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골목의 끝에, 첼시 호텔 문학동네 청소년 76
조우리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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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골목 끝까지 걸어갔을 때 마주치게 되는 곳이 첼시 호텔이라면, 과연 그 문 안으로 들어설 용기는 있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먼저 든다. 그렇게 끝까지, 정말 더 이상 갈 수 있는 곳이 없을 것 같은 그 끝까지 다 갔을때, 열고 들어설 수 있는 문이 첼시 호텔이 유일하다면, 과연 그 끝에서 주저앉게 될지 혹은 이곳의 문을 열지. 다시 돌아설 힘도 남아있지 않고 또 그렇다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고 뾰족한 수가 나오지도 않을 테니, 어쩌면 낯선 문을 여는 선택을 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 문 안에 어떤 장면에 펼쳐지고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 떨림과 기대를 안고, 살며시 그 문을 열게 되겠지. 그리고 그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그 다음은 첼시 호텔에 그저 나를 맡기는 선택을 하게 될 듯하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곳에서 나오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언제까지고 그곳에 첼시 호텔이 있는 한은.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 침묵을 지우기 위해 맥주를 마시는 것이다. 마치 쉼표처럼. 다 마신 병을 쿵 내려놓으면 마침표.
나는 그들이 만드는 문장과 쉼표, 마침표를 바라본다. 과연 문장이 길어질수록 취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65쪽)

어른이라고 실수가 없고 고통이 없고 또 포기가 없을까. 그저 그렇게 보이지 않게 위해 애쓰고 괜찮은 척을 하는 것일 뿐. 계속 나아갈 힘이 언제나 가득 채워지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저 어떻게든지 나아가는 삶을 멈추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지. 하지만 그런 나아감에 있어서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그리고 멈출 수 있는 핑계가 필요하다. 그냥 한순간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서있을 수는 없으니까. 잠시 쉬고 또 멈추는 핑계를 대기 위해, 첼시 호텔이 필요한 것이다.
하물며 아이들에게는 얼마나 더, 쉬고 멈추는 핑계가 필요할까. 실제로는 그렇게 잠시 서서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어른보다 더 많이 필요할 것이다. 문제는 그런 때 댈 핑계가 많지 않다는 것. 핑계를 대는 순간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면 걱정 근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 어느 누구에게서도 이해받지 못하고 외로운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감히 섣불리, 핑계를 만들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난 늘 잘 참고 견디는 성격이었다. 그게 어렵지도 않았다. 초등학교 1하면 때 아이들이 책상에 오래 앉아 있지 못해 돌아다니고 바닥을 기어다닐 때도 반듯하게 앉아 있는 게 더 쉬웠다.(140쪽)

락영이가 그랬던 것 같다. 그저 바쁘게 앞만 보고 달려야만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주변을 돌아볼 여유조차 갖지 못했던 시간의 연속. 반듯함이 자신의 몫인 듯 의심하지 않고 채워나갔던 시간들. 목표지점 하나만을 만들어 놓고, 그 목표를 향한 시선 외에는 없는 삶을 살아내고 있었던 듯 보였다. 그러던 순간,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상황의 변화가 자신의 삶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결국 그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모든 것을 한순간 뚝, 멈추게 된 것이다.
멈춘다고 금방 멈춘 자신을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한참을 가만히 있어봐야, 멈춰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멈춘 후에야 가만히 나를 살필 수 있다. 어디에서 어느 만큼의 통증이 자라고 있었는지를. 그 통증이 어떤 상처를 만들었고 그 상처는 얼마나 있어야 아물 수 있는지를 말이다. 락영이에겐 그런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엄마에게도 또 아빠에게도. 지유에게도 마찬가지.

정지유도, 너도, 나도 각자 아무도 모르는 사정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잖아. 우리 셋뿐만이 아니고 모두가. 모두가 공평하게 외로워.(170쪽)

김도영의 말이 딱 맞다. 남들은 모르는 사정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거고, 그런 사정 안에서 우리는 모두 공평하다. 그러니 누가 더 나은 삶인지 더 못한 삶인지를 저울질할 필요도 없다. 누구나 모두 외로우니까. 하지만 그런 외로움을 각자 갖고 있다는 공평함을 알기에 또 괜찮은 것이기도 하다. 누구나 나만큼의 외로움을 갖고 있다는 것에서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하니까. 그런 안심을 발판삼아 다시 그 다음의 외로움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결심을 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첼시 호텔이 필요한 것 같다. 각자의 외로움을 한 곳에 모아 모두의 외로움을 승화시키는 공간,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또 그런 곳 한 군데 정도는 있어야, 우리 삶이 쉼과 멈춤을 잠시 허락해줄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다시 문을 열고 나와 또 가던 길을 갈 수 있을 테니까.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끝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공간으로의 첼시 호텔, 기꺼이 문을 열고 들어설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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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원고 2025
이준아 외 지음 / 사계절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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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원고2025 #이준아 #김슬기 #임희강 #권희진 #김영은 #사계절출판사 #서평단 #서평 #책추천

다섯 편의 소설을 읽으며 무슨 생각이 들었다고 하면 좋을까, 책을 덮고 한참 생각해봤다. 그리고나서 내린 결론. '애썼다.' 물론 이런 소설을 써 낸 것에 대한 소설가들을 두고 하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이 소설들 속의 인물들을 들여다보며 든 생각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또 '애써야겠구나' 하는 생각까지. 이들의 삶이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여전히 애써나가야 하는 길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는 듯한 느낌으로 지금을 살고 있겠지, 싶었다. 그렇다고 내가 이런 애쓰는 삶을 다 알아낸 것도 아니면서, 마치 인생 다 살아온 사람처럼, 이런 생각을 내내 되짚고 있었다.

핸들을 넘겨받기 위해 손을 뻗는데 그가 난데없이 포효하듯 외쳤다. 아 씨, 저 바퀴 새끼가!(36쪽)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무언가를 향한 절규로 읽혔던 건, 나의 착각일까. 어쩔 수 없다는 절절함으로 늘 그런 상황에 지고 살았을 테지만, 그동안의 눌려있던 감정을 이 순간 한꺼번에 겉으로 표현해낸 것처럼 보였다. 다급하고 초조하고 또 앞뒤 가릴 수 없는 급박한 상황에서 튀어나오는 진실. 진심의 감정. 그동안은 늘 죄인이었고 늘 세상과의 싸움에서 지는 사람이었을 거지만,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이겨야겠다고 이를 악 물고 달려드는 모습이라고나 할까. 일순간 그동안의 감정이 한방에 터져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한편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이건 창수만의 성공 스토리였고, 주변인들에 대한 헌사였다. 길어지는 말에 만복이 몇 번 끼어들었지만, 창수는 물러서지 않고 집요하게 하던 말을 이었다.
저희도 말씀드리고 싶어서요.(95쪽)

만복의 히스토리를 왜 가만히 듣고만 있을까 의문이었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만복을 보며 화가 치밀었다. 결국은 또 이런 결론인가. 누가 남고 누가 나가는가는 왜 이토록 변함이 없을까. 결국 남는 쪽은 더 많은 것을 가진 쪽, 나가는 쪽은 덜 가진 쪽. 왜 이 세상은 이토록 늘 불공평함이 변하지 않는 것일까. 그 와중에 만복이 사연은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다. 만약 막말을 한다면, 그래서 어쩌라고, 정도의 요즘 아이들의 말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때 창수가 꺼낸 부부의 스토리는 그런 만복 형제에게 한방 먹인 것 같은, 어떤 면에서는 통쾌함까지 주었다.

과거니 미래니 하는 것들은 너무 이상해. 난 그냥 하루씩만 살아가는 건데. 딱 하루만큼만.(140쪽)
하루가 너무 길어...... 너무나 길고 긴 하루야......(145쪽)

그냥 딱, 하루만큼만의 삶. 그런 삶을 매일 딱 하루씩 살아가려는 것. 그런 마음으로 하루를 버텨왔겠지 싶었다. 그리고 그런 하루를 살아내기가 얼마나 쉽지 않은지, 그 하루만큼 알 수 있게 되겠지. 그러니 이 하루가 얼마나 힘겹고 멀게만 느껴졌을까. 바로 코앞에 있으면서도 가까워지지 않는 듯한 느낌의 하루를 살아내는 하루의 삶이, 짠하게 느껴졌다.

우린 다 괜찮을까? 찬영이 바다 쪽으로 시선을 둔 채로 중얼거렸다. 그럼, 당연하지.(...) 괜찮아, 괜찮을 거야.(125쪽)

이렇게 속삭여주고 싶다. 이들 모두에게, 영향력 제로의 말일 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도 모르는 사이 혼자라도 중얼거릴 수 있도록, '괜찮다'고. 그렇게 중얼거리는 말만으로도 내일의 또 하루를 살아낼 수 있도록.

애썼다.
괜찮다.

*본 리뷰는 사계절출판사의 도서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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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얼굴 - 얼굴로 본 인간 진화의 기원
애덤 윌킨스 지음, 김수민 옮김, 김준홍 감수 / 을유문화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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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얼굴 #애덤윌킨스 #을유문화사 #진화론 #과학책 #유전자 #서평단 #서평 #책추천

결국, 진화다. 인간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과 같은 모습을 지니게 되었는지. 진화론에 대한 제대로 그것도 아주 촘촘하게 설명하고 있는 이야기다. 어찌 보면 너무도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로 보이기도 했다. 우리가 학창시절 배웠던 내용이면서, 종종 읽었던 과학 관련 도서에서도 자주 등장했던 이야기이기도 했다. '진화'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어느 정도는 설명이 가능할 정도의, 우리가 익히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한번도 얼굴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유전자, DNA, 혹은 유전적 성질에 따른 자연의 여러 종의 특징과 그 안에서의 생존의 법칙 등, 어느 것 하나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고개를 크게 끄덕이면 읽어 나갔는데, 이런 이야기에 인간의 얼굴을 포함하여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지금껏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이 책에서의 접근이 아니었다면 '인간의 얼굴'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볼 기회가 없었을 것이고, 얼굴을 통해 진화를 설명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얼굴의 특징, 다른 종과의 차이점, 그리고 어떤 환경과 변이의 영향을 통해 지금의 얼굴이 자리잡기 시작했는지. 이 방대한 자료를 앞에 두고 있으니 우리 인간의 얼굴을 이제는 조금 낯설게 바라보게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 하나, <인간 얼굴>이라고 제목을 들었을 때에는 진짜 얼굴만 따로 떨어뜨려 생각했던 것 같다. 인간의 얼굴이 그래서 어떻다는 것일까가 궁금했고, 어쩌면 지금의 인간의 얼굴이 갖고 있는 역사의 흔적이나 혹은 아주 오래 전부터 어찌할 수 없는 필연적인 조건이나 이유 등이 얼굴의 형성이나 생김새, 모습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절대 얼굴만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얼굴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이지, 결국 그 얼굴을 형성하기 위한 다양한 유기적 관계의 기관들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특징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인간과, 사회와, 세상과, 그리고 온 우주와 연결되어 움직여 나가야 하는 것처럼 얼굴도 다양한 기관, 특히 두뇌와 어떤 연결 고리를 지니고 있으며 그 서로 주고받는 영향 관계 속에서 어떻게 제 모습을 갖춰 나가게 되었는가는, 매우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표정에 대해서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의 얼굴의 진화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되어 나간 것인지. 진화란 생존과 필요에 따른 변화라면 인간이 최종적으로 지금과 같은 얼굴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의 이유가 어쩌면, 더 많은 감정과 생각의 전달과 소통을 위한 필요에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 사회적으로 어떤 관계와 소통이 필요한가를 생각한다면, 지극히 너무도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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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란 미래의 문학 11
데이비드 R. 번치 지음, 조호근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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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이다. 아무리 SF라고 하지만, 인간을 이렇게까지 만들어 놓아야만 했을까 싶을 정도로 놀라운 이야기였다. 이야기의 처음 시작부터 끔찍했고 또 인상이 써지기도 했다.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고민하게 됐고, 지구라는 공간이, 모데란이, 어째서 이런 전쟁의 싸움과 폭력성만을 우위에 둔 세상이 되었을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인간을 기계처럼 만들어 놓은 세상이라는 것이 과연 옳을까, 생각하게 만들었다.
우선, 이 이야기의 가장 기본적인 설정이 살점 인간에서 신금속 인간으로의 변신이라면, 이것이 갖는 의미가 무엇일까. 미래란 어떤 면에서는 현실의 문제나 모순을 해결하고 더 나은 세계를 향한 지향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물론, 모든 미래가 무조건 다 진일보 혹은 발전된, 그래서 지금보다 나은 사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미래 사회에 대한 전망도 늘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나아갈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런 점을 고려한다면, 이 이야기가 밝은 미래를 그려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괜찮다. 지금도 여전히, 미래에 대한 기대는 별로 없으니까. 다만, 이런 극단적인 미래의 모습이라면 과연 우리가 미래에 기대할 수 있는 바가 있기는 할까 싶은 것이다. 그러니, 이건 진짜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기 보다는 풍자라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았다. 비판하기 위해, 억지로 과한 설정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하지만, 책을 계속 읽어나가면서, 진짜 풍자만을 위한 설정이 맞나 의심스러워졌다.

먼 옛날에는, 모든 사람이 너희 어머니가 그 버려진 보육원의 낡은 교육용 튜브에서 들려주던 그대로의 삶을 이어가던 공포의 시대가 있었단다.(...) 붙어 살면서 서로를 왜곡시킨 나머지 걸어 다니는 모순 덩어리라는 악몽이 되어버렸단다. 심지어 식사도 함께했지.(...) 그들은 평생 연약한 살점을 두르고 매일을 버텨야 했단다!(270-271쪽)

어떤 이야기도 현실과 동떨어져 만들어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작품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마,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 작품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이 지금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다. 환경의 문제나 전쟁, 그리고 심지어는 가족 관계와 사랑까지. 어느 것 하나 현실과 연결고리 없이 만들어진 이야기가 하나도 없었다. 플라스틱이나 금속성, 인간의 존재 자체도 결국 귀찮고 불편함을 없애기 위한 단순화 과정, 관리를 편리하게 하기 위한 변형의 과정일 수밖에 없었다. 뭐든 편리한 쪽으로만. 지금의 사회도 결국 인간이 편리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변형시켰고, 그 변형의 끝이 결국은 인간, 그리고 지구까지도 생존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도대체 어떤 존재일까. 과연 이 작품에서처럼 모든 것을 기계식으로만 받아들이고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그런 존재가 맞을까. 사랑도 기계를 끄고 켜면 되고, 심지어는 자녀까지도 그런 관계 이상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존재를 '인간'이라고 지칭해도 되는 것인가에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우리가 '인간적이다'라고 할 때의 그 인간적의 의미를 되돌아봐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작품에서와 같이 지금의 우리는 과연, 인간적인 인간으로서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이 맞는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런 <모데란>과 같은 미래는 절대 사절이다. 이런 미래가 진짜로 도래하게 된다면, 도래한 그 순간 이미 우리의 삶은 끝난 것이다. 어떤 희망도 사랑도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어떤 희망적인 그 다음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런 상태로의 영원의 존재라면 그것도 절대 사절이다. 존엄이 무너지게 가만 놔둘 수는 없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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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자의 숲속 일기 - 메릴랜드 숲에서 만난 열두 달 식물 이야기
신혜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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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한창 빠져 있을 때가 있었다. 봄만 되면 화원에 매주 찾아가 우리 집으로 데려올 아이들을 고르느라 어려움을 겪었다. 데려오고 싶은 아이들은 무척 많았고, 하지만 그 많은 아이들을 모두 데려올 수 없는 현실은 안타까웠고. 그러다 저자의 책 <이웃집 식물상담소> 책을 읽게 되었다. 그리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이제 더 이상 식물들을 화분에 키우며 괴롭히지 않겠다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아이들은 어쩔 수 없지만, 더 이상 식물을 좁은 화분에 가두어 성장을 제한하지 않겠다고. 그런 마음을 먹게 만들어 주었던 저자를 <식물학자의 숲속 일기>에서 다시 만났다.

식물학자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졌을 때의 만족감은 얼마나 클까 싶었다. 식물에 흠뻑 빠졌을 때, 하루종일 식물만 바라보며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으니까. 그런 식물을 진짜 원없이 실컷 바라보며, 식물에 대한 계속 알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흥미롭고도 가슴 떨리는 일일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물론, 이 책을 읽기 전에도 그랬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더 확실해졌다. 좋아하는 것을 한다고 모든 순간이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일에서도 괴롭고 힘들고 고통스러우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게 되는 순간이 무척 많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저자의 식물을 향한 한결같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식물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알아가게 되는 것이 단지 식물에 대한 과학적 지식만이 아닌 것 같아 안심이 됐다. 역시,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이렇구나, 싶어 나도 닮고 싶어지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런 마음이 들게 만드는 것은 대체로 자연이었던 적이 많았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그래, 역시 자연의 모습은 인간이 다 알지 못하는 신비하고도 놀라운 세계이며, 그런 세계를 조금이나마 알아내기 위한 연구자, 과학자들의 노력 또한 대단하고 존경스럽단 생각이 들었다.

식물은 이동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식물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식물을 만나러 가는 길은 용기가 필요하고, 어렵고 위험한 순간도 많지만 나는 식물 덕분에 세상을 알아가고 있다.(236쪽)

저자는 여행이라고도 표현했다. 끊임없이 다양한 곳을 찾아 다니며 사랑하는 식물을 만나러 가는 여행. 귀찮고 힘들다고 식물을 내가 있는 곳으로 데려올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 식물이 생장하기 위한 환경과 온도, 기후와 지역은 분명하니까.

난초가 사라져 내가 낙담하고 있었을 때 친구는 혹시 난초가 먹히는 걸 막기 위해 어떤 조치를 하지 않았냐고 물었다. 철망을 씌우거나 울타리를 치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그건 자연 속에서 내가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숲속에 철망과 울타리가 있다면 얼마나 이상한 풍경이겠는가.(166쪽)

그리고, 자연은 그저 자연일 뿐, 인간의 인위적인 욕심으로 자연을 이렇게 저렇게 만들고 구획하면 안 된다는 것. 관찰하고 연구하겠다는 욕심으로 자연을 개인의 소유로 만들어 보호하려는 것은 오히려 그 식물을 가두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생각은 여전하구나, 싶었다. 관찰의 대상이 사라진 것은 안타까우나,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 역시나 자연의 일인 것이다. 그런 자연의 일에 초연해질 수 있는 것 또한 식물학자가 가져야 할 마음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리고 식물학자가 아닌 우리도 가지고 있어야 할 마음이겠구나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며 식물, 나무, 꽃, 열매, 그리고 그 식물이나 곰팡이, 그 외의 자연 안의 생명들이 자라나는 이야기를 알게 된 것보다, 식물을 대하며 가지게 되는 식물학자로서의 마음과 생각, 3년의 연구 기간 동안 저자가 얼마나 깊은 지혜를 얻게 되었는가를 확인하게 되는 지점이 더 좋았다. 이건 어쩌면 자연이, 식물이 알려주는 교훈이며 가치이지 않을까. 한층 자연에 더 가깝게 와 있을 때 실컷 그리고 제대로 알려주려 했던, 자연의 가르침이지 않을까. 그리고 저자는 그 안에서 제대로 배울 수 있었던 것이지 않을까.

그래서, 저자는 이 이후 또 어떤 이야기를 마음에 품게 될 지가 궁금해졌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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