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경쟁력북돋우기노부토모 나오코의 치매니까 잘 부탁합니다』(시공사)에서 치매와 관련하여 간병이 앞으로 몇 년이나 지속될지 알 수 없으니 타인이 도울 수 있는 건 전문가에게 맡길 각오를 하라"라는 전문의의 조언이 나온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돌봄을 맡길 각오라는 말은 처음 들어보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먼저 지쳐서 부모님을 원망하게 되면 그때는어떻게 할까. 저자의 말대로 엄마의 간병을 전부 떠맡았다면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궁지에 내몰려 엄마를 증오하게 될지도 모른다. 돌봄 2년 차, 5년차, 10년 차, 10년 차 그 이후까지 변함없는온도, 일정한 온도로 돌보려면 지치지 않아야 한다. 변하지 않는 돌봄의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가족의 인원수만큼의 애정을 불러 모아야 한다. 그때그때 필요로 하는 것들을 가족 단톡방에서 공유하고 물품 등을 지 - P176

지원해야 하고, 정서적 지지, 경제적 지지를 병행하는 게 맞다.
형편에 맞아서 하는 돌봄이란 없다. 돌봐야 하기 때문에 돌보는 것이다. 돌봄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조절하고, 생활비에서 돌봄에 드는 예산을 세워 지출하는 것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런 심리적인 부담을 가족 안에서 골고루 나누어 가진다면 미혼인 자식이나 부모님을 모시는 자식에게만 치우치는 돌봄이 조금은 공평성을 찾게 되지 않을까.
돌봄은 경쟁력이라고 믿어야 한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능력인사회가 아니라 자신의 부모님을 잘 돌보는 것이 능력인 사회가 되도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고 좋은 곳에 취직시키려는 부모가 가진 경쟁력과 동등해야 한다.
물론 경제력에 따라 돌보는 내용이 달라질 수는 있어도 서로의돌봄에 깊이 관여하다 보면 시간이 없는 형제에게 시간을 내어줄 수도 있고, 돈이 필요한 형제에게 돈을 내어줄 수도 있는 돌봄도 경쟁력을 가져야 한다. 형제 중에서 전문적인 케어가 들어갈 때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 맞고, 정서적인 지지를 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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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요?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더 많은 질문들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지만 부정적 감정 안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선택하지 못합니다. 에릭 번은 사람들의 교류를 관찰하면서 모든 교류에는 여섯 시간 구조화 방식이 있다는 것을 규명하였습니다.
rituals이 여섯 가지는 폐쇄 withdrawing, 의식 vs 활동 잡담 prese게임 games,
친밀 intimacy 입니다.
폐쇄는 상대방과 직접 교류하는 행동은 아니지만 사회적 환경에 의해 발생합니다. 어떤 사람이 따분한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동료들이 스트로크를 주지 않고 받는 것에만 신경을 쓰면, 그는 전날 밤의 좋았던 스트로크에 대한 환상속으로 폐쇄됩니다. 그의 몸은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있지만, ‘그의 정신‘은 이곳에 없습니다.
따스한 봄날 학생들의 몸은 교실에 있지만 ‘생각‘은 수영장에가 있거나, 하늘에 대고 폭죽을 쏘고 있거나, 등나무 아래서 나눴던 멋진 키스를 떠올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폐쇄를 경험할 때, 몸만 그 자리에 있을 뿐, 마음과 머리는 계속 다른 곳을 헤매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류를 할 때마다 폐쇄하는 게 아니라면,
또는 아내와 이야기하는 중이 아니라면, 폐쇄가 그렇게 해로운 건아닙니다.
의식은 어떤 특정한 일에서 사회가 합의한 방식대로 시간을 사용하는 것을 뜻합니다. 교류에 집중하거나 상대에게 크게 관여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정해진 결과가 나온다는 점에서 의식은 시간을 안전하게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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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된 두려움을 지워내는 돌봄의 행위돌봄은 가족이 전담해야 한다는 통념을 벗어나, 가족 바깥의 사람들이 서로를 돌보는 돌봄의 관계망에 주목하기 시작하니 비슷한 사례들이 계속 눈에 띄었다. ‘루시의 천사들‘과 같은 모임은 미국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는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죽음』에서 자신이 참여했던 ‘팀K‘의 경험을 소개했다.
‘팀K‘는 비혼 여성인 친구가 암 투병을 시작하자 그를함께 돌보기 위해 만들어진 모임이다. 처음에는 6명으로 시작했는데 점점 늘어나 30명의 여성이 참여한 네트워크가 되었다.
‘팀K‘ 구성원들은 요일을 정해 항암 치료를 받던 친구를 찾아가 현미채식 중심의 음식을 만들어 함께 먹었다. 또한 친구가 전문 의사를 찾아 멀리 떨어진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고 병원에 입원하는 전 과정을 도왔다. 모 - P103

든 노력을 다해도 회복할 가망이 없다는 걸 알게 되자도움을 받던 친구는 ‘팀K‘ 구성원들을 초대해 작은 파티를 열었다. 충분한 작별 인사와 감사의 마음을 전한 뒤그는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겨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한국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있다. 사진가인 혜영은 희소 암으로 수술을 받게 되었을 때, 그의 친구들이여 "아픈 사람을 위한 돌봄, 그리고 돌보는 자를 돌보는
"돌봄 릴레이‘를 시작했던 경험을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에 썼다. 34 돌봄 릴레이 방식은 실라의 사례나 ‘팀K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돌봄‘을 경험해 본 혜영은서울시 은평구의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중심으로 마을에서 만난 페미니스트들과 돌봄 관계망을 만들었다고 한다.
활동가 조한진희도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에서 1인 가구 여성들의 ‘건강 두레‘에 대한 계획을 소개했다. 건강 두레는 돌봄이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하고, 월차나 주말을 두레 구성원을 돌보는 데 사용하는 일종의상호부조 모임이다. 1인 가구 여성이라는 공통점만으로모인 관계 안에서 돈을 매개로 하지 않고 서로에게 ‘열려 있는 돌봄‘을 시도해 보겠다는 구상이다.
세계 각지에서 가족 바깥의 여성들이 자발적으로04)13+ all - P104

만들고 계획하는 돌봄 관계망이 마치 매뉴얼이 있기리도 한 듯 서로 닮은꼴인 걸 보면, 여성들은 평등하게 관계 맺으며 상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차리고 그것을 위한 수고를 아끼지 않는 생활인의 감각이 발달한게 아닌가 싶다. 돌봄 관계망을 만들어 함께 친구를 돌봤던 이들도 필요할 때는 전문 간병인 등의 도움을 받았지만, 이들이 할 수 있는 돌봄의 범위는 무궁무진했다. 돌봄은 신체활동 보조와 위생 관리에 국한된 게 아니니까 말이다. 아픈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밥을 지어 먹고 같이 산책하러 나가는 것, 입원한 친구의남겨진 동식물을 보살피는 것 등이 모두 돌봄의 행위다.
돌봄 관계망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 읽다 보니 혼자살면 아플 때 힘들다는 말은 실제 이상으로 과장된 두려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지원은 "혼자 살다가 아픈 상황에 대한 공포는드라마처럼 부풀려진 고독, 추상적인 고독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다"라고 말했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포비아phobia를일부러 조성하는 것 아닌가 싶어요. 아플 때친구에게 전화해 본 적이 있으면 그거 별거 - P105

아니라고 생각할 텐데, 그런 경험이 없는상태에서 심리적 공포만 부풀어지는 거죠.
저도 혼자 아팠던 때가 있는데 내 집이라는물리적 공간 안에 물 떠다 주는 사람이없다뿐이지 ‘세상천지 나 혼자네‘ 이런 생각은안 들어요. 올케가 음식도 택배로 보내주고,
동생도 오고 친구도 오고 하는 거죠. 혼자 아픈상황을 무서워하고 비혼 여성이 혼자 죽은뒤 반려동물이 사체를 훼손하고 어쩌고 하는상상이 영화에도 나오는데, 커플 중심 사회가비혼을 비난하는 방법의 하나가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까 결혼해야 한다는 식의 은근한 협박같은 거요."
박진영은 "혼자 사는 사람은 당연히 아플 때 주로 혼자 있을 수밖에 없고 그럴 땐 최선을 다해 아파야죠. 외로울 틈이 어디 있어요?"라고 반문했다. 맞다. 최선을다해 아프고, 혼자 견디기 어려울 때는 도와달라고 말하면 되고, 아픈 사람이 도와달라는 말을 반복할 필요가없는 네트워크를 만들면 된다.
돌봄의 관계망을 나도 만들겠다고 의기충천하다가 - P106

도 돌봄으로 허덕이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다시 의구심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아무리 미화해도 돌봄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돌보는 사람의 삶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는 일인데, 여럿이 부담을 나눈다고 그게 정말 달라질 수 있을까. 게다가 돌봄의 관계망을 만들려면 ‘사람부자여야 가능할 것 같은데 난 강퍅한 성격 탓에 사람을 거두기는커녕 떨쳐내며 살아와서 같이 하겠다고 나설 친구가 있기나 하려나...
걱정은 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돌봄의 문제는 절대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우에노 지즈코는 ‘팀K‘를 소개하면서 "가족에게 의지할 수 없는 싱글에게는가족을 대신할 네트워크가 반드시 필요하다. 없다면 노력해서 만들어야 한다"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먼저해본 사람들이 "절친한 친구가 많을 필요도 없다", "누구나 할 수 있다"라고 한 말에 은근한 기대를 걸어본다.
그런 돌봄 관계망들은 조한진희의 말마따나 "혈연관계나 친밀한 관계 등으로 배타적 경계를 나누지 않고도 누구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회"로 가는 작은 씨앗이 될는지도 모른다. 그 씨앗들이 여기저기에 뿌려지는광경을 보고 싶다. - P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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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국 인문 기행 나의 인문 기행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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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음말
‘선한 아메리카‘를 기억하기 위하여인문 기행의 새로운 여정으로 2016년에 방문한 ‘미국‘을 다루기시작한 것은 2019년의 일이다. 그러다 4년 남짓한 세월이 흘러버렸다. 이 시리즈의 앞선 두 책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과 『나의영국 인문 기행』도 결코 빠르게, 부담 없이 써 내려간 작업은 아니었지만 이번 ‘미국‘ 편은 시간이 더 걸렸다. 솔직히 고백하면 예상외로 괴로운 집필이었다.
괴로웠던 까닭은 크게 두가지다. 하나는 개인적인 이유다. 연재중에 직장을 정년퇴직했다. 마침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쳐 생활에 적잖은 변화가 찾아왔다. 건강에도 이상이 생겼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힘에 부쳤던 이유는, 그간 동아시아를포함해 전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갖가지 정치적 변동이 정신차리기 힘들 정도로 어지럽고, 하나하나 뒤쫓아가기엔 끝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적절한 예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그런 변동 자체가 예전부터 있었던, 전혀 새롭지 않은되풀이(알렉시예비치의 말 그대로 ‘세컨드핸드‘)이기에 글을 쓰고 묘사하는 입장에서는 어디서 맺고 끊어야할지 곤란했던 것이다. - P250

게다가 ‘아메리카‘라는 대상자체가 까다로운 주제였다. 이 책은 내가 처음 찾았던 1980년대의 미국에서 시작하여 트럼프가등장하고 퇴장(재등장?)하는 시기까지 다루지만 그사이 미국사회의 ‘단절‘이 급속히 진행되었다. 아니, 이미 존재했던 ‘단절‘이누가보기에도 명확하게 드러났다고 말해야할것이다.
단절된 미국은 쇠퇴의 길을 차근차근 밟으며 전락하는 중이다. 다만 이 단말마의 고통은 오래 지속되면서 수많은 부패와 파괴를 거듭하며 인류 사회에 심대한 손상을 입힐 것이다. 미국이(그리고 세계가) 변한다는것은 그정도로 멀고 험난한 길이다.
그런 ‘아메리카‘를 단일한 대상으로 파악하며 그 전체상을묘사하는 일이 가능하기나 할까 내가 알고 있는 ‘아메리카는 진정한 아메리카인 걸까. 명백한 차별주의자도널드 트럼프가 등장하여 대통령 자리까지 오른 지금, ‘정녕 이것이 아메리카인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순간, 다른 쪽에서는 "이야말로 아메리카다."라고 한껏 고양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은 아메리카 안팎에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아메리카‘의 극히 한정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그렇게 나누어진 단편 속에서 내가 ‘선한 아메 - P251

리카‘라고 생각하는 측면(이는 벤샨이나에드워드 사이드를 통해 볼수있는 부분이기도 하다.)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하려 했다. 그 이유는나 자신이 간직한 ‘선한 아메리카‘를 향한 애착에서 비롯되었지만, 미국이라는 국가가 ‘선한 아메리카‘의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기대를 놓을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으로서는 실낱같은 기대지만,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극동‘ 출신의 한 디아스포라의 눈에 비친 ‘선한 아메리카‘의 기억을 먼 장래를 위해 남겨두는 것도 무의미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내 젊은나날들, 그 암흑시대에 ‘선한 아메리카는 나를 격려하며 힘을 불어넣어주던 존재였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재도 지속중이다. 게다가 팔레스타인의 가자지구에서는 미국을 방패 삼은이스라엘이 ‘하마스‘ 섬멸작전을 지금도 진행하고 있다. 6장에서 이야기한 가자지구의 인권변호사라지 슬라니 씨도 자택이 폭격당했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이집트를 경유해 탈출했다고한다.
우크라이나에서도 팔레스타인에서도 전쟁이 장기화되면서방대한 희생자와 난민이 속출하지만 그 종식은 기미조차 보이지 - P252

않는다. 피는 끝없이 흐르고 여성과 아이들의 울부짖음이 멈추지않는다. 지역 내전을 훌쩍 뛰어넘어 준 세계대전이라고도 불릴 법한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국제질서를 근근이 지탱해주던 국제연합UN은 완전히 기능부전 상태에 빠졌다.
이 전쟁으로 인해 내 마음도 크게, 그리고 끊임없이 흔들리고있다. 일흔 남짓한 인생 동안 보아온 세계가 격동하고 있다. 이지경까지 치닫게 된 데에는 러시아 국내와 벨라루스의 민중운동을겨냥한 과격한 탄압이 있었다. 홍콩과 미얀마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내 어두운 예감은 차차 현실화되었다. 급기야 현실이 그 비관적 예측마저 추월해버리고 만 시기가 온것 같다.
나는 1951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식민지 지배로부터 독립해서 평화를 누렸어야 할 조국은 그때 이미 내전(한국전쟁)이 시작된상태였다. 막대한 희생을 낳고 1953년에 ‘휴전‘이 성립되었지만,
그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휴전 상태는 지속되고 있다. 전쟁은 끝나지 않은 것이다. 얼마나 더 파괴되어야 ‘끝나는‘ 걸까 얼마나 더 죽어야 ‘끝나는‘ 걸까. 내가 살아온 70년 넘는 시간 동안세계 각지에서 전쟁이 멈춘 시기는 없었다. 전쟁의 그림자는 언제나음울하게 드리워져 있다. 그리고 날이 갈수록 짙어간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이자 작가 프리모 레비 Prime Levi (1919~ - P253

1987)가쓴휴전」이라는 작품이 있다. ‘종전‘이 아니라 ‘휴전‘이다.
소련군에 의해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된 레비는 함께 라거(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그리스계 유대인‘ 모르도나홈과 고향을 향한 방랑길에 동행한다. 현실에 밝고 영리한 장사꾼 출신인이 ‘그리스인‘은 레비에게 현실을 헤치고 나갈가르침을 주는 엄격한스승인 셈이었다. 그 예로 이런 이야기가있다.
입던 죄수복 차림 그대로 아우슈비츠에서 빠져나왔기에 너덜너덜해진 구두를 신은 레비에게 그리스인은 이런 말을 건넨다.
"자넨바보로군. 신발이 없는 사람은 바보야." 신발이 있으면 먹을거리를 찾으러 돌아다닐 수 있지만 없으면 그마저도 할 수 없다는뜻이었다. 레비는 "반박할 여지가 별로 없었다. 그 논지가 얼마나타당한지 손으로 만질 수 있을 만큼 명백했다."라고 말한다. 아우슈비츠를 막 빠져나온 레비는 그리스인의 지략과 대담함 덕분에혼돈에서 조금씩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전쟁은 끝났잖아요."라고 말하는 레비에게 그리스인은 "아니, 늘 전쟁이야."라는 ‘기억해야만 할 대답‘을 내뱉었다. 레비는 이렇게 말한다.
"라거는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찾아온 경험이었다. 그런데나는 라거를 세계의 역사와 나의 역사 속에 자리한 어떤 추악한변형으로, 괴물과도 같은 어떤 뒤틀림으로 인식한 반면, 그에게 - P254

그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들의 슬픈 확인일 뿐이었다. ‘늘 전쟁이야‘ ‘인간은 타인에게 늑대야‘라는 오래된 이야기였다."
"늘 전쟁이야" 이 기나긴 작품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다. 레비의 휴전」은 승리의 기쁨으로 끝나지 않는다. 불길한 심연이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듯 예언과 함께 끝을 맺는다. 해방되고 8개월 후, 가까스로 고향 밀라노의 집으로 귀환한 레비는 가족과 재회하지만 공포로 가득 찬악몽은 끊임없이 찾아왔다. 밀라노 고향집에서도 수용소에서 매일아침 울려 퍼지던 폴란드어 점호 구령 "브스타바치 Wstawat! (기상!)"
라는 외침을 들으며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 레비는 우리가 누리고있는 것은 아주 잠깐 동안의 ‘휴전‘일 뿐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알려준다. 이후 40여 년간 평화를 위해 증인으로 활동한 레비는1987년, 자살했다.
2022년 7월 23일, 미얀마 군부는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여당 국민민주연맹NLD의 전 국회의원과 민주화운동 활동가 총 네 명을정치범으로 내몰아 사형을 집행했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 소식에나는 무척 충격을 받았다. 사형 자체가 인도주의에 반하는 학살행위라는 이유에서는 물론이고, 무엇보다 전 세계의 많은 이들이 - P255

지켜보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사형이 강행되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열심히 보도했던 미디어도(적어도 일본에서의 경험에 한정하면) 이 사건에 대해 지극히 미미한 관심을 보였다. 즉 이미 ‘진부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벨라루스의 상황과 홍콩의 민주화운동도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급속히 진부한 옛일이 되어간다.
미얀마 군부가 자행한 정치범 사형 소식은 내 심리를 급속하게 반세기 전으로 되돌려놓았다. 한국에서 유학 중이던 나의 두형이 사상범으로 구속, 투옥되어 한 사람(서승)이 군사재판을 받고한때 ‘사형‘ 선고까지 받은 시기 말이다. 그는 이후 ‘무기징역‘이확정되었고, 다른 형(서준식)은 징역 7년을 선고받았지만 전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형기를 채우고도 석방되지 못한 채 20년 가까이 옥중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때 나는 일본에서 정신을 소모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갈피를 못 잡고 좀처럼 잠들지 못하는 밤이 이어졌다. 어두운 방에 누워 ‘잠을 자야 한다.‘라고 스스로를 타일렀지만 귀에선 심장의 고동 소리만 끊임없이 들려왔다.
나는 스스로에게 되될 뿐이었다. 아무리 끔찍한 일이라도, 아무리 부조리한 일이라도 이렇게 실제로 일어나버린다고.
내 정신을 더 소진시킨 것은 그런 상상 같은 세계와, 내 주위 - P256

에서 펼쳐지는 일본 사회의 ‘일상생활‘ 사이의 괴리였다. 지인들은 "앞으로 무슨 일을 할래?", "취직은?", "결혼은?" 하며 아무 일없는 듯 내게 물었다. 나에게는 그런 ‘일상생활‘이 허구였고, 어두운상상 속의 감옥이나 형장이야말로 진실이었다. 이 책에서 쓴첫 ‘미국 여행‘을 떠난 때가 바로 그 무렵이었다. 미얀마에서 벌어진처형 소식을 접하고, 그때의 애통한 마음이 반세기 넘게 지난지금 또렷이 되살아났다. 그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반세기 전의내가 다름 아닌 ‘진실‘이며, 그 후로 어떻게든 평화롭게 살아온나는 ‘허구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병들고 괴로워하는 상황. 진실은 거기에 있다. 지금 내가 있는곳이 ‘허구 쪽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SvetlanaAlexievich (1948~)의 『세컨드핸드 타임이라는 저서가 있다. 지금 생각해도 탁월한 제목이다.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는 ‘지옥‘이라 불리던 독소전쟁의 전장이었다. 이 전쟁의 희생자(전사, 전병사)는 소련군이 1470만 명,
독일군이 390만 명이었다. 민간인 사망자까지 포함하면 소련은2000~3000만명, 독일은 약 600~10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소련의 군인, 민간인 사상자의 총계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체 교전 - P257

국가운데 가장 많을 뿐 아니라, 인류사상 벌어진 모든 전쟁과 분쟁 중에서 최대 사망자수를 기록했다.
그런 과거를 겪었지만, 똑같은 장소에서 전쟁과 잔학 행위가반복되고 있다. 그곳에서 외치는 슬로건은 알렉시예비치의 저서제목 그대로 모두 ‘세컨드핸드‘이다. 여기서 ‘세컨드핸드‘란 ‘이념‘
의 중고품이라는 의미다. 소련이라는 실험이 좌절하고, 사회주의의 이상도 붕괴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도 신자유주의의 발호와만연을 불러와 빈부 격차는 극대화되고 민족분쟁도 다시 불붙었다. 구소련을 구성했던 많은 국가에서 권위주의 체제가 구축됐다.
우크라이나 전쟁도 결국 소련 붕괴가 초래한사태다. ‘유토피아의폐허‘다. 이 폐허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만 할까. 어떻게든파괴된 이상을 재건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과연 어떻게?
나는 현재의 세계는 ‘민주주의‘, ‘인권‘, ‘피억압 민족해방‘ 등보편적 이상의 깃발 아래 ‘파시즘‘, ‘나치즘‘, ‘천황제 군국주의‘ 같은 눈에 잘 드러나던 ‘악‘과 싸운 결과의 도달점이라고 이해해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고난도 고통도 가득했지만 그래도 많은 이들이 ‘이상‘을 공유하는 일이 가능한 시대였다.
결국 무엇을 잃어버렸는가. ‘이상‘을 잃어버리고 무력만이 살아남았다. 지금은 냉소주의가 승전가를 부르며 ‘죽음의 무도‘를 - P258

추고 있다. ‘이상이 사라진 시대‘가 지속되고 있다. 생각해보면 훨씬 예전부터 그랬던 것 같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파시즘 세력이패배하고 냉전이 일단 종결되며, 세계는 가까스로 평화를 향유할수 있는 시대를 맞이한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트럼프 지지자가 다수를 점하고 있는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이민자 배척을부르짖는 우익 세력이 약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도 미얀마도 모두 급속하게 진부한 일‘이 되고 있다. ‘홀로코스트‘와 ‘팔레스타인‘마저 이렇게 진부해져버릴 것이다. 가자지구에서는 최근 2개월에 불과한 짧은 기간에 약 2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제연합이 내놓은 ‘인도적 정전‘ 결의안은 미국의 거부로 백지화되었다.(영국은 표결에서 기권했다.) 가자라는 좁은 지역에 갇힌 사람들을 향한 일방적인 무력 사용. 다름 아닌 제노사이드(대량학살)가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엔
‘나쁜 아메리카‘의 추한 민낯이 남김없이 드러난다. 물론 자국의그런 행태에 적지 않은 희생을 감수하며 항의하는 ‘선한 아메리카‘ 사람들도 존재하지만, 그 힘은 열세에 몰리고 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 총장이 자리에서 물러났고 하버드 대학의 총장도 사임압박을 받고 있다. 집단 히스테리라고도, 현대판 매카시즘이라고 - P259

도부를 법한 현상이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반이스라엘‘과 ‘반유대주의‘는 차원도 범주도 다른 개념이다. 이러한 (종종 의도적인)혼동은 문제 해결에 방해가 될 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러한 ‘반유대주의‘ 언설의 폭풍이 사납게 불어댄다. 반지성의 극치라고도 할수있다. 이런 상황속에서 ‘인문 기행‘ 따위를 쓰는 의미가 있는 걸까. 그럼에도 이런 상황이기에 더욱 ‘선한 이들을 응원하고 인문주의적 사고의 중요성을 끈질기게 이야기해야만 하는걸까.
이쯤에서 ‘미국인문 기행‘의 펜을 내려놓으려 한다.
책에서 언급한사람들 외에도 수없이 많은 선한사람들의 기억이 떠오른다. ‘아메리카‘란 무엇일까. 당연한 말이지만 아메리카‘는 단일한 어떤 곳이 아니라, 여럿이 서로 갈등하고 항쟁하는복수의 문화가 부딪히는 ‘장‘‘‘‘일 것이다. 나는 ‘아메리카‘를 좋아하며, 동시에 무척 싫어한다. 그리고 이런 극단적 모순과 항쟁이야말로 ‘아메리카‘이리라.
이 책 전반부에서 이야기한 미국 여행의 직접적인 목적은 미국의 여론에 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 국무부 인권국에 호소하여 형들을 포함한 한국의 정치범을 향한 학대 행위를 조금이라 - P260

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 목적을 이루는 데 나의 여행이 그다지효과가 있었다고는 생각진 않지만, 당시는 그런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심경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모순으로 가득찬 행위였다. 한국의 군사독재 정권의 뒷배, 바꿔 말하면 한국에서 벌어지는 인권 탄압의 당사자이기도 한 미국에게 호소하러 간것이었으니.
당시 체재 중에 내가 배운 것은 ‘인권‘이라는 개념조차 미국정부에게는 보편적 이념이라기보다 국익을 위한 ‘자원‘이라는점이었다. 그런 당연한 사정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나는 그런 전제를세워놓고 미국이라는 ‘장‘을 활용하려고 했다. 물론 나 같은 무력한사람이 그런 생각을 한대도 마땅히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겠지만, 그래도 이 책을 쓰면서 당시의 나, 극동에서 온 정치범 가족인젊은이에게 소박한 선의를 갖고 다가와준 사람들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그런 사람들의 작은 힘이 세계를 바꾼다." 따위의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그렇게 말하기에는 나는 너무나 암흑만을 보고살아왔는지도 모른다. 또는 아직도 더 크고 깊은 암흑을 볼 일이남아있는지도.
하지만 나는 지금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세계 여기저기에서하루하루 현실에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내 경험의 작은 조각이라도 제시하여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인간 그 자체에 절망하지 않기 위해. 그것이 나의 끝나지 않는 ‘인문 기행‘의 한페이지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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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거장들은 미술 작품에 그들의 모든 것을 바치고 작품 때문에 고통을 받으며 심혈을 기울였으므로, 그들은 우리에게 최소한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미술 작품을 이해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요구할 권리는 있는 것이다.
- P34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가 『서양미술사」에서 한 말입니다. 그의 영향력은 매우 커서, 우리는 ‘거장‘이 만든 ‘위대한‘ 작품에 감탄하면서 열심히 화가의 이름과 제목, 제작 연도를 외워 교양을 쌓아왔지요. 그러나 저는 곰브리치의 주장에동의하지 않습니다. 왜 ‘예술‘ 생산 행위는 신성시되고, 예술가들은 ‘천재‘라며 신화화되는 걸까요? 신분제가 붕괴되고 모두가 평등한 권리를 지니는 시민사회가 되었는데, 왜 우리는 신분제 사회에서 만든 시각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까요?
현재 한국의 미대에서 널리 사용하는 미술사 교재인 『서양미술사』는 1950년에 초판이 나왔습니다. 이 책은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대영제국의 훈장과 기사 작위를 받은 곰브리치가냉전 시대에 썼는데, 그의 관점을 아직까지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다면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서양미술사‘라고는 하지만곰브리치가 다룬 서양의 범위와 시대는 매우 협소합니다. 게다가 1994년에 16판을 낼 때까지 여성 미술가는 단 한 명도 다루지 않았습니다. 케테 콜비츠는 『서양 미술사』가 최초로 언급한 여성 미술가인데, 독일 표현주의 미술가 두 명을 추가하기 위해 그들에게 영향을 준 콜비츠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과 관점을 정한 후, 특정한 이미지만을사람들에게 공급하는 것은 곰브리치처럼 권위를 가진 학자들 - P35

•만이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미디어도 그것을 닮았는데, 특히 분쟁을 다루는 프로그램은 미디어가 누구의 입장에 서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강대국의 편에 선 카메라는 최신 폭격기가민가에 포탄을 퍼붓는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독재 정권의 통제를 받는 언론은 시위 현장에서 일부의 과격한 모습이나 위법행위를 중점적으로 보여줍니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는 ‘무엇을 사실로 만들 것인가‘와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즉, 이미지를 보여주는 권한을 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수많은 정보 중 몇가지만을 선택하여 ‘사실‘이 되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지요.
하나의 이미지라는 것은 재창조되거나 재생산된 시각이다.
모든 이미지는 하나의 보는 방식을 구현하고 있다.
한 이미지는 X라는 사람이 Y라는 대상을 어떻게 보았는지에대한 기록이 된다.
이미지 외에 어떤 과거의 유물이나 문서도,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 살았던 세계에 대해 직접적으로 증언해주지는 않는다. 이런 점에서 이미지는 문학보다 더 정확하고 풍부하다.
이것은 존 버거가 「다른 방식으로 보기」에서 한 말입니다.
우리는 정답이 정해진 사회에서 빠른 속도에 적응하여 사느라 - P36

무언가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기회가 적었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교과서 내용을 이해한 후에 자신의 관점으로해석하거나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기억했다가 시험에서 정해진 ‘정답‘을 맞히는 것이었으니가요. 의심을 품는 순간 생각이 많아지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으니 기억에 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제한된시간 내에 ‘정답‘을 찾아낼 수 없고, ‘낙오자‘ 취급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생존‘ 또는 ‘성취‘, 사실은 ‘성공!‘이라는 것을 위해 우리 앞에 놓인 것들을 곧이곧대로 믿고 받아들이도록 훈련받았죠.
이미지는 생산자의 의도가 담긴 기록물입니다. 시민사회 ‘미술‘이라는 것이 발명되기 전에는 교회나 귀족이 그 ‘의도‘를 통제했습니다. 근대사회에 이르러 ‘개인‘이자 ‘주체‘가 된 예술가도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특히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의심없이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재현하여 보여주었겠지요.
이제부터 과거에는 여성과 남성을 어떻게 다르게 재현했는지 본격적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대중매체가 발달하기 전에는 그림이 작품을 보여주었으니까요. - P37

서양미술에서 재현해온 여성은 남성을 위해, 좀 더 정확하게.
는 남성을 돌보기 위해 존재합니다. 여성은 남성의 정서적 안•정이나 생존 욕구 해결을 위한 돌봄 담당자. 어머니 · 성모마리아 또는 남성의 성적 욕구 충족을 위한 살덩어리 · 구멍으로만여겨집니다. 여기에 종교의 영향으로 금욕주의가 자리 잡으면서 여성은 남성의 성적 욕구를 자극하여 남성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도록 유혹하는 존재, 즉 악의 상징으로 사용되거나, 남성의 성적 욕구를 포장하기 위해 신성하고 아름다움을상징하는 존재로 둔갑했습니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교과서나 대중매체, 미술관·박물관에서 보는 거의 모든 그•림을 유럽 강대국의 백인 남성 화가가 그렸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실력을 인정받았더라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 화가들의 사회‘에서는 구성원이 될 수 없었습니다. - P58

"한 이미지는 X라는 사람이 Y라는 대상을 어떻게 보았는•지에 대한 기록이 된다"고 했던 존 버거의 말을 다시 떠올려봅시다. 교과서나 대중매체, 상품 디자인,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이미지들을 생산한 X는 ‘백인, 남성, 중산층, 지식인, 이성애자, 비장애인, 비청소년, (성평등 개념이 없던)전/근대인‘이 주축을 이룹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눈으로 본, 그들이 원하는 대로 규정되고 상상되었던 여성은 실제의 모습과 상관없이•철저하게 대상화되고 왜곡되어왔다는 것을 다음 장에서 집중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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