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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호스
강화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6월
평점 :
작가가 말하길 이번 소설집은 문을 열고 들어간 사람들의 이야기, 그 집에 머무는 사람들의 이야기,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고리를 끊고 의미를 바꾸려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모든 실패와 모순과 애착이 만드는 희미한 틈새에 대한 이야기 라고 했다.
이 책에 실린 7편의 소설, 모두 편치 않게 읽혔다. 어렵고 애매하다 하기엔 와 닿는 장면이나 구절들이 많았고, 그렇다고 재미있고 쉽다고 하기엔 불편한 부분들이 많았다. 여자들의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투명하지 않다. '그런 여자' 를 만들어내는 가십, 소문, 평판, 험담, 폭로, 전기, 광고, 소설 등 일관되지도 합리적이지도 않으면서 허술하기 그지 없는 구조로 세상은 여성들의 삶을 옥죄어간다. 그것이 가족이라는 보금자리가 되기도 하고, 시모가 사는 시골 마을이기기도 하고, 소설가들에게 개방한 사택이기도 하다.
난 이 소설집에서 '가원' 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한번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은 인생의 역경 속에서 살아남아야했던 외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나'. 평생을 백수로 살면서도 마지막 남은 큰돈까지 사기를 당한 외할아버지와 달리 현실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평생 책임지면서 새벽부터 화장을 해야했던 여자들. 조부모의 모습에 감춰진 진실을 알면서도 '나'는 할머니를 사랑하긴 어려웠고 할아버지를 미워하긴 더 어려웠다.
여성들이 불합리한 구조 속에서 살아가며 맺는 은밀한 협약과 비밀, 묵인으로 인한 차가운 사실들, '알아챈 여자들' 이 소설 속엔 많이 등장한다.
표제작 '화이트 호스' 는 강화길이 쓰고싶어하는 고딕 소설의 전형이다. 무너진 중세 건물들 속에서 느껴지는 신비하면서도 공포스러운 분위기, 여자들의 이야기라서 페미니즘적인 의미가 깔려있으면서 그 위에 농밀하게 짙어지는 스릴러적 구조,
쉽게 읽혀지는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어쩌면 한 여자의 삶이 그렇게 쉽게 읽혀져서는 안되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신문 한쪽면에는 웃는 모습이 얼핏 기억날 듯한 한 여자 연예인의 죽음이 실렸다. 그 연예인이 에스엔에스에 올린 여러 말들이 실려있었고 그 중에 '몸뚱이 하나로....' 라는 말이 뭔가 죽음의 끈을 암시하는 말로 실려있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에 왜 죽었는지 알 수 없고, 그 죽음조차 다른 뉴스들에 묻혀 사라질 것이다.
어쩌면 소설 속에 나오는 여자들 모두 우리가 사는 세상 속에서 우리와 같이 살고있는 여자들일 수도 있다. 우리 옆집 여자일 수도 있고, 회사에서 만나는 김대리 이 대리일 수도 있다.
비릿한 애증을 안고 살아가는 여자들, 어디에나 있는 여자들 이야기.
그래, 쉽게 재미있게 읽혀서는 안되는 여자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아마 영원히 모를 테니까. 뭔가를 모르는 너. 누군가를 미워해본 적도 없고, 미움 받는다는 것을 알아챈 적도 없는 사람. 잘못을 바로 시인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사람. 너는 코스모스를 꺾는 이유가 사실 당신 때문이라는 걸 말하지 못하는 사람도 아니고, - P41
그렇게 일상은 유지되었다. 할머니는 새벽부터 화장을 했고 엄마는 출근을 했고 나는 학교와 학원과 독서실을 오갔다. 제일 싼 샴푸로 머리를 감았고 생리대는 몰래 여러 번 갈았다. - P67
대체 김미진이 뭐길래? 뭐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길래? 수많은 인간 연예인 작가 딸 누나 연인 아내 여자 오물자, 그것들 중 하나에 불과한 그녀가 대체 무엇이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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