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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평점 :
도쿄에서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근교의 가마쿠라. 그 곳에 츠바키 문구점이 있고, 그 곳에 20대 후반의 포포가 있다. 다른 사람의 편지를 대신 써 주는 대필가가 그녀의 직업이다. 선대인 할머니로부터 이어온 가업.
나미야 잡화점과 비슷한 분위기의 이 소설을 읽다보면 정말 가마쿠라에 가서 카페가 있고 장어집이 있고, 칵테일바가 있는 이 소도시를 걸어보고 싶어진다. 신사에도 가보고 싶고 자전거도 타 보고 싶어진다.
나도 요즘 멋진 글씨체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너무 부럽다. 자신의 캐릭터와 비슷한 필체의 사람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나도 나에게 어울리는 필체를 만들고 싶다. 동글동글 여중생이 쓴 듯한 글씨체가 내 글씨체인데, 지금 오십이 다 되어가는 나에겐 영 어울린다 말할 수 없을 듯해서 불만이다.
대필을 원하는 고객들의 내밀한 사정을 듣고 그 사람과 혼연일체가 되는 글씨체를 구현하기 위해 포포는 집중한다. 써야하는 내용에 맞는 종이질도 중요하고 종이에 맞는 펜 도구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화룡정점인 우표 또한 쉽지 않다. 이 모든 것을 대필해주는 사람이 아닌 대필을 원하는 고객에게 맞춰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고객은 아름다운 여성 카렌씨의 메시지 카드이다. 작약이나 백합처럼 고고하면서도 화사한 꽃향이 나는 여성이었지만 그녀의 글씨는 더럽고 지저분했다. 아무리 글씨를 많이 쓰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지만 축의금 봉투며 방명록 , 자기 이름으로 싸인하기 등 악필인 그녀에게 생활 곳곳에 마련된 함정들은 너무나 많았고 급기야 시어머니에게 펜글씨 수업을 들으라는 호된 꾸지람까지 듣게 된다. 포포가 써준 메시지 카드를 보고 "저, 이런 글씨를 쓰고 싶었어요"라며 울먹인다. 포포에게도 카렌씨는 글씨는 그 사람을 대변하기 때문에 글씨가 엉망인 사람은 마음까지 엉망이라고 생각해 왔던 편견을 깨는 가르침을 주었다.
가마쿠라에는 포포가 운영하는 츠바키 문구점을 제외하곤 이 소설에 나오는 거의 모든 장소가 실제한다고 하니 정말 일본 여행을 간절히 부르게 되는 소설이다.
모든 것이 변하는 시대라고 하지만, 외국에서 보내는 이메일도 손 안에 핸드폰으로검색이 되는 시대라고 하지만, 편지를 쓰고 싶은 사람은 존재하고, 그 편지를 받고싶은 사람도 존재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유후인 시골 마을에서 작은 도시락을 사서 강변에 앉아 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났다. 골목을 돌면 작은 신사가 있고, 아기자기하게 놓여있던 작은 장식물들....
드라마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인터넷 검색으로 알아보니 포포 역할을 맡은 일본 여배우가 빙그레 웃고있었다. 책의 분위기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사진이어서 나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가 나왔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대필해 주는 직업이 있다면 주문하려는 사람들이 있을까 ... 가업이나 장인 이런 것들의 가치를 알아주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서는 제2의 포포가 나오기는 힘들 것 같다는 씁쓸함....
츠바키 문구점, 초등학교 앞의 작은 문방구, 이제 문방구를 찾아보기도 힘들어졌지만, 여행길에 그런 문구점을 보면 동백나무 문구점에 포포가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