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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눈물 ㅣ 대한민국 스토리DNA 16
전상국 지음 / 새움 / 2017년 12월
평점 :

우상의 눈물 – 전상국
새움출판사에서 전상국 소설 선집 <우상의 눈물>이 묶여 나왔다. 등단한 지 54년이 되었다는 작가는 내가 태어나기 훨씬 오래전부터 글을 써왔다. 시간이 많이 지난 작품들은 공감하기 어렵지 않을까 우려가 있었지만,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이야기가 어떤 것인가를 볼 수 있었던 책이었다. 1963년의 등단작 <<동행>> 부터 최근작이라고 할 수 있는 <<플라나리아>> 까지 강산이 변하는 시간 동안 써왔던 이야기들이 한 권의 책이 되었는데 하나 같이 옛이야기라고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돌아볼 수 있게 해 준 책이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폭력’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직접 고른 9편의 이야기는 이제는 잊히거나 익숙해져 보이지 않는 폭력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 책은 내가 알고 있던 폭력에 대한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작가는 6.25를 겪고 교육자로 일했다고 한다. 그런 작가의 생각들을 거침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 P.84
우선 <<우상의 눈물>> 이다. 9개의 단편 중 책의 제목으로 선정된 이유가 궁금했다. <<우상의 눈물>> 은 기표, 반장 형우, 담임선생님의 폭력에 관한 이야기이다. 기표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들을 폭행하고, 반장 형우는 교실에서 기표가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것을 조금이나마 억제한다. 그럼에도 기표는 문제아였고 담임선생님은 반장과 합의하여 기표의 유급을 막기 위해 부정행위를 시키려 한다. 하지만 기표는 부정행위를 참지 못하고 형우를 폭행한다. 형우는 짧은 입원 후 교실로 돌아와 기표의 가난한 형편을 아이들에게 알리고 기표를 돕자고 반 아이들을 설득한다. 기표는 그렇게 반 아이들에게 도움을 받고 언론에 알려져 기표의 이야기는 영화로 제작되게 되지만 기표는 영화 관계자를 만나기 직전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라는 편지를 남기고 가출을 하게 된다.
“무서웠다. 어른들의 음흉스러움. 알면서도 모른 체 시치미 뗀 그 저의는 무엇인가.” - P.73
<<우상의 눈물>> 은 여러 가지의 폭력을 보여준다. 기표가 반 아이들에게 했던 무차별적인 폭행. 반장이 기표의 유급을 막겠다고 저지른 기표의 부정행위. 모든 것을 알고 반장을 조종하여 기표를 잡으려는 담임선생님. 이 세 가지 폭력은 각각의 인물들에게 큰 상처를 입힌다. 기표의 폭행과는 조금 다른 ‘기표를 위해서’라는 이름의 행동들은 잔인할 정도로 폭력적이었고 기표는 그 행동들을 참지 못하고 도망을 간다. 보이지 않는 폭행에 치를 떨게 되었다.
다음은 <<아베의 가족>> 이다. 아베의 가족은 아베라는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아베는 형제들과 아버지가 다르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사람들과 형제들에게 무시당한다. 집안의 형편이 어려워져 가족은 고모의 초청장을 통해 미국으로 이민을 가지만 장애인인 아베는 이민을 갈 수 없어 가족들은 아베를 버리고 미국으로 가게 된다.
“나는 밤낮없이 그들을 칼로 찔러 죽이는 환상으로 치를 떨었다. 그들의 검고 끈적끈적한 살갗 그 깊숙한 데서 콸콸 쏟아지는 피를 두 손으로 받아 이웃 사람들 눈앞에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그때 살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가슴으로 치미는 증오와 복수심 그것 때문이었다.” - P.248
<<아베의 가족>> 은 장애인에 대한 비하와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인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큰형이지만 장애인인 아베를 둘러싼 사람들과 형제들의 시선은 아베와 부모님을 고통스럽게 한다. 사회에 만연한 이런 시선들은 현재도 달라진 것은 없다. 결국, 가족들은 아베를 버리고 미국으로 돌아가지만, 형제인 진호는 미군에 지원하여 형을 찾으러 한국으로 돌아온다. 가족의 끈을 수 없는 관계와 사랑에 대해 그린 이야기였다. 그래도 마지막은 희망적이라 다행이다.
책 <우상의 눈물>은 사회의 폭력에 대해 가감 없이 드러낸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여기 소개한 <<우상의 눈물>> 과 <<아베의 가족>> 이외의 7편 또한 우리가 무시하는 폭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은 수능에 전상국작가의 작품들이 나와서 공부하고 있을 텐데 조금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두고두고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