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마음에 품고 지내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은 곰곰이 나의 생각을 만들어나가도록 해주는 소설이었다. 과연 내가 가졌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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