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는 아명이 따로 있었다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황희 정승의 아명이 도야지이고, 조선 26대 임금 고정의 아명이 개똥이였다는 사실은 참 재밌었다. 오래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귀신들이 시기질투하지 않게 이름을 일부러 막 지었다고는 하지만 왕의 아명마저 개똥이였다니..정말 조선 시대때는 성인까지 살아있을 수 있다는 자체가 참 힘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p.119)
요새는 조서시대에 비하면 태아의 성별에 크게 연연하지 않는 거 같지만 심지어 과거와 달리 많은 아빠들은 여자 아이를 원하기도 한다. 근데 옛날에는 대를 이어간다는 중요한 가업(?)으로 인해 태아의 성이 정말 중요했다. 우리 할머니 세대까지만해도 아들을 낳느 것이 엄청 중요했던 걸 생각하면 남아선호사상이 사라져가는 건 정말 얼마 안된 거 같다. 근데 옛날에는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으므로 태아의 성을 감별하는 다양한 방법이 존재했다고 한다. 그중에 정말 잔인한 방법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8월 한가위에 송편을 빚을 떄 바늘을 넣고 빚어 임산부가 그 송편을 씹어 바늘귀가 나오면 딸, 바늘 끝이 나오면 아들이라고 했었다고 한다... 얼마나 잔인한 방법인가... 바늘에 혹시 찔리기라도 하면, 잘못해서 삼키기라도 하면 어떡하려고 이런 감별방법을 썼는지 모르겠다.(p.299)
이번 연휴를 맞아 경주여행을 다녀왔는데, 경주에 있는 대릉원부터 김유신묘, 문무왕릉 등 다양한 릉들을 보고 왔었다. 왕이 묻힐 곳을 어떻게 정했을까 궁금했었는데, 택지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명당을 찾고 왕이 친히 나가 지세를 관망하기도 했다고 한다. 명당에 유택을 정하는데, 그중에서도 지맥이 닿아 생기가 집중되는 혈에 관을 묻고 봉분을 조성했다고 한다. 능은 좌햐으로 하고, 능 뒤쪽에는 산이 있고 송림을 배경으로 동서북 3면으로 곡장을 두르고 곡장 안에 봉분을 만들었다고 한다. 봉분 아랫부분은 12방위를 담당하는 십이지신상을 해당 방위에 맞게 양각한 병풍석을 둘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김유신장군 묘를 갔을 때, 호석에 십이지신이 세겨져있었는데 그 수수께끼가 책을 읽어보니 풀렸다. 역시 아는만큼 보이고, 아는만큼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아는 척을 할 수 있는 거 같다.(p.4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