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의 인간학 - 비움으로써 채우는 천년의 지혜, 노자 도덕경
김종건 지음 / 다산북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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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순간은 어느 때고 찾아올 수 있다. 삶이 아무런 문제없이 순탄하게 지나갈 때 혹은 이전까지 미루어오던 문제가 곪아터졌을 때 상관없이 그렇게 도둑처럼 온다. 무의미라는 폭풍은 그전까지 이루어놓았던 삶의 의미라는 가건물을 쓸어가 버린다.


사람의 성장은 곧 의지와 능력의 성장이다. 사람은 이후의 일을 계획하고 목표를 설정하면서 정복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미래’를 손에 넣는다. 하지만 내 의지로 되지 않은 일들을 경험하고, 동시에 타인(他人)이라는 지옥에 휩싸이면서 늘 자신을 옥죄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일부러 무언가를 작위적으로 하는 삶, 하지만 내 의도대로 되지 않는 삶. 그럴수록 내면의 에너지는 고갈되고 우리는 지쳐간다. 내 삶에 주어진 온전한 자유는 부담이 되고, 삶의 무의미는 그나마 관습적으로 돌아가던 삶의 궤적을 차츰 녹슬게 한다.


이러한 실존적 불안 속에서 지친 중생들은 초월적인 존재의 힘을 빌어보고자 종교에 귀의하곤 한다. 종교는 어떻게 보면 가장 단순한 의미부여 방법이다. 신이 모든 것을 결정하므로 나는 그의 뜻에 따르면 된다. 마치 유년기에 부모의 뜻이 하늘과 같았던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많이 힘든 방법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기. 나에게 주어진 실존적 문제와 어려움을 직시하고, 굳이 삶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음을 통해서 도리어 의미를 찾는 방법. 사르트르가 ‘기투’라고 부르고, 까뮈가 ‘시지프스적 삶’이라고 불렀던 그 방법이다.


노자의 도덕경은 이런 실존적 삶의 태도와 닿아있다. 거대한 것을 본받으나 사소한 것을 쉬이 여기지 않는 태도. 그 과정 하에서 굳이 일부러 무언가를 하기 보단 자연스레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스며들어가 생명과 도(道)를 베푸는 삶. 그런 삶의 모습을 도덕경은 보여준다.


《노자의 인간학》은 도덕경을 풀어낸 소설이다. 쉽게 말해 《미움 받을 용기》의 도덕경 판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직장 생활 속에서 삶의 의지와 의미를 잃어버린 중년 남성이 도덕경을 읽으면서 진리를 깨우친다는… 어디에선가 자주 접해본 플롯이지만 신경 쓰지 말도록 하자.


저자는 주인공의 입을 빌어 도덕경의 중요성과 그로 인해 변화하는 삶을 설파하는 동시에, 도덕경의 에센스를 뽑아내서 우리에게 제시한다. 도가 사상의 도 자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훌륭한 입문서다. 요즘 가치 실용을 따지는 시대에서는 이만한 책도 없다.


이 책이 보여주는 ‘직장 처세술’의 수준을 넘어서서 노자와 장자를 포괄한 도가 사상에 대해 더 깊게 알고 싶다면 최진석 교수의 저서를 추천한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나 《생각하는 힘, 노자 인문학》을 읽으면 이 책에선 가볍게 넘어간 부분들을 깊게 설명해준다.


동양 철학들은 어떤 절대적 존재의 의탁하기보단 스스로 그 부분을 극복하기를 요구한다. 도덕경도 그러하다. 다만, 그 과정 하에서 의지할 수 있는 ‘신비한 힘’인 도(道)에 이르는 방법을 제시해줄 뿐이다. 그 도(道)가 바로 ‘하지 않음으로서 이룰 수 있는 힘’이라고 책은 말한다.


자아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겐 이 ‘하지 않음’을 이해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나 드러내야하고 자신의 의견을 드높여야 하고 쟁취하고 내 몫을 챙겨야하는, 철저한 자본주의적 인간에게는 이 ‘무위(無爲)’라는 건 자연스럽지 않게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무위는 내가 내 시선과 아집에 묶여서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해준다. 경쟁에 치여 놓치고 있던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시켜준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 모든 것을 이루는 역설은 여기서 온다. 그리고 그 길을 이루는 열쇠는 바로 이 도덕경에 있다.

p.50 "저의 마음이 불안합니다. 이 불안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십시오."
"그대의 불안한 마음을 내게 가지고 오라. 그러면 내가 편안하게 해주리라."
… "아무리 찾아도 가져올 불안이 없습니다."
"나는 이미 그대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었노라."

p.208 … 바쁘다는 생각없이 그저 눈앞의 일을 하나씩 처리해나가면 된다. 어차피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다음 문제가 등장할 것이다. 앞으로도 모든 일이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가 다시 멀어져 갈 것이다. 그것이 인생이다. 삶은 그렇게 이루어져 있다. 피하거나 두려워하거나 외면할 필요는 없다. 그저 받아들이려는 마음 없이 받아들이면 된다.

p.107 도덕경은 거대하고 큰 것을 이야기하면서도 작은 것, 사소한 것, 부드러운 것을 동시에 이야기한다. 거대한 것을 본받으면서도 작고 부드러운 것을 가까이하는 것이 삶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p.159 도덕경 48장 : 위학일익 위도일손 // 손지우손 이지어무위 // 무위이무불위
- 학문의 길은 하루하루 더해가는 것이고, 도의 길은 하루하루 덜어내는 것이다. 덜어내고 또 덜어내면 무위에 이르고, 무위에 이르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p.79 도덕경 63장 : 도난어기이 위대어기세 // 천하난사필작어이 천하대사필작어세 // 시이성인종불위대 고능성기대
- 어려운 일은 그것이 쉬울 때 계획을 세우고, 큰일은 그것이 작을 때 해야한다.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비롯되고, 천하의 큰일은 반드시 작은 일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이유로 서인은 끝내 큰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능히 큰일을 이룬다.

p.133 도덕경 7장 : 시이성인 후기신이신선 외기신이신존 // 비이기무사사 고능성기사
- 성인은 자신을 뒤로하여 오히려 앞서고, 자신을 밖으로 하여 지킨다. 그것은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능히 그 사사로움을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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