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들을 좀 더 바라보았다. 물고기의 풍성한 지느러미와 꼬리가 물속에서 아름답게 출렁이고 있었다. 그래, 물 안에서 사는 존재들을 볼 때마다 이 움직임이 그렇게 아름다웠어. 그런데 이 움직임은 결국 이들의 생활이 아닌가. 이들은 아름다워 보이기 위해 일부러 춤추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움직이고, 자고, 먹고, 친구들과 무리 지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달려가며 노는 하루의 생활, 하지 않으면 생이 끝나는 기본의 몸짓들이다.
내가 잠시 손 놓고 있던 생의 동작들이 생각났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비몽사몽 운동복으로 갈아입던 동작, 음악을 플레이하고 달려나가던 동작,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빵을 굽던 동작,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밑줄 그어가며 읽다가 스르르 잠들던 동작.
갑자기 좀 전에 주문해놓은 음료가 생각났다.
아래층으로 다시 내려오니 카운터 앞 바에 음료가 놓여 있었다. 커피 위에 두껍게 얹혀 있는 생크림을 작은 스푼으로 성실하게 듬뿍듬뿍 퍼서 입에 넣었다. 오랜만에 힘을 내서 해본 나의 아름다운 동작이었다. - P197
몰려다니는 물고기 떼를 향해 팔을 뻗으며 대열을 흐트러뜨리는 놀이를 하다 싫증이 난 문어는 돌연 주인공에게 다가온다. 그리고, 안긴다. 비스듬히 누운 듯한 인간의 가슴팍에 문어가 안긴 채 한동안 둘은 물속에 부드럽게 떠 있었다. 연기라는 것이 성립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놀랍도록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나는 문어를 보며 예의 치통 같은 찌르르함을 또 느꼈다. 당신도 그렇군요. 각별해지고, 그립고, 좋아하는 상대가 생기면 당신도 그렇게 다가가서 만지고 싶어지는군요. 저도 그래요. 저도 정말 그래요. - P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