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릿지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문경민 지음 / 우리학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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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제대로 해내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어느 무엇도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는 원하는 바를 이루기 어렵다. 이 세상 어느 것 하나 쉬운 것이 없는 것이다. 그걸 지금의 이 나이, 시기에도 잘 모르기가 쉽다. 어느 정도의 적당히로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안이한 생각은 잦은 실패와 좌절의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안 된 결과만을 탄식하지 그 과정이 어땠는지는 돌아보지 않는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실 그 과정에서의 문제일 때가 더 많은 법인데 말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나의 악기를 자신이 원하는 정도의 수준으로 연주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까. 어떤 과정을 겪고 또 어떤 힘겨운 싸움을 이겨야만 도달하고자 하는 위치까지 갈 수 있는 걸까.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이 소설로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든 과정을 겪고 버티는 것이 어렸웠을 거라는 것도.

"첼로 현의 장력이 엄청나거든요. 그 힘을 버티는 게 버거웠을 겁니다."(30쪽)

보통,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또 어떤 것을 향해 나아갈 것인가를 결심하고 준비하는 시간은 대부분 청소년 시절이다. 어른들은 쉽게 말한다.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어른이 되어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곧 청소년 시기를 그 되고 싶은 것을 위한 시간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진짜, 이게 당연한 것이 맞나?
악기사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버티는 것은 버거운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무조건 버티라고 한다. 버텨야 된다고 한다. 인혜에게 또 연수에게 그래야한다고 강요했던 것처럼. 하지만 이렇게 계속 엄청난 힘을 버티다보면, 보거워 휘게 되어 있다. 그렇게 휘어 못 쓰게 될 수 있다. 과연 이게 옳은가?

내가 정말 첼로를 좋아하기는 할까.(33쪽)

인혜가 여러 번 반복적으로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었다. 정말, 첼로를 좋아하는 것인지, 첼로가 좋아서 이 모든 것을 버티며 노력하고 있는 것인지 말이다.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확신이 없다면 아무리 주변의 도움이 있더라도 소용 없는 것이다. 결국 자기 스스로 답을 찾고 그 답을 갖고 그 다음을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만, 진짜 성장이 가능한 것이고 또한 제대로 어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기존의 어른들은 알려주지도 않을 채 강요만 하는 것이다. 마치 어른들은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아이들은 따라오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어른으로서 반성하게 되는 지점이었다. 과연, 아이들은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하고 그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이렇게나 노력을 하는데, 과연 어른들은 그런 노력을 알기는 하는지, 혹은 그런 노력을 응원하지는 못하고 그저 윽박지르거나 어른의 뜻대로 움직이기를 고집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아이들이 좋은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의지로 자신만의 삶을 살아낼 줄 알게 된다는 것일텐데, 과연 인혜가 이 질문에 답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어른들의 말과 기대만으로 어른이 되었을 때 과연, 충분히 잘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눈을 감고, 주머니 속의 브릿지를 감싸 쥐고, 인혜는 오랜 고민에 마침표를 찍었다.
할머니, 그래서 나는 첼로예요.(194쪽)

그런 의미에서 첼로 3인방의 결정이 놀랍도록 반갑고 고마웠다. 연수가 반도네온을 선택하게 되는 것도, 대호가 실용음악에 뜻을 품게 되는 것도, 그리고 인혜가 결국 첼로를 결정하게 되는 것도, 모두 누군가의 영향이나 혹은 강요, 기대와 의무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하는 선택이 아닌, 스스로가 자신을 잘 알고 또 어떤 결정이 후회가 없는 것인가를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한 것들이어서, 그만큼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선택을 속에 마음으로 혹은 물질적으로 지지하고 응원해주었던, 어른이 있었다는 것은 이들에게는 무척 소중한 인연이었던 것이다. 인혜의 할머니가 인혜에게, 대호와 연수에게, 그리고 엄정현 선생님과 주희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살펴보면, 결국 자신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조력자로서의 할머니가 계셨기 때문에 이 모든 결심과 변화가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한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 것인가의 답도, 이 소설을 읽으며 얻게 되는 것 같다.

휘어진 브릿지를 보며 인혜는 마음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이 브릿지처럼 휘어지지 않을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단단하게 잘 지탱해나가야겠다,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스스로 강력한 힘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쓸모 없는 브릿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브릿지처럼 휘기 전에 자신을 잘 들여다보며 단단하게 만들어나갈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겠다, 라고 말이다.

사랑하는 게 어렵지만 그래도 해 보려고 한다고. 사랑스러워야만 사랑하는 건 아니라고. 사랑은 의지이고 결심이기도 하다고.(...)
인혜가 사랑하며 살아가길(191쪽)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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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리시타 호가 곧 출발합니다
비르지니 그리말디 지음, 지연리 옮김 / 저녁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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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속의 세계 일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나도 가고 싶다, 였다. 석 달 동안의 여행, 단 누군가와 함께 갈 수 없고 반드시 혼자 가야하는 여행. 여행이 진행되는 배 위에서 누구와도 사랑을 나누면 안 되고, 철저히 '고독'한 여행을 즐겨야하는 여행.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가고 싶은 이유가 세계 일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독'에 있다는 것이다. 혼자의 시간, 고독한 시간을 오로지 자신의 시간으로 가져갈 수 있다는 것에 매력이 있었다. 물론, 소설 속 인물들처럼 무언가의 상처를 받았다거나 혹은 사랑에 실패하고 아파서, 그런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가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많은 사람들과의 삶을 살아가고 있고, 그런 삶에서 사람들 간의 관계가 때론 힘들고 지치게 할 때가 있다. 내 마음과 달라서 혹은 오해가 생겨서, 아니면 누군가로부터 미움을 받거나 자신이 자신이 아닌 모습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을 때, 도망치듯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찾게 된다. 이 소설을 다 읽고나서는 소설 속 인물들이 사랑에 실패하고 혹은 상처를 받았다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진짜 모습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생겼고, 그런 질문의 답을 찾으려고 '펠리시타 호'를 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펠리시타 호를 타고 싶은 것이다.
물론 책임자는 잘 몰랐던 것이다. 사람이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사람이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런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당연히 감정이 생기고, 그런 감정을 서로 주고받으며 그 관계가 돈독해진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을 통해 부당한 지시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많은 시간들을 펠리시타 호의 책임자로 지냈을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제서야 그것을 깨닫게 되다니. 한편으로는 이제라도 깨닫게 된 것이 다행이기도 하다. 어떤 생각과 판단이 옳은 것인가, 사람을 대하는 자세와 마음이 어때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런 마음이 다시 어떤 관계를 만들어내는 것인가를, 책임자도 결국 알게 되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앞으로 이 펠리시타 호를 타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규칙을 들이밀지는 않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을 다 읽고 떠오른 단어는 '관계'였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일들은 결국 쌓이고 쌓여 관계가 된다는 것. 서로 전혀 다를 것 같은, 그래서 만나고 또 마주칠 이유도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우연히 한 공간에서 만났다. 특히 배라는 공간은 밖으로 쉽게 나갈 수 없으므로 제한된 공간 안에서 사람들은 계속 만나고 마주칠 수밖에 없다. 물론 세계 일주의 특성상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그 도시를 탐험하는 시간이 주어진다. 어쩌면 이 소설 속 인물들은 익숙한 사람들과의 삶을 배 안에서 살다가, 잠깐 낯설고 흥미로운 시간을 새로운 도시에서 경험한다. 그리고는 그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신이 있어야 하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인물들은 이런 반복을 통해, 진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얻었던 것은 아닐까. 진짜 자기 자신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답을, 이런 방식을 통해 경험하며 스스로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펠리시타 호가 존재하는 이유가 어쩌면, 이런 이유였던 것은 아닐까, 혼자 짐작해봤다.
그래서 이 배를 더 타고 싶어졌다. 여행에 진심은 없다. 때론 조금 귀찮아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 자신을 알고 관계를 만들고 나의 삶을 찾는 데에는 진심이다. 어떤 삶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의 답이 필요할 때, 펠리시타 호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펠리시타 호에서의 여행을 함께 한 기분이다. 이들과 함께 석 달 간의 시간을 함께 여행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 나도, 나의 답이 무엇인지를 찾을 차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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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다시 바다가 된다
김영탁 지음, 엄주 그림 / 안온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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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바라보던 섬, 그리고 그 섬의 바깥. 그 밖을 향하고 있던 뽀족했던 눈이 둥글둥글해질 때까지, 그리고 입에 긴 호스를 물기까지. 한 사람의 삶에서 바다는 육지가 되었다가 다시 바다가 된다. 그리고 그 바다 너머 섬이 한 세계가 되는 것을 보지는 못하지만, 그런 바다를 늘 마음에 품는다. 그 마음이 무엇일까. 어떤 마음으로 한평생의 마음에 바다를 품고 있는 것일까.

이 책을 여러 번 곱씹으며 읽었다. 쉽지 않았다. 바다와 그녀 사이의 거리가 멀었다 다시 좁아졌다 다시 섬으로의 길을 막는 바다의 변화가 그녀에게 어떤 의미일지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 그녀가 되어보지 않고서는 완벽히 안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만 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우물에 바다를 채우려 했을지, 그 과정 속에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았을지 예상할 수는 있었다. 그 우물에 바닷물이 채워지며 바다의 높이가 낮아진다는 것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과 힘과 고통과, 그리고 희망과 기대와 간절함과 사랑을 갖고 있어야 가능한지, 알 수 있다. 하지만, 마실 수도 없는 짠 물이지만 마른 우물에 채우는 것이 그녀에게는 또 다른 삶의 여정이었을 것이다. 나르고 나르고, 또 나르며 그렇게 어른이 되고 나이를 먹으며, 그녀가 향하고 있던 섬은 점점 그녀의 삶에서 조금씩 가까워질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바다가 육지가 되어 섬에 갈 수 있었다. 그 섬 너머를 볼 수 있었다. 해마를 만나지 않았다면 그 섬에서, 그리고 그 너머까지의 삶을 향해 나아갔을까. 해마가 그녀의 왼쪽과 오른쪽 어깨에 늘 자리잡고 있고 그 해마를 내내 보살피는 그녀에게, 그 섬의 세계는 그저 세계일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만 있을 뿐. 그러면서 또 노인이 된다. 노인이 되고 육지는 다시 바다가 되고, 다시 바다가 된 그 바다를 여전히 마음이 품으며, 그 바다를 보지 못하는 생의 마지막을 보내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그 바다를 빌려오는 것 뿐.

한 여인의 생의 주기가 연상됐다. 어린 시절의 그녀, 그녀의 성장과 어른이 된다는 것, 그리고 어른이 되어 마주한 세상과 또 다른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와 책임, 그리고 그런 삶을 살아내면서 서서히 잊고 살아가게 되는 것들, 그리고 그 생의 마지막, 그 마지막을 지켜주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됐다. 그리고 바다와 섬에 대한 동경, 그리고 자신이 말 딛고 살고 있는 섬, 그리고 육지. 그 육지로 인해 도달하게 된 섬, 하지만 또 다른 섬에 대한 그리움, 발끝에 닿았을 파도의 느낌마저도 그리움이란 단어 안에 모두 담아내는 수밖에 없었을 그녀의 마음을 생각해보게 됐다.

"여자가 말수가 적은 건 긴 세월 너무 많은 혼잣말을 바다에 건넸기 때문이다.
여자가 뱉어낸 힘든 말과 더 힘든 말, 어쩌다의 즐거운 말까지 모두 바다가 들었다."

그녀가 바다에 토해냈던 그 모든 것이 그녀의 삶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삶이 바다와 함께여서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한다. 그녀가 가진 많은 기대와 꿈, 그리고 어른이 되고 또 나이를 먹으면서 얻게 된 수많은 생각과 판단들은 또다시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또 다른 동경을 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모든 시간을 다 지나온 그녀에게 딸은, 작지만 큰 바다를 선물한다. 그녀가 바다를 통해 담아 안으려했던 마음을 마지막까지 잊지 않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런 마음이 딸에게도 그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바다를 보러 가고 싶어졌다. 바다가 품고 또 바다에 기대 말을 건네고 싶어졌다.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가득 차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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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千년의 우리소설 14
김시습 지음, 박희병.정길수 옮김 / 돌베개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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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신화 #김시습 #천년의우리소설 #박희병 #정길수 #돌베개 #서평단 #서평 #책추천

반성하면서 읽었다. <금오신화>를 한 번도 꼼꼼하게 완독해본 적이 없었다. '만복사저포기'나 '이생규장전'을 띄엄띄엄 읽고 다루기만 했을 뿐, 이렇게 천천히 음미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취유부벽정기'나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도 요점정리로만 알고 있었을 뿐, 진짜 작품은 이제야 처음인 것 같다. 그래서 반성 많이 했다. 그리고 새로운 발견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왜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하는지도 새삼 느꼈다. 고전을 통해 가질 수 있는 마음이 요즘 작품을 통해 갖게 되는 마음과 다르다. 그걸 이번 독서를 통해 느꼈다.

당연히, 어려웠다. 한문소설이기 때문에 어려울 수도 있고 또 낯선 방식의 소설이기 때문에 어려울 수도 있다. 작품 해설에서와 같이 특히 삽입시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소설이어서 더욱 난해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시의 내용이 분명하게 와 닿지는 않는다. 맥락과 주석의 설명, 그리고 그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그런 의미일 것이라고, 그런 분위기일 것이라고 하는 정도로 감만을 잡았을 뿐이다. 현대시도 시는 무조건 어렵다. 어렵다고 생각해서 더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기는 함축적인 언어를 통해 전달하는 장르이다보니, 시를 통해 전달하려는 감정과 마음, 생각과 통찰을 쉽게 얻을 수 없었다. 물론, 정확한 의미를 모두 이해할 수는 없더라도 그 느낌은 전달받을 수 있었다. 어떤 마음으로 시의 편지를 쓰고, 어떤 마음으로 시의 노래를 불렀을 것인가는 아무리 시를 어려워하더라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또한 시가 갖고 있는 매력일 수 있다.
그리고, 김시습이란 작가에 대한 접근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어떤 관점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확실한 신념이 있었으며, 무엇을 작품을 통해 말하려고 했는지도 분명했던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소설가로서의 뛰어난 감각도 갖추고 있다. 솔직히 이전부터도 느끼고 있었던 것이지만, '이생규장전'을 보면서도 어쩌면 이리도 흥미롭고 아름다운 작품을 쓸 수 있을까, 감탄하곤 했었다. 이번 독서에서도 뭐니뭐니해도 제일 재밌고 흥미로웠던 작품은 '이생규장전'이었다. 가장 잘 알고 있는 작품이면서도 또한 우리의 보편적인 감정을 잘 담아내고 있고, 또 한편으로는 안타까움과 씁쓸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만든 작품이어서 더 마음이 가는 사실이었다. 분명, 종교적인 색채를 갖고 있고 또한 자신의 사성적인 면을 작품에 담을 수밖에 없는 것은 당시의 작품들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면이었다. 헌데 작품 해설에서 유불도교에 대한 작가의 관점과 태도를 설명해주니, 더욱 작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과연, 김시습은 어떤 인물인 걸까.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삶을 산 것일까. 궁금해졌다.
낭만적이란 생각을 했다. 물론 고전 작품들에서 엿보이던 당시 선비들의 풍류하는 것이 대체로 달, 술, 시와 함께인 경우가 많아, 당연히 이 작품들에서도 이 조합 안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상황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전기소설(기이한 내용을 담고 있는 소설)로서의 전개는 단연, 꿈에서 혹은 밤에 달빛 아래에서 이루어져야 그 환상적인 분위기가 더 잘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도 이 작품들에서는 그런 환상의 이야기, 꿈만 같은 이야기, 하지만 현실의 이야기이기도 한 내용이 너무도 다채롭게 담겨 있었다. 특히 남염부주나 용궁에 간 이야기는 아예 환상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보니, 부벽정에서 선녀를 만난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보이기도 했다.
물론, 환상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현실에서 얼마나 어려운 상황이 사회적으로 발생했는지는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의 여인들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결국, 이 여인들이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개인의 잘못이 아닌 사회적 차원의 문제로 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항상 이런 화는 여인들에게 주로 닥치는 것일까, 씁쓸하기도 했고. 과거나 현재나 늘 이런 어려움은 약자들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건, 단순히 우리가 이런 고전을 과거의 이야기로만 읽고 넘어가는 것이 아닌, 과거의 이야기가 현재와 맞닿아 있음을 알게 하고, 또 생각거리도 던져준다고 생각한다. 고전이 그저 과거로만 끝나는 것이 아닌 현재와 미래까지도 함께 이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이다.

오랜만에 감동을 받았다. 고전을 읽는 재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왜 '천년의 우리 소설'이라고 하는지, 읽고나서 제대로 느꼈다. 아무래도 우리 고전을 다시 읽어나가야겠다. 좋은 자극이 되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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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하루가 궁금해 웅진 세계그림책 230
리처드 존스 그림, 공경희 옮김 / 웅진주니어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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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마음이 포근하고 따뜻해지는 그림책이다. 집 밖의 세상을 경험하고 돌아오는 야옹이. 야옹이의 바깥 생활이 궁금하다. 하지만 물어도 답을 들을 수 없다. 다만 집에 돌아오는 야옹이가 반갑고 다행인 뿐. 그런 고양이와의 교감이 이 아이에게는 무척 소중한 감정일 것이다. 그 감정이 차분하면서도 선명하게 전해지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그림책은 천천히, 아이와 고양이의 시선을 오고가며 읽으면 좋을 책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고 있지는 않다. 동물을 무척 소중히 여기고 싶은 마음이지만 함께 할 마음을 갖는 것은 더 어렵고, 그래서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으로 생각으로 응원하는 방법을 선택. 그런데 이 관계가 너무 아름답다. 그림책에 담겨 있는 서로를 향하고 있는 마음이 서로에게 잘 전달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이들은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서로에 대해 궁금한 것도 직접 물어 답을 들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알 수 있다. 꼭 말이 통해야만 모든 것을 다 알 수 있는 건 아니구나.
그래서, 이들의 관계를 말할 때 쓸 수 있는 말이 '교감'이 아닐까. '교감'은 '서로 접촉하여 따라 움직이는 느낌.'이란 뜻을 갖고 있는 단어다. 이 그림책을 읽으며 가장 머릿속에 먼저 떠오른 단어이다. 서로 알 수 있는 것이다. 서로가 이마를 마주 대는 접촉만으로도 충분히, 그 감정을 이어받을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이 따라 움직이는 것이므로, 어쩌면 그런 접촉으로 아이는 야옹이를 따라 야옹이의 하루를 모두 알 수 있게 되는 것일 수 있다. 구체적인 무엇을 알지 못해도 그 감정은 충분히 전달될 수 있는 법이니까.
그런 면에서 서로간의 마음을 주고받는 것에서의 접촉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누군가와 거리를 둔 상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고 모든 것을 다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 어쩌면 열 마디의 말보다 한번 말없이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위로해주고 감정을 보듬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궁금했던 야옹이의 하루가 더 이상 궁금하지 않을 수 있다. 무사히 돌아와 접촉해주는 야옹이를 통해 그 하루가 어땠을 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으니까. 여기서는 바로, 이 느끼는 것이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니까.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야옹이가 꼭 야옹이가 아니어도, 어떤 누군가와 혹은 어떤 생명과의 교감은 그 관계를 위한 최소한의 관심이고 사랑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심과 사랑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너무도 아름다운 가치일 것이다.
따스한 체온 필요한 올 겨울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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