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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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그것은 언제나 어디서나 고통을 무릅써야 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영원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 괴로움 없이 인간의 해방과 행복, 사회의 진보와 영광은 있을 수 없다' 『우상과 이성』 서문 中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이 인간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토대 위에 서 있는 체제를 유지하는데 자신의 지적 능력을 제공하고 돈과 명예와 권력을 누리는 지식인들이 많은 시대이다. ‘사상의 은사’ 리영희 선생은 지식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표상이 되어준다.

‘의식’이 없는 지식은 죽은 것이라 말하는 리영희 선생은 ‘진실’을 추구하며 억압받는 인간의 해방을 위해 자신의 지식을 사용하는 삶을 보여주었다. 은폐된 불의와 부조리를 누구보다 앞서 인식하고 폭로하는 지식인의 삶은 마치 탄광 속 카나리아 같은 삶이다. 고통과 죽음의 위협이 지식인 곁에 늘 함께 하는 삶의 긴장을 어떻게 버티고 살아갈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스스로는 무신론자라 하지만 양심의 소리로 바뀌어 들리는 신의 요청과 무고하게 희생당하는 생명의 부르짖음을 외면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리영희 선생의 삶에는 혈연과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인격의 고매함과 존엄함이 담겨있다. 마르크스 사상을 배운 외삼촌이 땅을 다 나누어 준 이야기, 지주였던 할아버지가 사회주의사상을 가진 독립군이 된 머슴에게 죽은 사건을 들으면서도 이해관계를 넘어 옳음, 바름을 추구하는 모습, 한국전쟁 당시 통역장교로 근무하며 대한민국 군대의 부정부패 등을 경험하면서도 물들지 않고 부정한 부에 조금도 유혹당하지 않는 삶은 그의 인격의 존엄함을 보여준다.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의 삶은 가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제 식민지 시대의 비극적인 가족사, 해방 이후 혼돈기, 6.25 전쟁, 군부독재 시절 등 비극적인 대한민국 근현대사 현장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면서도 고통에 매몰되지 않고 안팎의 원인에 대해 정직하게 성찰했다. 미국의 세계지배전략의 위선과 악랄함을 누구보다 정교하게 비판하지만 동시에 우리 민족 내부의 문제 역시 아프게 다루고 있다. 자기비판을 겸하지 않는 타자비판만으로는 자칫 지난날의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할 수 있다고 염려한다(586). 민족과 민중에 대한 낭만적인 긍정도 식민사관적인 부정도 아닌 우리 자신을 향한 객관적 성찰을 통해 성숙으로 이끄는 역할을 해주었다.

리영희 선생은 주체적 지식인이 어떠해야 하는지 본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떠나 사안을 객관적으로 보고, 이데올로기의 교조화를 경계하며, 세계적 차원에서 조망하며 지금 여기에서 진실을 추구하고 불의에 저항하는 주체적 지식인. 주체적 지식인, 리영희 선생의 삶을 보며 나의 공부가 우상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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