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x4의 세계 - 제29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 수상작(고학년) 창비아동문고 341
조우리 지음, 노인경 그림 / 창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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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소설 읽기가 취미인 스물다섯 살 조예진인데 이 책 재밌으니까 다들 읽어봤으면 좋겠다.

읽고 울었다.

솔직히 나는 <슬기로운 의사 생활>(2020)보다 이 책이 더 재미있었다.

책의 주인공은 열두 살 제갈호다. 성은 제갈, 이름은 호.

이럴수가. 나랑 같이 사는 고양이 이름도 호다. 성은 조. 이름은 호. 죠호.



호는 똑똑하고 유머 감각도 남다른 어린이다.

우리 집 고양이 호는 그렇진 않다. 똑똑하지만 누나를 잘 무는 버르장머리 없는 고양이다.

주인공 호 어린이의 지능과 유머 감각이 왜 중요하냐면,

호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호의 속마음을 훔쳐봐야 하는 내(독자) 입장에선

아무래도 호가 웃긴 생각을 하는 어린이인 편이 더 재밌다.


<퀸스 갬빗>에서 체스 천재 여주인공이

매일 밤 보육원 침실 천장에 8×8 체스판을 그려 상상 체스를 두었듯,

제갈호 어린이는 병실 천장에 4×4 빙고판을 그려 매일 밤 상상 빙고 놀이를 한다.

<퀸스 갬빗> 이야기가 나온 김에...

또 공통점이 있는데,

<퀸스 갬빗>에서 여주인공에게 처음 체스를 알려준 사람은 그 보육원에서 일하는 할아버지였는데,

제갈호 어린이에게 처음 빙고를 알려준 사람도 매일 호를 간호해주는 친할아버지, 제갈해 씨였다.

ㄷ.ㄷ


아무튼...

빙고로 막막한 병원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던 호 어린이에게

삶의 터닝포인트가 생겼으니...

바로 비밀 친구이자 짝녀이자 썸녀인 소중한 인연을 만나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병원에 새로 생긴 기증 도서관에서 책을 읽다가.

책 읽는 게 이렇게 중요하다.

책은 막힌 공간에서도 꿈을 꾸게 해준다.

이 공간, 저 공간, 이 인간, 저 인간에게 데려다준다.

물론 꿈에 실체가 있지는 않으므로

그 꿈을 함께 매만질 친구가 있다면 더 좋겠다.

호 어린이는 그 친구를 얻었다.

(할아버지가 더 신났다...)

호 어린이와 새 친구는 서로 얼굴도 모르면서

읽은 책에 비밀 메모를 남기며 서로를 알아가고 미래를 기약한다.

어떻게?

4×4 빙고를 채우면서!

역시 할아버지의 공이 크다.

이제 더 스포하면 안 되겠지...

딴 소리를 좀 하자면

누군가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고 소중한 순간을

몰래 몰래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독자가 누릴 수 있는 얼마나 큰 특혜인지.

좋은 책은 단순히 소설 속 인물을 변화시키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소설 밖의 독자도 변화시킨다.

아주 미약한 변화일지라도 말이다.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영원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피엔스』를 읽었다고 역사 박사가 되지 않고,

심리 교양 도서 한 권을 읽었다고 내 맘 살피기와 관계 돌보기의 달인이 되지 않듯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소설을 읽고 느꼈던 감동이나 이해, 연대에 대한 감각도

며칠 지나면 사그라진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엉엉 울었어도

일 년 뒤에는 책을 읽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 수 있다. (그렇진 않겠지만...)

그러니 이렇게 세심하게 관찰하고 집필된 책이 더 많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은 습관이다.

감정과 지식은 축적된다.

무너지는 속도보다

쌓아올리는 손이 더 빠르도록

모두가 더 많이 알고 더 많은 것을 사랑할 수 있도록

무지하지 않도록

작가도 독자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작가의 다음 책을

모든 가로와 세로를 응원하며! (이게 뭔 말인지는 읽어보면 안다)

나도 더 열심히 보고, 보게 된 만큼 써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입니다.


"할아버지는 이기지도 못할 싸움을 왜 걸어?"
"지지도 않았잖아?"
"그게 뭐야? 괜히 창가 자리만 뺏기고."
"그래도 인자 남의 눈치 좀 보겠지, 그 간병인. 남의 눈, 귀가 무서운 거 알겠지. 자기 일 아니라도 남 힌든 일에 화내 주는 사람 있다는 거 알면 됐지."
"오, 할아버지. 좀 멋있어."
"호야가 멋있지. 할아비 편을 다 들어주고. 아주 다 컸네, 다 컸어."
"난 할아버지 편 든 게 아니고 정의의 편을 든 거야."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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