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 - 이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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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는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닸다. 분노를 터트리려 해도 그 대상이 불분명했다. 위로를 하려고 해도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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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학번 영수를 아시나요?>> 는 격동의 시기인 80년대를 그린 작품이다. 80년대를 살아보지 못한 탓에 대통령 직선제와 박종철⦁이한열 열사의 죽음, 88올림픽 등은 티비와 교과서 그리고 책들을 통해 알고 있었다. 이 책은 80년대를 그린 다른 책들과는 달리 그 시절을 함께 살아갔지만, 그 중심에는 서 있지 않았던 변두리의 이야기들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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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년대가 시작된 오늘에야 비로소, 가슴 저 깊은 곳에 묻어버렸던 어두웠던 한 시절을 이야기하려 한다. 어느덧 십수 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 나는 삼십대 중반의 나이로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있다.” - P.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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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이윤은 2000년대에 들어서 알고 지내던 정 기자에게 80년대의 이야기를 글로 써달라는 부탁을 받고 당시를 회상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윤은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때에 군에 입대하게 된다. 민주화 운동과는 가장 멀고 군사독재에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그는 친구들과는 다른 80년대를 보내게 된다. 당당하고 늘 믿음직스러운 하치우, 민주화운동을 하다 잡혔지만, 영장 덕분에 감옥 대신 군대를 오게 된 김영수. 이 둘은 이윤이 목격한 가장 가깝고 큰 상처를 받은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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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활 1년 하고도 한 학기를 끝내고 났을 때, 내게 남은 것은 5학점이 빵구 난 성적표와 급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 뒤의 상실감이 전부였다. 일상화된 최루탄과 깨어진 보도블록의 시대. 도서관에 들어앉아 공부를 한다는 것이 그렇게 시대를 비켜가려는 당사자나, 타인에게 모두 욕돼 보이던 시대에 나는 어느 순간 질려있기도 했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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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은 아버지의 죽음 뒤의 상실감에 일상의 모든 것이 질려 입대를 하게 된다. 그 덕에 이윤은 일반적인 80년대가 아닌 조금은 다른 시대를 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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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편 그 불의 시대의 배신자였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보다 커다란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피해자라는 것이 어디 그 하나였을까. 아니 그 배신자라는 것이 그 하나였을까? 어떠면 그 시대를 살아낸 우리 모두가 배신자였고 피해자는 아니었을까?”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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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는 미친 척을 하며 의가사 제대를 원하지만, 군정부에 끌려가 자신의 친구를 속여 그 지옥에서 빠져나오는 인물이다. 그는 배신자였지만 피해자였다. 배신자라고 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희생하는 것은 당연한 본능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수는 친구가 정부에 잡힌 후 부대로 복귀하면서 운전병에게 자신보다 먼저 그곳을 다녀간 ‘하치우’라는 사람에 대해 듣게 되고 후에 이윤에게 이야기한다. 이발병인 이윤은 친구인 하치우가 보이지 않자 휴가를 나간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하치우가 돌아와 보니 몸이 상처투성이였던 과거를 떠올리고 회의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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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80년대의 분위기를 전혀 모른다. 교과서나 영화에서 보았던 풍경들은 학생들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부모님 세대의 청년들이 어떤 기분으로 살아갔는지 어떤 고민을 안고 살았는지 알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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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우리는 30년 만에 전혀 다른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외치게 되었다. 우리는 30년 전손에 들었던 것들과는 전혀 다른 촛불을 들고 질서 있게 민주주의를 되찾았다. 그 때문에 이 소설을 조금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른 방법이지만 같은 목표를 갖고 싸웠던 사람들의 이야기라 공감하기 어려웠던 교과서 속의 이야기들이 조금은 공감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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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회에는 ‘악’이 많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30년은 악이 줄어들고 좋은 사람들이 더 잘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