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목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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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 읽을수로 계속 읽게되는 소설이었다. 소설이지만 소설로 읽히기보다는 시이기도 하고, 일기이기도하고, 깊은 사색이기도 한, 그래서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는 책이었다. 여러 장을 넘겨 읽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었다. 중반까지 읽다가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또 다시 읽었다. 거의 다 읽어갈 무렵, 다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기어이 끝까지 다 읽어냈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작가의 말까지 다 읽고나서는, 이 글을 다 쓰고나면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야기였다.
표지와 제목만으로 뭔가 어둡고 묵직함의 느낌이 제일 먼저 전해졌다. 재라면, 무언가가 타고 남은, 그래서 그렇게 남은 재는 타기 전 모습에서 쪼그라진 채 일정 형태를 유지하다, 자칫 가볍게 스치는 손길이나 바람에도 언제 어떤 모양을 지니고 있었냐는 듯, 금새 가루로 먼지로 날아가 푸석하게 가라앉거나 혹은 날아가버린다. 그런 재라니, 그리고 한쪽이 뜯겨나간 듯한 표지는 무언가 한 구석이 찢겨나가버린 느낌이었다. 전체가 다 사라진 것도 아니고 그저 한 귀퉁이가 조금 그래진 것뿐인데도, 첫 느낌이 가볍지 않았다(재는 가벼운데, 그 재가 무거워지는 소설이라는 것일까, 싶었다).
재가 되는 소설이었다. 무언가가 불에 타고 재로 남는 소설이었다. 누구 한 사람이 재가 되는 것이 아닌, 이 소설의 등장인물 모두가 재가 되는 소설이었다. 재가 된다는 것을 굳이 죽음과만 연결시킬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모두에게는 몸과 마음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가지고 있지 못할 일들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온전히 재로 사그라질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지금까지의 삶의 모습을 그렇게 조용히 사라지게 만들면서도 남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닐지, 생각해보았다. 오히려 책을 읽기 전보다, 읽으면서보다, 다 읽고 나서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고 긴 심호흡을 하는 것으로 감정을 추스를 수 있게 한다고나 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든 생각은, 왜 이리도 생각은 많고 사랑은 충만하며, 또 왜 그리도 사람은 사람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었을까. 수의 문 그림에서도 왜 그 많은 사람을 문 안에 가두고 왜 문을 열어주지 않았을까._이게 사랑이었을까? 모는 왜 현과의 삶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자신의 삶의 끈은 놓아버렸을까._온전히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 누구를? 서로를 끌어안으면서도 기쁘고 행복한 감정보다 슬픔을 먼저 느끼는 것은, 어느 누구도 어쩌지 못하고 그 안에 가둬지는 문제인 것일까._슬픔 말고는 해결할 수 없는?
이들을 이리도 슬프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을 읽는 내내 슬픔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말하고 있는 인물들의 노력이 너무도 슬프고도 아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슬픔을 재로 만들어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만들고, 여러 색을 하나의 색으로 만들고, 바람과 함께 자유로이 날아가고 흩어지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모두 이제 좀, 마음이 편안해지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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