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런 가족
전아리 지음 / 다산책방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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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런 가족 / 전아리

1. 불행한 가정이 불행한 이유는 제각각이다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이 불행한 이유는 제각각이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첫 구절이다. 가족 관련된 소설이나 교양서에 질릴 정도로 등장하는 이 문장은 단 하나의 잘못된 점만 있어도 불행한 가정이 되기 쉽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가정이라고 할지라도, 그 구성원들의 잠깐의 실수와 우연한 위기로 인해서 쉽게 붕괴되곤 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불행한가정이 있다. 아버지는 성공한 사업가, 어머니는 예술 쪽에 컬렉터로 이름난 귀부인, 그리고 부유하게 부족함 없이 자란 두 딸. 겉보기엔 행복한 가정으로 보이던 이 가정은, 모범적이고 완벽하던 첫째 딸이 몰카에 찍혀 협박당하며 평화가 깨어진다. 각자의 방식으로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것은 첫째 딸을 위한 것이라기 보단, 자신의 체면과 이익을 위한 행동들이다.

2. 왜 금수저 가족이여만 했을까

모텔에서 생면부지의 남성과 성관계를 가지다가 몰카에 찍혀 협박당하는 딸. 문장을 곱씹기만 해도, 이 땅의 수많은 부모들이 개탄할 것이다. 보통의 가정이라면 경찰에게 신고하고, 협박범과 옥신각신하면서 전전긍긍할진대, 애초에 혈통 자체가 고상한 분들이시라,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다만, 똘마니들에게 뒷조사를 시키거나, 아는 해커에게 해킹을 부탁하는 방식 등으로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나간다.

아마, 이렇게 자력구제가 가능하다는 점이, 이 소설의 가정을 ‘1% 로얄 패밀리로 설정한 이유일 것이다. 대부분의 가정에선 두려움과 막막함으로 인해 동맥경화 걸릴 일을, 이 집안은 오랜 부유한 생활로 길러진 자신감과 뚝심으로 뚝딱뚝딱 처신한다. 그래서 수단의 고민은 사라지고,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서로에 대한 소통보다는 문제를 덮으려고만 하는 꽉 막힌가정의 모습만 부각된다.

3. 가족으로 포장된 욕망의 이야기

이 책에서 나오는 4명의 가족, 아버지 서용훈, 어머니 유미옥, 첫째딸 서해윤, 둘째딸 서혜란은 각자의 욕망과 고통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은 그들의 가족과 함께 그 욕망과 고통을 공유하지만, 너무 고상한 그들이 머무는 집, 즉 가정은 그 욕망을 숨기고 고통을 삭히는 공간이 될 뿐이다. 이런 소음없는 집안에 잡음을 발생시키고 싶었던 첫째딸 해윤의 욕망이 이후, 모든 사단을 나게 하는 원인이 된다.

혜윤만 불만을 느끼느냐, 그것만은 아니다. 아버지 용훈은 의사 집안에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득바득 키운 사업을 보고 뿌듯함을 느끼기 보단, ‘괴물이 된 자신을 본다. 어머니 미옥은 품위라는 두터운 가면을 썼지만 아직까지 첫사랑에 미련이 남아있다. 둘째딸 혜란은 우연히 생긴 자식이라는 피해의식에다가 사사건건 첫째와 비교되는 통에 깊은 외로움을 느낀다. 모든 가족 통틀어 확실한 욕구불만이다.

4. 무너진 벽 - 소통으로 숨통을 트다

혜윤의 몰카 스캔들로 인해 가족들 사이를 완벽히 구분해놓던 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가족들은 이 전대미문의 사건에 각자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가족끼리 의견을 모으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런 소통이 익숙하지 않은 가족들이라서 오히려 일을 더 크게 만든다. 그리고 이내 맞이한 갈등의 클라이막스엔, 말 그대로 그들을 구성하고 있던 허례허식이 다 불타버린다. 아주 활활.

그제야 그들은 서로 진정한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서로에게 불만스럽고 서운했던 점을 표현하고, 화를 내고, 감정을 교류한다. 집안을 둘러싸던 품위라는 독가스에 질식되어 가던 그들에게 소통이라는 숨통이 트이자마자, 말을 갓 뗀 아이마냥 가족 사이에 대화가 넘쳐난다. 혜윤이 그토록 바라던 소음, 이 가정 안에서 유일하게 없었던 소통이 생겨난 것이다.

5. 현실성보단 교훈과 스펙터클이 넘치는 소설

가족의 소중함, 정확히는 소통의 중요성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읽어볼만 한 책이다. 아니면, 막장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보다 더 막장과 성인(?)의 취향을 저격한 소설도 없다는 점에서 추천한다. 기존의 가정이라는 공간 하에서 숨 막혀 답답해온 사람들이라면, 우리 가족도 이런데 어떻게 하면 바꿔갈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할 계기를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추천한다.

하지만 결국엔 끝까지 가족에 매달리고, 마치 가족을 이루는 것이 이 세상의 유일한 목적인마냥 살아가는 이 어쩌다 이런 가족들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다. 주인공 가족들처럼 금수저들이 아니라 흙수저들이 겪는 현실에선 위기를 겪는다고 가족이 강해지기 보다는 아예 해체되고 풍비박살 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소설에서 어떤 현실성을 찾기보단 교훈과 스펙터클함 정도만 찾아가자.

p.55 집안의 어느 견고한 벽보다도 가장 단단하게 서로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적막의 벽이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 과자로 만들어진 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벽은 달콤함을 음미하며 허물어나갈 수 있는게 아니었다. 모두가 안간힘을 써서 깨부숴야만 사라질 수 있는 것이었으나, 혜윤의 가족은 그녀와 달리 적막의 벽을 당연시하고 때로는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했다.

p.152 "사람은 각자 우는 방법이 다르단다. 너처럼 시원하게 울음을 터뜨릴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우는 법을 잊어버린 친구도 있어. 단지 외로워서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하다만. 여기 머무르는 동안, 그리고 여길 떠나서도 우리는 가족이란다. 밉다고 따돌려서는 안 되지. 아이들은 속이 상하거나 서러우면 울어야 해. 그런데 친구는 그러지 못해서 화가 나는 거야. 다음에 싸울 때는 너만 울지 말고 그애도 울게끔 도와주어라. 눈물 흘릴 수 있게끔 도와줘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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