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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는 언제나 검은 옷을 입는다
파올로 코녜티 지음, 최정윤 옮김 / 현대문학 / 2021년 1월
평점 :
"소피아, 태어나는게 뭔지 아니? 전쟁터로 떠나는 배와 같은 거야"라는 문장 때문에 이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 젊은 여성의 어린시절과 10대를 정교하고 세세하고 통찰력있게 묘사했다는 홍보문구도 물론 구미를 당기기에는 충분했지만. 태어나자마자 듣게되었던 그 문장이 소피아의 뇌리에 깊게 남았기 때문인지 오스카와 해적놀이에 심취해있던 탓인지 모르겠지만, 소피아는 쭉 해적이거나, 선장이거나, 선원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게 된다.
책 전체를 보자면, 주인공이 소피아인 것을 맞지만, 각 장마다 각기 다른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주인공들은 각자 다른 시간의 소피아를 이야기한다. 그마저도 소피아 중심으로 이야기한다기 보다는, 주인공을 이야기하다보니 그 순간에 머물던 소피아가 등장하는 느낌이랄까. 그들은 각자 소피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 받은 인물들이다. 각 장에는 서로 다른 시간속에서, 서로 다른 관계 속에서의 소피아가 등장한다. 책은, 소피아라는 인물 자체에 집중한다기 보다는 관계 속에서의 소피아를 이야기한다. 그 점이 매력적이었다. 열개의 단편을 묶어놓은 듯한 방식도 마음에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소피아에게 동생이 생겼거나, 마르타가 로사나 곁에 조금 더 머물 수 있었다면, 로사나의 우울증이 조금은 좋아지지 않았을까. 그럼, 소피아의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를 상상해보았다. 책 마지막 챕터에 등장하는 유리는 소피아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다. "너희는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랐지. 털끝하나 건드리지 않는 교양있는 사람들. 너희는 겪어보지도 않은 가상의 트라우마를 만들어내고 분노하고 있어."라고. 소피아는 누가 더 아픈지 경쟁하듯 각자의 트라우마를 비교하는 건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부분을 읽고 문득 안나 카레리나의 첫문장을 생각했다. 상대의 가슴에 있는 상처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서로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나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행동이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저런 이야기를 한다면, 나는 아마 발끈해서 화를 내겠지. 그런 나와는 달리 대답하지 않은 소피아의 모습이 좋았다. 예전의 소피아가 저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날카로운 말로 상대방에게 돌려주지 않았을까 싶어서, 소피아가 조금 바뀌었나 하는 생각도 문득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