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소년 비룡소의 그림동화 28
야시마 타로 글.그림, 윤구병 옮김 / 비룡소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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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소년 / 야시마 타로 글,그림 / 윤구병 옮김 / 비룡소 / 1996

<까마귀 소년>은 그림이 예쁜 그림책은 아니다. 처음에 보면 약간 기괴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1996년 1쇄를 발행한 이후 현재까지도 계속 읽히고 있다. 원서는 1976년에 발행되었으니 40년이 넘었다. 한 책이 오랜 세월동안 스테디셀러를 기록할 때는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까마귀 소년>은 어리고 작아서 땅꼬마라고 불리던 소년이 초등학교 6년을 지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에 소년은 낯선 환경 탓에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다. 그런 소년을 아이들은 따돌리고 무서운 선생님은 혼만 낸다. 그래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채 혼자만의 생활을 이어나간다. 힘들었겠지만 소년은 비가 오나 태풍이 부는 날에도 학교를 빠지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6년이 흘러 졸업반이 되고 새로운 선생님이 오신다. 처음 소년을 맞았던 무서운 선생님과 달리 얼굴에 웃음기가 가시지 않는 다정한 선생님이다. 새로 오신 선생님은 외톨이 소년에게 관심을 가지고 졸업 학예회에서 소년에게 발표의 기회를 준다.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까마귀 울음소리'가 강당에 울려 퍼지고 졸업 후 '까마귀소년'은 집안일을 도우며 성실하게 살아간다.

'땅꼬마'라 불린 소년은 학교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주변을 관찰한다. 천장, 책상의 나뭇결, 친구의 옷, 창밖 풍경들, 지네와 굼벵이 등등. 이쯤 되면 소년에게 학교가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해진다. 나 같으면 이 지루하고 힘든 시간을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소년에게 학교가 어떤 탈출구가 되었을까? 집안일을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 산골짜기에 뚝 떨어져 있는 집에서 세상으로 나오는 탈출구. 그래서 힘이 닿는 데까지 버티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래도 결국 구세주가 나타나셨다. 이소베 선생님은 <창가의 토토>의 교장선생님을 연상시킨다. 아이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선생님. 다름은 틀린 게 아니라고 이야기해주는 선생님. 결국 '땅꼬마' 소년을 '까마귀 소년'으로 만들어주고 사람들과 유대관계를 맺게 하는 건 이소베 선생님의 격려다. 학예회에서 까마귀 소리를 낼 때 놀란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소년은 6년의 시간을 보상받았다. 그리고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이 책에서 한 가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소년이 학예회에서 까마귀 소리를 흉내 낼 때 모든 사람이 울면서 반성하는 장면이다. 아무리 감동스러운 순간에도 모든 사람이 하나의 감정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장면은 좀 작위적인 생각이 든다.

이 책은 그림이 예쁜 그림책은 아니다. 판화기법을 사용했고 처음에는 형태가 불분명한 사람들이나 물건들 때문에 이상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색감은 밝고 화려하며 등장인물들의 표정이 강조되는 부분도 있다. 표지 그림을 보고 책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책의 서사를 알고 보면 조금 생각이 바뀔 수도 있겠다. 노란색과 핑크색이 많이 쓰인 것이 특징이다.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앞면지와 뒷면지에 나와 있는 벚꽃과 나비이다. 궁금해서 찾아보았는데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먼저 벚꽃은 일본을 상징하는 꽃이다. 작가 야시마 타로는 1908년 일본 가고시마에서 태어나 1939년 반군국주의 활동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살았고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래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벚꽃으로 나타냈다고 한다. 두 번째 나비는 소년의 성장을 의미한다.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나비가 되는 과정이 소년이 '땅꼬마'에서 '까마귀 소년'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한다.

내가 만약 소년의 입장이었으면 나는 개근상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한 달 정도야 버틸 수 있었겠지만 6년을 참는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소년의 인내심에 박수를 보낸다. 반대로 소년이 얼마나 절실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 외로움을 견딜 만큼 학교에 오는 것이 좋았고 그게 유일한 탈출구이자 즐거움이었지 않을까 한다. 우리 아버지의 이야기도 생각난다. 아버지 어렸을 때도 학교가 끝나면 논두렁에 누워서 집에 돌아가지 않았단다. 집에 가면 일을 해야 하니까.

'까마귀 소년'은 학예회에서 느낀 성취감으로 남은 인생을 잘 살았을 것이다. 그 공로는 이소베 선생님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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