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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수히 많은 밤이 뛰어올라
후루이치 노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1월
평점 :
"격차는 위와 아래에만 있는게 아니야. 같은 높이에도 있어."라는 한줄의 문장으로 눈길을 사로잡은 이 책은, 제목 '무수히 많은 밤이 뛰어올라'에 걸맞은 아름다운 야경이 떠오르는 표지를 갖고 있다.
한 무기력한 20대 청년 쇼타가 고층빌딩 바깥 유리창을 청소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책의 중간 중간에는 파란 글씨로 써진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은 그 청년이 듣는 선배의 목소리이다. 취업에 실패하고 낙심한 20대 청년이, 가족과도 친구와도 가깝게 지내지 않고, 유리창을 닦다가 떨어져 죽은 선배의 목소리를 들으며, 무기력하게 고층빌딩 유리창을 닦는 장면이라니. 상당히 우울했고, 언제 죽어도 상관 없다는 느낌이어서 아슬아슬했다. 그러던 중 멘션 창문을 닦으며 내려가던 쇼타는 한 노부인과 눈이 마주친다. 다시 옥상으로 올라가면서 보니 노부인은 창문에 3706이라고 호수를 적어놓았다. 그리고 쇼타는, 그 노부인을 찾아가게 된다. 방에 상자들이 잔뜩 쌓여있고, 촛불로 방이 밝혀져 있는데다가 거울도 검은 테이프로 가득 메워놨다고 해서, 나는 이 노부인이 왠지 무서웠다. 그런데 사실 노부인은 쇼타에게 건물 유리창을 닦으면서 창문 안쪽을 사진촬영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어마어마한 수고비와 함께. 쇼타는 그 부탁을 들어주기로 한다. 그리고, 그렇게 촬영하고 노부인에게 사진을 건네가면서 쇼타는 점차 무기력에서 벗어나 창문 닦는 일도 열심히 하기 시작하고, 사진 찍는 일에까지 흥미를 갖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런 쇼타 덕에 노부인도 점차 변하기 시작한다.
저자의 의도가 그랬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내게는 책 자체가 약간 찝찝한 느낌과 함께 미스터리로 남았다. 책 내내 몰카를 연상시키는 내용이 등장하고, 누군가가 저 밖에서 커다란 창문으로 날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소름끼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리고 책이 노부인도 그렇고 전체적으로 좀 미스터리한 느낌이 남아서이기도 하다. 쇼타가 무기력을 벗어나서 가족들과 함께 연락을 하고 지낸다는 결말은 마음에 들었다. 이제 쇼타는 전문 사진사가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